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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가 제 운명을 알고 싶지 않다면요?
    스치는 생각 2019. 4. 11. 22:53

    오프라의 절친 중, 레베카 할머니는 아주 '유능한' 점성술사 입니다. 손금도 잘보세요.

     

    할머니는 친구, 친구의 친척, 파티에서 만난 사람들, 식당 종업원, 가게 주인---그 누구에게든 '생일이 뭐에요?' 하고 말을 걸고 이야기 나눈 뒤 10 분 안에 그 사람의 인생을 다 읽어내서 '와..' '와...' '와...' 감탄을 자아내는 분입니다. 점성술을 믿기는 커녕 우습게 보던 어떤 대학 교수가 자녀 문제로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레베카 할머니가 생일 읽고, 손금 읽고, 아이 문제 다 알아내고, 아이 운세까지 다 읽어내고...그래서 교수님이 놀라서 바들바들 떨다가 울게 만들었다...는 이야기 등의 성공사례들이 전설처럼 회자되는 분.

     

    저도 20 대 말엽까지  정다/* 스님의 십이지- 책을 독파하고 점성술과 십이지간지를 짬뽕해서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을 즐겼더랬어요. 그래서 점성술이 말되는 소리도 있고, 엄청나게 재밌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단지 그게  맞던 안 맞던 제가 삶에 집중해 사는데 도움이 안되는 것이라 싶고 저의 인생관과는 상관없는 태도라 싶어서 끊었어요. (그건 옛날에 에세이에서 쓴 적이 있어서 생략~~)

     

    제가 레베카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10 년 전, 이스라엘 아버지 80 회 생일 잔치에서였어요. 제 운세를 봐주고 싶어하시는데, 점성술을 끊은 입장에서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점성술을 믿어서가 아니고, 제 운명이 궁금해서도 아니고, 그냥 할머니가 친근감과 애정의 표현으로서도 점성술을 사용하시는 것을 알기에 제 생일을 알려드렸지요.  할머니가 '아........' 하시더니 저더러 이렇네 저렇네 많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정다/* 스님의 '십이지**' 에서 배운 것과 비슷한 내용이라 놀랄 것은 없었음)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저에게 (그리고 저의 옆의 사람들이 다 듣게끔) 한 말씀이 있어요. 

     

    "지금 무슨 계획하는 거 있니? 넌 2 년 후에 정말 유명해질 거야. 수백 명의 사람을 앞에 두고 연설을 하고, 사람들은 너의 이야기를 경청하고....너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거야...."

     

    전 그 말 듣는 순간 속으로 아아..! 탄식이 나왔어요.

    왜 사람들은 나에게서 이런 운세를 읽는 것일까?

    그런 식의 성공은 전혀 일어날 일이 아닌데!  내가 전혀 원하는 게 아닌데!! 

     

    레베카 할머니 말고 저는 가끔  운명을 읽는 사람들로부터 '넌 크게 성공한다' 는 식의 소리를 들었더랬어요.

     

    1988 년 경, 기독교인 헬렌은 저에게 '5 년 후에 수백명 앞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라고 계시를 받은 듯이 이야기했을 때, 당시  강단에 설 꿈을 갖고 공부하는 중이었던 저는, "그래? 수강 신청 많이 하는 인기 교수가 되는 건가봐?" 하고 장난삼아 대답했더니 헬렌이, "아니, 그게 아니라, 큰 연설가가 되고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될 거야" 라고 했었어요.  그 후에 성지순례 온 어떤 할머니도 그런 소리를 했고,  여행 중에 만난 어떤 집시같은 여인도 그런 소리를 했고, 일본 친구의 할머니를 방문했을 때 '내 집에는 귀신들이 같이 산다고, 나중에 내 집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군데 군데 희미한 동그라미가 보일 것이고 그게 귀신들이 찍힌 것이다' 라는 으시시한 소리를 한 할머니도 저에게 크게 성공하고 유명해질 거라고 했어요.

     

    다들 뭘 보고 그런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뭔가를 읽어내는 것인지, 아니면 제가 가끔 남과 말할 때 신들린 듯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고 (가끔이지만) 그게 재밌어서인가 잠시 뭐가 씌여서 제 사회적 성공을 확신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봐요.

     

    여하간 그런 예언은 다 '꽝'이 되었습니다. ㅋㅋ

     

    운명의 장난인지, 제가 운명갖고 장난을 친건지, 아니면 그분들이 믿는 그 무엇인가가 장난을 친건지. 그들의 계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준으로는--'폭망한 인생'!  Me!  Moi! 

     

    가장 최근의 예언자인 레베카 할머니의 '2 년 후 수백 명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할 운명' 이란 예언은 2 년 후에도 계속 제가 냄비와 밥솥과 빨랫더미를 벗삼아 온종일 고양이와 노는 아줌마의 현실을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할머니의 예언 능력에 스크래치를 낸 안타까운 사례일 따름!

     

    여하간에, 이번에 이스라엘에 와서 만난 첫 친구가 레베카 할머니였어요.

