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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세 노모의 미국 시민권 도전기카테고리 없음 2024. 10. 16. 04:14
미국에서 영주권을 받은 지 5년이 지나면 누구나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어머니는 영주권을 받으신 지 8년이 되었지만, 코로나와 심장 페이스메이커 시술, 그리고 얼마 후 시작된 암 투병으로 인해 시민권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으셨다. 사실, 노령에 암 투병 중인 어머니께 스트레스를 드리고 싶지 않아 아예 시민권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다 작년 말 내가 암 진단을 받은 후 생각이 바뀌었다. 어머니의 암 치료는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내 치료 전망이 불투명했기에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어머니는 어떻게 하실까?' 하는 고민이 커졌다.
만약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았다. 어머니가 외국인 사위와 단둘이 살면서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이다. 언니가 다른 주에 살고 있지만, 노년에 주거지를 옮기시는 것은 위험했다. 더구나 언니네 동네의 의료 시스템은 캘리포니아에 비해 많이 낙후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캘리포니아에 계시는 게 안전하다는 결론이 났고, 어머니의 성격상 요양원에 들어가시는 것을 떳떳해하실 것 같았다.
남편의 성격과 품성을 고려할 때 내가 없더라도 그가 어머니를 도와드리리라 생각했지만, 자식을 포함해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질색하시는 어머니의 자존감을 위해서는 어머니께 재정적 능력이 있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런데 요양원은 엄청 비싸다. 어머니가 현재 갖고 계신 재산이 바닥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었다. 현재의 지출을 줄이고 사회복지 혜택을 받으실 수 있게 하려면 시민권 획득이 필수였다.
시민권을 따기로 한 일차적 이유가 '내가 어머니보다 먼저 죽을지도 모르니까'였으니, 초반 시민권 시험 준비를 하면서 약간 슬픈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어머니도 나도 슬픈 감정은 잊어버리게 되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지 먼 훗날 산불이 날 건가 말 건가 따지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어머니는 열심히 공부하셨고, 나는 어머니의 공부를 열심히 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도 나도 뭔가 붙들고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게 큰 복이었다.
시민권 시험 준비
시민권 시험공부를 하면서 어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으셨다. 새벽과 밤에 하는 기도, 아침저녁으로 하는 운동, 호수 산책에 공부시간을 더해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다 열심히 하셨다. 하루의 대부분을 공부하는 데 쏟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러나 공부가 너무 어려웠다. 그 이유는 시민권 시험이 근본적으로 영어 시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민권 인터뷰는 대략 세 부분으로 나뉜다:
1. '영어 시험' (읽기, 받아쓰기): 주어진 단어 리스트들을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2. Civics test (시민사회 시험): 미국 정부 시스템, 민주주의 기본 원칙, 권리와 책임, 역사, 지리, 상징과 공휴일 등 미국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한 100개의 예상 문제가 주어지고 그것을 달달 외워야 한다. 10개의 문제가 주어지고 그중 6개 이상 맞춰야 한다.
3. 시민권 신청서의 내용을 확인하는 면담: 이름, 출생지, 국적, 주소, 여행 여부, 여행 기간, 범법 여부 확인, 미국에의 충성 맹세 여부 확인.
이 모든 과정은 시험관과 일대일로 마주 앉아서 대화를 하면서 진행되는 구두 시험이다. 그러니 영어 회화 시험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시민권 인터뷰의 목적 중 하나는 신청자의 기본 영어 회화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영어는 평생의 숙적이었다.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패배의식을 갖고 계셨다. 더군다나 최근 한쪽 귀의 청력 상실 때문에 한국어도 잘 못 들으실 때가 잦아지고 있었는데, 영어 인터뷰라니...
90세 노인, 귀가 잘 안 들리고 영어를 잘 못하는 분께는 통역을 쓸 수 있게 해주거나 아예 시험을 면제해 주지 않을까 했지만, 아니었다. 영어 시험 면제 자격이 주어지는 사람은 '영주권을 받은 지 20년 이상이 된 50세 이상의 영주권자' 혹은 '영주권을 받은 지 15년 이상이 된 55세 이상의 영주권자'들로서 100문제 역사/정부/지리/사회 시험과 서류 심사에도 통역을 동반해서 모국어로 대답할 자격이 주어진다. 영주권 취득한 지 20년 이상 되는 65세 이상의 영주권자는 시험 범위가 대폭 축소되어 별도의 20문제만 공부하면 된다.
그 외는 - 90세 할머니도! - 직접 인터뷰를 해야 한다.
