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짝퉁 며느리, 진품 시부모님
    카테고리 없음 2022. 6. 17. 12:45


    시댁에 와 있다.
    시아버님은 거동이 불편하셔서 수발을 받으시고, 시어머님은 암투병을 하고 계셔서 남편과 나는 약간 무리를 해서 시댁에 왔다.
    (나의 친정어머니가 암투병 중이시라 내가 자리를 함부로 비울 수 없는 상황인데 온 것,
    딸아이가 미국 본토가 아닌 곳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휴가를 다 써서 오게 한 것이 ‘무리’의 예)

    내가 올 때마다 항상 나와 특별한 시간을 갖는 막내 시이모님과 나는 도착한 바로 다음날 데이트를 했다.
    내가 60 세, 시이모님은 83 세. 시이모님과 같이 수다를 떨 때마다 나는 ‘아이고… 서양 시이모님이니까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나와 이모님이 산책을 하던 중 이모님은 한 빌딩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곳에 참 예쁜 호텔이 하나 있었는데 10 년 전에 허물고 지금 건물이 세워진 거야. 그 호텔은 내가 내 애인들과 함께 밤을 보내곤 하던 곳이었어.”

    사랑/애인 시리즈로 야한 이야기, 수위가 아주 높은 이야기를 하시는데 마치 그게 ‘이 동네에선 저 빵집이 제일 맛있다’ 라는 평범한 이야기인양 “oh, really?” “I see” 로 받아치면서 들어드리면서 속으로 어질어질…

    ‘한국 이모님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으실 이야기...유럽 사람은 다르긴 다르구나...'

    그러나 오늘 데이트 중, 나는 ‘한국 이모님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시는 서양 시이모님에게서
    ‘한국 시어머니’ ‘한국 시누이’ ‘한국 시이모님’의 모습을 보았다.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잘 해드릴 때, 며느리는 무시하고 아들에게만 감사하는 시댁 식구의 모습이라는 게 정확하겠다.

    이모님의 에릭 칭찬의 몇 가지 예.

    “내가 지난 4 월 조카 가족 6 명과 런던에 가기 전, 에릭이 나에게 용돈을 보내줬어. 안
    그래도 되는데, 에릭은 항상 그렇게 나에게 신경을 써줘. 얼마나 고마운지…
    그 돈으로 같이 간 조카 가족들과 뮤지컬을 보았고 그들에게 저녁을 몇 번이나 사줄 수 있었단다.
    밥을 먹기 전에 조카 손주들은 ‘똥똥에릭, 메르씨’ (unlce Eric, thank you!’) 외치곤 밥을 먹었단다.”

    “에릭이 언니네 (나의 시어머니) 리프트를 설치해 주어서 언니가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몰라. 
    에릭은 정말 좋은 아들이야. 언니가 자식들에게는 질투나 자격지심을 일으킬까봐 아무 이야기를 안 하지만 나한테는 에릭 자랑을 많이 해.”

    “형부가 넘어지시자마자 송금을 해줘서 특별한 안락 의자를 사준 것도 에릭이었어.
    그 의자는 무슨 첩보 영화에 나오는 의자같아, 아주 이상하게 움직인단다.
    형부가 그 의자 받으신 날, 처음으로 웃으셨어. 며칠 동안 우울증에 빠졌었는데…”

    지난 25 년 간 시부모님을 모시고 한 여행들, 우리가 함께 못하고 보내드린 여행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다.
    효자 아들/조카에 대한 미담에 미담이 이어진다. 이모님이 그리도 자랑스러워하고 고마워하는 에릭이란 사람은 나의 남편.

    남편의 칭찬을 들으면서 ‘내 남편 여러 해 동안 효도 많이 했네…’ 하고 훈훈한 미담으로 들어 넘길 수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
    그 모든 훈훈한 미담의 사건을 주도하고 진행했던 것은 그들의 아들인 에릭이 아니라 그들의 며느리인 나였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심지어 어떤 경우는 남편이 그리 내키지 않아하는 일을 우겨서 했었다. 남편은 이제까지 나에게 설득되어 왔다.

