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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 친구의 죽음
    스치는 생각 2019. 3. 25. 09:38

    뜨르를~~~ (우리 전화소리)

    겨울방학이 끝나고 수업 시작하는 첫 날, 아이들이 아침에 한 소동 벌이고 학교에 가고 난 뒤 숨을 돌리려는 순간에 온 전화, 이상한 일이로다. 누가 이 아침부터 전화를 거나? 국제건화?

    “안녕하세요. 나는 룰루랑 같은 반인 다니엘라의 엄마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르나타라고 소개하는 그 여성과 인사를 나누면서 나는 더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르나타는 나에게 필립의 소식을 아느냐고 물었다.
    필립? 누구지?  
    룰루의 반 친구인가?

    “무슨 뉴스라도 있나요?”

    “필립이 죽었습니다. 방학 중에..”

    나는 갑자기 멍해졌다. 이게 무슨 소리이지? 죽다? 아이가? 방학동안 ? 근데 필립이 누군데? 

    너무도 쉽고 단순한  단어들이 갑자기 생경하게 느껴졌다.  단어와 단어가 이어지는 대신, 마치 성냥개비가 똑똑 부러지듯이, 하나 씩 하나 씩 따로 놀았다.

    근 20 분 간의 통화로 내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필립은 자기 집에서 목욕을 하다가 넘어져서 익사했단다. 1 월 2 일에 생긴 일인데 장례식을 오늘 1 월 8 일에 한다는 것이다. 
    10 살의 소년이 죽다니…내 옆에 가까이에 있는 한 아이가 죽다니…

    나는 검정 셔츠와 바지를 준비해서 학교로 달려갔다.  룰루는 나를 보자마나 흥분한 얼굴로, 약간 신나는 듯한 억양으로 소리쳤다.

    “엄마, 우리 반, 필립이란 아이가 있는데 죽었어.“

    나는 아이가 충격받아 울고 불고 하지 않을 거라고는 추측했지만 그래도 저렇게 즐거워 보일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기에 약간 당황했다. 무덤 앞에서 뛰어노는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열 살의 내 아들이 친구의 죽음이 마치 학교 소풍이라도 되는 거 처럼 신나하는 것이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둘러 아이의 옷을 갈아 입혔다.  검은 드레스에 검은 색안경을 쓴 르나타가 딸 다니엘라를 데리고 나타났다. 필립의 장례식에 갈 수 있는 아이들이 별로 없단다. 우리와 또 다른 학생 두 명, 담임선생, 그리고 필립과 가장 친한 친구들 몇 명 만이 가는 듯 했다.

    필립의 장례식장은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평화로운 C 도시에 있는 묘지 공원에서 열렸다. 나는 창문 밖으로 작열하는 태양빛을 넘실넘실 받아먹고 있는 거대한 고래 등짝같은 태평양을 보면서 고약한 심정이 되었다. 이놈의 날씨…정말 무심하고나.  아이가 죽었는데…아이의 장례식인데, 너는 이렇게 아름답고 찬란할 수 있단 말이냐?

    르나타와 나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맺어진 우정에 채 익숙지 않아,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두런두런 나누면서 차를 몰았다. 에밀과 다니엘라는 둘 다 조용히 앉아 있었다. 다니엘라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아침에 뉴스가 발표되자 마자 충격을 받은 여자 아이들이 울었단다. 남자 애들은 안 울었단다.

    식장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았다. 맨 앞에 관이 있나 봤더니 관 대신에 커다란 화환과 필립의 초상 사진이 세워져 있었다. 룰루는 마치 수퍼마켓에서 친구를 우연히 만났을 때처럼  흥분해서 필립의 사진을 가리켰다.  

    “엄마, 쟤야! 쟤가 필립이야!”

    이 녀석은 친구 얼굴이 반가운 거였다. 필립이 죽었는데. 사진 보고 반가워하면 뭐 하니..

