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빅토리아 이야기 (3)- 이상한 자매를 도와준 은인들
    부모님 이야기 2019. 2. 20. 01:42



    이상한 자매애


    리셉셔니스트, 간호사, 의사들은 우리를 보면 의아해했다. 우리는 어떤 공통점도 없는 관계였다. 빅토리아는 셔츠에 청바지, 아주 캐쥬얼한 차림이고 화장끼는 전혀 없었다. 그 옆에서 조잘거리는 호피무늬 코트에 와글와글한 긴 파마머리, 화장이 진한 동양여성, 우리는 ‘친구’가 가질 수 있는 공통 분모가 하나도 없는 것같았다. 나이, 인종, 언어, 스타일 모두 다르지만 항상 붙어다니는 우리는 마치 완전히 다른 성격과 스타일의 두 형사가 활약하는 영화—버디필름 (Buddy Film) 의 주인공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호피무늬 아줌마가 매니저처럼 가방에 빅토리아의 모든 병원 기록과 서류들을 다 관장하고,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 운전면허증 번호까지 척척 나오니 의아해했다. 우리나라 주민증 번호처럼 중요한 소셜 시큐리티 번호는 내가 한국어 암호로 ( ‘육-육-삼-오-구—“ ) 외워서 기입하는 모습을 보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채혈을 하던 필리핀계 간호사는 궁금증을 못참고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우리의 관계가 뭐냐고. 처음에는 친구같지는 않고 엄마와 딸인가 했는데, 나이차이가 많이 안나고, 언어와 인종이 다르고, 둘의 스타일이 너무도 달라서 도저히 종잡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에요, 엄마!”


    그녀가 혼란에 빠지기 전에 금방 이어 말했다.


    “우리 여성들은 항상 서로서로에게 엄마 역할을 하잖아요?”


    간호사가 ‘맞아요!’ 하며 방긋 웃었다.


    우리의 ‘이상한 관계’가 준 잇점은 한번 본 사람은 우리를 잊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나도 우리에게 도움을 준 은인들을 잊지 못한다.




    햇필드 선생.


    의사 햇필드 선생은 빅토리아 검진을 한 뒤에 당신들은 어떤 관계이냐고 물었다. 


    “빅토리아가 저에게 중요한 친구에요. 암 수술 받을 수 있게 같이 다니는 중이에요”  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친구들이 서로 돕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요” 라고 미소지었다.


    그녀는 눈 앞에서 해야할 일만 하고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과 달리 설명을 잘 해줬다. 빅토리아는  MMMT Malignant mixed Mullerian Tumor) 의 케이스인데 그것은 폐경기 이후에 나타나는 희귀한 종양으로 악성세포들고 구성되어 있어 악성도가 매우 높고 여러 장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는—으시시한 소리를 해줬다. 위급한 상황이고 신속하게 일처리를 해야한다고 하며, 자기가 서류 제출을 했지만 혹시라도 진전이 없으면 자기에게 다시 연락을 하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주일이 지나도 서류 수속은 진행되지 않았고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빅토리아라는 환자의 건으로…” 하고 소개를 하다가 시간 절약하기 위해, “멕시코 환자와 같이 왔던 한국인인데~~” 라고하니 그녀는 담박 기억해내고는 그 자리에서 당장 팩스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는 그 결과 --‘다음주에는 전문의를 만날 수 있습니다”--를 나에게 직접 알려줬다. 



    또 하나의 은인은 제니퍼.


    시티스캔을 할 수 없었을 때 도움을 준 여성이다.  처음 조영실에 도착했을 때 직원은 서류가 미비하다면서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의사가 보내준 허가서인데 왜 안되냐니 자기는 모른다면서 그리 급하다면 돈을 내고 하라는 매정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근 1000 불 정도의 액수였다) 우리는 낙담해서 한 두 시간 정도 병원 카페테리아에 가서 마음을 가다듬어야했다. 


    무든 이유에서인지 나는 다시 조영실에 가보고 싶어졌다. 빅토리아에게 다시 한번 부딛혀보자고 했다.  두 시간 전에 안된다고 했던 일이 될 리가 없지만 그냥 한번 다시 시도해보고 싶었다. 


