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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룰루 생일과 땡스기빙
    엄마 2019. 12. 2. 02:53

     

    룰루의 생일은 12 월 초이다. 올해는 룰루 생일을 땡스기빙으로 온 가족이 모일 때 함께 하기로 했다.. 식구들이 모두 좋아하는 벨기에 식당에 예약을 했다. 육회, 홍합, 달팽이 (이윽...ㅠ) 등 다른 식당에서 쉽게 먹을 수 없는 남편의 고향 음식을 제대로 해주는 곳이다. 음식은 호텔 프랑스 식당 못지 않는 수준이나 시끄러운 백그라운드 음악이 없이 그릇소리, 사람들 이야기하는 소리가 다정한 그런 소탈한 분위에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식당이다. 

    예약한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그런데 에피타이저가 나오기도 전에 시작되었다. 아아...

    우리 가족이 모이면 하는 일,

    고함지르며 하는 토론 ㅠ

    남편과 아이들은 식탁은 밥 먹는 곳이 아니라 말싸움 하는 곳으로 여긴다. 식탁에서 죽자사자 토론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예로 매년 11 월, 미국서 가장 큰 명절인 '감사절'이 화기애애한 가족모임이 아니라 '겨털대첩' '오누이 대첩' 등 싸움으로 내 블로그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은 생일 축하를 하기 위해 특별히 달팽이 먹는 식당에 나온 게 아니던가? 거기서 싸움질을 해?적어도 에피타이저로 식도에 기름칠이라도 한 뒤에 싸움질을 할 것이지....!

    얼굴이 벌개서, 핏대를 세워가면서, 서로의 말을 삼켜가면서, '빠빠, 내 말 좀 끊지 마!' '하...여러분, 제 이야길를 듣고는 있는 거에요? 오마이갓..' '왜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 하는 거야?' '한번 말하면 이해 못하니?' '네 말에는 과학적 데이타가 결여되어 있어' 식으로 악악...

    흥분하면 모국어 발음이 튀어나와 영어 발음이 완전 망그라지는 남편의 영어,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은 다 자기에게 반대의견이라고 가정하고 흥분하는 아들,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 학교에 다니면서 뭔가 좀 안다는 자부심이 강한 딸---

    그러나 이들의 어긋나는 외침을 잘 들어보면 결국은 다 같은 정치 노선에 다 비슷한 의견이다.

    아, 참, 그런데 왜 싸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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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끼어들었다간 싸움이 더 커질테니 그냥 조용히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식당은 만석이었고, 좌 우 옆, 뒤의 테이블은 다 화기애애, 우아, 따뜻, 세련.... 분위기였다. 그저 우리 테이블만 UFC 결승 매치..

    이 혼돈의 상황에 엄마는? 

    2 년 전만해도 우리 가족의 싸움질에 쇼크를 먹었던 엄마, 이제는 마치 선거철 정치가 부인처럼,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 모호한, 고상한 미소를 띄고 앉아 계신다. 언제 우리의 UFC 테이블이 뒤집어질지 몰라 불안할 우리 옆 테이블 손님들은 분명 엄마의 미소를 보고 안심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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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함질이  데씨벨이 너무 올라갔을 때 딸아이에게 말했다.

    "랄라, 좀 웃어~ 우리가 행복한 가정인 것처럼 웃어!"

    딸은 금방 알아듣고 여우같이 쎄~~ 하게 웃어줬다.

    완전 정치가 집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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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하일라이트는 룰루 골탕먹이기. ㅋ 

    이 식당은 생일을 맞이한 사람에게 아/주 요란한 (벨기에의) 생일축하 노래와 함께 초를 꽂은 쵸콜렛 무스를 갖다 준다. 노래가 온 식당에 쩡쩡 울리게 크게 울리고, 박수소리가 요란한 게 특징이다. 식당 종업원들이 둘러싸고 해피 버스데이 노래를 불러주는 게 어떨 땐 좀 슬퍼 보일 수도 있지만, 여긴 아니다. 하룻 저녁에도 몇번씩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퍼지고, 사람들은 함께 짝짝짝짝 박수를 쳐준다.

    그러나, 그런 소란스러움을 질색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의 아들이 바로 그 케이스이다. 그가 생일축하 촛불을 받는 사람을 바라볼 때의 표정은 연민으로 가득차있다.  '참 생일인데 욕보십니다...' 라고 생각하는 듯.

