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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 (1)
    카테고리 없음 2023. 4. 25. 16:38

     
    이스라엘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찾아뵌 것은 4 년 전이었다. 이스라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외로움을 많이 타셔서 일 년에 한 번은 찾아가 뵈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발이 묶였고, 이스라엘 어머니와 나는 매주 주말, zoom 으로 만나 그리운 마음을 달래야 했다. 항상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병원 출입을 자주 하고, 응급실 신세까지 진 뒤에 나는 어머니를 꼭 찾아뵈어야겠다 싶었다. 

    코로나의 여파가 좀 가신 작년 9 월, 나와 남편은 상의해서 올해 4 월, 이스라엘 행 티켓을 일찌감치 구입해 두었다.  내가 2023년 3 월에 벨기에로 가서 아버님의 임종을 지키리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 채....

    벨기에 여독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이스라엘 행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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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어머니가 사는 집은 하이파 근교의 소도시이다. 내가 이스라엘 갈 때마다 이용하는 베두인 택시 기사와 정겨운 대화를 나누다보니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고, 어머니 댁 근처의 복잡한 사거리에 도착했다.  여전히 길목에는 펠라펠 가게가 있었고,  오래된 우체국의 페인트가 좀 벗겨진 게 눈에 띄었다.  택시가 좌회전하자마자 한적한 주택가가 나타났다. 마치 고개를 구부려 인사를 하는 듯한 줄지어 선 키 큰 나무들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은 설레임으로 두근거렸다.

    택시 기사는 나의 편의를 위해서 좁은 길을 후진해서 어머니 댁 대문 가까이 차를 대어주었다.

    파란색 철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머니의 황홀하게 아름다운 정원이 한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가지를 뻗은 여러 나무들의 풍성한 녹음, 향기를 발하면서 피어난 각양각색의 꽃들이 나를 환영해 주었다.
    짐을 끌며 정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훅~ 하고 느껴지는 달달한 집냄새.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는 이스라엘 어머니 집에서 만의 고유한 냄새를 맡는 순간,
    '아, 집이다! 집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거의 하루 걸리다시피 한 여정이 드디어 끝났구나 하는 안도가 느껴졌다.

    어머니의 거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모든 게 다 그대로였다. 식탁, 의자, 피아노, 액자, 그림..... 그저 최근에 구입하신 겨자색 소파만 새로웠다.

    그렇게 나에게 친숙한 광경과 친숙한 냄새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나의 친정 생각이 났다.
    오랜만에 한국의 부모님 집을 들어설 때 나를 반겨주었던 그 친정냄새.
    이십여 년간 엄마와 아버지의 숨결,  가구, 책, 엄마의 음식 등이 함께 만들어냈던, 이제는 사라져 버린, 몹시 그리운 안양시 관양동 현대 아파트의 집 냄새...

    이제 이스라엘 어머니의 정원의 꽃향기, 오래된 가구, 그림, 어머니가 자주 태우는 초, 차와 커피 향 등등이 배어있는 이스라엘 집 냄새도 어머니가 떠나시면 사라질 것이고, 나는 그 냄새를 기억하려고 애쓸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집의 맨 구석의 어머니 서재로 향했다.
    서재의 문이 열려 있었고 어머니는 누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해드폰과 같은 보청기를 끼고 계셔서 내 기척을 못 느끼셨다.

    나는 어머니 뒤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이스라엘 아버지의 사진들, 액자, 가족사진으로 온 벽이 빽빽이 매우고 있었다.
    어머니가 마주하고 있는 두 대의 컴퓨터의 큼직한 모니터의 바탕화면은 어머니와 나의 사진이었다. 
    어머니의 비서가 언젠가, “팜펨, 나는 매일 너를 만나고 있어. 교수님 컴퓨터 열면 항상 너부터 나오니까 “라고 했었던 그 사진..

    어머니는 통화 중 나를 보자마자 반색하며 전화를 끊었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당신께 몸을 숙인 나를 꼭 껴안아주셨다.

    “팜펨! 나의 딸! 어서 와!!! 어서 와!! 난 너무 행복하다!"

    어머니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해가 떨어지기 전에 정원에서 차를 마시기로 했다.

    발코니에 앉아 차를 마셨다. 발코니 깊숙이 스며들고 있는, 지는 해의 오렌지 빛이 찬란했다. 우리는 수시로 해, 새, 나무, 꽃--을 찬양하면서 차를 마셨다. 두서없는 대화, 그러나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재밌고 소중한 대화였다.  오렌지, 아몬드, 쿠키를 곁들여 서너 잔의 차를 마셨나 보다. 어느새 해가 지고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안으로 들어와 담요로 몸을 감싼 채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로 못 만난 동안 쌓인 이야기가 너무도 많았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젊고 활기찼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그새 많이 늙고 쇠약해졌다.

    저녁 식사는 빵과 샐러드. 
    그리고 우리는 거실에서 또 이야기 꽃을 피웠고 자정이 되어서야 내일을 기약하면서 '라일라 또브! (Good night!),'  인사를 주고받았다.

    나의 아주 짧은 이스라엘 여행의 첫날은 그렇게 마무리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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