    룰루는 장례식이 처음이었다. 영화 말고는 장례식을 본 적이 없으니 신기할 만도 했다. 연신 엉덩이가 들썩거리면서 둘러보고, 돌아보고, 손가락질하고….예의 없이 행동했다. 

    “룰루, 좀 가만히 있어.“

    룰루는 나를 빤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필립이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 진짜 같지 않아.“

    그 때 포기했다. 아이에게 점잖게 행동하라고 잔소리하기에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점잖게 행동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필립이 깨어나서 에밀과 함께 이 장례식을 아수라장 만들고, 부수고, 울고, 때리고, 오줌싸고, 엉망으로 만들어줬으면 얼마나 좋을까...이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꾸 눈물이 났다. 살아서 내 옆에서 말썽 피우고 있는 내 아이가 죽은 아이로 보이는데 어찌 눈물이 안 나겠나. 필립의 엄마는 어떯게 살 수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 식탁에 놓을 우유 잔과 접시가 하나 덜 해지고, 크리스마스 선물 리스트에서 아이의 이름을 지워야하고, 아침에 키스로 깨우고, 저녁에 키스로 재워야할 일이 줄어들고, 낮 2 시 반, 서둘러 아이 학교로 데리러 갈 일이 없어지다니.. 여행할 때 예약할 침대 하나가 줄어들고, 자동차 운전하다 가끔 거울로 뒤를 살피면 천사같은 얼굴로 잠에 빠져 있는 아이를 보고 미소를 지을 일이 없어지다니..

    아이가 채웠던 시간과 공간의 자리가 너무도 큰데….아이가 없다면 그 공간이 무엇으로 매꿔지는 건가?  아이가 죽으면 엄마의 삶은 어떤 것일까..

    나는 마치 눈사태에 던져저 끝이 없이 막막한 얼음 구덩이로 떨어지는 듯한 아찔함과 공포를 느꼈다.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는 신의 사랑도, 위로도, 죽음에 관한 멋진 명상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거 같았다. 

    나는 룰루가 부러웠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추상적이기만 한 그의 천진난만함  나는 부러웠다. 무지와 순수가 부러웠다. 삶의 고통을 상상하기에는 그 상상을 받쳐줄 수 있는 실제의 경험이 고통과 거리가 멀었기에 그런 것인가…내 아이가 너무 어려서인가.  


    필립의 장례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컴퓨터를 열었다. 나는 아이들 학교의 사진을 찍는다. 처음에는 직장 여성 엄마들이 자기 아이들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관찰할 수 없는 게 안타까워 사진을 찍어서 나눠주기 시작했다가, 언젠가부터는 그냥 막 찍어대는 버릇이 생겼다. 학교 연극이나 발표회, 현장학습 등등, 나는 아이들 사진을 찍는다. 그 때 사진기를 두고 온 엄마라던가, 사진기 바테리를 챙기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엄마들을 위해...그 외에 그냥 재밌고 신나는 장면이라던가, 나를 의식하지 않는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표정이 아름다우면 그냥 사진찍는다. 

    나는  내가 학교에서 찍은 여러 장의 사진 속에 혹시라도 필립의 사진이 있나 궁금했다. 나는 오늘 장례식 사진을 보기 까지 필립의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내 사진기는 나름대로 예술적인 순간이라 싶으면 필립의 영상을 잡아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작년에 찍은 사진을 보았다. 학교 행사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아아~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났다.
    사진이 있었다.
    작년 3 학년 아이들의 연극이었다. 3 학년 전체가 다 참여한 연극이었다. 나는 그 때 룰루의 친구의 엄마가 몹시 아파서 그녀 대신 사진을 찍었다. 내 아이와 그리고 몇몇 아이들을 눈여겨 보며 찍었었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잡아낸 필립의 사진이 적지 않않다. 그 중 하나는 필립이 무대의 중간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은 장례식에서 묘사되었던 필립의 성격--반짝거리게 똑똑함, 착함, 다정함, 장난스러움---들이 다 한꺼번에 표현된 듯한 표정의 필립을 잡아 내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사진 찾기를 시작했다. 학교 버스를 타고 어딘가에 가던 현장학습 여행…그 버스에 필립이 있었다. 옆의 친구를 보며 웃고 있었다.  뉴포트 비치에 새를 구경하러 갔던 현장학습에 필립이 있었다. 망원경을 들고…웃으면서…아니면 나에게 등을 향한 채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 후 S 도시의 옛 성당을 방문했던 현장학습 때 필립은 까만 티셔츠를 입고 친구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혔다. 필립은 여기 저기 있었다.

