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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랜드캐년보다 다람쥐가....
    스치는 생각 2010. 5. 21. 14:10

    내가 굳이 그랜드 캐년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다.  나도 아이들에게 눈이 열리는 경험을 시켜주겠다는 꿈을 갖고 아이들을 데리고 그랜드 캐년에 갔었다. 

    여행을 떠나면서 설레었다. 그랜드케년의 절경을 아이들이 보면 어떤 반응을 할까?!


    그런데 정작 그랜드 캐년에 도착해서는 우리의 설렘과 기대와는 다른 경험을 하였다. 

    아이들 기억에 영원히 남는 사진을 찍어주자고 이리 세우고 저리 세우고 법석을 떠는 나 (밑의 사진 보시면 아시리라)
    그러나 그랜드캐년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거대한 병풍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그랜드 캐년의 파노라마가 아이들에게는 ---내가 기대했던--의미가 없었다
    .  




    법석떨며 사진 찍은 뒤 아이들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구석에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찍자고 귀찮게 부는 부모의 등쌀을 벗어난 아이들이 갑자기 활기를 띠고 뭔가 열심히 관찰하고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지? 


     


    다가가서 보았다.
    돌담 밑으로 다람쥐가 한 마리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니까 애들은 내가 마치 다람쥐를 잡아먹는 짐승이라도 되는 듯, 긴장했다. 

    "엄마 조심해! 도망가지 않게. 얘가 우리랑 이야기하고 있었어!"

    "아, 너무 귀엽다!!"


    잠시 후 아이들이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서 따라 올려다보니, 
    아이들 시선이 소란스러운 관광객들이 서 있는 관망대와 그랜드 캐년 위로 자유로이, 천천히 비행하는 매 한마리에 꽂혀 있었다.  "너무 멋있다!" "보여? 발에 숫자표가 붙어있어. 누가 관리하는 건가 봐!"

     



    새와 다람쥐를 발견한 아이들은 비로소 그랜드 캐년이 즐거워졌다. 조그만 동불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에는 호기심과 사랑이 잔뜩 어우러져 있었다. 기쁨이 있었다.

    이제 갈까 했더니 싫다고 한다. 다람쥐랑 있고 싶다고....

    에릭이 캐년 밑으로 내려가보자고 했다.  다람쥐 두고 가기 싫다고 하는 애들을 독려해 밑으로 조그만 길을 따라 내려갔다. 
    날이 무척 더워서 아이들이 힘들어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랜드 캐년 밑으로 내려가는 것은  거대 병풍과 같은 그 유명한 경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포스트카드의 절경과는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은 내려가면 환호하기 시작했다. 깎아 세운 절벽, 모양도 색깔도 다양한 암석, 그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초목에 눈이 갔다.  또로로 굴러가는 다람쥐들을 보면 친구를 만난 듯이 반가워했다. 날씨가 무척 더워서, 머리가 땀으로 젖고,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는데도 아이들은 불평을 하지 않았다.



    이게 몇 년 전 일이었다.

    글 쓰면서 아침 먹고 있는 딸에게 물었다.

    몇 년 전에 다녀온 그랜드캐년에서 뭐가 제일 생각나냐고.  딸아이는 즉시 대답했다.

    "다람쥐, 아이스크림, hawk. 캐년 밑으로 내려가면서 내가 엄마한테 '왜 내가 싫은 거 시키냐. 내가 노예냐'라고 투정하던 거. 쉴 때 엄마가 엉덩이랑 등을 드럼 치듯이 두드리면서 노래해 주던 거. 그런데 내려가면서 말도 보고 다람쥐 보고... 재밌었어.."

    "경치는 생각나?"

    "경치 생각나지. 다람쥐가 더 재밌었어. 그랜드캐년을 지금 보면 좀 다를 거 같긴 한데 그땐 다람쥐가 더 재밌었어."







    아들에게도 따로 물었다. 그랜드캐년에서 뭐 생각나냐고.

    "아이스크림!!"

    그게 그랜드 캐년의 기억의 첫 번째라?

    아들은 계속 말을 이었다.


    "아이스크림이 무척 컸어. 2 층짜리 아이스크림이었어. 아니다, 엄마가 나한테 그렇게 큰 아이스크림을 사줄 리 없지. 그런데 왜 그렇게 큰 아이스크림이라고 생각되는 걸까? 그때 내가 그런 거 많이 못 사 먹어서 그랬었나? "

    "다른 거 뭐 생각나는 거 없어?"

    "다람쥐. 새. 오, 너무 귀여웠어. 다람쥐. 나랑 30 센티 거리에 있었는데...." (다바다바 수다....)

    내가 짐작했던 것---아이들에게는 그랜드 캐년보다 자기들에게 가까이 있던 다람쥐와 새가 더 인상적이었다--을 아이들은 확인시켜 주었다.

     



    그날, 그랜드캐년에서 내가 본 한국에서 온 수학여행팀 생각이 난다. 내가 우리 애들이 다람쥐 구경하는 것을 망원렌즈로 구경하고 있을 때, 인 보호자 몇 사람에 40 명 정도의 초등학교 4-6 학년 어린이들로 구성된 수학여행 팀이 우르르 내 앞을 지나갔다. 그들은 서둘러 전망대에 서서 휘~ 둘러보고, 사진 몇 장 찍고는, 재빨리 우르르  기념품 가게에 몰려갔다. 일부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아이들은 경치보다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구경하는데 더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다들 똘똘하니 귀여운 아이들이 사진 찍고 기념품만 사서 서둘러 사라지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얼마짜리 여행이었을까?
    분명  부모님들은 내가 아이들에게 그랜드 캐년을 보여주려고 했듯이 아이들에게 귀한 경험시켜주려고 돈 많이 지불하고 보내준 여행일텐데....

    그날 우리 아이들과 수학여행팀을 보고 나는 어린아이들에게는 그랜드 캐년과 같은 절경을 가서 보는 그런 체험 학습은 그리 필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생각이 이후의 여행에 영향을 끼쳤다.)

    유명한 관광지의 자연을 '방문'은 기다려도 된다. '나 미국에 갔다 왔다~~' '그랜드 캐년도 보고 라스베이거스도 봤다!" 하고 자랑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모르지만,,,굳이 남는 거라면 그것을 못 본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는 사진 정도라고나 할까? 그건 가치 없는 사진...

    멋지다고 하는 경치들,  전망대에서 보고 감탄하는 경치는 '성인물'이다.  아무리 맛있고 영양가 좋은 음식도 너무 많이 먹으면 설사하듯이, 대자연도 그것을 읽어내고, 음미하고, 즐기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자연체험이 몸과 마음에 저장되지 못하고 그냥 배설되고 만다.냄새 맡고, 만지고, 소리 들어보고, 그렇게 뒹굴고 얽히는 자연이야말로 아이의 몸과 마음에 온전히 흡수된다.  아이가 직접 몸으로 만나야 체험이다. 가까이 있는 자연을 자주 방문하여 친숙해지고, 그 친숙한 환경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겁게 뛰어놀며, 나뭇잎, 꽃망울, 작은 벌레 발견하고, 미끄러운 시냇물....첨벙첨벙!  인적이 드문 공간에서 자유롭게 꺄아아아~~ 소리지르며 뛰어나디고....나뭇가지를 전리품삼아 들고 숙소로 돌아오는 자연체험. 그게 진정한 자연체험이다. 놀아야 체험이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과 한국에 있을 때 매일 올랐던  약수터는 정말 좋은 자연체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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