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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디아 할머니 (2)--문맹 할머니와 버지니아 울프
    부모님 이야기 2019. 2. 7. 00:45

    나디아 할머니는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에게 감사, 하나님께 감사.


    요리할 때 후추, 치즈, 소금, 파프리카 등 각종 양념을 후르륵 치듯이 이야기 할 때마다 중간 중간에 갓블레스유 갓블레스유를 외친다. 


    무슬림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평생 고생을 해서 매사에 감사함을 뼈저리게 느껴서 그런 것같다.


    우리집에 들어오는 순간, '이렇게 여기 올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당신같이 좋은 분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식으로 매사에 감사 감사 감사. 입을 열면 긍정의 말만 튀어나오는 할머니. 


    나도 평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를 본 뒤에 깨달았다. 나의 감사하는 마음이 잔잔한 호수같이 평안함과 같았다면 그녀의 경우는 잔잔한 호수에서 감사함의 숭어가 퐁퐁 튀어오른 것 마냥 확실하게,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어느날 할머니가 "나는 바보예요" 라고 했다.


    그게 무슨 소리? . 


    "나는 글을 못 읽어요. 그러니 바보죠.." 라고 했다.


    나는 펄쩍 뛰었다. 

    할머니가 얼마나 똑똑하신데!

    내가 할머니한테 배우는 게 얼마나 많은데!

    글을 읽는다고 사람이 바보가 되냐고!


    그런데 할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미국 온지 10 년이 훌쩍 넘어갔는데 영어를 잘 하지 못할뿐더러, 불어도, 영어도 읽고 쓰지 못하는 할머니.  주위의 그 많은 문자들을 해독하지 못한 채 그저 눈치로만 살자니 위축이 될만했다.  그러나 아무리 일해도 입에 풀칠할 정도의 곤하고 바쁜 삶에 글 읽기를 배울 시간은 꿈꿀 수도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여쭸다. 내가 영어 읽기를 배워주고 회화를 배워줘도 되겠냐고.


    할머니는 많이 놀란 듯, 내 말을 자기 식으로 고쳐 되새김했다.


    "I study, I read English?" (내가 영어 읽는 법을 배운다고? 의 의미렸다)


    그리고 나서 할머니의 즉각적인 경쾌한 불어 대답에 나는 놀랐다.


    "Pourquoi pas?"  


    그것은 영어로 'Why not?' 의 의미, 즉 '왜 안하겠냐' '당연히 하겠다' 는 뜻이다.


    70 세의 할머니의 긍정적인 대답에 나는 감동했다. 나도 기뻐서 할머니 말을 반복했다.


    "Yes, pourquoi pas?!"


    나는 할머니께  나의 엄마가 80 이 다되셔도 계속 영어 공부를 하고 계시며, 언젠가부터는 손자들의 영어 편지를 이해하기 시작하셨다고 하며 할머니를 격려했다. 


    "저의 어머니, 살림하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노트 정리를 정성들여 하시고 문법책을 혼자 달달 외우시고

    하다못해 버스 기다리는 동안에도 혼자 반복해서 외우시고 그러셨어요할머니도 하실 있어요."

     

    70 할머니에게 80 할머니의 영어 공부 성공담은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밥을 한 뒤에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영어 공부를 했다. 영어 공부는 간단히 읽는 법부터 시작, 할머니에게 익숙한 단어들을 갖고 시작했다.  'cook' 'bake' 'cake' 의 부엌 용어를 실제로 읽으면서 할머니의 눈은 기쁨으로 빛났다.


    아...이거구나. 이거구나. 


    할머니께 글을 못 읽으면서 전화번호부는 어떻게 읽냐고 물었더니 친구의 아들에게 부탁해서 전화번호부를 갖고 있고, 전화기에도 입력이 되어 있는데,  이름의 '모양'을 대강 기억하고, 번호도 대강 기억해서 전화를 걸때나 받을 때나 추측해서 한다했다. 그런데 그게 틀릴 때도 있다고 했다. 특히 가끔가다 통화하는 변호사랑 몇몇 사람의 전화번호가 많이 헛갈린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수첩에 사람들의 특징을 그려서 '그림책' 전화번호부를 만들어드렸다. 안경을 쓴 후덕한 남자는 변호사, 생머리에 눈화장 짙은 여자는 나, 히잡을 두른 무슬림 여성의 그림은 친구 '라티파'....이렇게 전화번호부를 만들면서 나는 할머니의 삶의 중요한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상세히 알게 되었다. 우린 한층 더 가까워졌다.


    영어 공부가 끝난 뒤에는 이야기를 나눴다. 불어 자유 수다 시간!


    할머니는 옛날 자신의 나라에서 이혼의 경험을 갖고 있다.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이혼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불행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였단다. 그러나 그 연세에 이혼한 독신 여성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고 조롱한다고 했다. 자신이 일하는 식당에서 (같은 북아프리카 출신의) 젊은 직원들이 기혼자 여성에게 대하는 태도와 자기에게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고 했다.


    할머니는 자기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고 소극적으로 된 적도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당신도 강하게 대응한다고 했다. 굳이 싸우지는 않지만 함부로 대하지는 못하게끔 맞선다고 한다며, 이왕이면 일찍 그렇게 똑똑하게 처신했더면 평생 마음 고생을 덜 했을텐데 후회스럽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가 참 잘하고 계신다, 그렇게 하셔야한다고 목소리 높여 응원했다.

