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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권 인터뷰
    스치는 생각 2008. 5. 5. 03:19

    이미 시민권을 딴 친구들이 '걱정마, 쉬워' 라고 안심시켜줬는데
    저는 은근히 불안했어요.

    제가 꼼꼼한 성격이 아니니까 혹시라도 서류 기입하다가 실수한 거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시민권 신청이 취소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리..

    (실제로 자세히 읽어보니까  두 군데 실수한 데가 있더구만요. 아주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참.-.-)

    예상문제100 문제 시험 전 며칠 전에 읽어보고, 랄라더러 '엄마한테 시험문제 내 봐라' 하고 모의시험 보고 시민권 인터뷰를 갔습니다.

    고마운 것은 제 친구, 쎄뇨라 V 가 아침 일찍부터 저와 함께 같이 간 것.

    "마담 팜펨, 내가 마담 팜펨시민권때문에 가야하는 곳에는 다 간다!"고 한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켜주는 거였어요. (감사..)

    인터뷰가 열리는 연방정부 건물로 들어갈 때 포토 아이디 확인하고 카메라 쎌폰은 갖고 들어갈 수 없다, 기타 등등...

    대기실에 들어갔어요.

    아침 7 시 50 분인데 인터뷰를 기다리는 제 '동료'들이 엄청 많더군요.  대부분 멕시코 친구들. 동양인들 몇 명, 백인들은 극소수.

    병원 대기실처럼 우리는 한 방향으로 앉아 있고, 맞은편 유리창에 우리를 인터뷰할 면접관들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모습들이 보였어요. 근 스무 명이 되더군요. 유색인종들 많은 게 인상적이었어요.  기분 좋던데요.
    면접관이 문을 열고 이름을 부르면 호명된 사람이 들어가서 인터뷰 하는 거였는데, 사람이 많아서인지 제 차례까지 아주 오래 걸렸어요.


    읽을 책을 갖고 가긴 했지만 친구를 옆에 두고 책을 읽을 수는 없어서
    유리창 너머 심사관들의 '관상'을 열심히 관찰했습니다.

    옷 스타일 좋다. 흰 머리 저렇게 하니까 참 보기 좋네.
    음, 저 사람은 친절하다.
    왜 저런 표정일까.
    저 사람은 애인이랑 이야기할 때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와....저 어깨좀 봐. 체육관에서 노상 사나보다.
    저 아저씨 목소리 좋은데. 노래 한번 불러봤으면 좋겠다.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제 순서가 되었습니다.
    저를 담당한 사람은 눈매가 날카로운 동양 여성.

    그녀가 인도한 방으로 들어가 선 채로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앉았습니다.
    역사 시험부터. 열문제 나왔는데, 그 아가씨 말이 무척 빨랐습니다.
    (저는 그 박자를 맞춰서 하면서 다음 주에 인터뷰를 하게 되어 있는 남편 걱정이...이렇게 빨리 이야기하는 걸 알아 들을까?)

    영어 받아쓰기 시험.

    "농장에 말이 많습니다."

    (좀 재밌는 문장으로 시험 문제 내주면 좋겠구마...)

    통과.

    그 다음에 제 신청서를 처음부터 한 항목씩 물으면서 저에게 확인하게 하더군요.

    그러다가 제가 미국에 처음 오게 된 게 언제며 어떤 계기였나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객원학자 자격-결혼-학생부인-출산-영주권 신청 등등 개인사가 나오게 되었지요.

    인터뷰어가 제가 있던 대학교 출신이었어요.
    반가워하더군요.

    갑자기 그녀가

    "나 당신 또래의 한국 여성들 많이 알아요."

    하는 거에요.

    아, 이 여성도 한국계이구나. 싶었어요.

    나이가 젊은 걸로 보아 아마도 그녀의 어머니 또래들이 저보다 나이가 몇 살 연상일 거 같았어요.

    그녀가 저더러 '당신 스타일, 아주 독특하다. 머리부터 신발까지. 내가 아는 여성들과 아주 다르다. 어떻게 이런 스타일을 추구하게 되었냐'고 묻는데...이건 대답할 수가 없는 질문이더군요.

    다시 이야기가 진행되어.

