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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토리아 이야기 (1)--아버지의 간병 도우미
    부모님 이야기 2019. 2. 20. 01:42



    아버지가 병상에 누운지 며칠 안되어 나는 도우미 없이는 아버지를 돌볼 수 없음을 깨달았다. 목욕할 때 아버지의 안전을 위해서는 힘이 좋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도우미는 어떻게 구하는 거지? 찾아보면 정보를 얻을 수 있겠으나 나는 당장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빅토리아가 떠올랐다. 그녀는 멕시코 출신의 미국 시민자로서 10 여년 전 아이들이 다니던 유치원의 청소부/요리사였다. 연락없이 지내다가 전화하는 것도, 요양 도우미 경험이 없는 그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걸었다.


    "세뇨라, 혹 요즘 바빠요? 요즘 우리 집에 일이 있어서 도움이 필요한데, 물론 돈을 지불할 것이고요….”

    빅토리아가 나의 말을 막았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가 언제 갈까요?"


    너무도 고마웠다. 내가 찬찬히 설명하고 시급을 이야기했다. 내가 가격을 이야기하자마자 그녀는 ‘네!’ 하고 대답했다. 그녀가 너무도 빨리, 긍정적인 대답을 해서 나는 적지않이 놀랐다. 속으로 빅토리아가 요즘 돈이 궁한가? 그래서 힘든 일이라도 당장 하려는건가? 싶었다.


    몇 시간 후  그녀가 왔다.  아버지께 공손히 인사를 한 뒤에 그녀는 나를 도와 아버지 스폰지 목욕을 했다. 목욕이 끝난 뒤에는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조용히 아버지 방을 정리하고 바닥을 물걸레로 닦았다. 2 시간 동안 많은 일을 한 뒤에 퇴근했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나와 함께 했다.


    아버지가 침대신세를 지면서도 3 년간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를 친아버지인양  헌신하며 섬긴 빅토리아 덕이다.  3 년 동안 그녀는 자기가 맡은 일을 100 퍼센트 수행함은 물론 내가 언제든지 어떤 도움이든 청할 수 있는 그런 든든한 백업 일꾼이었다.  (자기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하는 그녀의 열정에 나는 가끔 언성을 높여가면서 그녀가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막아야했다.)  


    간병 도우미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빅토리아의 삶의 중심은 그녀의 교회와 아버지의 수발이었다.  우리는 시간 계산, 돈계산을 정확하게 했는데, 빅토리아는 조금이라도 더 머물면서 일을 하나라도 더 하려고 했고 내가 요구하지 않은 일을 찾아서 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고마워하면서 동시에 빅토리아가 돈이 궁한가보다 추측했다. 은퇴한 뒤에 연금이 많지 않으니까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는 거 아닐까?  아니면 아버지가 없는 그녀가 나의 아버지께 각별한 정을 느끼는 것일까? 


    나를 더 헛갈리게 하리라 작정을 하기라도 한 듯이 그녀는 일을 시작한지 몇개월 후에 나에게 제안했다.


    “마담징쥬, 일주일에 하루는 에릭과 데이트를 나가세요. 그날은 제가 ‘아부지’를 혼자 돌볼께요. 내가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데이트 나가는 날은 제가 무보수로 일할께요. 저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줘요.” 라고 했다.


    빅토리아가 돈이 궁해서 간병도우미 일을 덥썩 잡아서 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녀의 제안이 이해가 안되었다. 여하간 그런 제안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빅토리아, 우리는 비즈니스 관계에요. 고용주를 버릇없게 만들면 안돼요. 절대로 공짜로 일해주면 안돼요 그런데 그 마음은 너무 너무 너무 고마워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버지를 돌본다는 게 나에겐 정말 큰 격려에요.” 라 했다.


    한 1 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빅토리아가 왜 우리집에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 목욕이 끝나고 같이 정리를 하는 중, 빅토리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자기 친구들이 ‘왜 너는 60 중반에 간병 도우미라는 힘든 일을 시작하느냐’ ‘그 한국인 할아버지가 뭐라고 그렇게 정성을 다하느냐’ 라고 묻는다고 했다. 나도 궁금해하던 일이었다. 그래서 “왜 그래요?’ 하고 물었다.


    빅토리아는 나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슬쩍 흘리듯이 말했다.


    “제가 친구들한테 이야기했어요. ‘옛날에 그 할아버지의 딸이 나의 생명을 구해줬어.  그러니까 이제는 내가 그녀를 도와줄 차례야.’”


    깜짝 놀랐다. 돈이 궁해서가 아니었구나! 자기 아버지의 정이 그리워서도 아니었구나!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었구나. 그녀의 마음 속에 ‘은혜를 갚는다’ 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나는 상상도 못했던 나는 깊이 감동받았다. 그녀는 돈이 궁해서 덥썩 일을 시작한 게 아니었고, 오히려 나와 맺은 비즈니스 관계는  내 마음이 편하게 하면서 나를 도와주려는 그녀의 배려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든든했다. 아버지를 나와 같은 마음으로 돌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천군만마를 얻은 것같았다.


    빅토리아가 내가 그녀의 생명을 구해줬다고 하는 일은 2005 년의 일이었다. 그 사건으로 우리는 운명공동체가 되어 깊은 자매애를 쌓았다. 그 이후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고 자주 만나지 못했다가 10 년 후 아버지 일로 다시 만나게 되어  다시금 운명공동체가 되어 아버지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연합하여 노력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예전에 빅토리아에 관해 쓴 글들을 찾아보았다. 지금 이 글의 기초가 된 나의 옛날 블로그/일기를 찾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글을 잘 보관하지 않았을만큼 그때의 사건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니었다. 빅토리아에게 내가 우리의 자매애의 이야기를 글로 써도 되냐고 물었더니, ‘물론이지요! 그건 우리의 이야기지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단지 제 이름만 바꿔주면 됩니다’ 라고 선선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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