    식당에서 만나 껴안고 인사를 나눈 뒤 레베카 할머니가  "너랑 같이 해볼 게임이 있어' 라며 박스 하나를 꺼내들었어요.

     

    앗,..또 예언?

    할머니는 10 년 전의 예언이 안 이뤄졌다는 사실, 아니 저에게 자신이 성공을 예언했다는 사실 조차 잊으셨나?

     

    할머니가 저에게  "지금 네가 미래에 대해서 알고 싶은 어떤 문제가 있니? 말해봐. 그게 어떻게 될지를 내가 알려줄께" 라면서 박스를 열었어요. 그 안에 주사위가 여러 개 들어있더군요. 

     

     '즐거운 소통을 원하시는 할머니의 원을 들어드려야하나, 아니면 정말 내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해야하나' 하면서 제 마음의 주사위를 들고 잠시 격렬하게 고민했지요.

     

    할머니가 재촉하셨어요.

     

    "어서 말해봐. 뭘 생각하고 있니?"

     

    할머니의 재촉에

     '팜펨아, 너도 60 이 다 되어간다. 할머니한테 맞춰드리지 말고 너도 할/머/니/답/게 이야기해봐!'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그래서 말했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알고 싶지 않아요."

     

    할머니는 제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아니, 제 반응이 이해가 안되셨나봐요.

     

    "그럴 리가 없어? 어떻게 아무 것도 알고 싶지 않아? 어서 말해봐. 생각하는 거 있잖아. 당장 안 떠올라도 생각해보면 나올 거야."

     

    할머니가 저를 push 하시니까 저도 좀 더 강하게 제 의사 표현을 하게 되더군요.

     

    "레베카, 전 정말 알고 싶지 않아요. 모르고 사는 게 더 좋아요. 모르고 사는 게 더 좋다는 것을 저는 확신해요."

     

    그리고 제가 예전에 블로그에도 썼던 글, '한치 앞을 몰라서 다행이다' 라는 글의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 가족은 2015 년 어느날 영화보고 즐겁게 저녁 먹고 사진을 찍었는데 바로 40 분 후에 아버지는 사고를 당해 불구가 되었고, 나는 3 년간의 수발을 들게 되었다. 그 이전, 2013 년에 엄마 생일 축하로 만나고 10 일 뒤에 혼수상태에 빠진 오빠, 그 후의 죽음.  두번의 경험을 겪으면서 나는 내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바로 한치 앞에 어떤 위기와 고통과 비극이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는데, 내가 '한치 앞을 모르고 살아서 다행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앞의 일을 모르니까 현재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으니까. 바로 앞의 일을 모르니까 온전히 즐길 수 있었으니까. 나는 그래서 굳이 내 앞의 일들을 미리 알고 싶지 않다' 

     

    레베카 할머니는 그래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면 좋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라고 우기셨어요.

     

    할머니는 스스로의 말에 설득력이 없는지 이미 알고 있었을 거에요. 본인도 '나쁜 일을 당할 거라'는 예언을 하는 분이 아니거든요. 할머니 입장에서는  점성술이든, 게임을 통해서 저에게 '그냥 뭐든 다 잘될 거다'라고 이야기 해주고 즐거운 시간 보내려고 했는데  제가 버티니까 좀 당황스러웠을 거에요. 그러나 여하간에 전 어떤 예언도 듣고 싶지 않았으므로 저의 입장을 피력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레베카, 만약에 제가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게 고통이라도 다 괜찮다, 나는 어떻게든 이겨낼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면요? 그럴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요?"

     

    그 말에 할머니가 말을 잊었습니다. 

     

    "레베카, 진짜로 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싶지 않아요. 고통을 당하고 싶지는 않은 건 당연하지요. 그러나 그냥 뭐든 다 받아들이고, 거기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면 삶은 무엇인가 꼭 보답을 해준다는 것을 배웠어요. 오빠의 죽음도, 아버지의 죽음도...그래서 저는 그냥 모르는 채 살래요. 알고 싶지 않아요. 제가 알던 모르던 일어날 일이 일어난다면 그냥 살아내면 된다고 생각해요. 삶은 열심히 사는 자에게 그 무엇이던 보상을 해주니까요."

     

    레베카 할머니는 실망하신 게 역력했어요. 상처받으신 것같기조차 했어요. 그러나 자존심을 지키시데요.

     

    '난 나에게 운명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에게만 읽어준다. 부탁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안 읽어준다' 라시면서---즉 너같이 튕기는 사람은 절대로 안 읽어준다라고 '튕기시면서'--- 박스를 닫으셨어요.

     

    그러나 박스를 닫는 순간, 우리 둘 다 운명에 대한 대화도 닫아버렸어요.  

    까짓것으로 마음 상할 일 있나요?

    연어 샌드위치와 토마토, 오이 샐러드를 맛있게 나눠 먹었습니다.

     

    할머니는 근황을 나누면서 노년의 피로함과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래도 사람들을 도우면서 열심히 살겠다는 결심을 토로하셨습니다.

    저는 그게 점성술 이야기보다 훨씬 더 재밌었습니다. 

     

    바로 앞에 일어날 일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우리가 서로에게 집중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게 얼마나 좋냐...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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