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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침묵할 이야기카테고리 없음 2024. 11. 6. 07:11
딸아이의 출장지에 와있다.
딸을 보기 위해 온 것이 첫 번째 이유지만, 이 여행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지난 3년간 써온 '어머니의 북한 이야기'를 마침내 완성했기에, "팜펨아, 너도 좀 쉬고 와라"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떠난 여행이기도 하다.
딸은 바쁜 일정 속에서 아침과 저녁 식사만 함께할 수 있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조용히 나를 축하하고 있다.
영원히 공개되지 못할, 영원히 침묵할 ‘엄마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는 사실을...
“엄마의 이야기”
블로그에 가끔 언급했던 '엄마의 이야기'는 엄마가 암 진단을 받으시면서 시작되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시면 북한 고향의 이야기, 유년기와 청년기의 추억이 영원히 사라질 거란 생각에 엄마를 인터뷰하며 기록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놀라운 기억력으로 생생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처음 듣는 이야기는 물론,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들도 서로 맞물리며 새로운 의미를 띠었다.
한 인간으로서의 엄마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역사책으로만 배웠던 한국의 역사가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이야기하기를 꺼리셨다.
딸의 부탁이라 마지못해 들려주시는 듯했다.
때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라고 하셨다.
너무 아픈 기억이라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심리적 치유를 경험해본 터라, 글이 완성되면 엄마에게도 일종의 해방감이 찾아올 거라 기대하며 글을 이어갔다.
글은 쉽게 써지지 않았다.
엄마는 암이라는 중병을 앓고 계시고 거기에 더해 노년의 병치레가 잦았다.
평소 병약한 내가 암진단을 받은 뒤로는 우리가 맘 편히 앉아 옛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찾기 어려웠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일이 녹록지 않았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갔다.
글이 거의 완성되어갈 무렵, 블로그에 영어로 올릴 생각을 하며 엄마께 의견을 여쭈었다.
엄마는 거부하셨다.
"난 옛날 이야기를 남이 아는 거 싫어. 너무 고통스러웠던 기억이야.“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의 삶은 고통으로 점철되었지만 결국은 아름다운 성공 이야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설득도 해보았다.
"엄마, 지금은 행복하시잖아요. 잘 살아오신 거잖아요.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하지만 엄마에게 과거는 여전히 아픔으로 남아있었다. 그저 덮어두고 싶은 기억이었다.
엄마와 대화를 나누면셔 깊이 생각해보니 중요한 건 내가 바라본 엄마의 삶이 아니라,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엄마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원하신 침묵을 지켜드리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영원히 침묵할 글.
그렇다면 이 글을 써야하는 건가?
개인적 일기도 아닌, 그 누구도 읽지 못할 글을 쓰면서 그 글쓰기 작업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물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글을 썼다.
올해 들어서 글의 막바지 작업을 하면서는 오직 '끝맺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몇 주 전 책의 마지막 에세이를 교정을 보던 중 갑자기 깨달음이 왔다.
이 글의 목적은 단 하나, '내가 엄마를 이해하는 것'이었구나!
그 순간 깊은 만족감이 몰려왔다.
그래,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깊고 묵직한 침묵 속에서 엄마의 아픔과 지난 삶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 그거면 되었다.
딸로서 엄마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이해하고 엄마가 원하신 침묵을 지켜드리고자 하는 나의 선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엄마의 이야기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공유되지 않더라도 그 아름다움은 변함없다.
마치 아무도 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서 홀로 찬란히 피었다 지는 선인장 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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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 날씨가 축축하다. 오랜만에 우비를 걸쳤다.
말차 향 가득한 조용한 카페에 앉아 작은 행복감에 미소 짓는다.
아무도 읽지 못할 글을 완성한 나만의 성취를 홀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