    ‘효도는 살아계실 때 하자. 장례식 참석을 못할 지라도 살아계실 때는 자주 찾아뵙자.
    평생 공짜밥, 공짜물 먹여준 부모님께 우리도 좀 공짜를 해드리자!
    우리에게 뭘 해달라고 요구하기는 커녕 기대도 하지 않는 부모님들, 아무리 잘해드려도 모자란다.’

    마음이 곱고 후한 남편은 내 뜻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받아들여줬다.
    감사하게도 나의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은 정말 아무것도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는 어르신들,
    그런 부모님들께는 뭔가 해드리는 기쁨이 너무도 컸다.
    남편도 베푸는 기쁨을 점점 더 즐기게 되었고, 우리는 그래서 시댁, 친정 가리지 않고 양가 부모님께 사랑을 표해왔었다.

    그런데 내가 항상 느꼈던 게 있다.
    친정과 시댁의 차이. 친정 부모님들은 남편과 내가 뭔가 해드리면 고마워하시면서 항상 ‘에릭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고, 실제로 에릭에게 고마움을 느끼시는 게 역력했다.
    나에게는 물론이고 두분이 이야기 나누실 때 사위에 대한 감사가 절절..

    ‘에릭은 어쩌면 우리한테 이렇게 잘해주지’ ‘에릭한테 너무 고맙다.’ ‘우리 딸이 결혼을 참 잘했네. 저렇게 마음이 고운 신랑을 만났으니…’
    ‘서양 사람인데 내것 네 것 안 가리고 저렇게 마음이 후할까….’ 등등 두고두고 우려서 에릭 칭찬을 많이 하고, 에릭에게 고개를 숙여 ‘고맙다’라고 진심을 담아 인사를 하시곤 했다.

    친정아버지가 떠나신 뒤에 홀로 남으신 어머니도 에릭에게 내내 감사해하신다. ‘이렇게 좋은 집에서 편하게 잘 살 수 있게 해 줘서 너무 고맙다’는 물론이고 ‘에릭이 내가 해주는 밥을 맛있게 먹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라고도 인사를 하신다.

    아니, 엄마가 고생해서 밥 해놓고, 잘 먹는 사위한테 감사를?!

    원래 엄마가 아주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분들이시기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사위’가 장인 장모를 ‘거둬’ 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은 한국 사람이니까 갖는 감사함이다.

    반면, 나와 남편이 함께 시댁 어르신들께 잘 해드릴 때 반응은?
    경우가 바른 분들이니 당연히 고맙다’는 표현을 하신다.
    아들, 며느리에게 공평하게, 깔끔하게… 그러나 진정으로 느끼는 감사함의 감정은 오직 아들에게만이다.
    두고두고 되새김하면서 마음 깊이 느끼는 ‘칭찬’ (심지어) ‘찬양’도 온전히 아들에게이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 ‘아들과 며느리가 보내줘서” “아들과 며느리가 해줘서” “아들과 며느리가 사줘서”…. 가 아니다.
    며느리 이름은 쏙 빠지고 그저 ‘아들이 보내줘서’ ‘아들이 해줘서’ ‘아들이 사줘서’이다.  

    나는 그런 차이를 알고 있었지만 별 문제 삼지를 않았던 이유가 있다.
    일단은 내가 시부모님을 사랑하고,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니 그걸로 만족,
    또 하나, 나도 부모인지라 아들/조카/에릭을 자랑스러워하고 고마워하시는 모습을 이해하고 좋게 보고 지나간 것이다.

    그러다가 시어른들이 아들과 며느리가 한 일을 아들의 공로로만 돌리는 것에 대해 내가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지난 4 월이었다.
    이모님께서 영국을 다녀오신 뒤 우리집으로 전화를 하셨을 때였다.

