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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필사
    스치는 생각 2021. 5. 20. 07:51



    오후 2 시, 하루의 반이 지났다.
    청소가 끝난 뒤 손빨래를 해서 빨랫줄에 널고, 빗자루로 베란다를 쓸었다.
    창문을 열고, 반대편의 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이 통하고, 신선한 공기가 내 방을 채운다.
    책상에 앉아 성경을 읽고 Oswald Chambers 의 책, “My Utmost for His Highest” 필사를 했다.

    펜에 잉크를 찍을 겸, 눈을 쉴겸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베란다에 걸려있는 빨래들이 시야를 채운다.
    바로 그 뒤로 하늘이 파랗고, 밝은 햇살에 나무들이 봄바람게 가볍게 춤추고 있건만....
    구석에 거구로 세워진 빗자루에 눈이 간다.

    ‘앗, 빗자루를 제자리에 놓는 것을 잊었었네. ‘

    등의자에 걸려있는 빨주노초파남보 화려한 색깔의 멕시코 담요도 나의 시선을 뺏는다.

    ‘아, 먼지를 턴 뒤에 개어서 방에 들여놓았어야했는데..’

    필사 하다 눈을 잠깐 쉬려 했다가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일들만 보고 말았다.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일상 노동의 잔재들.


    나는 다시 책을 잡았다. 오늘치 필사를 끝내야지

    잉크를 잔뜩 머금은 펜으로 공책에 작은 획을 긋는 순간, 행복감이 밀려왔다.
    한 자, 한 자 글씨를 쓰는 가운데 단어와 그 의미에 집중되었다.
    나의 발은 현실의 바닥에 붙잡혀 있었으나 나의 사고는 높이 도약해 훨훨 날았다.

    빨래도, 빗자루도, 담요도.... 점점 작아져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나의 마음은 높이 날아갔다.

    필사를 마쳤다.
    차분한 마음으로 펜을 내려놓았다.
    눈을 감고 묵상을 했다.

    창을 내다보니 잠시 전에 조그많게 보였던 빨래, 빗자루, 담요가 바로 내 앞에 큼직하게 보였다.
    내가 돌아가야하는 현실이 버젓이 기다리고 있었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진 뒤 마음에 여유가 장전되어서인가, 그 현실이 정겹기만하다.
    소중한 일상의 소소한 일들.

    손빨래, 쓸기, 닦기, 청소기 돌리기, 볶기, 자르기, 쓰레기 버리기...모든 일들은 책임, 단조로움, 불완전성 등 과히 유쾌하지 않은 단어들을 연상시킨다. 옛날에는 집안 일들을 지금보다 더 건성으로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받곤 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것이 ‘묵상, 기도, 필사 등의 고결한 행위를 하기 위해 어서 해치춰버려야하는 골칫거리' 만이 아닌, 긍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제 나는 단순노동이든 더 큰 노동이든, 노동이 수행의 과정에 필요한 일이라고 받아들인다. '영성의 추구와 지성의 탐미'가 오른발이라면, 내가 살고 남을 살리기 위해서 해야하는 모든 '노동'은 왼발이라 믿는다. 그리고 ‘오른발’과 ‘왼발’의 협력해야 나는 삶이라는 천로역정을 걸어낼 수 있다. '영성'의 오른발' 이 한 발 나서고, '노동'의 왼발'이 뒤를 따르고, 다시 '수행'의 오른발'이 한발을 내딛으면 '노동의 왼발'이 앞으로 나가고--그렇게 왼발, 오른발은 번갈가가면서 내가 전진하게끔 해준다.

    노동과 영성이 조화를 이룰 때, 묵상에 울림이 있고, 기도에 영감이 더해지며, 신의 실체가 더 선명히 드러나더라는 게 내 경험이었다. 하나님은 내가 숨쉬는 매 순간, 나와 함께 하시지만 내가 그걸 알아채지 못하는 것일 따름...고요한 방, 깨끗한 책상에서 필사를 하며 진지한 묵상을 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듯이,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헹구고 짜는 손빨래를 할 때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아직도 요리는 참 싫어하는 일이라서인지 요리할 때는 하나님 생각이니 뭐니 전혀 안한다 ㅠ. 언젠가는 내가 싫어하는 빨래 개기와 요리를 하는 중에도 하나님을 자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중세 베네딕도 수도회의 모토, ‘기도하며 일하라’라고 한다. 나는 그 모토에 깊이 공감한다. 내 어찌 나 스스로를 평생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의 뜻을 구했던 수도사님들께 비교하겠냐마는, 그럼에도 평소 일하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일하는 흉내라도 내보려고 하면서 산다.

    오늘은 볕이 좋아서 빨래가 다 말랐다. 해 질 무렵에 베란다 의자에 앉아서 빨래를 개었다. 빗자루를 제 자리인 다용도 실에 넣었다. 큰 멕시코 담요를 곱개 개었다. 내가 베란다에서 그런 소소한 일을 하는 동안 우리 집 바로 앞 공원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나온 이웃, 트리샤 아줌마와 남편의 치매로 고생하는 제인 아줌마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주에서 온지 얼마 안되는 이웃 젊은 아줌마가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가 아슬아슬한 걸음걸이로 뛰다 걷다 하는 모습을 미소를 머금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옆집 사는 사랑스러운 꼬맹이 자매들은 개줄 없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개들을 쫓아다니면서 꺄르르르 웃고 있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는 흐르는 시간, 물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찰나적 순간들이 그렇게 잠깐 잠깐 정지되면서 그 환희로움이, 아름다움이 나에게 인식되었다.

    묵상과 필사의 효과임이 분명하다. 묵상과 필사 덕에 마음이 차분해졌으니 모든 게 더 깨끗이 보이고, 더 청명하게 들리고, 더 세밀하게 인식하게 되는 것이리.

    필사를 하기 시작한 뒤에 가끔 하는 생각인데, 삶도 필사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살고 싶다. 왼쪽 팔꿈치로 책을 고정하고, 베껴쓰려는 문장을 왼손 손가락으로 꼭 누른채, 오른손에 든 펜을 잉크에 적시고 책과 공책을 번갈아 보면서 한 자 한 자 필사하며 새로운 의미를 음미하듯이 나의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찰나들을 온전히 인식하고 살아낸다면, 그 텍스트의 의미의 울림이 얼마나 웅장하겠는가! 배움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 기쁨이 얼마나 풍성하겠는가!

    2021.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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