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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의 걸음마
    모성- doodle 2018. 4. 11. 15:02

     

     

    첫째가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면서 걷는 뒤로 

    혹시라도 넘어지면 어떻게 하나,

    그러나 너무 가까이 쫓아가면 아이에게 방해가 될까나,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따라갔었다.

    아이가 잘 걷게 되었을 무렵 둘째가 생겼고,

    나는 갓난아기 둘째를 업은채 

    좋아하는 장난감 자동차를 밀거나

    세발 자전거를 타고 앞서가는 첫째 아이의 뒤를 쫓아갔다.

    나도, 아이들도 보이지 않는 탯줄로 연결된 양

    편안하고 행복했었다.

     

     

    20 년이 지나 

    두 아이는 집을 떠났다.

    그리고 문득 나는 내가 20 년 전의 일을 그대로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

     

    미국에서 아버지가 넘어지신 뒤, 

     엄마의 건강도 급격히 악화되었다.

    혈압도, 심장에도 문제가 생겼고

    가장 큰 문제는 엄마가 걷지 못하게 되신 것이다.

    집 안에서 계단 세 개를 올라가는 것도 힘든 일,

    가끔은 앉았다가 일어나실 때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시기도 했다.

    지팡이를 잡아도 균형을 못잡으셨다.

    엄마 스스로 걷는 것을 두려워하셨다.

    아버지 간호 6 개월만에 엄마 몸이 이렇게 퇴화되시다니....

    너무도 안타까웠다.

     

     

    곰곰 생각해보니 나와 아버지 간병에 집중하고 있는 엄마가 운동이라고 하시는 게 

    집의 운동기계 위에서 20 분 정도 걸으시는 게 전부였다.

    종일 햇볕을 쐬지 못한 채 조그만 공간에서 조그만 창문을 바라보면서 기계 위로 걷는 것이 

    엄마의 균형감각에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외에서 걸을 때는 내가 움직일 때 모든 사물이 움직이기 마련

    그것을 바라보면서 걷다보면 저절로 시신경에 자극이 되고 균형잡는 연습이 될 것같았다. 

    그래서 엄마를 모시고 밖에 나갔다.

     

    엄마는 오랫만에 밝은 세상에서 걸으면서 어지러워하셨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래도 새삼 놀라웠다.

    아무런 사고를 입지 않으신 엄마께도 

    걷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되다니.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로 엄마를 모시고 가

    엄마가 앞서 걸으시게 하고 뒤를 따랐다.

    한발, 또 한발, 

    마치 걸음마를 처음 떼는 아기처럼

    엄마는 조심스럽게 걸으셨다.

    나는 엄마가 넘어지실까봐 두려워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도 놓지지 않으며

    엄마의 뒤를 따랐다.

    걸음마배기 아이들의 뒤를 따르던 것처럼.

     

    놀라운 일은

    우리의 육체는 급속히 퇴화되기도 하지만

    조심스레 노력하면 서서히 회복되기도 한다는 사실.

    아버지의 건강이 호전되어 휠체어를 타고 매일 산책을 하게 되면서

    매일 같이 걸으시는 엄마의 건강도 서서히 회복되었다.

    지팡이 없이는 걷기를

     두려웠던 분이

    이제는 지팡이 없이 활기차게 잘 걸으신다.

    아침 저녁으로 운동하시고

    요가도 하시면서 몸의 균형 감각도 좋아지시고 혈색도 좋아지셨다.

    금방 돌아가실 것같았던 아버지도 건강이 많이 회복되셨다.

    비록 몸을 전혀 쓰진 못하셔서 나와 엄마, 도우미의 힘을 빌어야하지만

    그래도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즐기실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챙겨드리면서

    둘째아이를 들쳐 없고, 첫째의 뒤를 따라가던 

    20 년 전의 내가 갖던 행복감과 비슷한,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아주 다른 그런 행복감을 준다.

    무엇이 다르냐...

    아이들이 나의 품을 떠날 때 겪는 '건강한 성장과 독립'의 경로와 달리

    부모님이 나의 품을 떠나시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래서 아이러니는

    내가 예전보다  매일, 매 순간을 즐기고 감사한다는 사실이다.

    어두운 죽음을 배경으로하니 삶의 아름다움이 한결 더 선명해진다.

    모든 것을 '무'로 화해버리는 죽음을 배경으로하니 평범한 일상은 새로운 빛, 새로운 향기,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엄마 아버지와 함께 즐기는 석양, 햇살, 꽃, 나무, 다람쥐, 거북이, 토끼, 오리, 고양이, 구름, 비.....

    이 모든 것들을 나는 당연히 여기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매일 해는 뜨고 지고, 꽃도 피고 지고, 비가 오다 그치고, 다람쥐, 거북이, 토끼, 거북이 등 동물은 계속 우리 옆에 존재하겠지만

    그 모든 것을 부모님과 누릴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있음을 알기에...

     

    부모님가 함께 살면서

    반복적이고 평범한 일상은

    나의 오감을 자극하는 아름다움의 향연이 되어버렸다.

    20 년 전, 아기들의 엄마였던 내가 채 파악하지도, 

    즐기지도 못했던 아름다움,

    나는 슬퍼하고 행복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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