    ‘에릭, 고맙다. 네가 보내준 돈으로 내가 다른 이들에게 후하게 베풀 수 있었다.
    네 덕에 좋은 구경 잘했다. 조카손자들이 밥 먹을 때마다 “똥똥 에릭! 메르씨!” 하면서 먹었다”라는 하실 때 잠시 내 머리를 스친 생각이 있었다.

    ‘이모님은 다 에릭한테 감사해하시네? 우리가 함께 한 건데…’

    남편이 “저희가 같이 한 일이에요” 라고 하는데 이모님의 귀에는 안 들리시는 듯, 이모님은 에릭게 감사하다는 말로써 통화를 종료했다.

    전화를 끊은 뒤 남편은 ‘감사할 사람은 내가 아닌데…당신이 하자고 해서 난 그냥 따라간 거잖아.
    당신을 빼고 나한테만 고맙다고 하시네. 예의로라도 당신에게 감사해야 하는데…’라고 했다.

    “당신이 하자고 해서 그냥 따라건 건데” 라는 말을 듣는 순간 퍼뜩 어떤 생각이 떠올랐고 그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맞아!
    내가 이모님 여행 경비 보태드리자고 했지!
    에릭이 책정한 액수보다 내가 더 높게 숫자를 불러서 당장 송금했었지!
    매번 그랬어. 우리가 시부모님께 해드린 모든 것은 다 내 아이디어였다. 시부모님도 그렇고 이모님도 그렇고 남편과 내가 같이 해드리는 건데
    다 남편이 하는 것으로 보이시나보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며느리 자리는 한 가지인가 봐?
    친정 부모님은 두고두고 사위에게 고마워하고
    시부모님은 두고 두고 아들에게 고마워하고.. 불공평하다!

    근데 나도 문제였네. 그 불공평을 당연히 여기고 살았으니.

    나는 ‘내가 이런 불공평을 당연히 받아들인 것은 내가 한국산 며느리이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또 다른 문제 제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한국산 며느리이지만 ‘정품’ 이 아닌 ‘짝퉁’이다.
    한국 정품 며느리의 책임의식과 시댁 섬김의 기준은 절대로 쫓아갈 수 없고 쫓아갈 생각도 없는 사이비 한국표 며느리.
    성실하게 때를 맞춰 챙기고 섬기는 스타일이 아니라 (심지어 생일 인사도 패스! 할 때 있음)
    그냥 그때 그 때 몸 건강, 마음에 건강에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을 챙겨드리는 식이다.

    한국짝퉁 며느리가 짝퉁 공경을 하는 것이지만 서양 기준으로는 엄청나게 큰 공경일 수가 있다.
    어쩌면 내가 한국 사람이기에, ‘며느리’ 기준을 ‘한국 며느리 기준’으로 두고 살았기에
    나 스스로를 짝퉁으로만 여기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시댁 어르신들의 아들 사랑’과 ‘아들 자랑’을 탓할 일은 아니라 하겠지만
    며느리가 한 일에 대해서 아들 칭찬을 한다는 것은,  며느리의 노력을 당연히 여기는 것이고 그것은 본질적으로 며느리에 대한 무시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악의가 아니고, 의도적이 아닐지는 모르나, 무시는 무시.

    옛날 내가 결혼하기 한참 전에, 심지어 결혼할 대상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때,
    나름 결혼의 조건을 정해놓고 스스로 다짐했던 게 생각났다.

    “나는 딸의 부모가 눈치 보고 아들 부모가 유세 부리는 결혼은 절대 하지 않을 거야!
    엄마 아버지가 딸 가진 부모라는 이유로 밑지고 사는 일 없게 할 거야”

    현재 나의 삶이 그렇게 불공평하지는 않지만—
    즉 나의 부모님이 사위/시댁 눈치를 보거나, 나의 시부모님들이 나를 박대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동시에 내 삶이 그런 불공평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것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혼자 별별 생각을 다 한 게 4 월, 그 결과 오늘 데이트 중 이모님의 이야기에 평소처럼 즐겁게 하하하하 웃으면서 들어드릴 수 없었다.

