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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생 처음 쓴 펜레터
    스치는 생각 2019. 1. 13. 08:25

    에릭과 나는 지난 6 년간 우리 동네의 오케스트라의 멤버로 정기적으로 공연을 관람해왔다. 아버지 수발을 들 때, 한달에 한 번, 또는 두번 공연 관람을 빠지지 않았다. 

    6 년간 한자리에서 오케스트라를 내려다보니 연주자들의 얼굴, 연주하는 모습 등이 익숙해졌다. 우리의 좌석에서는 비올라, 첼로 쪽 연주자들이 잘 보이고 중간의 플룻, 오보에, 트럼펫 연주자들도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이 되었고 우리는 어느새  "엇, 오보에 연주자 둘째 임신했네!" "플룻 연주자는 수염을 길르기 시작했구나" 등 음악에 전혀 관계 없는 그런 소소한 것을 보고 코멘트를 주고받게 되었다. 

    연주자는 우리를 개인적으로 모르지만 우리에게 음악을 선물해주고 우리는 그 선물을 즐기고, 그들의 연주하는 모습을 자주 보면서 그들이 익숙해지고, 그들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듯한 착각도 느낀다.  나는 소위 '팬'으로서 일방적으로 그들이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1 년 넘게 우리가 의아해한 게 있다. '첼로 연주자가 어디로갔지?' 

    그는 어느 첼리스트와 비교해도 손색없이 정말 뛰어난 연주자이다. 가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개인적인 공연을 할 때가 있는데 그의 공연을 보고 우리는 매료되었다. 그의 연주만큼 흥미로운 것은 그의 제스쳐이다. 나는 그만큼 중의 눈에 띌 정도로 열심히, 열정적으로 지휘자를 쳐다보면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을 본 적이 없다. 그가 눈을 내리깔고 연주할 때 그는 첼로를 껴안고 우는 것같이 보이곤 했다. 그는 나는 가끔은 온 몸으로 연주를 하고, 지휘자와 호흡하는 그를 심취해서 바라보곤 했다. 장엄한 사운드에 묻힌 그의 첼로 소리를 들으려하면서. 

    그런데 어느날 그가 안보였다. 연주자들이 가끔은 다른 사람과 교대하기도 하고, 개인 연주 일정이 있으면 장기간 빠지기도 하기에 나는 그가 곧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는데 그가 안 돌아왔다. 

    불안했다. 어딜 간 건가? 

    프로그램을 보면 항상 '수석 첼리스트'로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는 어딜 간 걸까?

    에릭과 나는 컨서트를 갈 때마다 그를 찾는 게 버릇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없네..."

    불길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언젠가 지휘자가 '슬픈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Mr. L 이 운명했습니다' 라고 발표할지도 모른다 싶어 마음의 준비를 하기까지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리는 지난 해 말에 연주회를 몇 회 빠졌다. 그리고 엊그제 오랫만에 참석했다.

    옆 자리의 노부부와 인사를 주고받고 프로그램을 확인하면서 하나 둘 입장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바라보았다. 

    "없지? 오늘도?"

    에릭이 질문했다. 누구라는 말을 안해도 우리는 이미 같은 생각이었다.

    "도대체 어디 갔을까? 너무 오래 되었어..."

    나는 연주 프로그램으로 눈을 돌렸다. 오늘 연주에 대해서 읽고 있는데 갑자기 에릭이 외쳤다.

    "He is here! He is here!"

    정말? 좀전에 없었는데? 

    "Where?"

    에릭이 손으로 가르키며 말했다.

    "바로 자기 자리에 앉아 있어. 우리가 못 알아본 거야."

    "그럴 리가? 어디? 어디?"

    나는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자리애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분명히 그야.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어. 몸도 말랐고. 그래서 우리가 못 알아본 거야."

    나는 에릭이 가르키는 곳을 보면서 숨이 멎었다. 

    아아..


    그가 있었다.

    우리가 그리도 기다렸던 그가 있었다.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가 있었다.


    무성하던 그의 검은 머리는 왜 사라졌나?  

    첼로를 연주할 때 지휘자를 향하던 결연하고 똑똑한 시선마냥 속이 꽉 찬듯이 단단해보였던 그의 몸은 왜 비쩍 말라버린 거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 부질없이 맴돌았다.

    그는 암과 싸운 것이다.


    나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반가웠다.

    아...그가 고생했구나.

    그러나 돌아왔구나.

    무슨 암이었을까?

    완치된 건가?

    아직도 치료 중인가?

    ...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지만 그 답을 들을 수 없다. 우리의 관계는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팬이니까. 일방적으로 나만 그를 알고 좋아하니까.


    --

    연주를 들으면서 나는 그를 그렸다. 뒷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싶어 조심조심...

    몸은 달라졌지만 그의 강렬한 시선은 한결같았다. 첼로를 붙들고 우는 듯한 그의 표정도 그대로였다. 그림 그리기 위해 그를 찬찬히 관찰하면서 나의 가슴은 감동과 기쁨으로 차올랐다. 

    내 친구가 병을 이기고 돌아온 것마냥 그렇게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감사했다.


    연주회 끝나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에릭에게 내가 얼마나 마음이 벅찼는가를 이야기했다.

    "당연하지. 나도 그래. 우리가 얼마나 기다렸어."

    나는 에릭에게 생애 처음으로 팬레터를 쓰고 싶다고 했다. 

    "뭐라고 쓰려고?"

    "별 소리 없이 그저 돌아와서 고맙다고. 기다렸다고. 수고했다고. 계속 조심하라고. 응원할 거라고..."

    내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던 에릭이 자기도 쓰겠단다. 

    "당신도 쓰겠다고?"

    내가 놀라니 에릭이 겸연쩍어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쓸 때 나도 함께 기다렸다고 해줘.

    나도 그를 응원한다고.  그게 사실이니까. 그리고 그 사람은 우리의 응원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나는 다음날 에릭과 나의 마음을 담아 생애 첫 팬레터를 썼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편지가 그가 암과 투쟁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쪼록 그가 어서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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