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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가 늙어서 미안해
    모성- doodle 2021. 5. 17. 14:41

     

    나의 딸은 22 세, 어른이 다 되었다. 나와 키 차이가 많이 난다. 같이 다니면 꼭 내가 '엄마' 손을 붙들고 다니는 것 같다. 운전부터 주문, 계산, 문의 모든 것들을 랄라가 전담하고 키가 작은 이 '꼬맹이' 엄마는 그냥 옆을 졸졸 쫓아다니기만 한다. 무척 편하다.
    랄라와 함께 있으면 나의 함께 사는 친정 어머니가 하시는 말이 이해가 된다. 내가 엄마를 모시고 병원, 식당, 쇼핑 등을 나서면 엄마는 "아아, 딸이 다 해주니 이렇게 편하구나!" 하시곤 한다.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서서히 우리의 '엄마-딸'의 역할이 역전이 되어가고 있는데 이제 딸과 나의 역할이 바뀌어가는 것이다.
    내가 어쩌다 몸이 피곤한 날, 그것을 단박 알아차리는 것은 친정 어머니, 내가 쉬게끔 조치를 취하는 것은 딸이다.
    "엄마, 어서 누워. 내가 차 한잔 타다 줄까? 커튼을 닫을께 무조건 쉬세요. 나올 필요 없어. 오늘 피터 (남자 친구)가 오지만 우리 저녁은 알아서 할게."
    입으로 쉴 새 없이 조잘거리면서 재빨리 방을 어둡게 만들고, 담요를 덮어주면서 나를 '아기'로 만들어버리는 딸. 딸에게서 나는 엄마의 사랑을 가끔 느낀다. 친정어머니의 일관성 있는 무조건적 사랑에는 못 미치는 그런 굴곡이 있고 변화무쌍한 사랑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기본은 모성애와 비슷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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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많아서 미안한 엄마
    지금은 딸의 보살핌을 편하게 받아들이지만 랄라가 어렸을 때는 랄라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곤 했었다. 특히 내가 갱년기 증상과 몇 가지 다른 건강 문제가 겹쳐서 극심한 피곤에 시달렸던 십여 년 전에 그랬다. 내 몸의 변화에 허둥지둥하는 와중에 70줄, 80 줄에 들어가신 부모님의 건강이 악화되었고,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그래서 나는 건강은 오만하게,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것임을, 조심해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들이 자는 시간이 내가 방해 없이 뭔가 할 수 있는 시간이라 늦게까지 혼자 이것저것 열심히 하며 즐거움을 느꼈는데, 갑자기 그 즐거움이 대폭 축소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내 몸을 내 맘대로 쓸 수 없다 함은 이제까지 나를 지배했던 용광로 같은 열정은 포기해야 함을 의미했고, 그런 변화는 나를 심리적으로 위축시켰다.
    가끔 나는 무거운 생각에 잠기곤 했다. 젊은 날,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떠들어댔던 '인생의 유한성' '생명의 가멸성' '죽음의 예측불허 성' 이란 개념이 어느덧 나에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그런 주제가 되어버렸다.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어디서든 나이가 가장 많은 엄마였고 그래서 내가 하는 고민을 같이 나눌 사람이 없었다. 내가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지인들/엄마들은 교회의 자매들이거나 아이들의 친구들의 엄마들이었는데, 적게는 2 살, 많게는 12 살까지 나이 차이가 났다. 40 대 초반의 엄마들은 건강했다. 그들의 부모님들도 나의 부모님보다 젊었기 때문에 부모의 노년에 관한 걱정, 부양에 대한 고민도 절실하지 않았다. 아이들에 대한 고민의 성격이나 방식도 나와는 달랐다. 사람들과 만나면 나는 주로 입을 다물고 앉아 있었다.
    기운이 많은 젊은 엄마들은 모임도 쉽게 자주 가졌다. 우리 집에 와서 차들 마십시다, 브런치 할까요, 점심 같이 먹어요, 어머니회 모임이 있어요, 학교 바자회 준비해요.... 크고 작은 모임들에 초대를 받을 때마다 나는 고민이 앞섰다. 피곤해서였다. 젊은 엄마들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맑은 눈, 건강한 혈색, 그리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눈들이 참 맑구나. 피곤함이 전혀 없네.. 좋겠다’는 혼자 생각을 하곤 했다. 언젠가는 어떤 엄마가 자기 집에 초대해서 차를 마시는 중, 아침 10 시인데도 내가 피곤해 보였는지, '랄라 엄마, 눈이 너무 피곤해 보이시네. 내가 홍당무 주스를 좀 짜드릴게요' 하고 호의를 베풀어주어 감사히 마신 적도 있다.
    나는 자주 충전하고,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해서 남에게는 티를 안 냈다. 그러나 남편과 아이들은 피곤한 부인, 자주 쉬어야 하는 엄마에 익숙했다. 가족은 '엄마 쉬는 시간이다' '엄마 자니까 조용히 하자' '오늘은 엄마는 못 나간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배려해줬고 맞춰주었다.
    가족 중에서 '피곤한 엄마'를 가장 많이 도와주는 사람은 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 누워 있어' '엄마 차 타 줄까?' '엄마, 마사지해줄까?' 라면서 나를 챙겨주는 딸은 남편과 아들과는 애정 표현의 방식이 너무도 달랐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딸을 돌봐주는 듯이 나를 챙겨주는 딸을 보면서 나는 막연하게 딸에게 미안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했다. 이담에 딸아이가 진짜 엄마가 되었을 때, 그 힘든 임신, 출산, 육아의 경험을 할 때 과연 나는 얼마나 도와줄 수 있을까? 랄라가 내가 결혼했던 나이, 즉, 35 세에 결혼을 한다면 나는 칠순을 넘은 나이일 것이다. 50 인 나이에 골골하는 내가 칠십 중반에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딸아이의 육아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초등학생 딸이 미래에 임신 출산 육아로 고생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가슴앓이를 하는 것 우스꽝스러운 일이고 갱년기 호르몬의 영향이 컸음이 분명하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딸에게 그렇다고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엄마, 미안해하지 마"
    내가 딸에게 갖고 있던 미안함에서 나를 해방을 시켜준 것은 당시 5 학년이었던 딸이었다. 아주 짧게 주고받은 대화였지만, 나는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석양이 아름다운 날이었기 때문이다.
    랄라를 피아노 학원에서 픽업해서 서둘러 운전해 집에 가던 어느 오후, 내 옆에 앉아 있던 랄라가 갑자기 외쳤다
    “와! 엄마, 저 해 좀 봐!”
    딸이 가리키는 곳을 흘끗 보니, 지는 해가 온 하늘을 오렌지 색으로 물들여놓았더라.