    특히 이모님께서 영국 여행 이야기—-내가 며느리 무시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해 줬던 영국 여행—를 하실 때 나는 할 말은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언제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생각하면서 이모님 이야기를 경청 중, 이모님이 이번 우리 가족의 방문을 두고 남편 칭찬을 하셨다.

    “에릭은 정말 좋은 아들이야. 여름에 아주 바쁘다던데 무리를 해서 왔으니…”

    (내가 오자고 한 건데… 남편이 망설였는데 내가 우겨서 애들까지 다 데리고 오자고 했는데…
    암투병 하는 내 엄마 남겨두고 무리해서 온 건데..)

    이모님은 계속 남편 칭찬을 했다.

    “형부가 완전히 달라졌어. 우울증이 날아가버렸어. 너무 기쁘신 거야. 얼굴 표정이 달라요. 에릭이 와준 덕이야.”

    (에릭더러 우리가 와서 아버님이 덜 우울하게끔 만들어드리자고 한 게 나였는데…)

    “이번에 에릭이 온 식구 함께 모이자고 식당 예약을 했단다. 형부, 언니가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몰라. 그렇지 않겠어?”

    (그것도 내가 계획한 건데. 부모에게는 자식들이 잘 어울리는 것만큼 더 큰 기쁨이 없다는 이유로.. 온 가족 선물까지 다 준비했는데...)

    “코로나로 식구들이 함께 만난 게 너무 오래되었거든. 자그마치 40 명이 참석할 거야. 한 사람만 못 오고 다 와. 형부한데 진짜 큰 선물이야.”

    이모님이 재잘재잘 수다에서 잠시 한숨 돌리는 순간, 나는 말을 꺼냈다.

    “이모님, 사실은 그게 다 제 아이디어였어요.”

    이모님은 무슨 소리인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셨다.

    “이번에 부모님 뵈러 오자고 우긴 게 저였고요,  애들 데리고 오자고 우긴 것도 저였어요. 에릭더러 저보다 더 오래 남아 부모님과 시간을 가지라고 제안한 것도 저였어요.  온 식구가 식당에서 다 모여서 시부모님께 사진을 찍어드리자고 제안한 것도 저였어요.”

    이모님이 깜짝 놀라셔서, “ah, bon?” (“아, 그래?”) 하시곤 말을 잃으셨다. 

    “네. 저희가 결혼한 뒤 지금까지 저희가 시부모님과 시댁을 위해서 내린 모든 결정은—그게 무엇이든—제가 제안하고 에릭이 동의를 해서 일어난 일이었어요. 뭐 그 사실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여하간 저희는 그래왔어요.

    결혼 초기부터 지금까지 에릭은 이제까지 ‘나의 부모님을 위해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라고 제안한 적이 없어요.
    에릭이 그런 데까지 생각이 못 미치거든요. 남자들이 좀 그렇잖아요.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것은 아마 제가 한국 사람이라서, 옛날 교육을 받은 옛날 사람이라서 그런지도 몰라요.
    어르신들 섬기는 것을 공경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옛날 사람, 한국 사람이라서…”

    나는 자화자찬을 하는 거라 오해를 받을까 봐 불편했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해야만 했다.
    이모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다행히 이모님은 내가 당신의 칭찬을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시고 계신 것 같았다.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신 걸로 보아하니…

    “맞다. 그러네. 한국 며느리라서 그런 게 있어.
    네가 다른 며느리들과는 정말 달라. 언니랑 형부는 아들이나 딸 집에서 이틀 넘게 잔 적이 없어.
    어떤 아이 집에서는 하룻밤도 잔 적이 없어.
    너희 집에 가면 한 달 넘게도 편히 있었어. 그게 달라.
    에릭 덕이 아니라 네 덕이지.
    며느리가 눈치를 주지 않고 잘해주니까 언니랑 형부가 편하게 있을 수 있었던 거지.”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남편 부모님도 부모님인데 집에 오시면 편하게 모시는 게 당연하지요.
    그런데 그건 제가 아마 한국 며느리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걸 거예요.”

