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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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부모님부모님 이야기 2017. 7. 21. 08:33
첫 아이가 대학에 입학한 게 2015 년 9 월, 그 달 아버지가 넘어지셨다. 팔이 부러지셨고,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셨으며, 이 건강 상태로는 한국에 돌아갈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에 엄마와 아버지는 졸지에 미국에 머무시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지경이라 우리는 내내 초긴장 상태에서 아버지를 돌보면서 방을 개조하고, 보험을 들고, 영주권을 신청하고, 한국의 재산 정리를 하고, 부모님의 집을 팔았다. 2016 년 8 월 둘째가 대학에 입학해 집을 떠났다. 아버지의 건강은 많이 회복되었으나 연세가 연세이니만큼 아주 약한 바람에도 감기에 걸리실 수 있고, 캘리포니아의 일교차는 언제고 건강을 해할 수 있는 복병이라 우리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부모님 덕에 두 아이가 떠난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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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노인"들과 함께 홀로 걷기부모님 이야기 2017. 7. 17. 10:29
엄마가 넘어지셨다. 아침 산책 다녀오는 길에.휠체어를 탄 아버지 바로 옆에서. 급히 달려가 엄마를 일으켜 세워드렸다. 수선 피우면서 여기저기 살펴보니다행히 심하게 다친 곳이 없으셨다. "아버지, 엄마 괜찮으시네요!" 몸이 불편하셔서 나무처럼 꼿꼿한 자세로 앉아 계시는 아버지께 기쁜 소식을 전했다. 아버지가 조용히 울고 계셨다.엄마 잃은 어린아이가 넋놓고 울듯이,그러나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으시며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울고 계셨다.손을 위로 올릴 수 없으신지라 눈물을 닦지 못하셔서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아버지, 많이 놀라셨어요? 엄마는 괜찮으셔요." 얼굴을 닦아드렸다.아버지가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참 불쌍한 노인이구나." 그 말을 마치자마자 또 눈물을 흘리신다. 참 불쌍한 노인이구나...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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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발과 육아부모님 이야기 2017. 7. 17. 10:29
누워 있는 아버지를 내려다보면서, 잠자는 아버지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한번도 뵙지 못한 할머니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9살 때 돌아가셨으나 거의 구십이 되어가는 나이에도 생생히 기억하시고 그리워하시는 아버지의 어머니, 나의 할머니. 할머니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아들을 내려다보셨겠지. 포근히 안아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면서 다정히 엉덩이를 두드려주고, 깨끗한 물에 몸을 씻어주었겠지. 내가 아버지께 이유식을 떠먹여드리고, 기저귀 갈고, 목욕을 시켜드리는 것을 보면서 할머니는 내가 지금 할머니가 하시던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흐뭇하시겠지... "할머니, 마음 놓으세요. 제가 잘 할께요." 그렇게 나는 아버지가 9 살 때 돌아가신 할머니와 마음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게 작년 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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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의 친정부모님 이야기 2016. 6. 9. 02:03
엄마는 함경도 북청이 고향이다.1.4 후퇴 때 조그만 어선을 타고 부산까지 피난을 오신 뒤 수많은 고생을 하시면서 정착을 했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시고할머니는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돌아가셨다.홀로 남은 할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할아버지가 사시던 금호동 산동네의 조그만 집,그게 엄마의 친정이었다.엄마는 세 아이를 업고, 잡고, 할머니가 안 계시는 친정에 꼭꼭 찾아갔다. 우리 삼남매가 성장하여 하나씩 결혼했고 막내인 내가 30 중반에 결혼하여 아이를 나았다.나의 친정은 서울대 교수의 박봉으로 간신히 아이들 교육 시키고연금 대신에 퇴직금으로 엄마 아버지가 마련한 안양의 아파트,뒷산에 약수터가 있고, 앞에 재래 시장이 있는,나름 시골 기분이 나는 곳이었다. 유학 시절에 한국을 방문하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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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의 화단부모님 이야기 2016. 5. 31. 13:13
