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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의 기도
    카테고리 없음 2023. 11. 5. 01:46




    엄마의 암이 자랐고 수술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온 뒤 병원에서 시술 날짜를 잡아 주었다.
    10 월 23 일.
    하필이면 아버지의 기일.
    또한 그날은 엘에이로 전근을 온 딸이 첫 출근을 하는 날이다.
    여러모로 묵직한 의미가 있는 날이다.

     
    성묘
     
    엄마 시술 전 날, 딸과 아버지 묘소에 다녀왔다.
    엄마는 몸이 불편하셔서 집에서 쉬셨다.




    나는 매번 성묘 갈 때마다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물건이라던가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것을 들고 간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각별히 사랑했던 시인 죤 키이츠의 시 포스터와 키이츠의 얼굴이 실린 엽서를 들고 갔다.

    포스터는 1991 년의 런던 여행의 추억이 서린 귀중품.
    파리 유학 중이던 나를 보러 오신 부모님을 모시고 영국 여행을 했을 때 우리는 런던 치하철 내부에 주옥같은 영시/명시들이 게시된 것을 보고 적지 않아 놀랐었다. (공공장소에서 시를 소개하는 획기적인 실험이었는데 대중에게 시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영시를 가르친 아버지에게는 지하철을 타는 게 마치 어린아이가 사탕 가게를 들어가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었고, 그래서 런던 여행이 한층 즐거웠었다.

    런던대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나의 친구 P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아버지가 런던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시라면서 몇 달 뒤 런던 지하철 영시 포스터를 아버지께 보내주었고 아버지는 그 포스터를 아주 소중히 보관하셨다. 나중에 부모님의 집을 정리할 때 나는 포스터를 돌돌 말아서 미국으로 갖고 와서 내 설합에 보관해 왔었다.
     
    꽃을 화병에 꽂고, 포스터를 펴 놓은 뒤, 초를 켰다.

    “랄라야, 할아버지께 시를 읽어드리련. 할아버지가 좋아하실 거야."

    랄라가 시를 읽었다. 허허허 웃으시며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니 곤한 마음에 위로가 왔다.
    랄라와 손을 잡고 기도드렸다.
     
    특별히 다음날 엄마의 시술을 놓고 기도했다.
    안전하게 지켜주시어서 우리가 지금 누리는 가족의 행복을 더 오래 누릴 수 있게 허용해 주십사 기도드렸다.


     
     
     
    엄마의 시술

    다음 날, 엄마의 시술을 위해 남편이 운전해서 엘에이로 향했다.

    시간 여유를 두고 일찍 떠났지만 엘에이 근처 프리웨이에서의 사고로 인한 교통 체증으로 병원에는 간신히 제시간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수술/시술 환자 대기실에서 1 시간 기다렸다.

    고령의 어르신들, 임산부, 폭신한 인형을 껴안은 앙상하게 바른 서너 살 배기 아가, 어두운 얼굴로 앉아 있는 중년 부부, 나처럼 어머니를 모시고 온 중년 여성, 간병인과 함께 혼 할머니, 할머니를 휠체어에 몰고 온 할아버지…. 대기실은 다양한 인종, 나이, 각기 다른 관계들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는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그들과 운명공동체 의식을 느꼈다.  엄마도, 나도, 이 방의 모든 사람들이 건강해져서 나갈 수 있기를….. 마음으로 기도드렸다.




    마취하기 전 병원복을 받았다..
    환복을 한 뒤 엄마는 마취 후 깨어나 옷을 갈아입을 때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있게끔, 플라스틱 봉지에 나중에 옷을 입을 순서대로 입기 겉옷부터 시작해서 속옷 순서로 차곡차곡 쌓은 뒤 머리핀, 머리빗, 구둣솔을 다 금방 꺼낼 수 있게 배치한 뒤에 침대에 누우셨다.
     
    머리에 캡을 쓰고 뻣뻣한 천 담요를 덮은 엄마는 갑자기 환자가 되어버렸다.



     
     
    마지막 인사
     

    마취 의사가 들어왔다. 중국계 젊은 의사 선생은 몇 주 전 내가 다른 의사가 이미 전화로 설명해 준 내용을 리뷰하던 중 나에게 물었다.

    “치료 중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거 알고 계시지요? 출혈, 뇌졸중 등의 가능성도 있고….”

    “네, 지난번 선생님이 말씀해 주셔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주 흔치 않은 경우이지요?”

