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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랜만의 인사
    카테고리 없음 2024. 10. 9. 21:38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저의 블로그 벗님들이 모두 안녕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래 닫혀있던 블로그를 찾아주시고, 개인적으로 또는 댓글로 따뜻한 안부 인사와 격려를 전해주신 벗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희 식구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기쁘게도 엄마의 암 치료가 지난 1년간 성공적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암이 아닌 다른 크고 작은 병환으로 많이 놀라고 두려웠던 적도 있었지만, 90세 암환자임을 고려하면 전체적으로 아주 양호한 상태이십니다.

    저 역시 작년 말에 암 검사를 철저히 받고 간 전문의를 바꾸었습니다. 새로운 의사가 권고한 다이어트와 운동을 철저히 해서 지난 6월, 세 번째 MRI 검사에서 아주 좋은 결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하는 법, 12월에 다시 MRI를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제발... 제발... 지금 상태가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지요.

    근 1년간 블로그를 쉬었는데요. 제가 암 진단을 받자마자 엄마의 치료와 제 치료를 병행하면서 많이 바쁘기도 하고, 마음도 복잡해서 글을 쓸 여유가 전혀 없었어요. 글을 쓰려고 하면 여러 쓰잘데없는 생각이 떠오르고 ---상상력이 풍부한 게 독!--- 그래서 저를 제 생각과 상상에서 보호하기 위해 글쓰기를 삼가야 했지요. 

    병원 예약이나 확인을 위한 경우가 아니면 전화기도 며칠에 한 번씩 확인하며 조용한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리고 가끔 마음이 내킬 때마다 제 방의 벽 한 면에 그림을 그리곤 했지요. (이 이야기는 나중에.)

    2024년도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네요. 작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1년간 엄마와 저의 성공적 투병 말고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이 있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많이 웃었고(웃음과 기쁨은 선택!),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죽은 다음에 우리 식구는 어떻게 하나?'라는 고민도 많았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음. 아주 흥미롭고 긍정적인 경험, 암 진단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함)

    기도도 많이 하고, 가고 싶은 콘서트들은 가고, 제가 사랑하는 이웃들 돌보는 일도 계속했습니다. 부엌에 머무는 시간은 많아졌으나 여전히 요리 실력은 안 늘고 사고는 많이 쳐서 남편과 엄마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고... 아이들은 가끔 와서 에너지를 부어 넣어주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끔 만나서 서로 용기를 주고받고.... 그렇게 살았어요. 몇 가지 중요한 이정표와 같은 일들과 소소한 반복적 일상이 함께 어우러지는 삶이었네요. 

    몇 가지 중요한 이정표를 떠올려보자면.

    남편이 올해 초 환갑이 되었어요. 남편 생일은 제가 새 의사를 만나기 전, 저의 앞으로의 치료 방향이 완전히 잡히지 않았을 때라 약간 불안했을 때였어요.  앞으로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보니 생일이란 건 정말 너무도 아름답고 소중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9 년 전 어느 날, 한눈에 반한 저에게 낚아채여 결혼을 한 뒤에 고생을 많이 한 남편에게 좀 잘해주고 싶어서 아주 작게나마 -- 가족들만 모여서 -- 즐거운 생일잔치를 했습니다.

    큰 선물 상자는 장식용. 속은 텅텅 비어있어요^^
    남편이 좋아하는 사이클링, 삼종경기의 여러 기념품과 사진으로 장식했어요

     
    올해의 중요한 사건 중 또 하나는 남편이 일하는 회사에서 사무실을 정리한 것입니다. 회사가 오프라인 근무를 줄이고 직원들이 가끔 세미나실에서 만나는 체제로 바뀌면서 개인 사무실들을 모두 없앴습니다. 퇴직은 아니지만 사무실을 완전히 비우는 것이라 퇴직 연습을 미리 하는 기분이었어요. 남편도 퇴직을 고려해야할 시기가 와서 더더욱...

    미래의 어느 남편이 진짜로 은퇴할 때는 사무실을 비울 일 없이, 즉 눈에 보이는 변화 없이 그저 '다음 달부터 월급 없음'으로 은퇴를 실감하게 되겠지요. 그래서 남편이 사무실을 정리하는 날, 아이들을 불러 아빠를 돕게 했습니다. 항상 건강하고 든든하게 서 있던 아빠도 늙었으며, 이제 노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체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였어요.

    남편의 사무실 신발을 보는 순간 뭉클해지더군요. 1995년 브뤼셀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때 산 신발입니다. 여러 번 수선해서--한국에서도 수선한 적도 있음-- 지금까지 긴 시간을 함께한 신발이에요. 남편과 시부모님 댁 근처 쇼핑몰에서 이 신발을 사던 때의 기억이 생생한데... 신발은 이토록 낡았고, 젊었던 우리도 노쇠해져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얼굴에 주름이 깊이 파이게 되었네요.

