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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방떡 출생의 비밀
    스치는 생각 2019. 12. 13. 10:31

    간신히 자/궁을 만들었는데, 글을 한자도 못쓰겠다. 일주일동안 붙들고 있는 에세이가 있는데 끝맺음을 못하겠다. 그래서 그걸 영어로 바꿔서 써봤는데 그건 또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흐르더니만 그것도 끝이 안난다. 

    책상과 의자가 생긴 뒤에 글을 못쓰게 되다니 이해가 안된다.

    당황스럽고 좀 면구스럽다. 엄마도, 에릭도, 이제 내가 책상 하나를  떠억~~ 차지하고 앉아 있으니 매일 물어보기 때문이다. 

    "오늘 글 좀 썼어?" 란 질문을 하루에 적어도 두 번씩 꼭 받다보니, 유명한 작가들이나 겪는 '원고 독촉'의 압력을 받는 것같아 신기하기도.ㅠ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생길 정도로 붙어서 글을 쓰고 있는데 마음에 하나도 안들고, 머리는 점점 더 멍청해져가는 이 현실에 잠시 우울해졌다가 다시 맘 바꿨다. 자궁이 애 낳는 곳이기만은 아니지. 깜깜하게 태아가 자라는 공간이지. 아니 깜깜한게 필요하지. 그러니 그냥 좀 냅두자.

    그리고, 내가 닭도 아니고, 어떻게 매일 매일 알을 하나씩 낳겠냐고!!  

    (혼자 허공에 대고 버럭! 내 방이 있으니 좋구나~~)

    어쩌면 책이 나온 뒤의 여파일 수도 있고. 유서와 묫자리를  결정으로 생각할 일이 많아서이기도 하리라. (이건 나중에)

    여러모로 나의 정상적인 삶을 방해하는 일들이 좀 있으니까 내가 글을 못쓰는 것이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정상이 아닌 게 분명하긴 한게, 최근에 '베이킹'도 했다. 

    왜 그게 정상이 아니냐? 베이킹과 나의 관계는....(후욱...한숨 내리 쉬고~~).

    우린 아무런 관계가 없기 대문이다..

    이거이 참 안타까운 현실인디.....ㅠ 

    미국에서는 베이킹을 손쉽게 한다. 좀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라면 끓이는 것보다 아주 약간 복잡한 과정일 따름, 모든 것을 신선한 재료로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냉동반죽 사다가 오븐에 굽기만 해도 온 집안에 달콤한 향기가 퍼지니 못할 일이 아니다. 베이킹을 즐기지 않는 부모도 아이들에게 쿠키 반죽을 오븐 그릇에 한숟갈씩 떠넣게 하면서 베이킹 기분을 낸다.

    나의 친구 말에 의하면 '자신의 레시피를 개발하는 베이킹이 아닌 한, 베이킹은 요리에 들지도 않는다.'  난 그말에 좀 놀랐었는데 일리있는 소리였다. 베이킹이란 게 재료 함량 적힌대로 정확히 하고 오븐 온도 맞춰서 정해진 시간 굽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실패할 가능성도 적고, 서프라이즈도 없다. 

    그녀는 요리를 엄청나게 잘하는 친구이라서 베이킹을 그렇게 우습게 보는 것이렸다. 그러나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나는 요리를 못하면서 그녀에게서 베이킹을 우습게 보는 교만함만 배워서, 친하지 않은 아줌마들과 친목용 대화로 요리 이야기를 할 때 '베이킹은 뭐...재료 함량 레시피대로 하고 오븐 온도 정확히 시간 맞춰 굽기만 하면 되니까...' 하면서 뭔가 있어보이게 한마디를 한다.  그거 말고는 요리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전무하므로...

    내가 왜 베이킹을 안하는가?

    재미가 없다. 기름 그릇 씻는 것도 싫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게을러서'이다. 살림에 재미를 못붙혔듯이 베이킹에 재미를 못붙인 것이다.

    그래서 난 해봐야할 게 하나 있다.

