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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발의 꿈
    부모님 이야기 2016. 4. 27. 13:02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같이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 내가 말했다.

    "아버지, 전 이제까지 경험한 모든 것들이, 제가 한 공부, 여행, 결혼, 출산, 모든 것들이 지금 이 순간, 제가 아버지 다리를 주무르는 이 순간을 위해서 주어졌던 경험이었다고 느껴요. 지금까지 이 순간을 위해 열심히 달려온 것 같아요."

    진심이다. 

    열심히 살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그 모든 경험들은 나를 단련시켜주었고, 

    그 덕에 나의 오감, 판단력, 인내심, 사고력 등등을 사용하면서 계속 닥치는 여러 문제들을 긍정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다. 

     

    어르신들과 합쳐서 사는 게 아주 힘든 일처럼 이야기하고들 하는데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경우는 다르다.

    이게 내가 너무도 원했던 일이니까.

     

    17 년 전, 내가 젖먹이 딸아이를 안고 처음 쓴 글은 '소망'이란 타이틀이었다.

    나는 그 글에서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손을 잡아드리고 싶다'라고 썼다.

    그게 내 간절한 바람이었다. 첫 에세이로 쓸 만큼 나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옛날부터.

     

    그러나 그 이전, 즉 결혼 전에도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길 원했었다. 

    유학시절,. 나는 내가 독신으로 살 가능성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결혼해서 삶이 망가지느니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게 더 행복하겠다, 

    좋은 사람 만나면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고... 그러니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야지..."

     

    흥미롭게도 그때의 그런 마음을 담은 카드를 최근에 발견했다.

    파리에 있었을 때이니 아마 1992 년 무렵인 듯하다.

    (몽마르트르 근처에서 썼다면서 카드는 한국 카드인 게 좀 우스운데, 외국에서는 카드가 너무 비싸서 한국에 올 때마다 예쁜 한국 카드를 많이 사갔었다.)

    기존의 카드에 내가 검은색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려 넣었다.

    내가 꿈꾸는 미래의 집이란다.

    카드 앞면.

     

     

     

    카드를 열면 다음이 나온다.

    미래의 우리 집이라고 2000 년이라고 했는데, 아마 당시 나의 계획으로 박사과정 끝내고 한국 가면 2000 년 정도에는 왕성하게 활동할 것이라 계산했던 듯하다. 

    net.daum.android.tistoryapp_20160426143302_1_crop.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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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림 위에 적은 코멘트를 보면 나의 집에는 나와 부모님의 자리가 확실하다. 

    반면 남편의 자리는 아직은 없다. 

    카드에서 예견했던 2000 년에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나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한국에 계셨고 나는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느라 절절매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2016 년에, 나의 삶은 내가 20년 전에 그렸던 카드와 아주 비슷한 그림으로 그려지고 있다..

    나는 이층에 살고, 엄마 아버지는 나의 아래층에 계신다.

    카드에서의 부엌에서의 빈자리가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남편으로 채워졌다. 

    남편은 부엌일을 같이 하길 즐기고 아침저녁으로 부엌의 식탁에서 오래오래 신문 읽고 컴퓨터로 일을 한다. 

    카드에서처럼 요즘 우리 집은 꽃이 만발했고 (이것은 또 다른 스토리, 나중에) 

    나의 요즘의 마음은 하늘색과 분홍색을 많이 사용한 파스텔화 풍경처럼 밝고 즐겁기 그지없다.

    아버지와 엄마가 미국 우리 집에 주저앉게 만들어버린 사건-- '아버지의 실족'과 '골절'과 '당뇨의 악화' 한국으로 여행할 수 없음--등이

    나의 소망, 꿈이 이뤄지기 위하여 필요한 사건이라고 알기에 담담하고, (믿기지 않을지 모르나)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오래전부터 꾸어왔던 꿈은 계속 조금씩 조금씩 이뤄져 왔고, 이제 꿈과 비슷한 그림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산다는 게 참 재밌다.

    계속 진행되는 보물찾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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