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7) 

 

오늘 셀레나와 그녀의 딸 이세벨과 함께 작은 프랑스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셀레나의 엄마의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여. 


집에 돌아오는 길에 셀레나가 고맙다고 나에게 카드와 멕시코 깃발의 색깔로 만들어진 스카프를 선물로 주었다. 셀레나는 항상 나에게 크고 작은 선물을 준다.

 

셀레나는 나를 도와 2 년째 함께 아버지 수발을 돕고 있는 요양보호사이다. 내가 장난삼아 이름지은 우리집, '소망 요양원'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하는 직원그러므로 나와 고용주와 고용인의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그 관계를 서로 엄격히 존중하면서 서서히 자매애와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내가 셀레나를 고용한 게 행운임을 그녀가 일을 시작한 첫 날 알아차렸다그녀는 20년 넘게 요양원에서 일을 한 요양보호사 답게 모든 일을 안전하고 깔끔하게 했다. 아버지와 내가 같이 있을 때 자기가 말을 해야할 때와 조용히 해줘야 할 때의 분별을 잘했다시간도 정확히 지키고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일을 펑크낸 적이 없었다. 어쩌다 요양원에서 긴급한 상황이 일어나 아침부터 오후까지 에 풀타임으로 일한 뒤 다시 밤에 가 꼬박 밤 새우면서 일을 한 뒤에도 나와 약속한 토요일 아침8 시에 정확히 우리집에 나타났다. 깨끗하고 단정한 용모로.


아버지도 자신의 몸의 상태를 금새 파악하고 안전하고 조심스럽게 다루는 그녀의 수발 서비스에 마음을 놓으셨다. 셀레나가 아버지를 도와 조금씩 움직여 침대에 눕혀 드리면 입을 활짝 열고 만족한 미소를 지으셨다.


"셀레나는 정말 잘하는구나..." 하시면서.


엄마는 간병 도우미 중에서 셀레나를 제일 마음에 들어하셨다. 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일을 잘하는 것은 물론, 더불어 궂은 일을 하러 오는데도 항상 단정하게 옷을 입고, 어떨 때는 귀걸이에 엷은 화장까지 하고 와서 엄마 아버지의 마음을 환하게 해주어서였다. 깜찍한 모자에 큼직한 선글래스색깔을 잘 맞춘 옷의 셀레나가 아버지 휠체어를 밀며 산책을 할 때는 '환자'와의 산책이 아니라 즐거운 소풍같이 보여서 나도 흐믓했다.


엄마는 그날 그날 셀레나의 머리 스타일(묶었다, 올렸다,풀었다) 같이 소소한 것의 변화에도 관심을 보이고, 셀레나가 절기마다 바꿔차는 귀걸이(크리스마스,할로윈, 멕시코와 미국 국경일 등에 맞는 귀걸이)를 보고 재밌다, 센스있다 칭찬하며 소리내어 웃으셨다. 셀레나가 들고 다니는 물병, 가방도 엄마의'셀레나에 대한 관심 레이더'에 포착되었고, 셀레나는 엄마가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칭찬해줄 때마다


"어머니가 절 예뻐해주시는 것같아요,"

"말이 안통해도 사랑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저에게 어머니 한 분이 더 생긴 것같아요" 라고 했다.


사실 딱딱할 수 있던 우리의 고용주/고용인의 관계에 변화를 준 것은 셀레나였다언젠가부터 셀레나는 엄마 아버지를 '어무니' '아부지' 라고 불렀다. 또한 그녀는 뜬금없이 엄마가 좋아하실 것같다면서 머리핀이나 머리 장식품을 사왔고, 집에서 만든 멕시코 음식 부리또와 엔치야다를 가져오고, 정성들여 만든 달달한 멕시코 식 푸딩을 가져와 같이 나눴고멕시코 시장에서 과일이 너무도 싸다면서 오렌지 꾸러미, 히카마 꾸러미들을 갖다 줬다그런 정성과 정의 표현은 우리 식구 모두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렇게 후하게 자신의 정을 표현하면서도 그녀는 우리집에 올 때 물병에 레몬을 넣은 물을 잔뜩 채워와 우리집의 물은 한 잔도 마시지 않고, 셀폰은 아예 꺼버리고 일에 집중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을 철저히 고집했다.  