    유전자 검사.

    울 오마이, 좀 수상하다.  오마이는 85 세의 연세에도 베이킹을 즐기신다.  손수 단정하게 적은 베이킹 레시피들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은 물로, 여러 차례 실험 과정을 거쳐서 자신만의 레시피를 창조하고, 또 그렇게 개정보완된 레시피를 곱게 간직한다.

    어떻게 나/으 엄마가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우린 어찌 매사에 이렇게 다르지? 엄마와 같이 살게 되면서 나는 엄마가 살림에 아직도 얼마나 열정적인지를 보면서 나의 살림 무욕, 무탐, 무지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우린 달라도 너무 다르다...그래서 처음으로 유전자 검사 생각을 해봤다. 만약 유전자 검사를 하면, 엄마가 나의 친모가 아니더라도 나는 하나도 놀라지 않고 (미스테리가 드디어 풀렸다고 속이 시원할 수도!), 옛정을 생각해서 돌아가실 때까지 잘 모셔드리라.

    그런데 딸도 나에게 유전자 검사하자고 할지 모르겠다. 최근에 나한테 약간 속았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비싼 돈 주고 대학 보내놓으니, 큰 세상에서 보고 듣는 게 많아지면서 아이에게 내 실체가 다 드러나고 있다. ㅠ  

    최근 무슨 영감을 받아서인지 가부키 배우 눈화장을 시도하고 있는 따님께서 나에게 그 진한 아이라인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엄마는 왜 베이킹을 안했어?"

    마치 내가 젊은 남자랑 불륜의 관계를 맺기라도 한 듯한 취조 톤.

    (아니...하고 싶지 않아서 안했지...!)

    라는 말은 좀 설득력이 없이 들려서 가만히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에서는 dog 나 cow 나 (이 고차원 영어는 굳이 번역을 안하겠습니다) 베이킹을 하므로, 좀 싫어도 한번은 할 수 있었지 않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으니까..

    딸이 조잘조잘 이야기하기를....자기는 '엄마는 엄마니까 그런거지' 하고 받아들였었는데 기숙사에서 친구들이 쿠키를 굽는데 자기가 쿠키를 구워본 적이 한번도 없다니까 다 충격받고 자기를 외계인 취급을 하더란다. 심지어는 남자애들도 기숙사에서 쿠키를 구워봤고, 요즘도 모임 있을 때 쿠키를 구워오는 남자애들이 있단다. '우리 엄마는 한국 사람이라서 미국 엄마들이랑 다르다'라고 생각하려하지만, 한국 엄마들의 베이킹, 살림 실력이 뛰어난 게 이제 자기 눈에도 들어오는 것이었다. 

    '홈 스위트 홈' 과 너무도 거리가 먼 썰렁한 우리집. 어떤 아이는 랄라더러 "너는 엄마가 그렇게 무심해도 괜찮았니?" 하고 묻더란다.

    그래서 괜찮다고 했단다.

    (나를 그게 위로하려고 하는 소리같이 들려서 좀 미안했다. 그래서, '랄라야,지금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네가 나중에라도 심리 상담 같은 거 받게 되면 그때는 이 엄마한테 쌓인 거 막 털어놓아라. 죄의식 느끼지 말고.엄마 욕 막 해도 된다' 라고 해주었다. 밥 못해준 댓가로 그런 배려는 해줘야...)

    휴....백그라운드 이야기가 이렇게 길어서야 언제 본론데 들어가겠노....

    여하간 그렇게 베이킹과 담을 쌓고 지내던 내가 베이킹을 하겠다고 '달려든' 이유는 간단했다.

    친구 집에 갔을 때 자기가 만든 컵케익이라고 줘서 먹어봤더니 너무 맛있었다. 친구가 '이거 준비하는데 10 분도 안 걸린다' 라고 했다

    10 분? 내가 머리 손질하고 화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에 컵케익 준비가 끝난다고?  

    친구는 자랑스럽게 레시피를 늘어놓았다.