    “네… 그렇긴 하지만 환자분은 고령에 심장 질환이 있으므로 고위험군에 속하십니다. 특히 치료 중에 심장이 간을 건드리지 않게끔 심장을 정지시킬 것인데, 가끔은 그 결과로 못 깨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건 듣지 못했던 소리라 깜짝 놀랐고, 의사는 내 근심 어린 얼굴을 보곤
     
    ”그건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환자분이 연세와 심장 상태를 고려하면 그 가능성이 다른 사람보다는 더 많다는 것이지요. “
     
    라고 했다.

    의사가 나간 뒤, 엄마와 단둘이 남겨졌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이 보내주는 기도 문자를 엄마께 읽어드리며 꽤 밝았던 나의 마음이 급작스레 어두워졌다.

    아버지 기일이라서인가, 침대의 엄마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오빠, 아버지, 시아버님의 운명의 순간, 내가 그들의 몸을 충격 속에서 내려다보던 기억이 휙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라도 엄마가 깨어나지 못해서 내가 엄마의 시신을 내려다보게 되는 건 아닌가? 엄마의 영혼도 순식간에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덜컥 두려움이 들었다.

    엄마께 마취 의사가 한 이야기를 해드려야 하나 마나... 아주 짧게 고민했다. 그러나 엄마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 권리가 있고, 나는 그걸 전해드릴 책임을 지고 있다.  그래서 가까스로 침착한 톤으로 엄마께 수술 중 사망하거나,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하는 케이스도 있다고 말씀드렸다.
     
    “엄마, 분명 모든 게 성공적이겠지만, 우리가 죽음에 대해 준비를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라고 하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는 내 어두운 표정, 떨리는 목소리에 잠시 눈에 동요가 있었으나 금방 차분한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며 말씀하셨다.  아주 담담한 어조로
     
    “그럴 수 있겠지. 그러나 나는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 이제까지 산 것만 해도 감사하다.
    너랑 헤어지는 것은 아쉽지만 천국에 가면 아버지와 오빠를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엄마는 말을 이었다.

    "내가 죽어도, 너를 위해 계속 기도하마. 고맙다.  세상의 모든 축복을 다 받기를 기도드린다.
    너와 에릭이 건강하게, 하나님의 쓰임을 받으면서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바라. 고맙다.”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엄마가 저런 유언과 같은 소리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의 죽음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이제까지 엄마를 '살리는' 일에만 골몰해서 살아왔지, 엄마가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엄마의 죽은 몸을, 엄마가 나에게 말을 못 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행여 깨어나시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서 엄마께 작별 인사를 하는 게 옳다 싶었다. 
    돌아가시는 부모께 드릴 수 있는 작별 인사로 ’ 감사합니다 ‘와 ’ 사랑합니다 ‘ 말고는 무슨 말이 있으리...
     
    "엄마, 고마워요  사랑해 주셔서 고마워요. 엄마의 희생, 감사해요. 저는 엄마 덕에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 되었어요.
    엄마를 통해 많이 배웠어요. 엄마, 사랑에 감사해요. 저도 엄마 사랑해요. 많이 많이...."
     
    라고 말했다.

    간호사가 엄마를 마취실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엄마의 얼굴에 키스를 하고 방을 떠나기 전 뒤돌아 엄마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엄마의 모습.
    엄마가 나에게 미소 지었다.
    나는 나대로 엄마께 활짝 웃으면서 손을 바이바이 흔들고는 혹시라도 엄마께 눈물을 보일까 싶어 휙 돌아서 뛰듯이 걸어 나왔다.
    엄마의 저 미소가 생전의 마지막 미소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병원 밖으로 나올 때까지 눈물을 꼭 참고 있다가 남편을 만난 뒤에 펑펑 울었다.
    남편이 “분명 건강히 웃으면서 나오시겠지만, 작별 인사를 한 것은 잘한 일이야” 라며 나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시술과 마취에서 회복되기까지 근 6 -7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남편은 직장 일을 해야 하고 나는 휴식을 취해야 하기에 병원 근처의 호텔에 투숙했다.

    남편은 온라인으로 미팅을 하고, 나는 침대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였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4 시간 후, 의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끝났다. 현재로서는 오늘 내로 퇴원하실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주의 사항이 있는데 간호사가 상세히 알려줄 것이다, 석 달 후에 다시 엠알아이를 하라.’

    기쁜 뉴스.  의사와 통화를 한 뒤에야 마음이 놓여 30 분 잠을 잘 수 있었다.
    깨자마자 엄마를 모시러 병원으로 갔다.