어느 날 셀레나가 물었다자기의 딸 이세벨을 데려와 나에게 인사를 시켜도 되겠냐고. 약간 뜬금없는 질문에 의아했지만 그녀가 자신의 삶을 우리에게 열어주는 것임이 분명했고 그것이 좋게 보였다. 그녀는 딸이 철이 없어서 삶에 목표가 없다고 했다. 자기는 싱글맘이라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영향이 없어서 나를 만나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셀레나, 내가 무슨 영향을 줄 수 있겠어난 그냥 홈메이커인데...."


"아니, 무슨 소리를 해주라는 게 아니라 그냥 만나줬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딸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주 토요일에 그녀는 딸 이세벨과 나타났다. 아버지를 모시고 호수를 돌아 카페로 산책을 다녀온 뒤 나와 셀레나와 이세벨은 카페에 점심을 먹으러갔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20세 초반의 이세벨은 조용히 나와 자기 엄마의 이야기를 경청하였다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그날 처음으로 셀레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셀레나의 첫째 아버지는 엄마를 버리고 새장가를 갔고 그후 그녀는 아버지를 못봤다. 엄마가 재혼한 뒤 의붓 아버지는 상습적으로 엄마를 구타했다. 엄마는 어려운 살림에 장사를 해 돈을 벌며 자식들과 친정 엄마까지 돌보았고 그런 엄마를 셀레나는 사랑했다. 그러나 계부가 엄마를 학대할 때 자기가 엄마를 보호하지 못한 게 그녀에게는 한으로 남았다의붓아버지가 죽은 뒤 이제 비로서 엄마가 맘 편히 살 수 있게 되었구나, 이제부터 내가 엄마를 경제적으로 도와야지 하며 기뻐했는데 어느날 엄마가 교통사고로 급사했단다


평생 고생만 하고 아무 것도 누리지 못한 엄마를 떠올리며 셀레나는 감정이 북바쳤다. 그녀의 크고 아름다운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나도 슬픈 마음으로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몰라 가만히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기만했다. 그러다가 그녀의 옆에 앉은 이세벨이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에 내 눈이 멎었다. 이세벨은 스무 살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그런 성숙한 표정으로--다정하게 그러나 자기 감정을 내놓지 않고--엄마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마치 성장통을 겪는 청소년기의 아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해줄 수 없이 가만히 바라보아야만 하는 엄마의 표정과 흡사했다. 절제된 고통의 표정나는 이세벨이 셀레나가 생각하는 그런 철없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자기 엄마가 싱글맘으로서 지고온 고통의 무게만큼의 남모르는 고통을 이세벨이 엄마가 힘들지 않게, 엄마 몰래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아버지 수발을 들며 틈틈히 셀레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서 그녀의 삶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다요양원 일은 언제 시작했는지, 작업 환경은 어떤지, 어떤 경험들을 하는지, 나는 많은 질문을 했다. 요양보호사들이 겪는 애환은 내 상상 이상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사실 깨끗한 일은 아니잖아요. 요양원 월급은 아주 작아요. 스트레스도 엄청 크고요. 환자들이 욕하고, 때리는 사람도 있고가슴을 만지고, 어떤 사람은'영어도 못하면서 미국에 사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하고 소리 질러요멕시코 직원들이 없으면 당장 제일 피해를 보는 게 자신들일텐데....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20 년 넘게 일을 하다보니 다 넘길 수 있지만 요즘도 너무 힘들 때는 양로원의 간호사에게 상담을 하거나 병원의 제 상관에게 가서 울고 그럴 때가 있어요."


환자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더 힘든 것은 환자의 가족들이 주는 스트레스라고 했다.


"인종차별적인 소리를 하고, 욕을 하고,꼬집고 할키는 환자들이 싫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잖아요. 가족들에게서 버림받은 사람들도 있고.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환자들에게서 상처를 받으면 금방 일어날 수 있어요그러나 진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가족들이에요."


셸레나의 말에 의하면 요양소에 식구를 맡긴 가족들 중에는 수발은 직원의 일이므로 자신들은 절//로 도와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자기들이 전혀 하고 싶지 않은 힘들고 더러운 일을 하는 도우미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기는 커녕팔짱 끼고 검사 하듯이 관찰하고, 불쾌한 잔소리를 하고, 매사에 트집을 잡아 요양원에 컴플레인을 한단다.


"바로 며칠 전에도 내가 혼자 낑낑대면서 내 몸무게의 두 배가 되는 치매 환자 할아버지를 휠체어로 옮겨야했어요그 사람의 딸이 바로 옆에 있으면서 내가 옷을 늦게 입힌다고 도와주지는 않고 잔소리만 하더라고요. 그 할아버지가 거인이라서 휠체어로 옮기는 것을 혼자 하면 위험해서 동료 직원을 불러와 같이 했더니만 제가 일 못한다고 요양원에 컴플레인을 했더라고요. 물론 병원에서는 우리를 이해하고 그런 컴플레인 들어오면 들어주는 척 하고는 우리에게는 이해하라고 하지요. 그래도 기분은 안좋아요."


