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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토리아 이야기 (4) -우리의 엄마들
    부모님 이야기 2019. 2. 21. 04:12



    나는 한 간호사가 빅토리아와 나의 관계를 물었을 때 '우리 여성들은 서로에게 엄마 역할을 한다' 고 했었다. 내가 빅토리아를 도울 때 나를 도와준 친구들이 있었다. 몇몇 엄마들은내가 일이 늦게 끝나서 방과 후 시간 맞춰서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없을 때 기꺼이 아이들을 픽업해줬고 격려해줬다. 그 외에 빅토리아에게 직접 응원의 말을 전해주고 빅토리아의 힘을 덜어주려고 학교 일을 자원해 도와준 엄마들도 있었다.


    우리 아이들 또래의 자매를 둔 비키는 우리 애들과 놀리면 자기가 덜 힘들다면서 아이들을 많이 봐줬다. 봄방학 동안에는 아이들이 집에 있는데 부모님께 종일 아이들을 맡기고 나가는 게 죄송해서 고민하니까 자기가 하루 아이들 4 명을 데리고 디즈니랜드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집은 몇 번 가본 적이 있고 우리 아이들은 한번도 안 가본 곳이었다. 이참에 한번 보내봐도 되겠다 싶었다.


    그 전날 에밀과의 대화.


    "에밀, 내일 아침에 제레미랑 코린이랑 디즈니랜드에 갈 거야."


    "그게 뭐야?"


    "디즈니랜드! 디즈니랜드 몰라?"


    어떻게 이 당연한 것을 모르지? 우리가 디즈니랜드에서 30 분 거리에 사는데? 내가 안 데려간 것은 사실이지만, 디즈니랜드는 모든 이의 상식이 아닌가?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미키마우스, 신데렐라 등을 언급하니 에밀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 그거...그러면 스케이트 타야하는 거야? 난 싫은데...."


    이건 또 뭔소리? 오...얼마 전에 학교에서 단체로 스케이트 쇼를 관람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디즈니 만화영화 주인공들의 분장을 한 스케이터들의 공연을 본 기억때문에 아이는 디즈니랜드가 아이스링크라 생각한 것이었다.


    옆에 있던 꼴렛이 끼어들었다.


    "엄마, 난 디즈니랜드 보다는 real 한 게 좋아. 공주님, 왕자님, 이런 이야기보다는 진짜 이야기가 좋은데...."


    내가 큰 돈 지출하면서 선심쓰는 건데 황당한 상황이었다. 돈의 가치가 없는데 굳이 보내야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맘 편히 밖에서 일을 하려면 어딘가에 가는 게 필요한데....다행히 아이들은 제레미와 코린과 어디를 간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그렇게 그 흥분 속에서 아이들은 하루를 보냈다.


    다녀온 뒤에 물어보니 제레미와 코린과 같이 논 게 그리도 좋았나보다. 


    아이들이 디즈니랜드를 다녀온 날은 빅토리아에게서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전문의를 만난 날이었다.

    암울한 정보를 들었지만 꼭꼭 막혀있던 일들이 처음으로 풀린 날, 디즈니랜드로 100 불이 넘는 지출을 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우리를 도와준 많은 엄마들이 있었지만 빅토리아도 나도 우리의 실제 엄마들 덕에 용기를 잃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엄마를 모시고 사는 빅토리아는 엄마가 자기가 암에 걸린지를 전혀 모르게 한다고 했다. 엄마가 걱정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다고 했다. 


    나와 빅토리아가 자주 통화하고, 의사 이름, 병원 주소, 전화번호, 소셜 워커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니 마마가 이상하다 여길 수 있었다. 그래서 빅토리아더러 당분간 ‘마담징즁이 아프다’ 라고 하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전화를 할 때마다 마마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마담징즁, 코모에스타, 코모에스타?” (Madame Shinjyu, how are you? How are you?) 