    기름도 한방울 안들어가고 (어머, 고혈압에 좋겠네!),

    밀가루도 안쓰고 (그건 치매 방지, 비만 방지!) 귀리를 쓰며 (그거 심장에 좋잖아!),

    Greek 요구르트를 넣고 (단백질이 보통 요구르트 두 배잖아!),

    설탕대신 꿀을 (저런저런! 당뇨에도 좋겠다!),

    계란 두 개랑 바나나 잘 익은 거 두 개, 베이킹 파우더랑 베이킹 소다, 이 모든 재료를 한번에 믹서에 넣고 갈아버리면 된단다.

     

    재료가 건강하고 한번 들으면 다 기억되는 훌륭한 레시피, 게다가 준비하는데 10 분, 한번에 다 갈아버리면 된다니!

    그래서 당장 그걸 하겠다고 집에 달려와서,  부엌에 달려가서, 서둘러 준비했다.

    이제까지 엄마가 빵, 파이를 구을 때 눈길 한번 안 주던 내가 베이킹 한다면서 서둘러 재료를 꺼내니 엄마가 신기해하셨다. 엄마께 친구가 준 기적의 레시피의 짧은 유트브 동영상을 보여드렸다. 나는 레시피를 기억하므로 흘끗흘끗 보고--다 넣고 돌리는 건데 뭘 찬찬히 볼 게 있는가!-- 엄마는 다 보셨다. 

    잠시 후 엄마는 내가 뭐하나 구경하시다가 졸지에 내 보조가 되어버렸다. 나는 말로 '엄마, 귀리는 두 컵, 꿀은 세 숟갈,  베이킹파우더는....' 식으로 엄마께 말하면 엄마가 재어서 믹서에 넣으셨다. 하극상이 따로없다. 상궁이 대왕대비마마의 처소에 들어가 떡하니 자리잡아 대왕대비마마한테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형국이었으니..

    이거 넣고 저거 놓고..믹서로 드르르~~~

    엄마는  "좀 천천히 하면 안될까? 이렇게 서둘러야하니?"  물으셨다.  (절대로 비판하지 않으심)

    "엄마, 이게 10 분만에 되는 거잖아.  빨리하는 게 이 레시피의 정수에요!"

    재료를 다 섞었는데  반죽이 좀 된 것같았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오븐에 넣고 구워봐야 알지..

    빨리빨리~~

    서둘러서 오븐에 넣었다.

    얼마 후, 그럴 듯한 냄새가 났다. 성공을 약속하는 그 달콤한 향기란!

    조바심을 내면서 오븐을 들여다보면서 컵케익이 커가는 모습을 보다가 시간을 되자마자 꺼냈다.

     

    음..

    쫌 작네?

    음..

    쫌 덜 다네.

    음...친구 것이랑 맛이 좀 다르네.

     

    친구 것과 맛이 다르다지만 내 입에는 잘 맞았다.

    너무 달지 않고 구수하고, 보들보들하면서 찰진 감촉이 꼭 오방떡같이 맛있었다.

     

    앗, 잠깐!

    내가 만들려고 한 것은 오방떡이 아니었는데?

    왜 컵케익이 구수한 오방떡으로 돌변했지?

     

    오방떡 출생의 비밀을 풀지 못했으나 여하간 나는 오방떡에 만족했다.

    집에서 오방떡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엄마께 다음 번에는 이 안에 팥을 넣어서  진짜 오방떡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리고 이런 레시피는 길이길이 보전해야한다면서 레시피를 사랑하는 엄마가 베껴쓰시게 드렸다. 

     

    엄마가 잠시 후에 레시피 쪽지를 들고 나오셨다.

     

    "팜펨아, 아까 동영상에서 만드는 거 봤을 때는 달걀이 들어갔었거든?"

    "네, 들어가요."

    "그래서 우리가 할 때도 달걀을 넣었지?"

    "당연히 그랬지요."

    "그런데 네가 준 레시피에는  달걀이 빠져있네."

