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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저 할머니의 귀가
    창고 2011. 9. 23. 08:46
    진저의 할머니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셨습니다.

    죽음의 고비의 언니와 작별을 고하는 여행을 성공적으로 잘 마치고...

    앗, 그렇다면?
    할머니의 언니께서 돌아가셨는가?

    아뇨...

    할머니가 도착하신 뒤, 언니가 서서히 차도를 보이셨어요.

    그래서 체류 일정이 늘어났는데
    집걱정, 진저 걱정하시는 할머니께
    저는 '진저는 너무 잘 있으니까 걱정하시 마시고 언니 곁에 오래 계시고 싶으면 그러시라"
    할머니의 딸 쥬디도 할머니더러 "진저는 별 다섯 개 특급 호텔에서 사랑받고 있으니까 걱정말라'고
    할머니가 맘 편히 언니를 돌보시게, 여기 걱정 하지 않아도 되시게
    격려 전화를 드렸지요.

    어제 할머니를 찾아가 뵈었는데
    오랫만의 여행 후에도 지치신 기색 없으시고
    오히려 예전보다 더 밝고 건강하셨어요.

    "팜펨, 믿어지니? 이게 우리 언니야. 바로 몇 주 전에 죽을 거라고 했던 우리 언니가 살아났어!"

    할머니가 보여준 사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보세요.




    "어머머머!!! 할머니가 살아났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예쁘시다니?!! 와!!!"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할머니가 도착하시기 전에 돌아가시면 어떻게하나 걱정하면서 서둘러 가셨엇는데,
    떠나시기 전 날, 같이 기도하면서 저는 속으로 할머니가 언니의 죽음에 너무 상심하지 않으시게끔 하나님께서 지켜주십사....하고 기도했는데,
    그리고 어쩌면 할머니가 언니의 장레식까지 치르고 오실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예쁘게 웃고 계시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팜펨, 믿어지니? 우리 언니야. 우리 언니가 젊었을 때처럼 웃고 있어."

    "아, 할머니, 언니, 다 예쁘시네요!"

    "우리 언니, 지금은 이렇게 앉아 있지만 옛날, 젊어서 가정 심리치료 전문가로 이름 날렸었어. 참 멋있었는데...
    무척 똑똑하고, 유머센스 있고, 정력적으로 산 여성이야. 팜페미가 젊어서 만났다면 페미니스트라고 좋아했었을 거야."

    언니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서 자랑하던 할머니, 갑자기 눈이 촉촉해지십니다.

    "그런데...지금 저렇게 감금되어 있으니...우리 언니가 무슨 정신병이라도 걸렸다고. 기억력 좀 없어지고 말을 좀 더디게한다고
    정신병자 취급을 해? 우리 언니는 저 병동에 있을 필요가 없었어. 맨정신으로 저기에 갇혀 있으니 죽고 싶었을 거야."

    (아...그런 병원에 계셨구나....)

    자세히 여기에 쓰지는 않겠지만 언니께는 세 분의 자녀가 있고 다 성공적으로 잘 살지만 할머니를 돌보기는 커녕, 가끔 인사차 찾아와보지도 않는다고. 혼수상태라는 소식에도 안 왔었다고 할머니가 섭섭해하셨어요.

    "내가 허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해지기 전에는 내가 우리 언니랑 같이 살았었는데....지금이라도 나에게 경제적 능력이 있다면 나는 언니를 데려와 모시고 싶어. 우리 언니, 저렇게 외롭게 돌아가시게 두고 싶지 않아."

    할머니의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 할머니의 언니는 죽음을 청하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데요.
    처음에 중환자실에 도착해서 보니까 언니가 혼수상태였고, 할머니가 옆에서 언니께 말을 하니까
    언니게서는 말을 못 알아들으니 할 필요가 없다고들 했대요. 
    그러나 할머니는 언니의 손을 붙잡고 소리내어 기도하고 말을 시키고 계속 '언니, 사랑해, 언니, 사랑해" 라고 하셨나봐요.
    밤에 딸집에 가서 주무실 때를 빼놓고는 내내 언니의 침대 옆에서 언니를 지킨 할머니의 정성에 감동했는지
    언니가 잡고 있는 할머니 손에 꾹 힘을 주어 인사를 하고,
    며칠 후에는 눈을 뜨고,
    또 며칠 후에는 간단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간호사들이 다 놀라고, 할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요.

    할머니는 언니가 알아 듣던지 못 알아듣던지 상관하지 않고 계속 말을 시켰어요.
    어느 날,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 언니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셨데요.

