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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어머님의 죽음/애도와 그림
    카테고리 없음 2023. 5. 20. 09:11

     

    이스라엘에서 의미 있고 즐겁고 바쁜 시간을 보낸 뒤 집에 돌아온 날,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3 월에 찾아 뵈었을 때 돌아가실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알았고,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도 어머님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나와 남편은 같이 껴안고 울었다.

    아버님의 장례식이 끝난지 한 달여만에 어머님이 돌아가신 거라, 슬픔과 혼란이 범벅이다.
    어머님의 죽음의 애도는 아버님과는 다른 방법으로 진행 중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는 임종을 지켰고, 시신에게 작별인사를 했고, 며칠간 아주 깊은 슬픔 속에서 혼자 애도했고, 식구들과 장례식을 치렀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용이했다. 그래서 평화 속에서 아버님을 그리할 수 있다.

    어머님의 경우는 달랐다. 미국에 사는 우리는 벨기에의 어머님의 죽음의 소식을 문자로 받고, 시신을 못 보았고, 장례식도 참석하지 못했다.

    아버님은 아무도 돌아가시리라 예상하지 않았고, 방문객들도 없었는데, 돌아가시는 순간에 나와 시누이가 함께 했던 것과는 반면,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몇 주 전부터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고 대가족 전원이 조를 짜서 어머님 옆을 지켰음에도, 어머님이 돌아가신 순간은 요양원에 식구들의 방문이 허용되지 않는 아침 시간이었다.  그래서 홀로 떠나셨다. 

    직계 자손들은 임종 소식을 듣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고, 시신에 작별을 고했다. 우리는 가족들 단톡방에 올려진 시누이의 문자로 소식을 받고, 시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시누의의 문자는 단 한 문장.

    "Maman vient de mourir."  (엄마가 방금 돌아가셨어.)

    문자로 받은 죽음의 소식을 받은 순간, 말을 잃었다. 남편도 나도, 아주 잠깐 정지했다. 그리곤 눈물이 터졌다. 껴안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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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누이의 문자.

    사랑하는 어머님의 생의 마감의 소식은 아주 간단했다. 까뮈의 이방인의 첫 구절과 비슷했다. 

    "Aujourd’hui, maman est morte." (오늘 엄마가 죽었다.)

    주인공 뫼르쏘는 엄마의 죽음에 감정으로 반응하는 대신 담담하게/차갑게 엄마가 죽은 게 언제였을까를 따진다: 

    "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J’ai reçu un télégramme de l’asile : "Mère décédée. Enterrement demain. Sentiments distingués". Cela ne veut rien dire. C’était peut-être hier."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일 것이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이건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녀의 죽음에 무감각했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와 나는 아주 다른 상황이다. 나와 시어머니는 아주 가까웠으니까. 그러나 시누이로부터 받은 문자는 나를 잠시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슬픔'이란 감정이 마비가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진짜?' 라는 한마디를 할 정도의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어머님의 죽음의 현실이 100 퍼센트 감지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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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평소에 ‘임종을 지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왔었다. 특히 부모의 임종을 지키는 것을 ‘효’로 보고, 아닌 것을 ‘불효’로 보는 사고방식이라던가, 임종을 지키는 이가 있으면 떠나는 사람이 덜 외로울 것이라는 보편적인 사고에 동의하지 않아 왔다.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머님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어떤 이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을 지키는 사람이 받는 혜택이 하나 확실한 게 있음을 깨달았다. 
    죽음을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지난 10 년 사이에 지켰던 임종은 세 번---한국에서 오빠 (2013), 미국에서 아버지 (2018), 벨기에에서 시아버지 (2023).  

    세 분의 경우, 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바로 눈 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사실'이 안 믿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사라질 수 있는 거지?'라는 죽음이란 엄청난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의문을 가졌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의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온전한 애도는 죽음의 인정으로부터 시작되는 법, 현실감이 제로인 어머님의 죽음은 혼란스러운 애도의 과정에 우리를 몰아넣고 있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바로 그 날, 남편과 껴안고 울었고, 엄청난 슬픔 속에 빠져 있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나는 슬픔을 잊고, 여행짐을 풀어 정리하고 있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셨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깜짝 놀랐고, 다시 슬픔을 느껴서 혼자 울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와 저녁 식단 이야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런 식으로 슬픔은 내가 컨프롤 할 수 없는 밀물 썰물이 되어 나에게 단발적으로 몰려왔다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다시 몰려왔다가 다시 물러가버린다.  그 와중에 벨기에에서는 장례식이 치러졌고, 우리는 대강 이야기만 들었을 뿐, 실제로 장례식 사진을 못 보았다. 죽음도, 죽음 이후의 일들도 다 단편적인 '이야기'로 전해질 따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게 하나도 없으니, 죽음이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네 시댁 식구들은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어머니는 양로원을 떠나서 어딘가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계셔'라고 거짓말을 열/심/히, 꾸준히 한다면 믿을지도 모르겠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브러셀에서 혼자 애도하면서 많이 힘들어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복이었다. 죽음을 함께 경험하고, 각기 다른 방법으로 애도의 과정을 거치고, 장례식을 통해서 형식적으로나마 어떤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또한 내가 작년 말, 셀프 서비스 그림 심리 치료'를 시작한 것도 참으로 다행이었다. 당시 나는

    '세 어머님들이 돌아가실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나를 재정비해야 했다. 물러터진 마음, 얽혀버린 정신 상태에서 당장 어머니의 암치료와  앞으로 서서히 닥칠 시부모님, 이스라엘 어머니, 나의 어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겠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까지 내가 겪은 죽음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었다.  그것은 참으로 예언적인 사고였고 선택이었다.  그 후 3-4 개월 만에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으니 말이다.

    이스라엘에서 돌아온 날, 어머님의 부고를 듣자마자  바로 그다음 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죽음 직전, 말을 할 수 없으니, 나의 손을 꽉 움켜쥐어 소통을 했던 아버님, 아버님이 하나님을 받아들이신 것, 아버님 관에 놓은 나의 작은 나무 십자가, 천국의 소망.....그런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렸다. 한번 꼭 흉내 내보고 싶었던 르네 마그릿의 '구름'의 모티프도 마음껏 그렸다. 그림 그리는 내내 아버님을 기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제 며칠 쉬었다가 어머님을 기리는 그림을 그릴 작정이다.  어떤 내용으로 그릴지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온전히 어머님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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