    그의 사진을 쭉 모아보면서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필립의 엄마가 보지 못한 필립의 이미지들을 보고 있구나.
    필립의 엄마는 내가 참여했던 현장학습에 오지 않았었다. (그랬다면 내가 그 엄마도, 필립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분명 그녀는 필립이 이렇게 저렇게 웃고, 떠들고, 관찰하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가 죽은 뒤에 엄마는 이런 사진을 보고 싶을까?
    이 이미지가 엄마에게는 너무 큰 상처가 아닐까?

    마음이 복잡한 상태에서 나는 사진들을 씨디에 복사했다.

    엄마가 어딘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필립은 열심히 자기 일을 하고 있었구나.
    엄마가 없어도, 엄마의 눈에는 안 보였어도, 필립은 잘 살아 있었구나.

    그럼…

    천국에 가 있어도 마찬가지인 거 아닌가?
    엄마가 천국에 있는 필립을 못 보지만…필립은 천국에 살아 있는 것이니.

    갑자기 천상병 시인의 싯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 세상에서의소풍이 끝나고 나서 돌아가 저 세상에 대한 소망에 대한 그 시가..
    그래.
    필립은 천국의 자기 집에 돌아간거고..
    엄마가 이 땅에서 현장학습 나온 거구나.


    가게에 가서 사진을 현상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폴의 사진은 흑백으로도 인화하고, 확대도 했다. 
    사진꾸러미를 들고 나오며

    “엄마가 옆에 없었을 때....." 라고 나름대로 작품명까지 지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냥 그 사진을 들고 다녔다.

    -------

    며칠 후 아침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 놓고, 우연히 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가 물었다.

    “혹시 필립의 엄마에 대한 이메일 받았어?”

    “무슨 이멜?”

    “응. 필립 엄마가 사진을 구한다고 해. 필립이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든, 백그라운드에 조그많게 나온 사진이든, 사진을 구한다고… 특히 3 학년 때 연극 사진이 하나도 없다고 해. 어떤 사진이든 자기 애가 나온 사진이면 좀 달라고 한다네…”

    “나 여기 사진 있는데…?”

    그 여성은 깜짝 놀랐다. 내가 사진 봉투를 보여줬지만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뭐라고? 사진이 있다고?”

    “응, 여기.. 흑백 사진도,  칼라 사진도, 확대 사진도…다 있어.  사진 현상해서 들고 다니고 있었어. 장례식 이후로…”

    "오…마이…고쉬!!!!!!!!!"

    그녀는 온 몸에 살이 돋아나는 것 같다고 했다. 너무 놀랍다고 했다.
     
     
    **
     
    나는 필립 엄마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받자 마자  전화를 걸었다.

    뭐랄까… 이 순간을 위해 이제까지 내가 그렇게 미친듯이 사진을 찍어댄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이 순간이 나에게 준비되어 있었다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필립의 양부는 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문 앞에다 사진을 두고 가겠다고 하고는 당장 차를 몰아 필립의 집에 갔다.
    사진을 문 앞에  두고, 내 차로 돌아와 필립네  전화를 걸었다. 
    사진을 받으시라고.