     

    어느 날, 할머니께 영국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의 이야기를 해드렸다.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한다는 그녀의 (1920 년대의) 주장을 할머니의 삶에 적용했다.


    "할머니, 한 여성이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살려면 필요한 게 뭘까요? 딱 두 개만 집자면?"


    할머니는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했다.


    "옛날에 아주 훌륭한 여성 작가가 한 소린데요. '자기만의 방'이랑 '돈'이라고 해요."


    나는 흥미로운 눈으로 내 이야기를 경청하는 할머니께 간단하게 버지니아 울프를 나의 버젼으로 설명했다.

     

    "경제적인 독립.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돈을 벌어 쓰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고요,  다음에는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 문을 잠글 있는 자기만의 방이 중요한 거래요. 그러면 여성이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서 당당하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소리였는데요. 그렇다면 할머니는 이미 참 당당하세요."


    나는 계속 설명했다. 할머니는 많은 돈은 아니라도 여러 직장에서 돈을 계속 벌고 있고, 월세를 내고 있지만 할머니 만의 방도 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는 저보다 훨씬 나아요. 전 돈을 벌지 못하고 있고, 제 방도 없어요.

    할머니는 저같이 밥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을 위해서 일하고 돈을 벌고 계시잖아요!

    제가 할머니를 고용하고 있지만 할머니가 더 대단한 거에요!" 


    할머니가 나에게 무슨 큰 미안한 일이라도 한 양, 정색하고 손사레를 치며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새로운 사고를 접하면서, 그리고 자신이 당당할 수 있는 이유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은 아주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기분을 맞춰드리려고 한 소리가 아니었고 정말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점점 자신감있는 태도로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기뻤다. 

     

    어느날 할머니랑 밥하다 말고 부엌 중간에서 내가 무슨 시시한 소리를 했는지  할머니가 아주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허리를 밑으로 꺾으시며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다.

     

    나는 "오오! 잠깐!" 하고 소리 질렀다. 


    할머니가 웃음을 참으시면서, 눈물을 훔치시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할머니, 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어요!"

     

    할머니는 웃음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되는 표정이었다.


     "진짜...이제까지 할머니가 이런 소리로 말하고 웃는 들어보지 못했어요오늘...불어로 이야기하면서 할머니가 편하게 내는 목소리를, 배에서부터 나오는 웃음 소리도 처음 들었어요. 와, 전 할머니가 당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너무 좋아요!!!"

     

    말에 할머니가 잠깐 놀랐다.

     

    "맞아....그래...전 이렇게 제 목소리로 이야기한지 오래 되었어요영어로는 자신이 없으니까 말을 못했고불어도 모국어가 아니니까 편하지 않아요.  


    게다가 나의 일이 사람들 해주고, 치우고, 도와달라고 하는 있으면 해주는 거라서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지 내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어요. 가끔 고향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할 때 빼놓고.


    지금 나는 마치 고향에  거같아요.

    옛날..내가 아주 어렸을 , 어머니 아버지랑 하던 것같아요."

     

    할머니는 자신의 발견이 놀라운지 잠시 생각에 취해 있더니만 다시금 할머니의 특유의 '갓블레스유, 갓블레스유, 탱큐, 탱큐, 탱큐!'를 부르짖었다.


    나는 나대로 정말 기뻤다. 나도 내 목소리를 잃어버렸던 때가 있었다. 단순하게 '타향살이'에 '남의 나라 말 배우기' 라는 상황만 해도 나의 목소리를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누구나 새 환경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는 자신의 목소리를 잃고, 자긍심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스라엘에서, 파리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동안, 적어도.1 년은 남들은 모르게 나만 아는 그런 외로움과 흔들림 속에서 투쟁했었다. 


    할머니와 비교할 때 나는 글을 읽고 쓸 수 있기에 새 언어를 배우는 것이 쉬웠고, 나를 동등하게 존중하는 아카데미아의 친구들과 어울렸으며, 서서히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면서 내 자존감은 자연스럽게 회복되었지만, 할머니의 경우는 평생 글을 못 읽고 쓰고, 내내 '바닥을 보면서' 일을 하며 살고 있으니, 10 년, 15 년이 넘어가면서 타향살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서서히 죽어버렸을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유일하게 변함없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 그 어려움은 고여서 썩어가는 물처럼 할머니의 마음을 혼탁하게 했을 것이고. 


    그러나 할머니는 이제 떠듬떠듬 영어를 읽으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마음대로 수다를 떨면서 조금씩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자기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면서 이제까지 목소리를 꼭꼭 틀어매고 있던  '나는 바보다' 라는 밧줄이 스르르 풀려버리는 것같았다.


    할머니는 수요일만 기다린다고 했다. 


    '당신의 집에서 일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기고 삶의 의욕이 살아난다' 고 했다. 


    그리고는 또 쏟아지는 '축복'의 홍수. 


    도마질하면서 갓블레스유,  국 저으면서 갓블레스 유어 패밀리,  빵 반죽하면서 갓블레스유,

    땡스 갓, 땡스 갓, 땡스 갓,


    할머니는 쉴새없이 감사하며 나와 나의 가정을 축복해주었다.

    할머니의 축복이 흥겨워 나도 수요일을 기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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