     
    퇴원
     
    간호사가 엄마를 휠체어에 모시고 나왔다.
    엄마의 씩씩한 미소!

    간호사가 "Your mom is amazing!"이라고 하며 엄지 척! 했다.
     


    집에 오는 길에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 24 시간 동안 하루 종일 사과 주스 한 컵만 드셨는데도 기운이 있으셨다.
    치료 부위가 약간 불편하기는 하지만 고통은 없다고 하셨다.
    엄마는 많은 생각을 하셨는지 두서없이 생각나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간호사고, 의사고 여러 사람들이 다 친절해서 편하게 있었다.’
    ’회복실에 있는 동안 간호사에게 물을 달라고도 요구했고, 따뜻한 담요를 달라고도 요구를 했어.'
    '한국계 간호사가 있었는데, 나한테 90 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경어를 쓰더라. 한국어를 잘 못해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요새도 그런 젊은이가 있는 게 신기하더라.'
    '오늘… 아버지 기일인데… 내가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고 남아있네…. 나는 그냥 가도 편했을 텐데…
    '오늘 참 감사한 날이다. 나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사랑해 주는 너의 친구들 (나의 친구들과 몇몇 ’ 조카뻘‘되는 아이들이 기도 폭격을 퍼부어주었다) 이 참 감사하구나.'
    '나는 오늘 독거노인들은 참 가엽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미어졌다. 혼자 사는 분들은 얼마나 외롭고 막막할까….”


    집에 도착해 엄마를 부축해서 집 현관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데, 정말 너무도 너무도 감사했다.
    엄마는 1 주일 간 샤워 금지, 복부 통증, 출혈, 절개 부위의 감염을 조심해야 하고, 제왕절개 산모의 산후조리와 비슷하게 무거운 것을 들거나 끌거나 밀면 안되었다.

    언제나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해야 속이 편한 또순이 엄마를 감시하고 통제해야 하는 게 나의 임무.
    엄마가 혹시라도 잊고 일을 하시거나 운동을 하실까 봐 종이에 “금지!”라고 큼직하게 써서 엄마 방의 벽, 세 군데에 달았다.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엄마께 엄포를 놓았다. 엄마가 무리하셔서 출혈이나 통증이 있으면 당장 응급실에 가야 하고, 감염이 생기면 입원을 해야 하며, 그러면 엄마는 계속 누워 지내셔야 하고, 그렇게 되면 근력이 약화되어 걷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라는 시나리오를 제시하니 엄마의 눈이 동그래지셨다.

    ‘그럼 안 되지! 내가 못 걷게 되면 네가 고생이지! 내가 주의할 거야! “
     


     
    마지막 기도가 될 뻔했던 엄마의 기도

     
    밤에 엄마의 잠자리를 돌봐 드리러 들어갔다.

    단정하고 누워 있는 엄마의 눈을 내려다보았다.
    살아 있는 엄마를 내려다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엄마가 말씀했다.

    "팜펨아, 너와 에릭한테 참 고맙다. 이제부터 내가 조심해서 잘할 테니까 너는 나에게 신경 쓰지 말고 너의 건강을 조심해라. 정말 고맙다."
     
    엄마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다.
     
    “팜펨아, 네가 오래 살아서 하고 싶은 일 많이 했으면 좋겠다. 네가 건강 유지해서 에릭이랑 하나님의 일 많이 하고 천국 가게 해달라고 나는 매일 기도하고 있단다.”

    “알고 있어요, 엄마. 정말 고마워요, 엄마.”
     
    불을 끄고 나오려는데 엄마가 “팜펨아" 하고 부르더니 말씀하셨다.
     
    "오늘 너랑 나랑 내가 죽을 경우에 대비해서 작별 인사 나눴잖아?”

    “네.”

    “네가 나가고 나서 하나님께 기도했어. ’하나님, 나를 데리고 가실 거라면, 제가 천국으로 갈 때 팜펨의 암을 제가 갖고 가게 해주세요. 저는 죽어도 좋으니 제 딸의 몸을 고쳐주세요….‘라고 했어.  난 정말 원했어.  내가 죽더라도 네가 건강할 수만 있다면... 나는 네가 건강해진다면 뭐라도 하겠어. 그게 내가 마취 직전까지 한 기도였어."

    본인이 죽더라도 딸은 살았으면 하는 엄마의 간절한 마음. 그게 엄마의 마지막이 될 뻔했던 기도였구나. 
    엄마는 마지막 기도에서조차 자식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청하고, 하나님과 협상을 시도하셨네...

