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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님이 오시는 날스치는 생각 2009. 12. 22. 16:051. 시아버지의 글 (두달 전에 쓴 글입니다.)
지금 시아버지의 글을 읽고 있습니다.
묵직한 원고 뭉치.
저의 녹슬은 불어를 다시 윤내는 작업이라 치고
어렵게, 어렵게 읽고 있습니다.
무슨 글이냐, 왜 글을 쓰셨냐.
그거,
얼마 전 아버님 원고 받자마자 써뒀던 글, 찾아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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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글을 쓰셨다.
자신이 글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믿고 있던 아버님이
컴퓨터 사용법을 배우셔서 일 년 넘게 글을 쓰셨다.
손녀의 도움으로 우리에게 이멜로 보내주셔서
에릭이 원고를 프린트해 들고 왔다.
아버님의 노고가 배어 있는 원고를 잡아 가슴에 꼭 안아보았다.
아기 안는 기분으로.
아버님을 설득해 이렇게 묵직한 원고가 탄생하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10 년.
아버님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내가 주지한 사실은
아버님이 말을 참 재밌게 잘 하신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든 다시 이야기로 만들어낼 때
그 사건의 뼈대를 잘 잡아내시고,
거기에 군살없는 부드러운 묘사에,
허풍과 강조, 은유, 비유의 양념이 갖은 양념을 골고루 묻히신 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때로는 드라마틱하게, 때로는 서정적으로 이야기를 구워내신다.
그래서 아버님의 이야기는 갖은 양념의 간이 골고루 잘 배고, 기름지지도 않고 바싹 마르지도 않은,
적당히 잘 구워낸 갈비처럼 맛나다.
내가 아버님께 글을 써보라는 말씀을 드린 것은 꼴렛을 임신했을 무렵, 아버님이 우리집에 오셨을 때였다.
당시, 에릭은 회사에 가고 아버님과 나는 하루 종일 같이 있자니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는데
아버님은 영어를 못하시니 내가 불어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임신한 상태에서 비빔밥도 먹기 싫을 판에 가뜩이나 버벅거리는 불어로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고역이었다.
둘의 대화가 쉽지만은 않았는데, 신기한 것은 아버님이 이야기를 시작하시면 어느덧 내가 푹 빠져서 듣게 되더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불쑥 여쭸다.
"아버님, 글 좀 써보시지요."
아버님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아버님 이야기 듣고 싶어요. 역사책으로서가 아니라, 아버님의 경험을 듣고 싶어요."
아버님은 어떻게 자기의 이야기같은 게 흥미거리가 될 수 있겠냐며 사양하셨다.
나도 더 이상 우기지는 않았다.
그냥 듣고 싶은 이야기인데, 글로 읽고 싶은데....하면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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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부모님이 매년 방문을 오실 때마다 아버님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되었다.
물론 내 불어 실력이 영어만큼 못하기에 놓치는 게 많겠지만
그럼에도 확실히 깨달은 것은 아버님이 대단한 말재주를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버님...말재주..잘만 요리하면 글재주로 뻗어 나갈 수 있는데..."
혼자 생각했다.
내 개인적인 취향인데 나는 단순하고 명료한 글을 좋아한다. 삶이 바쁘고 남의 보조자 역할을 하는 일이 많다 보니 깊게 따지고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가볍게,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하는 글이 아니라, 읽기는 쉽게 읽는데 읽고 난 뒤 두고두고 여운이 남아 내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그런 글들이 참 좋다. 한마디로 하자면 나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글'들이 마음에 든다. 어렵지 않고, 너무 가장하지 않고, 너무 덕지덕지 같다 붙이지 않아, 글쓴이의 숨소리가, 한숨 소리, 웃음 소리까지 들리는 글들을 좋아한다. 내가 싫어하는 글? 음....나는 '김훈' 선생의 글과 같은 글들--작가의 ego 가 우뚝 서 있는---글들은 좀 꺼리는 편이다. 너무 기교가 심하고, 가장이 심해서 무겁다. 미안한 소리지만 글을 읽을 때 피부가 하얗게 화장을 한 게이샤 얼굴이 떠오른다. 너는 글도 못 쓰면서 왜 그런 소리를 할 수도 있겠는데, 나는 '잘쓰는 글' '훌륭한 글'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글'을 이야기할 뿐이라는 것.