    그런아들의 생일에,  남편과 나는 아들이 싫어하는 생일 촛불을 주문했다.  

    우리의 마음은, '아들아, 미안하지만, 너도 이제 늙었으니까 이런 것도 좀 해봐~~ 웃을 줄 알아야지~' ㅋ

    생일축하 음악이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생일 초가 꽂힌 쵸콜렛 무스를 든 종업원이 주방에서 힘차게 걸어나왔다.

    '아....오늘 이게 몇 번째야. 또 시작이네...' 하는 표정으로 촛불을 바라보던 룰루, 촛불을 든 웨이터가 자기를 향해 직진하는 순간, 갑자기 자기가 주인공임을 깨달았나보다.  그때의 그의 황당한 표정이라니!!

    아, 평생 잊지 못할 깨고소한 순간!

    룰루는 체념의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촛불을 받았다. 룰루의 어정쩡한 미소와 함께, 골탕먹이고 좋아하는 아빠의 웃음, 영원히 기억할 행복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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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만큼 아이가 편해진 거다 싶었다. 지난 2 년, 끔찍하게 힘든 시간을 이겨낸 아들아이...잘못하면 깨질까 두려워 조심조심하던 우리가 아이에게 장난을 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했다.

    아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온 세상이 다 내 것이라도 된 양 행복했다. 

    식당 밖에서 동생이 이렇게 찍자 저렇게 찍자, 몇 발자국 걸을 때마다 멈춰서 여러 포즈를 요구할때도 귀찮아하지 않고 순순히 응해주는 아들, 고맙게 잘 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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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은 땡스기빙.

    비가 와서 행복한 날~~

    저녁 준비를 위해 다른 때보다 약간 일찍 쇼핑을 다녀왔다.

    남들은 땡스기빙에 칠면조를 굽는 전통이 있다지만 우리는 도마질 한번 하지 않고, 오븐 켜지 않고, 프라이팬 한번 안 쓰고 만찬을 차려내는 (음...정확히 말하자면, 5 시에 닫는 마켓이 닫기 직전에 쪼르르 달려가 음식을 사다 식탁에 올려내는) 행복한 전통을 고수해왔는데...

    올해는 남편이 요리를 하겠다고 변절을 했다. ㅠ

    그래서 다른 때는 마켓이 닫기 직전에 갔는데 올해는 좀 일찍 간 것이다.

    오....작년과는 사뭇 다른 마켓 분위기에 놀랐다.  작년에는 마켓 닫기 전에 이미 만들어진 음식들을 사는 사람들뿐이었는데, 좀 일찍 가보니  (신선한) 고기 생선등, 직접 요리를 해야하는 식자재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요리하는 사람들'  대열에 껴서 쇼핑을 하다니~!!

    집에 돌아와 운동하고 낮잠자고 4 시에 남편이 밥을 시작했다. (인스타팟에 하면 음식이 엄청 빨리 된다.)

    엄마가 피칸파이를 구우셨다.

    친구가 보내준 선물--예쁜 그릇-- 덕에 식탁이 우아했다. (감사합니다!)

    음식 향기가 진동하고 음악이 울려퍼지고...요리에 힘을 쏟지 않은 팜페미는 기운이 남아 넘쳤다.

    랄라와 댄스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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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에게 미안하게도 그가 만든 맛있는 밥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었다. 다 먹고 나서 빈 그릇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이 센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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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랄라는 내가 구세군에서 3 불 주고 사준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반갑게도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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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탁 맞은 편에 앉은 랄라가 온갖 폼 잡으며 '엄마 우리 예쁘게 찍어줘~~' 했다.

    그래서 이렇게 찍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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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랄라의 '이으....괴기스러워!' 라는 반응에 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전날 벨기에 식당에서 엄청 쎄게 토론을 해서인가, 올해 땡스기빙은 유달리 평온하고 즐거웠다.

    내년에도 꼭 전날 다른 곳에가서 식사하면서 싸워주고, 땡스기빙은 평화롭게 지내야겠다 생각해본다.

     

    아버지가 떠나신 뒤 두번 째 땡스기빙.

    아버지의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고 너무도 그리웠다.

    아무 말씀 안하셨지만 엄마도 분명 나처럼 아버지 생각을 많이 많이 많이 하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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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3 대가 함께 모여서 할 수 있는 행복한 땡스기빙,

    앞으로도 오래오래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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