    남편이 사랑하는 낮잠용 리클라이너. 이걸 운송하려고 트럭을 렌트했답니다.
    든든한 일꾼들.
    사무실 닫는 역사적 순간...



    올해 어머니께서 구순을 맞으셨습니다. 교회 식구들과 함께 조촐하게 구순 잔치를 열었습니다.

    원래 어머니께서 번거로운 생일잔치는 하지 말라고 하셔서 저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 자매들이 "다른 생일도 아니고 구순인데, 이건 그냥 지나가면 안 되요. 함께 축하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입니다"라고 한 말에 마음이 움직였어요. 음식은 제가 주문하고, 장식은 교회 자매님들이 도와주셔서 간단하면서도 풍성하고 즐거운 생일 잔치를 했습니다. 

    어머니가 직접 만드신 모시 드레스.

    어머니의 90년 삶을 사진 몇 장으로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굵직한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의미 있는 사진들을 골라 정리해 보았습니다.  교회에서는 어머니를 '권사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교회식구들과 어머니가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 것같아요. 

    이 사진을 찍을 무렵, 저는 눈물 범벅이었어요. ㅠ 감사해서..

     

    올해는 정말 잊지 못할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지금까지 남편과 함께한 여행 중 최고였어요! 아일랜드!

    6 월 말, 의사를 만나 결과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 다음날 여행을 떠났었어요. 그래서 더더욱 행복했었을지도 모르지요.

    전 아일랜드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습니다. 앞으로 매년 휴가 때마다 다른 곳에 갈 필요 없이 아일랜드만 계속---이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남편의 마음은 제 만큼은 아닌 것 같지만요... ㅠㅠ)

     
    작년 이맘때부터 지금까지, 제게 가장 중요한 변화는 단연 '교회'입니다. 어머니와 에릭과 함께 저희 집에서 5분 거리의 작은 한인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심한 교회 알레르기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못마땅한 것만 보이고 설교를 들으면 불만만 쌓이는 그런 증상 때문에 오랫동안 교회를 정하지 않고 살아왔어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사막에 집을 산 것도 교회보다는 개인적인 구도의 길을 선택하는 한 방법이었죠.

    그런데 왜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가..

    평생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을 지켜오신 어머니의 영향이 컸어요. (그럼에도 저에게 '교회 나가라'는 말씀은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답니다. 교회에 대한 이야기도 언젠가 글로 써볼 생각입니다.)

    그런 '교회파'로 신실한 신앙인이신 어머니를 위해 교회를 나가려고 했지만, 이곳에 교회는 아주 많이 있음에도 한국어를 못하는 남편과 함께 다닐 수 있는 교회를 찾기 어려웠어요. 영어 예배가 있는 교회들이 없진 않지만, 남편더러 혼자 들어가라고 할 수도 없고, 반대로 제가 남편과 영어 예배를 듣고 어머니만 한국어 예배를 혼자 듣게 할 수도 없어서... 결국 흐지부지 교회를 안 다니고 있었죠. 온라인 예배는 꼭 드리긴 했어요. 그런데 마치 배달음식 메뉴 고르듯이 목사님들 설교를 입맛에 맞춰 고르는 게 과연 예배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가 처음으로 그리워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전에 한 번 가보고 다시 가보고 싶었던 교회에 가보았어요.

    놀랍게도 이 교회에서는 첫날부터 지금까지 제 고질적인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지 않네요. 처음 간 날, 이 교회를 제 교회로 삼겠다고 작정했고, 지금까지 난생처음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몸도 편해지고, 마음도 많이 안정되어 갔지만 블로그를 다시 열지는 못했어요.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였죠.

    바로 엄마의 시민권 시험/인터뷰 준비 때문이었답니다!

    거의 1년 동안 엄마의 시민권 시험 준비를 했습니다. 아주 열심히 했고, 지난 3개월간은 매우 집중적으로 엄마와 매일매일 공부했습니다. 입시 준비생이 하고 싶은 것 억제하면서 공부하듯, 목이 쉴 정도로 공부하고 연습하고 밤에 녹초가 되어 잠자리에 들곤 했지요.

    어머니도 공부에 지쳐 병이 나셨고, 저 역시 피곤으로 입이 몇 번 부르터서 아직도 입에 상처가 남아 있어요. 거울을 볼 때마다 엄마 시민권을 따면서 받은 훈장 같아 뿌듯합니다.

    엄마의 시민권 시험 이야기는 다음에 써보겠습니다.

    참 오랜만에 한국어로 글을 쓰니 어색하고 어렵네요. 하지만 즐겁기도 합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소식 나누며 지내겠습니다. 

    much love to you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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