    “와....
    나는 신음하듯이 감탄했다.
    바로 몇 시간 전만 해도 펄펄 끓던 태양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너른 팔을 벌려 지평선에 가볍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빨강, 노랑, 오렌지색, 파랑, 하양... 가지 각색이 어우러져 천천히 움직이던 그날의 노을은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더욱이 우리가 타고 있던 차가 다리 위를 지나치고 있었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택가의 번잡스러운 모습은 다리 밑으로 멀리 보였고, 반대로 하늘은 거침없이 넓게 펼쳐져 보이는 바람에 노을이 한층 더 가깝게, 넓게, 강렬하게 느껴졌다..

    눈이 상할까 실눈을 하고 살짝 태양을 바라보는 순간, 시뻘건 해의 불똥이 튀기라도 했는가, 바싹 마른 나뭇가지에 불이 퍼지듯, 나의 심장은 순식간에 감동에 휩쓸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노을빛에 물든 온 세상이---- 가로수, 자동차, 집, 사람들--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노을빛에 물든 모든 존재들이 함께 춤을 추며 힘찬 합창을 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너무 멋있다!" 하면서 옆의 딸을 쳐다보았다. 나와 달리 두려움 없이 해를 바라보는 딸아이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잊었다. 나의 존재를 잊은 채 석양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노을빛에 물든 나의 딸이 아름다웠다. 낯설었다. 내가 낳아 키운 나의 분신 같은 딸은 동시에 나와는 완전히 분리가 된 독립적 개체였다. 딸의 존재가 태양보다도 더 크게 느껴졌다. 나이기도 하고 나이지 않은, 그 사랑스러운 아이와 숨 멎을 정도로 황홀한 석양을 같이 바라보는 그 순간이 완벽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무것도 이룬 것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지라도 내가 이렇게 우렁차게 아름다운 우주 속에 나의 딸과 함께 존재하는 한, 나의 삶이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 완벽한 행복의 순간은 아주 짧았다. 천천히 운전을 했지만 어느새 우리의 차는 다리를 내려와 주택가로 진입했다. 노을은 건물에 가려졌고, 나의 감격, 나의 행복감도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의 차가 앞으로 전진하듯이 무자비한 시간, 잡을 수 없는 시간이 휙휙 앞으로 향해버리고 있었다. 차를 돌릴 수도 없었고, 차를 돌려서 간다 해도 그 완벽한 순간은 다시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눈물이 줄줄 흘렀다.
    랄라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 왜 그래?"