나와 꽃의 관계는 별로 좋지 않다.수십 년간 나는 꽃을 보고 아름답다 느끼지 못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들꽃은 좋았다. 돌틈에서 자라는 선인장을 보면 감동을 받았다.그러나 꺾어서 장식을 하고 꽃병에 꽂힌 꽃들은 그렇게 잠시 살다가 죽는 게 가여웠다. 어쩌다 꽃다발을 받으면 주는 사람의 마음은 너무너무너무 감사해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 나같은 사람에게 꽃을 선물한 분의 돈 낭비가 아닌가 미안했다. 그러나 몇 년 사이에 조금씩 변화가 왔다.친구들이 가끔 보내주는 꽃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아, 이렇게 꽃을 아름답게 보고 가꾸는 사람들이 있네. 그 마음이 참 곱다..." 하고 생각하며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다시 꺼내보고 하면서 꽃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되었다.그러다가 오빠가 돌아가신 뒤에는 꽃을 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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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와 시간부모님 이야기 2016. 5. 23. 01:51
물에 말은 현미 누룽지 반공기. 편찮으신 아버지의 밥상은 간단하다. 노을로 물든 하늘을 보며 뜨기 시작한 현미 누룽지 한 공기, 깜깜한 밤이 되어도 끝날 줄 모른다. 아버지가 망설이는 듯 입을 열어 물에 풀어진 누룽지의 한 술을 입에 넣으시고 천천히 씹으신다. 무표정한 아버지. 바로 한 달 전만 해도 아버지는 잘 웃으셨다. 다정했다. 넘어지신 뒤 몸을 못쓰시게 된 뒤 아버지는 침묵으로 하루를 보내신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우리에겐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우울의 우물 속에 아버지는 빠져 계신다. 삶의 의미와 욕구를 잃으신 아버지께 삼시 세끼가 고통이다. 그리도 좋아하셨던 김치에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신다. 맑은 설렁탕에 구역질을 하신다. 그저 물에 말은 누룽지를 가까스로 받아 드시나 그것도 고역인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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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발의 꿈부모님 이야기 2016. 4. 27. 13:02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같이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 내가 말했다. "아버지, 전 이제까지 경험한 모든 것들이, 제가 한 공부, 여행, 결혼, 출산, 모든 것들이 지금 이 순간, 제가 아버지 다리를 주무르는 이 순간을 위해서 주어졌던 경험이었다고 느껴요. 지금까지 이 순간을 위해 열심히 달려온 것 같아요." 진심이다. 열심히 살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그 모든 경험들은 나를 단련시켜주었고, 그 덕에 나의 오감, 판단력, 인내심, 사고력 등등을 사용하면서 계속 닥치는 여러 문제들을 긍정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다. 어르신들과 합쳐서 사는 게 아주 힘든 일처럼 이야기하고들 하는데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경우는 다르다. 이게 내가 너무도 원했던 일이니까. 17 년 전, 내가 젖먹이 딸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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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봤다 똥부모님 이야기 2016. 4. 1. 01:19
아버지는 방안에 하루종일 누워있는 계신다딸과 부인이 대소변을 받아주고, 끼니 먹여주고,유튜브, 영화, 방송설교를 끊임없이 듣고 보는 것 말고는 소일거리가 없는 아버지. 아버지가 40 대에 당뇨병 진단을 받은 뒤, 건강식을 준비하고 등산을 같이하여 아버지 건강을 지켜주신 어머니,이제 80 이 넘어서 아버지의 수발을 든다. 낮에는 딸이 같이 하지만 밤에 아버지를 지키는 것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 아버지의 몸이 평소와 달리 좀 불편하다 감이 오면 나는 잠을 못잔다.2 층에서는 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을 수 없다.그래서 가끔 아랫층 소파에서 잠을 잔다. 어느 날 새벽 2 시, 부엌 마무리가 늦게 끝나고, 룰루의 문자가 늦게 와 답신을 하다가 잠을 자러 올라가려는데아버지가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아, 내가 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