아버님의 이야기는 섬세한 묘사는 있어도 가식의 현란함이 없었다. 이야기의 숨이 고르고, 끊어졌다 맺어지는 리듬도 참 적절했다. 형식과 스타일만 그럴 듯한 게 아니었다. 이미 사라진 세계를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흥미도 있거니와 역사적 유산으로서의 가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버님의 글은 '아버지의 글'이므로 의미가 있었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했다. 자식들에게 별 이야기 못하고 구석에서 주춤거리는 아버지께서 큰 맘 먹고 마이크 잡고 신명나게 노래했으면 했다.
그러나..아버님은 마이크를 들려고 하지 않으셨다.
몇 년이 지나도 아버님은 내 권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다.
본인이 어떻게 글을 쓰냐는 것이었다.
배운 것도 많지 않고, 대단하게 이룬 것도 없는 자신이 무슨 글을 쓰냐고.
그리고 툭 뱉으신 말이 나의 가슴을 찔렀다.
"Je suis nul"
(I'm nothing" "I'm null")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 가치도 없어")
글을 쓰지 못하겠다라는 그의 단호한 거절 뒤에는 자신이 글을 쓸 자격도, 자신의 글이 남에게 들려질 가치도 없다는 사고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님은 종종 말씀하셨다.
'나의 아이들은 다 훌륭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다.
나는 아무 것도 내놓을 게 없다'.
세월을 통해 아버님과 점점 더 많이 알아가면서
평소 아버님의 잘 하시는 허풍 섞인 자식 자랑의 이면에는
자신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 아이들은 다 바르게 잘 자랐다는
겸손한 자부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잘된 자식들을 지켜주신 게 누구신가?
새벽 6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가게 문을 열고
일년에 휴가를 며칠 내지도 못하고 열심히 가게를 지켜오신 성실함이 없었다면
낡은 신발, 자켓, 자동차를 고집하는 절약정신이 없었다면
상 받고 좋아하고, 휴가 간다고 기뻐하고, 맛있는 케익 먹는다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묵묵한 보조자인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식들이 있었을까.
바로 그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사고와 맞물려 아버님의 글쓰기를 막는 것은 '글쓰기는 숭고한 행위다'라는 사고였다. 아버님은 '글'은 숭고한 작업이라 자신처럼 배운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는 사람은 쓸 수 없다고 믿고 계셨다.
그러므로 아버님이 글을 쓰시게 하려면 여러 요소들을 제거해야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아버님이 글을 쓰시도록 유도하려는 나에게는 그러한 사고, 즉 '글쓰기는 숭고한 작업, 나는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사고는 상대적으로 부수기 쉬운 장애물이었다. 왜냐, 그것은 이제까지 '연필''펜'에서 유리되어 밥만 짓고 살아온 여성들이 흔히 갖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공부한 페미니즘은 그런 의식을 '까부시는 법'을 배워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글쓰기가 숭고한 작업'이라는 사고가 저절로 사라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모자라는 사람,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고도 서서히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미국에 오셨을 때, 아버님께 친정 아버지께서 쓰신 책' 아버지의 기도' 을 보여드렸다.
"아버님, 이게요, 저의 아버지 글인데.."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해서 글을 쓰게 되셨는지 말씀드렸다.
"너의 아버지는 교수셨잖아...."
"그게 아니에요. 교수의 글이 아니라, 아버지의 글이에요.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해주는 이야기.
마찬가지로 아버님이 해주시는 말씀 그대로 받아 적으면 되는 거에요.
저희 아버지도 이 글을 처음 시작하시면서 두려워하셨고
한참 고민하셨데요. 그런데 일단 쓰고 나서는 너무 행복해지셨거든요.
저희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너무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고요."
"....."
"아버님, 글쓰기는 사람을 바꿔요. 읽는 사람을 바꾸기도 하지만, 먼저, 쓰는 사람부터 바꿔요. 아버님이 뭘 바꾸시라는 게 아니라, 그냥 글쓰기 해보시고, 어떤 변화가 생기는가, 대부분은 행복해지는데...행복함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독자가 있던 없던...그리고, 독자가 없다니요! 우리가 있는데. 저와 에릭을 위해서라도 써 주세요. 제가 재밌게 잘 읽을께요."
