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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 모임
    카테고리 없음 2022. 7. 13. 22:36

    June 18, 2022


    지난 두 달 동안 미국에서부터 계획해왔던 가족 모임이 잘 끝났다.
    시부모님의 직계 자녀 부부, 손자 손녀와 부부, 증손자 손녀…. 다 모였다.


    온 가족이 다 모인 것은 아주 오랜만이다.
    시부모님들의 직계 자녀들이 조부모가 된 이후에는 각자 ‘조부모’ 역할을 하느라 각자의 집에서 모였고, 숫자가 엄청 늘어난 대가족이 다 모이기에는 부적합했다.
    2015 년에 시골의 농장을 빌려서 가족 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식구들 간에 약간 껄끄러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누가 오면 누가 안오고 식이어서 완전체로 모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다 왔다.
    초대해줘서 고맙다, 초대해줘서 감동받았다 등, 우리에게 따뜻한 말들을 해주었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만남이었다.

    언제나 이런 모임이 있으면 약간 삐딱하게 하는 분들도 있기 마련...
    메뉴 정할 때 일어난 일.

    성수기에 식당 홀 전체를 빌리는 게 어려워서 아는 사람을 통해서 간신히 식당을 예약을 했고
    식당은 우리 말고도 다른 손님들을 받아야하므로 우리더러 몇 가지 메뉴를 정하고 정확한 인원을 미리 알려달라고 했다.
    고심 끝에 파스타, 생선, 소고기 미트볼, 피짜로 메뉴를 정해서 식구들에게 연락해서 주문을 받았는데,
    굳이 자기가 원하는 메뉴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생선 스프 대신에 치킨 스프로 하자, 생선 스프는 잘못하면 생선이 너무 dry 해지곤 하기 때문에 치킨으로 하겠다’

    ‘나는 비프스테이크 미디엄 레어로 해달라’

    시어머니는 ‘그들은 맨날 이런 식이다!’ ‘항상 남 고생 시키려고 한다’ 라면서 과거의 일들을 소급하면서 잠시 불쾌해하시더니만
    관록있는 어머니답게 불쾌감을 내보이지 않고 ‘식당에서 안된다고 한다’라고 하심으로 깨끗이 정리.
    감정에 지배되지 않고 일을 추진하시는 모습에 한 수 배움!

    이번 모임의 하이라이트는 아버님의 외출!
    사고를 당한 뒤에 침대와 안락 의자를 벗어나지 못한—즉, 집 밖으로 나올 길이 없었던— 아버님도 이번에는 우리와 함께 하셨다.
    손자와 손녀 사위가 휠체어를 번쩍 들어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 아버님을 편하게 모셔왔다.



    오랜만에 따뜻한 햇빛을 직접 만난 아버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식당의 홀을 꽉 채운 식구들을 본 순간, 아버님은 감동에 압도되어 얼굴이 경직되었다.
    ‘아버님, 아버님의 자손들이에요!’ 라고 하니
    ‘오..그래. 그러네.’ 하시면서 믿기지 않는 듯이 너털 웃음을 웃으셨다.




    몸이 불편하신 아버님은 한 시간 정도 후에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가족들은 정오부터 다섯 시까지 사람들은 자리를 바꾸어가면서 친선만세!

    파티가 끝난 뒤 식구들은 다 아버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러 갔고
    우리는 미국에서부터 준비해온 선물을 건네었다.

    어린아이들은 과자, 양말, 재밌는 펜,
    청소년들은 양말, 한국 스낵, 한국 라면 (대 히트!)
    어른들에게는 각기 다른 선물들…

    무슨 선물을 그리 많이 하는가 싶기도 했지만
    우리 식구는 지난 27 년간 멀리 떨어져 살기에 가족의 경조사를 챙기지 못했고, 특히 아이들에게는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었다.
    아버님을 위한 축제를 나눔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선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전하는 카드…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과 하루 우리만의 저녁 시간을 갖으면서 카드에 사인을 같이 했었다.
    친척들과 멀리 떨어져사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참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식구들이 다 떠나고 난 뒤에 부모님 댁에 적막이 찾아왔다.
    다 녹초가 되었다.
    딸아이는 할아버지 옆의 소파에 누워서 잠을 자고, 아들은 위층에 올라가 누웠다.

    남편과 시동생이 시아버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시어머니와 나는 부엌에서 차를 마셨다.

    시어머님이 말씀하셨다.

    “팜펨아, 고맙다. 오늘 나는 너무 행복하다. 흥분해서 밥 먹는 것을 잊었는데, 배가 하나도 안고프다.”

    “오, 행복하시다니 기뻐요!”

    “이런 모임을 주관한 게 항상 나였는데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모임을 즐길 수 있어서 신기했다.”

    “맞아요. 어머님이 항상 가족 모임을 해주셨어요. 제 50 세 생일 때도 어머님이 온 가족을 다 모아서 축하해주셨지요.”

    “나는 다시는 이렇게 모일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어. 다들 워낙 바쁘고 주도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 모임을 가지면서 서로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어린 아이들이 친구가 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너무 기뻤어.”

    나도 나이가 있는지라 자손들이 사랑하면서 지내는 것을 바라는 어머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어머니, 이제는 저희 세대가 알아서 할께요. 자주 연락하고, 아이들도 만나게 해주면서 살게요. 이번에 좋은 계기가 된 것같아요.”

    “그래, 그러면 좋겠다. 부모에게 자녀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니.”

    어머님은 여러차례 고맙다고 하셨다.




    ———-

    집에 돌아와 차를 마시면서 천천히 하루를 되새겼다.
    뿌듯했다.

    파티의 중심에서 모든 것을 다 주관하면서 하하하하 많이 웃은 하루,
    그러나 나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소리를 일기장에 적고 있었다.

    “오늘 커다란 모임을 잘 치뤘다.
    나는 시댁 모임이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나와 너무도 가까운 ‘식구’들 속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을 다시 느꼈다.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이 사람들이 내 가족인 거야?’
    ‘얼굴이 다르고 말이 다른 이 사람들이 나의 가족이구나..’

    나는 ‘나의 패밀리’라고 부르는 ‘백인들의 무리’ 속의 유일한 유색인종으로서
    문득문득 올라오는 ‘이 사람들이 나의 가족이라?’ 라는 생각을 아직도 지울 수 없다.
    결혼한지 27 년이 되어가는데…

    아주 잠깐씩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지만 그 생각은 존재한다.

    그러나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나는 다시금 느낀다.
    우리가 서로에게 표현하고 나누는 따뜻한 사랑의 감정이 결국은 인종, 언어, 문화의 차이를 다 초월하게 해줌을..

    문득 문득 든 생각, ‘이 사람들이 내 가족인 거야?’ 의 답은 여전하다.
    그래, 그들은 나의 가족이다.
    소중한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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