    "아, 몰라. 내가 왜 이러는지...."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너랑 함께 한 순간이 너무도 완벽하게 느껴졌다. 돌릴 수 없이 전진만 하는 시간이 잔인하게 느껴진다, 인간의 유한성이 엄마를 슬프게 한다. 엄마는 갱년기라서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초등학생이 이해하겠는가...
    그 순간, 생각지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랄라, 엄마가 나이 많아서 미안해. 엉엉. 엄마가 젊고 건강하지 않아서 미안해."
    나는 흐느끼면서--마치 어린애가 엄마한테 징징거리면서 이야기하듯이--주절주절 말했다.
    "엄마는 가끔 엄마가 좀 젊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젊은 엄마들처럼 기운이 많아서 많은 것을 같이할 수 있으면 좋을까. 네가 결혼해서 아기 낳고 그 아기가 크면서 하는 경험들을 너랑 같이 나누고, 너를 많이 도와주고 싶은데...."
    제멋대로 주르륵 떨어지는 주책스러운 눈물처럼 두서없는 말들이 내 입에서 툭툭 튀어나왔다.
    랄라는 석양과 관계없는 내 소리에 잠시 이해가 안 간 듯 침묵했다.
    운전하는 내 손을 잡진 못하고 내 허벅지에 자기 손을 놓더니 톡톡 두드리면서 평소에 듣기 힘든 진지한 목소리로--마치 투정 부리는 아이를 차분하게 달래주는 엄마처럼--나에게 말했다.
    "엄마, 그런 소리 하지 마. 엄마는 나랑 오래 살 거니까.”

    단호하게 내 말을 막아버리더니 나를 본격적으로 위로했다.
    “그리고 미안해하지 마.
    엄마가 경험을 많이 하고 성숙하기 때문에 나는 엄마랑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잖아.
    엄마가 젊은 친구들은 좋은 것도 있을지 모르나 나는 젊은 엄마가 부럽지 않아."
    딸의 말에 위로가 되는 건지, 내가 내내 갖고 있던 미안함을 표현함으로써 자유를 느껴서인지 모르나 나는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랄라는 이 주제가 다시는 거론되지 못하게 관에 넣어버리고 못을 확실하게 박아버리려는 의도인지, 구체적으로 집어서 이야기했다.
    "엄마, 나에게 젊으나 성숙하지 못한 엄마와 나이가 많으나 성숙한 엄마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두말없이 나이 많은 성숙한 엄마를 택할 거야. 몇 년 더 오래 살면 뭐해? 서로 이해 못하고 싸우고 상처를 준다면...
    엄마, 우리는 퀄리티 타임을 누리고 살잖아. 엄마, 그러니까 나에게 미안해하지 마."

    어린 딸아이가 나이 많은 엄마를 위로하느라 애쓰는 게 미안해 나는 랄라를 차마 쳐다보지 못했다. 부질없는 소리를 해서 아이를 놀라게 한 게 쑥스러웠다.
    나는 모른다. 우리가 대화를 하는 순간, 갑자기 딸이 큰 건지, 아니면 땅꼬마 초등학생의 마음속에 이미 존재했던 성숙함이 대화를 통해서 표현된 것인지. 어쨌든 간에 랄라는 나에게 위로를 주었다.
    그것은 '늙은 엄마라도 좋다'라는 소리 때문만이 아니다. 어쩌면 딸은 우는 엄마 달래려고 마음이 급해서 아무 소리나 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나를 달래준 것은 랄라의 침착한 태도였다. 초등학생이 모성, 늙음, 생명의 가멸성.... 이란 복잡 심오한 주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갱년기 아줌마를 도와주려고, 그 아줌마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 무더기 속에 뛰어들어 나름대로의 질서를 찾아 도닥여줄 수 있었다면, 이담에 랄라가 나이 먹어서 여성으로서 수많은 힘든 일을 맞닥뜨릴 때 겪는 현명하게 잘 이겨나가겠지 않을까? 엄마가 옆에 있던 없던 상관없이... 랄라가 '엄마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엄마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이해하고, '엄마같은 마음'으로 자매애를 쌓는다면, 백발 할머니가 될 때까지 외롭지 않을 것이고, 분명히 행복하리라. 나는 걱정할 이유가 없다.

    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는지 어린 랄라가 아무리 어른스러운 소리를 한다 해도, 혹시라도 엄마를 잃게 될까 두려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울까봐 자기 두려움을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안된다! 그런 필요 없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 엄마는 갱년기 잘 겪어낼 거고, 건강은 약 잘 먹고, 운동하고, 건강식 하면 지킬 수 있는데 말이다! 딸을 생각하니 삶의 의지가 불끈 타올랐다.

    나는 정색하고 엄마답게 유쾌한 목소리로 딸을 도닥여줬다.

    "랄라야, 걱정 마. 엄마, 오래오래 살 거니까. 지금처럼 조심하면 아주 오래 살 거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집 가까이에 도착했다.
    집 옆의 호수를 지나는데 스러지는 저녁놀에 온 호수가 금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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