아버지는 아직도 목소리에 자신이 없으셨다.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그래서 목소리에 대한 강의를 약간 했다.
아버님의 글을 평소에 이야기하시는 것을 그대로 옮기면 된다는 거.
첫 글이 어려우시면 녹음기를 사용해도 좋다는 거.
'나는' 하고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라고.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다는 거.
목소리가 들리는 글을 써보시라고.
사막에서 아버님과 나는 두 시간 넘게 해가 뜨거운 밖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님에게 내면의 변화가 있다는 게 감지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여성 작가의 글을 보여드렸다.
아버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것은 프랑스 작가 Colette 의 책들이었다.
"신주, 네가 말한 게 뭔지 알 거 같아. Colette 의 글들을 읽으면서 목소리가 뭐라는 거가 이해가 되었어.
어떻게 글을 쓰면 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어."
"오, 아버님, 그럼 글을 쓰실 거에요?"
"한번 써볼께."
그리고 아버님은 글을 시작하셨다.
컴퓨터를 켜는 법부터 배워서
워드프로세싱을 하여
저장하는 것까지...
1 년 넘게 열심히 글을 쓰신 아버님.
우리에게 원고를 보내 주셨다.
이제 얼마 후, 아버님이 미국에 오신다.
우리는 샴페인을 터뜨릴 것이다.
그리고 책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이미 책을 찍어줄 인쇄업자도 벨기에에 찾아 놓았으니 나와 에릭이 대강 에디팅만 하면 된다.
소박한 책이겠지만 아버님과 우리 모든 식구들에게 큰 재산이 될 것이다.
2. 시아버님이 오신 날
지난 목요일, 벨기에에서 시부모님이 오셨습니다.
오신다고 열심히 청소하고 환영 꽃다발 준비하고....
이게 변화라면 변화네요. 옛날에는 아이들이 어려서라는 핑게로 집이 '폭격 맞은 후 응급조치한 상황'같이 깨끗하긴 하나 뭔가 어수선한 가운데에 부모님을 맞았는데, 이번에는 부모님 오시기 전에 제 정성 다 해서 청소했습니다.
와 계시는 동안에 편하실 수 있게 하려고요. 푹 쉬시고 사랑 많이 받고 가시라고..
아, 그리고 아버님 오늘 '원고료' 증정식 있어요.
아버님께서 일년 반 정도 열심히 글을 쓰셨는데 이제 두꺼운 원고가 완성되었어요.
원고의 반은 미리 받았었고, 오늘 마지막 반을 들고 오십니다.
지난 번 글에 썼듯이 개인적으로 큰 보람이 있는 사건이에요.
아버님의 글을 받아내는 산파의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midwife 역할을 하면 자기 글 쓰는 게 좀 어려워지는 단점이 좀 있어요. 그러나 내 글을 쓸 때의 쾌감과는 다른, 훨씬 더 여유있게, 훨씬 더 자유로운 마음으로 글의 탄생을 기뻐하고 사랑하게 되는 기쁨이 있어요. 자기 배에서 나온 생명에 대한---아무리 극복해도 남아 있는---어머니의 집착과는 다른 '할머니의 마음'이랄까.)
아버님이 도착하셔서 가방을 열자마자 말씀하셨습니다.
"신주, 우선 너에게 줄 선물이야."
아버님이 원고를 꺼내주셨습니다.
에릭이 샴페인을 터뜨렸어요.
아버님께 '약속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는 내용의 편지를 드렸어요.
아버님의 저의 '코젠강 출판사'에서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다는 내용.
흐믓하신 표정 보면서 저희도 흐믓...
수줍은 에릭, 속으로 무척 좋으면서 그거 억누르고 있는 표정.
카드 다음에....원고료 증정.
아버님은 뭔지 모르시고 봉투를 받으셨지요.
'이게 뭐라고?'
'원고료요.' (에릭,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열어봐요.'
'아니...원고료라고?
'이럴 수가....'
'내년 중으로 책 만들어드릴게요.
벨기에의 인쇄소도 알아 두었어요.'
같이 기뻐하시는 부모님 보면서 우리는 또 흐믓...
친정 아버지의 경험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아버님께 큰 의미있는 일이 될 거라 생각해요.
(제가 당분간 바빠서 블로그에 자주 못 들어올 거 같습니다. 그래도 성탄 인사는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