    "엥? 그래요?"

     

    레시피를 확인해보니 정말 내가 적은 레시피에는 달걀이 없었다.

     

    엄마는 또 다정히 덧붙이셨다.

    "그리고, 여기 좀 봐. 네 레시피에는 바나나가 두 개 적혀 있지?"

    "네."

    "그런데 우리는 바나나를 넣지 않았어."

    앗?!

    다시 보니 정말 그랬다.

    약간 퍽퍽한 반죽이 된 것이 바로 바나나가 빠져서였구나.

    비로서 오방떡 출생의 비밀이 풀렸다.  

     

    나의 성급함이 문제였다. 나의 베이킹의 목적은 맛있는 컵케익을 구워내는 게 아니라, 평소에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어서 빨리 해치워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레시피에 재료를 빼먹고 적고, 레시피에 적혀있는 재료는 빼먹고 넣지 않는 레시피 파괴자가 된 것이다.

    그런 파괴된 레시피를 통해 맛있는 오방떡이 태어난 게 기적!

     

    딸의 자존심을 자신의 베이킹 레시피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머니는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오늘 좀 너무 급히 해서 그런거 같다. 그래도 맛은 있더라."

    (오마니, 넘 착하셔...ㅠ 유전자 검사 꼭 해봐야...)

     

    그러나 그 착한 엄마는 다음 날부터는 오방떡을 입에 대지 않으셨다.

    다행히 남편이 넘 좋아했다.

     

    "오~~ 한국에서 겨울에 길에서 먹던 그 빵 맛이야!" 하면서 오방떡 맛을 귀신같이 알아보더라.

    내가 베이킹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남편은  엄마가 한국 레시피로 오방떡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엄마께 감사하다면서 '날름날름' 잘도 먹더라.

    (레시피가 파괴되어 빵이 아주 조그많게 나왔다. 그래서 한입에 날름날름 삼켜먹는 사태가..ㅠ)

     

    나도 자존심이 있는지라 남편한테 그게 실제로는 컵케익이어야했는데 오방떡이 되었다고는 말을 안했다.

    그래서 남편은 '장모님이 한국 레시피로 만든 오방떡'을 며칠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담번에는 레시피에 계란 넣고, 바나나 넣고 제대로 컵케익을 만들어보리라.

    좀 천천히.

    엄마 도움 받아서.

     

    그러나 오방떡 출생의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할 것이다.

    (남편을 아는 친구들, 부탁합니다. 이 오방떡 사건은 무덤까지 같이 갖고 갑시다!)

     

     

    **이 레시피를 공유해달라고 하신 분들을 위해서  (와....제 인생에서 레시피 공유를 하다니! 제 쿠킹 인생의 업그레이드!)

    바나나 머핀 레시피---귀리  2 컵, 아주 잘 익은 바나나 2 개, 달걀 2 개, 무지방 Greek 요구르트 1 컵, 꿀 2-3 Tbsp, 베이킹파우더 1.5 tsp, 베이킹소다 1 tsp, 바닐라향 1/2 tsp, thrma 1/8 tsp  --믹서에 넣고 귀리가 부드럽게 갈릴 때까지 갈아줌. (3 분 정도 걸린다고 함)

    (그 후 쵸콜렛칩 1/2 컵 포함 견과류, 말린 크랜베리, 신선한 블루베리 등도 넣어도 됨. 믹서에서 극심하게 갈리고 시달린 반죽이 열/받/아/서 --뜬금없는 의인화!---따뜻해지는데, 그때 쵸콜렛 칩을 넣으면 녹을 수 있으니까 반죽을 식혔다 넣기. 

    400 F (200 C) 로 예열한 오븐에 넣고 15 분 굽고 꺼내어서 10 분 뒤에 냠냠~~~

    *위의 머핀 레시피에서 바나나를 빼면 오방떡 맛이 남. 전 엄마가 한국에서 가지고 오신 아주 작은 머핀 틀에 구웠기에 '날름날름'이 가능한 사이즈로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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