    그래서,

    "언니, 언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하고 물었더니 언니가 할머니를 빤히 쳐다보시면서,

    "글쎄....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봐야겠어" 라고 하셨데요.

    아주 또렷한 목소리로.

    할머니는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팜펨, 우리 언니는 정신이 말짱해. 말도 알아 듣고 반응하고...그런 언니를 왜 정신병자 취극하고 병원에 감금한 거지?"

    어느 날은 언니한테 "언니, 내 이름이 뭐야?" 하고 물었대요.

    그랬더니 언니께서 잠시 생각하시더니 "바바라 루터"라고 대답하셨다고.

    할머니는,

    "팜펨! 우리 언니가 내 이름을 맞혔어. 우리 언니는 연습하면 다 기억할 수 있고, 정상적으로 말할 수 있어.
    그렇게 버려두지만 않았다면 언니는 그래도 좀 더 오래 정상적으로 살 수 있었을텐데..."

    아쉬워하셨어요.

    동생의 이름을 기억했다는 사실을 펄쩍 뛰면서 좋아할 상황인 게 바로 그 언니의 심각한 상태를 말해주는 것이련만
    할머니는 99 퍼센트의 암담함보다는 1 퍼센트의 밝은 소식에 촛점을 맞추고, 그것을 진정으로 축하하고 감사하시는 듯했어요. 모성애 같은 그런 감정을 언니께 느끼시고 있는 거겠지요.

    "팜펨, 우리 언니가 깨어난 뒤에 나는 언니께 많은 찬송을 불러줬어. 언니는 기억하는 노래는 따라하고
    아니면 내가 부를 때 경청했어. 언니는 내가 노래하는 걸 보고 아주 많이 기뻐하셨어."

    "네, 그러셨을 거에요. 언니께서는 할머니가 옆에 계시는 것만해도 큰 기운을 얻으셨을 거에요."


    두 분이 손을 잡고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하고 (주로 할머니가 언니께 들려들리시는 것이지만)
    같이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언니는 말을 많이 못해도 얼굴에 미소와 웃음으로 동생을 기쁘게 해줬습니다.

    언니가 서서히 회복되면서 할머니가 떠나야할 시간도 가까워졌습니다.

    떠나기 전,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언니를 찾아갔습니다.

    갓난 아이들이 품에 담요를 안고 입으로 빨듯이 손에 뭔가를 계속 잡으려고 하는 버릇이 있는 언니께 감촉이 부드러운 인형을 사들고...

    언니에게 인형을 쥐어주고는 말하셨답니다.

    "언니, 언니를 이렇게 만나서 너무 행복했어. 언니와 손잡고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
    언니, 이제까지 언니는 착하게 열심히 잘 살았어. 이제...."

    (저에게 그 말을 그대로 전해주시던 할머니는 이 대목에서 약간 울컥...하셨습니다.)

    "이제, 언니, 이 세상을 떠나고 싶으면 떠나도 되. 마음 아파하지 말고, 아무런 후회 갖지 말고, 언니, 하나님 나라로 떠나도 되.
    우리 거기서 또 만나자."

    할머니가 울먹거리면서 말을 더 잇지 못하자 인형을 안고 있던 언니께서 손을 뻗어
    할머니의 두 뺨을 양 손을 부드럽게 안았습니다.

    아기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안듯이...

    할머니는 자신의 뺨을 안은 언니의 손을 두 손으로 붙들고, 언니의 눈을 쳐다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언니, 사랑해."

    저는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삶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 삶을 작별하는 그 모습이.
    관계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 미리 죽음의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슬프고 아름다와서...


    (할머니가 말씀을 참 아름답게 하셔요.
    그 말씀을 그대로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할머니가 사다준 인형을 꼭 안고 계시는 언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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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는 저에게 고동색 드레스를 선물로 사오셨습니다.
    그러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꼭 그러고 싶으셨나봐요.
    감사하게 받았어요.

    할머니께서 진저를 봐준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저는 절대로 상상하지 못할 거라고.
    자신이 온전히 언니에게 집중해서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저 걱정을 하지 않아서이라고...

    100 번 정도 말씀하셨는데,
    저는 할머니 언니의 사진을 보면서
    할머니의 사랑으로
    언니께서 인생의 마지막 나날을 아름답게 정리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가 다 함께 해서 선을 이뤘구나...감사했지요.

    우리집에서 여왕 노릇을 하는 진저의 무용담을 들려드리고...
    많이 웃었습니다.

    행복한 오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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