'아니, 90세 할머니한테는 쉬운 문제를 주겠지... 설마 어려운 문제를 주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아마도 그러할 거라 추측하지만, 인터뷰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80대 노인들이 시험에 떨어져서 재시험을 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노인이니까 좀 봐주겠지...는 나의 바람일 따름, 어머니는 어떤 상황에서도 답을 할 수 있게 준비를 해야 했다.
다행히 어머니께는 공부를 열심히 하시라고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너무도 열심히 공부하셔서 걱정될 지경이었다. 1: 영어시험은 주어진 단어 리스트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니, 엄마께는 쉬운 과목. 2: Civis test은 훨씬 더 어려웠다. 시험관이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현재 미국 대통령 이름은?' '미국 초대 대통령 이름은?'처럼 쉬운 문제를 줄 것이라고 바라고 믿었지만 여하간 시험준비는 해야 하니까 무조건 공부하셨다. 어머니가 공부한 단어들의 백분의 1 정도만 소개하자면...
federal government, the Constitution, judicial branch, declare the war, amendments, separation of powers, political party, governor, the Supreme Court, Civil War, slavery, Declaration of Independence, civil rights,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Commander in Chief, Great Depression, Atlantic Ocean, capitalist economy, racial discrimination, income tax, Pledge of Allegiance......
이런 단어들이 나오는 문제들 척척 대답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노력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 여하간 어머니는 2: Civics test의 백문제를 다 알아듣고 대답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시민권 시험
긴장 속에서 시험을 치르러 갔다. 어머니는 다행히 100문제 중 6개를 성공적으로 답하셨고, 받아쓰기, 읽기도 무리 없이 통과하셨다.
그러나 염려했던 서류 심사 (3)를 패스하지 못하셨다.
서류심사 인터뷰는 시험관이 이미 제출된 시민권 신청서 (n-400 form)를 신청자와 함께 검토하는 과정인데, 이름, 출생지, 국적, 현주소, 가족관계, 여행 여부, 선거, 세금, 범법 여부를 다 확인한 뒤에 맨 마지막에 미국에 충성을 맹세하겠냐는 '스토리'로 이어진다.
이 서류심사가 어려운 이유는 시험관이 질문의 문장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거나 신청서에 적혀있지 않은 질문을 할 수도 있어서였다. 예를 들어, 인터뷰 맨 처음, 신청자는 진실을 말하겠다는 맹세를 하고서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어 있는데... 신청자가 맹세를 하고 앉자마자 시험관이 '당신 지금 방금 뭐라고 선서했지요?' '당신은 '맹세'라는 단어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이 지금 여기에 와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라는 식의 질문을 할 수 있다. 이혼한 사람의 경우에는 전 배우자가 어디에 사는지, 자녀가 있는지, 위자료를 지불하고 있는지를 묻는 식.... 사람마다 다 다른 경력과 백그라운드를 갖고 신청을 하는 것이고, 시험관은 거기에 맞는 개인적 질문을 하는 것... 그러다 보니 신청서에는 적혀있지 않는, 예상치 않은 문장의 질문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시험 후, 어머니를 모시고 나온 시험관은 나에게 합격 보류 소식을 통고해 주면서 '어머니가 쓰고 읽기는 잘하시고, Civics test 통과하셨으나, 일상 대화를 하실 수 있음을 증명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재심사 기회를 주겠노라, 재심사 시에는 서류 인터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새 인터뷰 날짜는 6개월 이내로 이민국에서 통보해 주기로 되어 있으며, 그 시험을 패스하지 못하면, 다시 서류 전형비를 전액 내면서 신청서를 다시 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집에 오자마자 다시 열심히 공부를 시작했다. 시민권 시험의 반은 이미 통과된 셈, 이제 서류 심사만 준비하면 되니까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그러나 여전히 서류 심사 준비는 어려웠다. 갑자기 리스닝 실력이나 스피킹 실력이 성장하는 게 아니므로... 어머니와 나는 제발 재심사공부할 시간을 벌게 재심사 날짜가 늦게 잡히기를 바랐다.재시험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많이 지쳤다. 공부가 진전이 없는 것같이 느껴질 때가 가장 힘들었다. 어머니는 2 월에 코로나를 한 번 앓으셨는데, 그 이후에 기억력이 급격히 감퇴해서 바로 어제 외운 문장을 잊으시는 것은 비일비재했고, 방금 대답한 질문을 다시 물으면 대답을 못하시는 일도 잦았다. '나는 왜 기억을 못 하지? 바로 좀 전에 알았었는데...' 하실 때마다 나 역시 두려움과 걱정이 들곤 했다. 과연 어머니가 이 시험을 통과하실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질 때도 많았다. 밤에 어머니와 공부하다 지쳐서 무거운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기운을 내 열심히 공부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또한 어머니가 아무리 공부를 해도 안 되는 부분이 확실히 있었다. 예를 들어, 어머니는 신청서의 문제와 답을 다 외우셨는데, 시험관이 신청서에 적힌 대로 물어보지 않고, 더 쉬운 문장으로 바꿔서 질문을 하면 알아듣지를 못하셨다.