    다른 직원이 앉아 있었다. 제니퍼라는 맑은 눈의 직원은 쉰 목소리로 내가 장황하게 늘어놓는  기구한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더니 뭔가 같이 확인해보자면서 같이 나가자고 했다. 건물을 나와 주차장을 건너 다른 건물로 가서 한 사무실로 우리를 데리고 가더니 직원에게 내 대신 모든 서류를 꺼내놓고 설명을 해달라고 했다. 직원은 서류를 살피고 몇 군데 전화를 하더니만 ‘아! 알았다!” 라 소리쳤다. 우리는 비로서 우리가 몇 달 동안 이 사무실에서 저 사무실로 던져졌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빅토리아가 신청한 서류는 오렌지 카운티의 고유의 긴급한 의료 상황에 처한 19-64 세의 빈곤층, 합법적 거주자를 위한 의료 혜택 프로그램을 위한 것이다. 카운티는 그녀에게 보험증을 주고 치료를 허가했지만 —-그게 우리가 들고다니던 허가서—지금까지 빅토리아가 만난 의사와 각종 의료진은 — 응급실부터 시작해서— 모두 얼바인 대학 병원 시스템에 속해 있어서 일어난 문제였다. 이제 남은 것은 얼바인 병원에서 빅토리아를 혜택을 받는 환자로 받아줄지 아닐지를 결정하고 승인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설명과 즉시 직원은 즉시 빅토리아가 위중한 상황이며 신속히 대처해야한다는 이멜과 팩스를 다른 사무실에 보냈다. 그 직원은 이후로 빅토리아가 허가서 없이 갈 수 있는 병원들과 lab 의 리스트를 뽑아 줬다.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야한다면서. 


    그 순간부터 모든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우리 옆에 내내 서있던 제니퍼는 자기 일인양 기뻐했다. 

    우리가 주차장을 돌아 원래 건물로 돌아가는 길에 제니퍼는 ‘잠깐만요’ 하더니만  옆의 큰 길에서 방향을 못잡아  헤매는 운전자에게 다가가서 길을 알려줬다. 여전히 친절히. 


    나는 나의 궁금함을 억제하지 못하고 물었다.


    “맨날 이러세요?”

    “무슨 소리에요?”

    “당신은 항상 남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나요?”


    그녀는 하하 소리내어 웃었다. 도움이 필요한 게 보이니까 그걸 하는 거라고. 별거 아니라고. 사실 병원 조직이나 건물이 아주 비합리적으로 설계되어 시스템을 모르는 사람들은 고생을 하는 것같다고. 자기는 빅토리아와 같은 처지의 환자를 처음 보았고, 앞으로 이런 경우가 생길 때에 대비해서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알아두고 싶었다 했다.


    제니퍼와 헤어지기 전, 그녀는 우리에게 허그를 해주며 말했다.


    “포기하지 마세요. 용기를 잃지 마세요!”


    환히 웃고 헤어지면서 나는 그녀의 얼굴을 마음 속에 담았다. 10 년이 지나면서 그녀의 얼굴을 흐릿하지만 시원하고 선한 그녀의 눈매와 이름은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의사 에브라힘 D 선생


    이브라힘 선생도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 은인이다. 빅토리아의 CT 스캔의 결과를 읽어주고 빅토리아가 신속히 수술을 받게 도와주었다. 그는 거주자의 대부분이 멕시코계인 도시의 조그맣고 허름한 산부인과 병원의 병원장이다. 그를 처음 만난 날, 그는 시티 스캔의 결과와 각종 서류들을 재빨리 훑더니만 이란어 엑세트가 강하게 묻어나는 영어로 


    “좀 더 일찍 왔어야지요” 라고 했다.


    우리는 그 순간 긴장했다. 뭔가 크게 잘못되어있는가…


    “암덩이가 무척 크네요.”


    그의 목소리는 끔찍한 전쟁 다큐멘터리 영화를 단조로운 톤으로 서술하는 나레이터마냥 담담했다.


    “5개월 된 태아의 크기입니다."

    나는 그의 비유에 경악했다. 어떻게 암의 크기를 태아의 크기로서 이야기를 하나?! 한편으로는 산부인과 의사는 매일 자궁의 태아의 크기를 관찰하는 사람이니, 빅토리아의 자궁 안에 있는 이물질--암--의 크기도 평상시에 하는대로 태아의 크기로 보는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는 빅토리아가 수술을 빨리 해야한다고했다. (‘네!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자궁을 ‘열어보기 위해서’ 즉, 수술을 위해서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저는 산부인과 의사이지 암 전문의가 아닙니다. 간단한 수술이면 우리 병원에서도 할 수 있지만 암수술은 못합니다. 아니, 수술을 한다해도 수술 후의 항암치료 시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큰 병원의 암전문의를 만나서 수술하고 필요하면 항암치료를 받아야합니다.”


