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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퀘백—마음 가는 대로 하는 여행
    카테고리 없음 2023. 7. 19. 02:21


    다른 숙소로 이동하는 날.
    내내 비가 내리다가 하/필/이/면 이동하는 날, 날씨가 좋다. ㅠ

    그러나 날씨가 좋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
    오늘도 아무 데나 서고 싶은 데 서고, 걷고 싶은 대로 걷는 여행을 하자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떠났다.
    마음 가는 대로 하는 여행…

    일부러 고속도로 대신 샛길을 택해 달렸다.
    바다면 바다, 강이면 강, 호수면 호수, 들판이면 들판, 이번 여행은 넓게 트인 경치를 많이 즐기고 있다.


    한 마을의 아주 작은 채플이 귀여워서 지나가면서 사진에 담았다.


    메이플시럽을 추수하는 장치도 보았고..



    이 도시면 혹시 먹을 데가 있지 않을까? 하면서 내린 곳.
    큰 식당 하나, 피자 식당 하나, 음료 위주의 sports bar 가 눈에 띄었다.

    성당의 주차장에 주차했는데 그 순간 종이 울렸다.
    저절로 경건해지는 종소리, 맑고 아름다웠다.


    성당 주위로 배회하면서 마을 구경을 했다.
    강기슭에 위치한 커다란 공원에서 축구, 물놀이, 자전거 타기 하며 노는 아이들의 유쾌한 왁자지껄이 고요한 동네의 배경음악.


    점심 식사. 퀘벡에서 느끼는데, 어떤 식당이든 음식이 대부분 아주 신선하고 맛있다. 이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큰 식당에는 정장의 신사들이 (사진에서 보이는 분들 말고도)과 비즈니스 정장의 여성들이 있어서 의아했는데,  식당 맞은편이 공공기관이 어서였다.


    점심 식사 후, 퀘벡에 온 뒤 꼭 하고 싶었던 것을 했다.
    마을의 중심인 성당 옆에 있는 묘지 방문.

    마치 처음으로 방문한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달려가는 젊은이처럼, 나는 남편은 뒤에 두고 빠른 걸음으로 묘지로 향했다.

    나의 애착인형 스누피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묘지는 성당의 바로 뒷 편의 자그마한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나는 아주 옛날 묘석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했던 것만큼 많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적지도 않았지만…


    묘비들의 성씨를 보니 같은 성씨들이 많았다.  Lessard, Cliche, Jacques, Lambert, Poulin.. 등등, 예전부터 이 동네를 지켜온 몇몇 가문들의 이름인 듯했다.  


    묘비에 숫자를 적는 방법이 다양했다. 몇 년도, 몇 세의 나이로 사망이라 적기도 하고,  어떤 것은 몇 년도에 몇 살 몇 개월의 나이로 사망 식으로 정확한 개월 수까지 적기도 한다.
    요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생년월일과 사망연일을 적은 것도 있었다 묘비를 읽다 보면, 숫자만을 읽는 것인데도 그 짧은 정보에 여러 상상에 빠지기도 하고, 나 역시 한 인간으로서 또 다른 인간의 삶과 죽음에 경의를 표하면서 침묵하기도 하고,
    그냥 random 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삶의 스토리를 상상하는 게 흥미롭다.

    한 예로…


    “죠셉 질베흐 (남편)
    2004 년 6 월 18 일, 90 세 사망

    블랑쉬 질베흐
    2002 년 11 월 17일, 100 세 6 개월, 사망

    시몬느 질베흐(부인)
    2004 년 6 월 7 일 86 세, 사망”


    이런 묘석을 보면 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오… 남편이 부인이 죽은 뒤 열흘 후에 사망했구나…
    그럼, 또 하나의 여성, 블랑쉬는 누구이지?
    죠셉은 1914 년 생, 블랑쉬는 1902 년 생, 둘의 나이 차이가 12 세…
    그럼 엄마인 것 같지는 않고, 누이?
    결혼을 안 한 누이여서 동생의 묘에 함께 묻힌 건가?


    정말 아주 쓸모 없는 상상인데… 나는 그게 재미있다.

    다음의 경우도 마찬가지, 나는 아무 쓸모없는 상상과 추론을 한다.


    아직 생존해 있는 부부들이 묘지를 사둔 경우다.

    맨 왼쪽은 Gaetane Bisson (1947~)와 Jean-Paul Gravelle (1947~ ) 부부

    그 옆은 Denyse Bisson (1942~)와 Eric Gravelle (1941~ ) 부부.