    필립의 양부가 필립의 엄마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한단다.
    나는 차에서 내려서 폴의 집으로 걸어갔다.
    눈이 부시게 밝았다.
    얄미운 캘리포니아의 날씨…여전히 찬란하고 무심했다.

    초인종을 누르니 필립의 엄마가 나왔다.

    날씨하고 키가 큰 여성이었다. 
    연한 금발이 마치 백발처럼 보였다. 나와 비슷한 또래인 듯한데
    100 년은 나이를 먹어버린 거 같았다.
    또 한편으로 그녀는 마치 어린 양처럼 온유하고 순결해 보였다.
    사랑과, 욕심, 열정, 희망 모든 것이 다 빠져나간 뒤
    남은 것 하나 없이 가난한 영혼으로 그녀는 나의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보는 순간 갑자기 성모 마리아 생각이 났다.
    아들이 임종을 지킨 성모 마리아의 고통이
    살을 에는 추위를 몸으로 느끼게 되듯
    내 몸에, 마음에 고통을 주었다.

    우리는 말없이 포옹했다.
    그녀와 사진 봉투를 같이 열었다. 

    첫 사진이 나온 순간, 그녀는 나지막하게…연약한 소리로

    오,...필립.

    아이를 불렀다.

    필립이 사진 속에서 엄마에게 웃고 있었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씩씩한 표정으로, 자신만만하게, 편안하게,….필립은 다 웃고 있었다. 엄마가 옆에 없었을 때, 엄마가 엾에 없어도 폴은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아 있었었다.

    “오오…어떻게 이런 사진이… 오오!! 나의 필립이에요. 이게 나의 필립이에요.”

    그녀의 눈에 눈물 방울이 맺혔다.
    나에게도.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레첸, 이제 당신이 없는 천국에 필립이 돌아갔어요. 당신이 그를 껴안지 못하고, 만지지 못해도, 필립은 잘 있을 거에요. 나는 그거 믿어요.”
     
    “오…네. ..고마워요. ”

    나는 내가 써 두었던 위로의 편지를 주었다. 
    우리는다시 껴안았다.
    그녀와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갑자기 나는 내 마음에 있떤 아픔이 서서히 가시는 것을 느꼈다. 

    며칠 동안 나의 마음을 짓누르던 상실에 대한 공포, 삶에 대한 집착이 주는 두려움이 없어졌다. 

    운전을 하면서 노래가 절로 났다.
    내 컴퓨터에  사장되어 있었던 사진 몇 장이 살아나 나와 필립의 엄마에게 준 기쁨이 부메랑이 되어 내 마음에 기쁨이 용솟음치게 해줬다.

    천국의 필립이 장난치며, 마치, 친구의 집에 처음 놀러가서 이 방 저방을 구경다니듯이 천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구름에서 스키를 타고, 천사의 나팔 대신 록 스타처럼 기타를 치는, 빛나는 금발의 미소년, 필립을 상상하며 어느덧 내 입가에는 미소가 어렸다.

    아, 내가 천국에 있는 필립의 사진을 찍어 그의 엄마에게 선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가 엾에 없어도 필립이 안녕함을,  필립이 우리에게서 떠난 게 아니라, 돌아갈 곳에 돌아간 것임을, 그리고 우리도 여행이 끝난 뒤에 그곳에 돌아갈 거라는 어떤 증거로서…

    그것은 불가능 하리라.

    그러나 필립을 통해서 이제까지 아무런 교류가 없었던 그녀와 내가 나눈 포옹이 이미 필립의 살아있음의 증명이다. 나의 마음의 기쁨이 필립의 살아있음의 증명이었다.

    필립은 보이지 않는 약속의 세계를 믿고 소망하던 나에게 어떤 구체적인 힘을 주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1) 라는 말씀에서처럼, 나는 믿음의 눈으로 폴이 속한 천국의 세계를 그리고 즐거워하고 감사한다.
     

     

    가운데 금발 소년이 필립입니다.

     

    Rest in peace,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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