    자꾸 물으셨고  내가 아는 스페인어로는 '무이비엔'  (very good) 뿐이니, 나는 그저 무이비엔, 무이비엔 대답한다. 그러면 마마는 



    "갓블레슈! 마담징즁, 갓블레슈!" 하시고 나는  "그라시아스, 그라시아스! 마마!”한다.


    (마마는영어를못하고,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니, 그저 아는 소리를 두 세번 씩 부르짖는다.)


    내가 빅토리아와 전화 통화를 자주 하니 마마가 ‘마담징쥬'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시는 것같았다.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마마의 기도가 저에게 향했다면, 그것을 빅토리아에게 돌려주세요. 빅토리아 살려주세요!”


    빅토리아가 살겠다는 의지는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서였다. 팔에 금이 갔을 때도 엄마한테 내색을 안했다고 하는 그런 ‘독종’ 딸의 엄마 사랑은 헤아릴 수 없이 깊었다. 조그만 둥지에서 단둘이 의지하면서 보듬어주는 모녀의 사랑, 그것이 빅토리아의 일이 잘 되어야만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내가 빅토리아 일로 한참 바빴던 2005 년 4 월, 예정대로 한국의 부모님이 방문하셨다.  부모님은 빅토리아를 만나적 없이 그저 나의 이야기로 들어 알고 있었다. 


    엄마는 도착하자마자 ‘이번 미국행은 네가 빅토리아의 수술에 집중할 수 있게 돕자는 목적으로 온 것이니까 우리에겐 신경쓰지 말아라’ 라고 하셨다. 한국에서 도착한 뒤의 시차적응, 본인들의 식사와 산책 등 건강 관리를 열심히 해서 내가 신경쓸 일이 없도록 해주셨다. 


    엄마는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아니! 내가 빅토리아를 간접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게 축복이다’ 라고 하면서 식사와 청소는 물론,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까지 다 해주셨다.


    그뿐이랴 주말에는 내가 푹 쉬어야하니 아이들과 가까운 해변에 가는 것, 며칠 가족 여행 다녀오는 것도 다 생략하자고 했다. 딸이 잘 쉬어야 빅토리아를 위해 일할 수 있고, 딸에게 아무 부담 안 주는 게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빅토리아를 위해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는 이론이었다. 에릭은 가까운 곳으로 가족 여행 계획을 세웠지만 부모님의 단호한 반대로 취소되었다.


    부모님의 이해 덕에 나는 맘 편히 ‘빅토리아 안 도와주는 귀신들’ 잡으러다닐 수 있었다. 부모님은 출국 일정도 빅토리아의 수술 직후로 잡으셨다. 내가 당신들 출국 준비에 마음을 쓰지 않게 해주고, 혹시라도 힘든 일이 있으면 나를 도와주려는 배려였다.


    언젠가 내가 운 적이 있었다. 제니퍼 덕에 모든 일이 다 잘 풀리게 된 날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긴장이 풀려서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울어서 스트레스 푸는 스타일이라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전하면서 찬송가 들으면서 신나게 울어재꼈다. (진짜 이 표현 말고 달리 할 길이 없음) 


    집에 들어가기 전에 다 울어야지. 엄마 마음 고생 시키지 말아야지…


    빅토리아가 마마한테 자기의 상태를 비밀로 하듯이 나도 나의 약함과 무름을 엄마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나는 계속 울고 있었다. 

    엄마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반갑게 나를 맞아주셨다.


    “에구..힘들었구나. 빅토리아도 힘든 날이었겠구나. 가엾어라. 된장찌게 끓여놨어. 어서 밥 먹어라. 다 잘 될 거야. 염려하지 말아.”


    수많은 여성들이 빅토리아와 나를 이끌어주고, 도와줬지만, 맨 마지막 나를 품에 안아준 것은 엄마였다. 내가 있는 그대로, 지친 그대로 안길 수 있어도 되는 엄마의 강함이, 엄마의 사랑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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