    흠…부인들이 Bisson 이란 성이 같네.
    Gaetane 여사와 Denyse 여사는 나이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자매인가?

    남편들의 이름은 쟝폴 그라 밸, 에릭 그라벨.
    아니, 이들도 같은 성씨네!
    그럼 이들은 나이 여섯 살 차이가 나는 형과 동생? 그렇다면 Bisson 집안과 Gravelle 집안은 겹사돈을 맺은 거였네!

    두 부부가 나중에 죽어서 나란히 묻히기를 원해 묘지를 미리 구입한 걸 보면 아마 자매, 형제들끼리 우애가 좋고, 커플끼리도 잘 어울리는가보다… 나는 남편한테 마치 대단한 것을 발견한 듯이 내 추측을 나누었다. 남편이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며 미소지었다.


    “어니스트 브루노
    변호사
    1922 년 89세 (사망)
    1919 년 89 세의 사망한 오노린 프룰루의 남편”

    브루노 할아버지는 부인보다 3 년 더 오래 사셨다.
    엇, 브루노 할아버지가 오노린 할머니보다 3 살 연하였네?
    변호사인 게 되게 자랑스러웠나 봐?  대부분 묘비에 직업은 적지 않던데 굳이 적으신 걸 보면….


    이건 내가 아주 오래 들여다보았던 묘비이다.


    “조지아나,
    Thos. 레사드의 딸
    1890 년 10 월 23 일 17 세 8 개월의 나이로 사망

    조지아나,
    옥타브 포르땡의 딸
    1891 년 6 월 23 일, 23 세 3 개월의 나이로 사망.
    이 둘은 “마리의 아이들”이었다.”

    두 명의 죠지아나의 죽음을 기리는 묘비이구나.
    그런데 ‘마리의 아이들’ 이란 게 무슨 소리일까?
    이미 두 죠지아나가 누구의 딸이라는 설명이 있었는데 왜 마리의 아이들이라는 설명이 붙었지?

    ‘마리’가 성모마리아를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무슨 종교적인 커뮤니티라던가, 수녀가 되기 전의 과정을 일컫는 게 아닐까 추측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찾아보았다.  ‘마리의 아이들’은 소녀/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종교적 단체로서  성모님의 미덕, 순수, 겸손, 순정, 사랑을 모방하는 삶을 추구하며 정기적 모임과 의식에의 참여를 장려했다. 연령에 따라 14 세 이하, 15 세 이상의 신입회원, 16세-30 세의 여성, 30 세 이상의 미혼 여성, 기혼 여성의 그룹으로 분류되어 활동했다고 한다. 이렇게 또 하나 배웠다.)


    이렇게 높은 탑에 여러 식구들의 이름을 적는 ‘한 가문의 묘탑’들도 있었다.




    아래의 탑은 참 슬픈 죽음을 기록하고 있다.


    사망일이 나의 아버지의 기일과 같은 기일, 10 월 23 일이어서 눈이 멎었는데 읽어보니 두 소녀의 죽음이다.

    “데네에지 클루티에,
    1883 년 10 월 23 일,
    16 세, 생 빅토르에서 사망

    안-마리
    15 세, 생 빅토르에서 사망.”

    안마리에게는 성이 없는데, 데네에지와 같은 성인가?
    데네에지와 안마리는 자매였을까?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사망한 것인가? 사고사?
    죽음의 원인이 무엇일까?





    “죠세프 올리바,
    쥴 기게스의 아들
    1917 년 4 월 13 일, 24 세 10 개월의 나이로 사망”

    꽃다운 나이…24 세.
    젊은 사람의 죽음은 항상 아프게 느껴진다…






    “옥타비 페로,
    리샤아르 드루앵의 부인
    1918 년 10월 3 일
    18 세의 나이로 사망” 옥타비는 18 세의 어린 나이에 죽었구나!
    기혼이었다니, 어쩌면 18 세의 젊은 나이에 출산 중 사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묻히지 않을 것으로 보아하니 남편은 재혼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음은 묘지에서 가장 작았던 묘석이다.



    ‘마리오 뿔랭
    도미니크의 아들
    1953 년 3 세로 사망’ 3 세의 어린 아기, 마리오가 묻힌 곳.
    가엾어라.
    엄마, 도미니크는 얼마나 슬펐을까.
    근데, 아빠의 이름이 없네?
    도미니크는 싱글맘이었나?  이혼녀?
    이혼하기 쉽지 않았던 시절, 이 작은 마을에서
    왜 이 아가에게는 아빠의 이름이 없을까?….