셀레나는 임신을 한 상태에서 힘든 요양원 일을 했고, 아이가 태어난지2 주 만에 직장에 복귀했다. 아기는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영아산통(콜릭) 증상을 보였다. 아파트 이웃들을 깨울까 두려워 깜깜한 밤에 죽도록 피곤한 몸을 일어나 멈추지 않는 울음을 달래보려고 몇 시간 동안 얼르다가 쓰러져서 잠시 눈 붙이고 다시 일하러 가곤 했다며 웃었다. '지난 날 이야기니 다 웃을 수 있네' 하면서.


직장 일이 늦게 끝나서, 아니면 교통 체증이 있어서 아이의 픽업이 늦은 날깜깜한 프리스쿨에 혼자 남아 있는 아이는 바로 이세벨. 엄마로서 너무도 미안했다어떤 날은 이세벨을 픽업해 집에 돌아와 너무 피곤해서 잠깐 쉰다고 눈을 붙였는데 그냥 깊은 잠에 빠져들어버렸고, 옆에서 '엄마,배고파, 배고파...' 하며 조용하게 조르던 딸아이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일어나지를 못했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아이가 담요를 입에 물고 자기 옆에서 자고 있었단다. 그때 느꼈던 미안함, 죄의식은 평생 갈 것같다고 했다. 아이가 너무 큰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지난 번에 카페에서 보니까 이세벨은 엄마를 잘 알고 있는 것같더라.


"정말?"


"당신을 무척 아끼고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같던데요 뭐. 철이 없는 게 아니라 철이 너무 많이 들어서..."


사실이었다이세벨은 간호보조원 자격증을 따서 일을 시작했고, 자기가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엄마를 도울 수 있는 처지가 되면서 아주 밝아졌다남성들 틈에서 모토바이크 교습을 받아 면허증을 따더니만, 엄마가 평생 해본 적이 없는 캠핑을 시켜주겠다고 사막에 데리고 가고평생 눈을 보지 못한 엄마에게 눈썰매를 태워준다며 겨울산에 데리고 가며 든든한 딸 노릇을 하고 있다

 

------------------

 

셀레나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를 알기에 이미 고된 그녀의 삶을 더 이상 고되게 하지 않으려고 나는 어떤 상황이라도 그녀와의 스케쥴을 바꾸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비가 오거나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그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때에도 그녀의 일을 취소하지 않는다그러나 어쩌다가 다른 도우미가 휴가를 가거나 아파서 그녀의 도움이 필요할 때 그녀는 한결같이 선선하게


"No problem!" 라고 해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얼마 전에 세뇨라 버지니아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셀레나가 다른 job 으로 갈 뻔한 거 알았어요?"


무슨 소린가 했더니 셀레나의 친구 루쓰가 우리 옆동네 뉴포트 비치라는 동네의 한 부잣집에서 치매 할머니를 24 시간 요양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셀레나에게 우리집에서 와서 일하는 대신에 자기와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단다. 시간당 시세보다 5 불이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며


나는 버지니아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미 걱정을 시작했다. 셀레나가 가겠구나..그의 입장에서는 돈을 많이 받으면 좋겠지, 내가 이해해야지, 그런데 당장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한담?...


그런데 버지니아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셀레나가 루쓰의 제의를 거절했단다. 얼마 지나서 셀레나에게 물었다


"루쓰가 같이 일하자고 했다면서요?"


", 그 얘기 들었어요? 난 한번에 안 한다고 했어요."


"정말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던데?"


"내가 이미 당신에게서 정당한 급료를 받고 있는데요, 그리고 애초에 난 그 직장에 관심이 안갔어요. 

돈을 많이 주면 뭐해요내가 즐거워야지.  아부지한테 올 때는 기뻐서 와요. 당신의 가족 모두가 나를 존중해주고내가 하는 일을 감사해하고. 그런 존중과 감사는 돈으로 살 수 없어요. main job으로는 요양원에서 일하고 아르바이트만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그래서 다른데로 안 갈 거에요."