예를 들어, 신청서에 적혀있는 대로 'What's your height?'라고 물으면 키를 정확히 대답하시지만, 그보다 훨씬 더 쉬운 문장인 'How tall are you?'라고 물을 때는 답을 못하시거나, 'What's your marital status?' 하면 'I'm widowed'라고 대답을 하실 수 있는데, 그보다 더 간단한 문장의 질문('Are you currently married?')에는 대답을 못하셨다. "If the law requires it"이란 문장은 이해하셔도, 그것보다 훨씬 더 쉬운 문장 'if necessary'란 문장은 이해하지 못해 답을 못하셨다. 이 모든 게 다 기초적 영어를 쓰고 살지 않은 데서 일어나는 일...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만든 방법: 어머니는 열심히 공부해서 외우시는 것은 잘하시니까, 모든 시험 문제들을 여러 문장으로 변형해서 그 모든 문장들을 달달 외우시게 하는 것이었다. (외국어 공부할 때, '자기가 말할 수 있는 문장은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원리에 입각해서.)
마지막 두어 달은 유튜브에 있는 모의시험 문제 영상들을 여러 개 선택해서, 30여 분의 영상의 대사 하나하나를 다 필사하고 출력해서 그걸 교재 삼아 열심히 공부를 한 뒤, 영상과 비교해 보면서 리스닝 실력을 키우시려고 노력했다. 어머니도 나도 몸져누우기 여러 번. 나는 입술이 두 번 터졌고, 입에 상흔이 남았다. 어머니는 아파 누우신 상태에서도 공부를 하셨다. 그걸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어느 날 어머니는 "기본 영어도 못하면서 이런 어려운 공부를 하는 건 이도 안 났는데 콩밥을 먹는 거나 다를 바 없네"라고 한숨 쉬셨다.그때 내가 보여준 사진, 그것은 아직 한 살도 안 된 혜지 언니의 손자가 이빨도 없는 상태에서 여유 있게 스테이크를 뜯는 사진이었다.
"엄마, 봐요! 이빨 없어도 고기를 먹을 수 있어요!"
어머니는 아가의 사진을 보고 박장대소하셨다. 우리는 그 후에도 '이 없이도 스테이크 먹을 수 있는 거야', '이빨 없어도 콩 먹을 수 있어' '영어 못해도 어려운 거 다 해낼 수 있어'라고 상기하면서 웃음을 회복하고 공부를 계속하곤 했다.시민권 재시험
9월 15일, 시민권 재시험 날이 되었다. 아침에도 어머니와 공부를 했다. 어머니께 시험 문제에는 없지만 질문 가능성이 있는 주제 몇 개를 다시 숙지시켜 드렸다.
"엄마, 분명 엄마가 누구랑 사냐고 질문을 할 거예요. 90세 할머니가 허리도 꼿꼿하고, 당당하니까, 이 할머니는 어떻게 자기 관리를 저렇게 잘하는 건가 궁금해서 혼자 사는지, 누구랑 함께 사는지 알려고 할 거예요.""그리고 엄마의 출생지가 북한이니까 엄마한테 언제 남한으로 내려왔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어요. 공산주의에 대한 질문을 할 수도 있고요..."
(실제로 시험관이 이 질문을 똑같이 했다고 함. Yay!!)
아침 11시, 남편과 어머니를 모시고 시험장에 갔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나는 긴장해서 손이 차가워졌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주 담담한 표정이었다.
"떨어지면 떨어지는 거지. 다시 시험 볼 거야. 이렇게 공부할 기회가 감사하지"라고 하신다. 시험을 떨어지신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마음밭이 훼손되지는 않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놓였다.
시험관이 어머니의 이름을 호명했다. 눈이 크고 날씬한, 차가운 표정의 동양 여인. 기죽게 만드는 카리스마... 그녀가 어머니를 자기 사무실로 안내해간 뒤에 나는 걱정에 휩싸였다. 시험관이 얼굴처럼 성격이 차갑고, 깐깐해서 어머니에게 어려운 문제를 주면 어떻게 하지?