    ‘M. 에마 쟉끄,
    알퐁스 타르디프의 부인
    1919 년 2 월 27일
    31세 2 개월의 나이로 사망.’

    에마는 31 세 사망했을 때 큼직한 묘비 밑에 묻혔구나.
    다른 묘비들은 부부의 죽음을 함께 기록하던데
    에마는 혼자 있네?
    그녀의 남편 알퐁스 타르디프는 어디에 묻혔을까?
    에마와 함께 묻히지 않을 것으로 보아하니 재혼을 했고 두 번째 부인과 같이 묻혔을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묘비들을 읽으면서 묘지에 머물렀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묘비는 다음, 쟈크 풀리오 씨와 아니타 램버트 여사 부부의 묘지.

    사망연도가 없는 걸 보아하니 아마도 아직 생존해 계시는가?
    묘비에는 즐거움을 상징하는 음악 기호 맞은편에 열려있는 책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책에 쓰인 글귀는
    ”CE N’EST QU’UN AUREVOIR”

    Ce n’est qu’un aurevoir! 는 영어로 “This is just a good-bye!” 즉, “이건 그냥 (잠깐의) 작별이에요” 란 의미이다.

    다시 만날 게 분명함을 확신하거나, 다시 만나기를 원하면서 하는 인사.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엿보이는 유쾌한 묘비였다.
    ——————————






    더위에 묘지 탐방을 오래 하고는 좀 지쳤다. 남편도 마찬가지.. 남편이 다시 긴 운전을 하기 전에 잠 쉬 잠을 자야겠다고 해서
    동네를 누비면서 누워 쉴 곳을 찾았다. 남편이 쉬는 동안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그렸다.
    어느 새 깨어난 남편은 내가 교회를 그리고 있는 모습을 뒤에서 사진 찍었다.




    —————————————

    다시 운전 시작!
    계속 우리는 샛길로 작은 마을들을 감상하며 갔다.

    시골 도로라서 이렇게 차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는 다리를 건넜다.
    잠시 당황했다. 혹시라도 다른 차와 맞닥뜨리면 어떻게 하나?
    뭐가 뭔지 모르는 우리는  ‘확신에 차서’ 드라이브를 하는 듯한 앞차를 열심히 쫓아서 건넜다.



    숙소에 도착했다.
    빽빽한 숲 바로 옆, 호숫가에 있는 집이었다.


    물 좋아하는 남편은 오자마자 집 앞에서 호수에 발을 담그고 상념에 빠져 있더라.



    다가가서 사진을 찍으려 하니 함박미소를 짓는다.


    물을 만나더니 기운이 나는지, 어느 새인가 카누를 찾아서 노를 젓고 나선다.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행복해하는 어미의 마음으로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멀리도 가네…


    호수 한 바퀴를 다 돌고 왔다.
    지도를 열고 자기가 어디까지 갔으며 무엇을 보았는지 신나서 이야기하는 남편이 어린아이처럼 귀여웠다.



    남편이 호수에서 ‘노는’ 동안 나는 호수를 문득문득 바라보면서 나의 전매특허 요리—-‘맛은 어떠할지 모르나 분명 건강에 좋으리라 추정되는 요리’를 했다.



    식사가 끝난 뒤, 남편은 맥주를 마시고, 나는 차를 마시면서 음악을 들었다.



    정확한 목표지 (새 숙소)만 정해놓고 발길 가는 대로, 운전대가 인도하는 대로,  정처없이 보낸  하루였다.
    샛길로 가면서 많은 마을들을 보았고,
    마음 내키는대로 한 도시에 멈춰서 계획없기 걸었고
    리뷰를 읽으면서 식당을 찾은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식당 그냥 들어가 맛있게 먹었고,
    항상 하고 싶었던—그러나 계획하지 않았던— 묘지 방문도 했다.
    낯선 곳에서 누울 곳을 찾아다닌 것도, 공원의 유일한 벤치에 누워서 낮잠을 자는 것도,
    내가 멀리 보이는 성당을 연필로 그린 것도,
    다 계획했던 일이 아니었고 다 재미있었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하는 게 좋았다.
    딱히 대단한 거 한 게 없는데 마음은 풍성했다. 오늘도 안전하고 행복한 하루를 주심을 감사드리면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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