그녀의 말이 너무 고마웠다. 와서 궂은 일만 하는데도 우리집에 오는 게 즐겁다니


최근에 아버지 몸이 많이 안좋아지셔서 저녁에도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다. 욕창을 방지하고 잠을 푹 주무시게 하려면 세밀하게 계획된 여러가지 일들을 해야하는데 내가 다 하다보니 엄마가 자꾸 도와주려 하시고 그러다보니 나도 엄마도 너무도 피곤해졌다. 그래서 새 직원을 고용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런데 새로운 사람을 고용하려면 시간이 걸리고고용 광고를 내고 면접 약속을 잡아 면접 하고, 고용을 한 뒤에도 어떤 일을 해야하는가 시범을 보여주면서 트레이닝을 해야하는 과정이 있다. 이미 너무도 바쁜 나에게는 힘든 숙제였다. 그런데 셀레나가 제안을 했다


"내가 밤에 원하는 시간 만큼 와줄 수 있어요."


"아니, 요양원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주말에 우리집에서 일하는데 밤에 올 수 있다고요?"


"잠깐 쉬고 오면 됩니다. 당신의 집에서 일하는 것은 힘들지 않아요마음이 기쁘면 일이 힘들지 않아요."


그녀의 크고 맑은 눈망울에 진지한 표정이 그녀가 진심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무척 고마웠다. 그렇게 해서 셀레나가 일주일에 세 번, 밤에 와서 도와주게 되었다. 그녀는 밤 8 시간을 정확히 지켜 나타났다. 한결같이 밝은 미소를 띄고


아버지와의 '밤의 의식' 육체적 힘이 많이 들지는 않지만 꽤 복잡하고 분주하다일단 변기에 앉혀드리고, 변기에 앉아 계신 동안 피부가 공기에 노출되어 감기에 걸리지 않으시게 가벼운 타월로 여기저기 꼼꼼히 감싸드린다용변이 끝난 뒤에 기저귀를 채워드리고, 옷을 입혀드리고 휠체어에 앉혀드린 뒤에 밤 스낵을 드린다. (잡수시는데 오래 걸림)


그 후에 양치소금물 가글, 기침과 가래를 방지하는 차 드리고(마시시는데 오래 걸림), 유칼립투스 에센셜 오일을 넣은 스팀기로 스팀을 해 호흡기를 편하게 해드리고, 욕창 방지를 위해 두피 마사지, 어깨 마사지, 척추 마사지를 간단히 해 드린 뒤에 침대에 눕혀드린다.


아버지가 침대에 누우신 뒤에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욕창 방지를 위해 베개, 방석쿳션 등으로 여러가지 장치를 하고, 일반 가습기 설치하고와 에션셜 오일 가습기를 작동시킨 뒤에야 일이 끝난다.


위의 복잡한 "밤의 의식"을 위해서 셀레나와 나는 둘이 번갈아가면서 스낵 가져오고, 양치물 가져오고 차 가져오고 물 버리고 스팀기 가져오고 아주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런데 그 바쁜 ritual 중에 아버지와 내게 소중한 시간이 들어있다스낵을 드시는 시간과 차를 마시는 시간에 같이 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유튜브로 시를 틀어서 듣기도 하고 내가 시집을 들고 읽어드리기도 한다도합 1 시간 정도 되는 시읽기 시간은 아버지에게 아주 중요한 시간이다육체가 살기 위해서 해야하는 잡다한 일을 잠시 멈추고, 잠시라도 아버지가 즐겨하시는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유튜브로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를 듣고 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평소에는 조용히 들락날락하며 자기 일을 알아서하는 셀레나가 눈치를 보듯이 우리를 쳐다보다가 불쑥 끼어들었다.


"지금 시를 읽으시는 거지요? 저도 시를 좋아해요"


나는 그말에 깜짝 놀랐다주야로 궂은일을 하는 간병도우미 셀레나에게서 '시를 좋아한다'는 말은 상상도 못했기때문이다. 그걸 나의  편견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게 사실 내가 만난 도우미들은 돈 걱정, 아이들 걱정, 하루하루 사는 걱정에 티비로 뉴스 볼 시간도 없다고들 했다. 곤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그게 당연했다. 나만해도 아버지 수발을 들면서 점점 매일 책을 읽거나 글쓰기를 하는 게 어려워졌고, 요즘은 끄적이다가 마무리 짓지 못한 글만 싸여가고 있는 처지였다. 그래서 아버지와 시를 읽는 게 더 소중했진 것이고. 


여하튼 나는 셀레나가 시를 좋아한다는 말이 너무도 반가웠다. 우리가 전투와 같은 그런 수발 중에도 시를 읽는지 이해할 수 있으려니 말이다.