어머니는 들어가서 20여 분이 지났는데도 나오지 않으셨다. 점점 초조해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이것은 좋은 징조야. 20분 넘게 어머니가 많은 질문들을 다 답하고 있는 거니까"라고 했다.
25분 가까이 되어 어머니와 시험관이 대기실을 향해서 오는 게 보였다. 흥분해서 달려가니 시험관이 나에게 활짝 웃으며 (차가운 사람이 아니었다!!) "통과하셨습니다"라고 기쁜 소식을 전해주며 2층으로 올라가 선서식을 하라고 한다.
의아했다. 시민권 시험을 통과한 뒤에는 선서식 장소와 날짜는 우편으로 통보되는데 당장 선서식을 하라니?
지정된 곳으로 가보니 임시 선서식장이 있었다. 원래 시니어들은 그 자리에서 선서식을 하게 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팬데믹 이후에 시니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선서를 당일에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모두 친절한 얼굴로 어머니의 시민권 취득을 축하해 주었다.
그 자리에서 할 수 있게 해주어 어머니의 시민권 취득 여정이 당장 마무리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신났다.
어머니는 세 명의 어르신들과 함께 선서식을 했고, 귀화 증명서를 그 자리에서 받았다. 당장 어머니는 미국 여권 신청을 하실 수 있고, 선거인 등록도 할 수 있단다.우리는 시민권자 어머니와 사진 몇 장을 찍고 밖으로 나왔다.
다시는 여기 올 일이 없구나!!! 길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시민권자 어머니와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근 1년의 여정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축하했다.
마치며
90세의 나이에 시민권을 취득하신 어머니의 여정은 어머니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큰 도전이자 축복이었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어머니의 당당함, 끈기와 의지, 긍정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도 까마득한 공부, 그걸 붙들고 하루 종일 공부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안쓰러워했더니 어머니는
"나는 이렇게 공부하는 게 즐거워. 내가 모르는 거 알게 되니까 재밌다. 내가 이 나이에 아무것도 안 하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너랑 에릭한테 감사하지" 라고 하셨다.
공부가 아무리 힘들어도 그걸 축복으로 느끼시고, 내내 긍정적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도 힘이 났다.
남편은 어머니와 내가 큰 소리로 외치면서 (어머니 청력때문에 ㅠ) 공부하는 소리를 매일매일 듣다보니 시민권 문제들 일부를 외우게 되었다. 아무리봐도 어머니가 힘들어보이시고 나도 진이 축 빠진 것같으니 걱정이 되는지, 그는 어머니가 통역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의사의 진단서를 받으면 되지 않겠냐 궁리하더니만 급기야는
"그럼 당장 휠체어를 사자. 당신이 휠체어에 탄 어머니 모시고 들어갈 수 있을 거고, 시험관이 이 늙고 연약한 90세 할머니한테 좀 쉬운 문제를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모르지 않냐"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런 동정은 받고 싶지 않다고 거절하셨다. 본인이 할 수 있는 한 다 해보고 떨어지면 떨어지는 거다라고 하셨다.
어머니도 나도 고생을 많이 했지만 어머니가 당당하게 시험을 통과하신 것은 두고두고 우리에게 용기를 줄 고무적인 사건이다.
어머니의 시민권 취득은 단순히 법적 지위의 변화를 넘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이제 어머니는 영어에 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앞으로 여생을 살기로 선택한 미국이란 땅에 좀 더 소속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의 시민권 취득은 손자 손녀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쉽게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 실력을 쌓아가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머니가 90의 연세에 '옛날의 무용담' ' 과거의 사건'의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현재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 젊은 손자 손녀에게 영감과 자극을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노년의 입구를 성큼 들어선 나와 남편은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며,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어렵게 보이고, 불가능하게조차 보이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의 예를 실제로 목격하면서 삶에 대한 자신감이 한층 더 단단해지는 것을 느낀다.
시민권을 받은 날 밤, 늦은 시간임에도 어머니 방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살며시 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 계셨다. 그런데 가슴에 영어 문법책을 꼭 껴안은 채 깊이 잠들어 계셨다. 그 모습에서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배움에 대한 열정, 공부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어머니의 의지, 그리고 그 기회 자체를 축복으로 여기시는 어머니의 마음가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조용히 책을 옆으로 치워드리며 결심했다. '앞으로 어머니께 영어를 더 잘 가르쳐 드려야겠다. 어머니의 이 열정에 보답하고 싶다.'
방을 나서며 불을 끄는 순간, 어둠 속에서 어머니의 잔잔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오늘의 성취와 앞으로의 약속이 담긴 것 같았다.앞으로 어머니와 함께 다시금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