    “그렇다, 그런 것 같다!”

    이모님은 맞장구치셨다.

    이모님이 나에게 몇 가지 물으셨다. (그것도 네 계획이었니? 아니, 그것도 네가 한 거야?)
    그런 질문 자체가 이모님이 나를 이해하신다는 것의 입증이었다.

    우리는 편하게 다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하고 나와 둘이 팔짱을 끼고 근처의 공원에 걸어가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 나누고,
    이모님이 가장 좋아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과자’를 사서 이모님 댁에 가서 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다.
    자그마치 다섯 시간 반 동안의 수다 동안에 슬픈 이야기도 있었다.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이야기였는데 이제까지 듣지 못했던 디테일들이 더해지니 너무 가엾어서 눈물이 났다.

    내가 조언이랍시고,
    “왜 그렇게 힘든 이야기를 혼자 지고 오셨어요? 언니들에게 도움을 청하시지..” 했더니
    “나는 혼자 울고 일어나는 게 마음이 편해. 내 문제를 누가 풀어줄 수 있겠어? 결국은 내가 혼자 해야 하는 거지.”라고 하셨다.

    어둑어둑한 저녁, 나와 팔짱을 끼고 나를 숙소까지 바래다준 이모님은 나에게

    “예쁜 꿈 꾸세요!
    흑백이 아닌 칼라로, 내가 나오는 꿈을 꾸길 바래!”

    라고 윙크를 하신 뒤 뒤돌아 씩씩하게 걸어가셨다. 나의 좋은 친구! 시이모님!!!
    알러뷰!!

    —-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남편에게 오늘 이야기를 나눴다.

    ‘에릭, 당신에게만 고마워하시는 시이모님께 며느리로서 내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여기, 며느리라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무시하지 마세요!라고 요구하는 것 같아서.
    그러나 그냥 지나치면 두고두고 마음에 원망이 생길 것 같아서 했는데 말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라고 하니 남편이 기뻐했다.

    “잘했어. 나는 부모님과 이모들이 내 칭찬하고 나한테 감사할 때마다 너무 미안하고 불편했어.
    내가 당신이랑 함께 내린 결정이라고 토를 달아도 다음번에는 다시 나한테만 감사하다고 하는 거야.
    당신이 직접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 같네”


    —————-


    이모님이 내가 '한국 며느리'라고 하시면서 좋게 봐주셨지만, 한 가지, 나만 알고 그녀가 모르는 게 있다.

    한국산 짝퉁 며느리로서 내가 누리고 있는 축복이 있다는 것을..

    나는 결혼 한 뒤 한 번도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생일도 안 챙기네?"

    "시댁에 왔으면 부엌일을 해야지!"

    "남편이 번 돈으로 시댁에 쓰는 건데 뭐..."

    "어디라고 꼬박꼬박 토를 달아?"

    만약 이런 편파적이고 편협한 '며느리에게 쉽게 하는 말들'을 내가 상습적으로 듣고 있다면 과연 내가 시부모님을 내 부모님처럼 사랑과 공경으로 모시고 싶은 마음이 들까? 부모님이 우리 집에 와서 한 달 넘게 계실 때 좋아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든 부모님을 편하고 즐겁게 해 드리려고 노력했을까? 


    아니다.

    내가 '좋은 한국 며느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부모님들이 애초에 며느리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아들과 며느리의 '재산'을 공동 재산으로 인정하고, 아들과 며느리가 사는 집을 '아들의 집이 아니라 아들과 며느리의 집'으로 여기고,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요구하지 않는 시부모들 이어서이다. 

    나는 짝퉁 며느리이지만 며느리를 인격적으로 예의를 갖추어 대하시고, 그래서 뺏기는 억울함 대신에 베푸는 기쁨을 느끼게 해 주시는 시부모님들은 '진품'이시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나는 진품 시부모님을 정성으로 공경할 것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