    세금 보고에 대한 질문 중, '왜 학위딴 뒤에 직장을 안 가졌냐'는 질문이 나왔어요.
    그래서 글을 썼다고. 책 인세는 얼마 안 되었고, 그 인세도 한국에서 세금처리 다 되었다고. (출판사에서 미국과 한국이 세금 협정이 되어 있다는 거 확인하고 그것에 맞게 처리했었어요.)

    그랬더니 그녀가 자기의 꿈이 글쓰는 거였다고.

    (what a pleasant surprise! 속으로 생각했어요. 시민권 인터뷰 하면서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할 줄은 몰랐어요. 글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언제든지 반갑고요.)

    그러더니 그녀가 자기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어요.
    이리저리 서류를 기입하고, 컴퓨터 화일을 확인하고, 바쁘게 자기 일을 하면서 그녀가 같이 한 사연은..

    대학 전공. 대학원 진학. 공무원이 됨. 몇 년 안 되었지만 직장에서 승진하고, 연봉이 오르는 것이 좋았고 그래서 돈 없는 대학원 생활을 하고 싶지 않더라는....대학원과 직장을 병행하기는 너무 힘들고...
    현재 직장이 좋은 이유...나오고. 아마 공무원들이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대학원 과정을 밟게 될 것이라는.

    (저는 제가 많이 이야기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조용히 있었습니다만...이 대목에서 궁금한 게 있었어요.
    그래서 불쑥 물었지요.)

    "당신, 해외 근무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대사관 영사관 파견 근무같은 것? 젊었을 때 그런 거 해보면 좋지 않겠어요?"

    (이 질문 하면서...내가 지금 시민권 인터뷰 하고 있는 거 맞나? 싶었음)

    그랬더니 그녀가 그것도 고려했다고. 2 년 정도 해외 근무를 지원할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그거 하려니 결혼 문제가 마음에 걸려서 못하겠다고 하는 거에요. (음...그 나이면 아직 결혼 안 해도 되는데...사귀는 사람 없으면 그냥 좀 나가 보면 좋을텐데...싶었지만 제가 할 이야기가 아니라 싶어서 함구.)

    그러다가 다시 글쓰기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녀가 굉장히 글을 쓰고 싶었었나봐요.
    공무원 일 하면서 미국에서 알려진 creative writing program 을 계속 찾아보고 그랬더군요.

    제가 좀 놀랐지요.

    그렇게 글을 쓰고 싶은데 왜 안 쓰냐니까 왜 안 쓰는지, 못 쓰는 지 이유를 대더군요.

    그래서 1 인칭 화자로 글을 쓰는 게 어려운 이유, 쉬운 이유 등에 대해,
    블로그 글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눴어요.

    제가 매일, 자주 하는 소리 했습니다.

    "글을 쓰면 적어도 한 사람은 변화한다. 글을 쓰면 적어도 한 사람은 행복하게 할 수 있다.
    글쓰는 사람 그 자신."

    "글쓰기는 가계부와 같다. 매일매일 쓰면 저절로 삶이 정리가 되고 규모있는 삶을 살게 된다."

    그녀는 글쓰기를 '커리어'와 양립되는 행위, 즉 하나를 택하면 하나를 포기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요. 저는 글쓰기를 커리어로 생각하고, 출판만 생각하면, 글쓰기의 즐거움을, 글쓰기가 주는 수많은 유익을 누릴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고...그냥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중요한 이야기들은  끝내고, 서류 복사하면서 자신의 가족 이야기, 자기 동생의 전공에 대해서도 잠깐 이야기했어요.요즘 미국이 연방정부 직원들에게는 아주 잘해주고 있나봐요. 테러리즘, 국가 보안에 관한 쪽으로는 일들이 아주 많데요. 자기가 이 직장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겠지만, '출판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매일매일 글을 써보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 몇 명 추천해주고.

    참...다른 경로로 만났다면 재밌는 이야기 많이 나눌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두고
    인터뷰장을 나왔습니다.

    현재 제 서류 중 합해져야하는 서류가 있어서 시민권은 아직 못 받았고요.
    우편으로 연락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좀 이상한 인터뷰였지요?

    그 날 룰루가 좀 아파서 집에 있었고요. 그 이후로 바쁜 일들이 좀 생겼습니다.
    나중에 또 소식 올릴게요.


    다들....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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