    우리는 둘 다 동시에 아....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빅토리아의 고개가 푹 떨궈졌다. 이제까지 의사를 찾는 것도, 만나는 것도 힘들었는데 또 암 전문의를 찾아야한다니. 


    우리의 허탈한 표정을 보더니 의사가 푸념같이 들리는 소리를 했다.


    "어쩌겠습니까...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본주의 사회이니..." 


    그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다 돈보고 일하니 빅토리아처럼 극빈자 보험을 가진 사람이 수술을 할 경우에는 국가에서 지불하는 보험 액수가 적고 절차가 까다로워서 의사들이 꺼려한다고 했다. 100불을 받아야할 수술인데 10 불만 받는 격이고, 암수술은 중대한 수술인데 돈도 제대로 못받고 수술을 했는데 혹시라도 잘못되면 소송이나 걸릴 수 있으니 어떤 의사가 좋아하겠냐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아는 암전문의에게 전화를 해주겠다고 했다. 만약 그사람이 빅토리아를 받아주면 다행이겠으나 혹시 안된다면 우리가 직접 암전문의를 찾아야한다고 했다. 그다음에 한 소리가 너무도 고마웠는데--혹시 수술실이 필요하다면 자기 병원을 제공할 수 있으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와주겠노라고 제안했다.


    나는 의사의 입에서 ‘자본주의 운운’ 하는 소리를 들으니 신기했다. 게다가 무뚝뚝한데 하는 소리마다 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다.


    그날 오후 우리는 뉴포트비치의 병원의 의사와 연락이 되었다. 위급 환자라고 의사와의 미팅을 이틀 후에 잡아 줬다. 


    4 월20 일.  수요일.


    암전문의의 사무실에 들어가는 순간 유리로 둘러싸인 사무실의 밝음에 눈이 부셨다. 밝은 방에는 밝은 기운이 넘쳐 흘렸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환히 웃으며 반겨주는 직원, 지나치는 간호사, 다 친절하기 이를 데 없었다. 평상시처럼 여러 서류를 보여주고 설명을 하려는데 사무직원이 그럴 필요 없다면서 환히 웃었다.


    "서류는한장만필요합니다. 허가서 한 장."

    "허가서는스페인어로되어있는데요, 영어 서류를 못받아서.."

    "상관없어요(방긋!) 날짜만 확인하면 되거든요(더 예쁜 방긋!)."

    방긋방긋 웃는 사무직원의 미소가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한편으로는 맨날 구박덩이에 싸움쟁이

    역할만 하던 우리가 이렇게 환대를 받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잠시 후 의사가 들어왔다.

    젊고 활기찬 의사였다. 휘르르~~ 차트를 훑는 모습마저 젊음과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이미 빅토리아에 관해서 다 알고 있었다.


    “수술을 빨리 해야겠습니다."

    아, 저 박진감, 추진력이라니!


    “무슨 일이 있어도 2 주 내로 수술할 것입니다. 아마 자궁을 다 들어내야할 것입니다. 수술은 바로 옆 종합건물 병동에서 할 것이고요. 잠시 후에 복도 끝 방의 재닛이라는 사무직원이 구체적인 설명을 해줄 것입니다.”


    뭐든지 일사천리였다. 너무도 고맙고 신기했다. 이제까지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동분서주 다니던 게 과녁을 어디에 맞추어야하는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양궁 선수와 같았는데, 이제 우리는 정확히 목표물을 향해 활을 당기고 있었다. 수술이라는 그 과녘을 향해! 


    의사는 방을 나가다가 말고 우리를 돌아보았다. 나더러“당신에게 감사합니다. 당신은 아주 좋은 친구입니다” 라고 하고 빅토리아에게도“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라 하였다.


    의사가 나가자마자 빅토리아와 나는 손을 잡고 펄쩍펄쩍 뛰었다.


    수술을받게된거야?!   맞아! 꿈같다!  와. 안믿어진다!!


    닥터 이브라힘의 덕이었다. 그는 나와 빅토리아가 마치 도랑에 박힌 차 처럼 꼼짝않는 차를 어떻게든 꺼내보려고 애를 쓸 때 나타나 차를 도랑에서 빼줬음은 물론, 기름까지 넣어주어 잘 갈 수 있게 해주었다.


    (참고--빅토리아는 10 년이 지나서 요즘도 닥터 이브라힘에게 진료를 받는다고 한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