    오늘 하루 종일 너무 많은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했는데, 엄마의 말에 또 마음이 울컥했다.
    어두운 방, 나는 엄마께
     
    "엄마, 기도 감사해요. 엄마, 제발 오래오래 엄마의 기도로서 저를 도와주세요. 엄마의 기도로 많은 이들을 축복해 주세요. (엄마는 60 명 정도의 사람을 위해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하신다. 기도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기도의 대상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엄마는  “그래. 내가 살아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더라. 열심히 기도해야지. 난 '그 할머니'가 참 감사해."라고 하셨다.
     
     
    '그 할머니.'
     
    엄마가 자주 언급하시고 감사해하시는 '그 할머니.'
     
    ‘그 할머니’는 옛날 내가 성지순례 가이드를 했을 때 내가 모셨던 할머니이시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오신 분인데 첫 여행으로 시차로 고생하셨음은 물론, 물론, 호텔, 서양 음식이니 다 어리둥절해하셔서 열흘간 내가 개인적으로 챙겨드렸었다. 매번 머리를 숙이며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하던 그 겸손한 할머니는 벤구리온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탑승하기 직전에 나의 손을 붙들고

    ”선생님, 고맙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위해서 죽을 때까지 기도할게요 “라고 했었다.

    엄마는 나를 위해 죽는 날까지 기도하시겠다고 한 할머니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으시고 감사했었다. 

    ”팜펨아, 나는 할머니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60 이 안되었었어. 젊었었지. 할머니한테 참 감사했지만, 과연 남을 위해 죽는 날까지 기도한다는 게 가능할까 생각했었어. 그런데 이제 내가 90이 다 되어 기도를 해보니까 그게 가능한 거더라. 나는 죽는 날까지 가족과 교회와 이웃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할 거야.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참 큰 축복이고, 감사하다."

    엄마는 몸만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정신도, 영혼도 건강하게 살아계신다. 가장 연약한 상태에서 영성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엄마, 그런 엄마를 돌보고 섬길 수 있는 건 참 커다란 축복이다.


     
    이집트 거위 가족
     

    시술 이틀 후에 엄마와 호수에 산책을 다녀왔다.
    약간의 통증으로 조심하면서 걸으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 앞에 나타난 ‘이집트 거위 가족 여섯 마리!’



    호수에 거하는 여러 종의 새들 중에서 중 우리는 이 이집트 거위 가족을 가장 좋아한다.
    핑크색 부츠를 신은 것같이 귀여운 외모,  그러나 알고 보면 이들은  일부일처제를 고집하고, 부모가 자녀가 스스로 돌볼 수 있을 때까지 자녀를 돌보는, 상당히 가족 중심적인 새들이다. 부모는 자기 새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시끄럽게 울며 공격적으로 되곤 한다.

    아가들이 일광욕/목욕을 하는 동안 보초 서는 엄마
    새에 무지한 나는 이 아가들의 다리가 부러진 줄 알고 응급실에 데리고 갈 뻔했다는 ㅠ
    아빠 거위의 위용!




    우리는 네 마리의  아가들이 부화했을 때부터 매일 아침 아기 거위들의 숫자를 세곤 했다. 왜냐면 우리 동네에는 코요테가 출몰해 고양이, 개, 새들을 공격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가족 여섯 마리가 다 살아있으면, '‘아, 다행이다, 밤에도 무사했구나’라고 하곤 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새끼들이 많이도 커 부모와 몸집이 비슷해졌다.
    엄마와 나는 평소대로 그들의 숫자를 세었다.
    여섯 마리!
    다 살아있구나!!

    엄마는 씩씩하게 거위들을 지나셨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나는 잠시 멈추어,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나를 무시하는 새들과 일방적인 친선만세를 하며 서 있었는데 갑자기 든 생각, 
     
    '아니, 실제로, 가족 구성원을 잃을 뻔했던 건 우리 쪽이었네? 엄마야말로 영영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나마나 나에게 관심도 없는 이집트 거위들은 부리로 풀 속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거의 가족의 행복한 브런치를 방해할까 조심스레 지나치면서 말했다.
     
    “얘들아, 늬들은 모르지?  매일 아침 만나던 이 함경도 또순이 할머니를 영영 못 만날 뻔했던 거, 모르지?”
     
    훗! 하고 기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온 가족이 다 건강해라~~ 사랑하는 거위들아~
    엄마랑 우리도 행복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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