"셀레나, 시를 좋아하는군요!"


". 옛날부터 시를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도 문학 시간이 제일 좋았어요. 선생님이 시 읽기는 주로 저에게 시키곤 했었어요저는 책읽기도 좋아해요. 그냥 뭐든 읽는 게 좋아요. 시는 특히 좋아요. 시를 읽으면서 힘을 얻곤 해요."


아버지는, '아아! 그래?!!' 놀라며 좋아하셨다. 평소에 아버지와 '아프세요?' '물 드릴까요?' '지금 옮겨 드릴께요' 식의 대화밖에 없던 요양보호사와 시를 이야기하게 되다니!


셀레나가 우리에게 물었다.


"제가 좋아하는 시 들려드릴까요?"


"물론이지요!"


"그런데 그게 스페인어인데...괜찮아요?"


"시의 힘은'사운드'잖아요! 어떤 언어라도 상관없어요. 아니,이게 웬 선물이라냐!! 예이!! 예이!!!" 


나는 신나서 소리를 지르면서 당장 그녀가 말해주는 시의 원문을 찾아서 티비 모니터에 큼직하게 올렸다


그녀는 시를 읽기 시작했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아름다운 스페인어 시가 아버지 방에 울려퍼졌다.


셀레나는 빛난 눈으로 시를 읽었다. 첫 구부터 강렬하게 시작했다눈코입이 큼직큼직한 강렬한 미모의 셀레나에게 잘 어울리는 아주 열정적인 시였다뜻을 모르지만 첫구절부터 리듬이 느껴졌고 운율도 들렸다. 가사를 모르는 오페라 음악을 들을 때와 마찬가지의, 음악과도 같은 시가 주는 감동의 전율이 전해졌다아버지를 쳐다보았다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나와 같은 감동을 느끼시고 계심이 분명했다





셀레나는 아버지의 등에 손을 얹은 채 시를 읽어 내려갔다. 빠르게 읽는데, 그게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소용돌이 때문인 것같았다. 어느 순간에 셀레나는 눈물을 흘렸고 그러면서도 시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셀레나가 시낭송을 마친 뒤 나는 달겨들다싶이 그녀를 껴안았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너무 좋았어요. 당신의 시를 들을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셀레나는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환하게 미소 지으며 나를 껴안았다.


"고마워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에요."


"무슨 내용이에요?"


"버려진 사람들이란 제목인데, 아이 하나를 데리고 사랑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버림받은 싱글맘의 이야기에요. 크고 잎이 무성한 과일나무에서 떨어진 과일과도 같이 버려진 여인....이 시는 슬픈 내용인데도 읽으면 힘이 나요. 그래서 자주 읽어요. 그리고 나는 아부지랑 당신이 왜 시를 열심히 읽는지를 이해해요."


나는 아무말 없이 셀레나를 더 세게 껴안았다.


셀레나가 언어,문화, 교육의 차를 뛰어 넘어 나의 진정한 친구가 된 순간이었다


---------


그녀가 내가 왜 급박한 순간에도, 매일매일 아버지와 시를 읽는지를 이해하듯이 나도 왜 그녀가 우리집에 자기 딸을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키려고 했는지, 왜 그녀가 돈을 많이 준다는 직장을 거절했는지, 왜 그녀가 우리집에 올 때마다 그렇게 행복한 얼굴로 왔는지...어렴풋이 이해한다. 우리는 비슷한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게 행복한 거다


오늘 내가 셀레나와 이세벨을 초대해 셀레나의 엄마가 세상을 떠난 날을 함께 하고자 한 것도 셀레나가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갖고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요즘 나의 상황에서는 누군가 나에게는 내게 주는 어떤 값진 선물보다도 내 아버지를 도와주는 게 훨씬 귀하고 고마운 선물이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셀레나가 매일 매일 나에게 선물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셀레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두 존재---딸과 돌아가신 엄마--를 내가 함께 아껴주고 위해주는 것이리라 믿는다. 


나는 자기 엄마를 사랑하는 셀레나가 어머니의 상실의 슬픔을 묻고 나의 아버지를 묵묵히 정성들여 도와주는 게 너무도 고맙다.  그녀가 나에게 베풀어주고 있는 도움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고 영원히 고마워할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셀레나가 자신의 엄마에게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지 못해서 쌓인 한을 조금이라도 같이 풀어주려하고. 그녀가 딸에게 잘해주지 못해서 느끼는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같이 덜어주려고 할 작정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해도 그녀가 나의 아버지께 배풀어주고 있는 봉사와 사랑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