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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 한 명을 돌보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부모님 이야기 2019. 4. 30. 12:02

    아프리카 속담에 "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라는 말이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책 제목으로 사용해서 유명하기도한 구절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정말 옳은 소리다. 어린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직계 가족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의 조부모, 이웃, 교사, 종교적 지도자, 의사, 정치가, 비영리단체의 봉사 등 '마을' '사회'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사실은 어린이를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인을 돌보려면 온 마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직계 자손뿐만이 아니라, 손자 손녀, 이웃, 종교적 지도자, 의사, 정치가, 사회 정책, 시설...그렇다, 한 노인을 돌보려면 온 마을이 힘을 합해야한다. 

     

    이번에 나는 오프라를 보면서 노년은 정말 '함께 가야하는 길'임을 절실하게 느꼈다. 오프라에게는 자기 자신이 노년의 플랜 B 이고, 그녀가 아무리 독립적이고, 자신을 영리하게 관리를 한다고 해도, 그녀를 보이지 않게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바로 그녀를 돌봐주고 있는 '마을'이었다. 오프라라는 노인 한 명을 돌보기 위해 온 마을이 협력하고 있었다.

     

    남편이 떠난 뒤 1 년간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아가던 오프라를 굳세게 잡아준 것은 오프라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대로 받아준 가족, 친구, 이웃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듯이 오프라를 은밀히, 은근히 도와오고 있다. 출판사 직원인 로닛과 카멜은 오프라의 매일매일을 지켜주는 든든한 도우미로서 은행 사무, 병원가기, 정원 돌보기, 운동, 집안 일, 일주일에 한번씩 해야하는 쇼핑 등 크고작은 일들을 돕는다. 오프라가 멀리 가족 모임에 가야하면 가족같이 친한 친구 (지난 번 글에 썼던 점성술학자!)가 어김없이 나타나서 운전을 해주고 노나와 엘론 부부는 오프라를 방에서 끌어내어 운동을 하게끔 만들었다.  조용한 성격의 엘론은 남에게 뭘 강요하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오프라에게만은 우겨서 그녀가 자신의 팔짱을 끼고 (돌아가신 남편에게 그러했듯이) 밤길을 안전히 걸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돌아섰다.  (엘론이 오프라가 자신을 의지해서 걸을 수 있게 팔을 내어주는 것은 돌아가신 남편에게 "나를 잡아줘요" 라고 할 수 없게 된 오프라에겐 한층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그런 도움이었다.) 손자 손녀들의 방문, 그들이 보내주는 카드, 메시지 등도 깊은 애도 속에 고통받던 오프라를 밝은 현실로 끌어내어 미소짓게 만들어주었다. 차로 1 시간 20 분 거리에 사는 아들들은 유명하고 성공적인 변호사, 정치 자문인으로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나타나 엄마와 차를 마시거나 점심을 먹고 사라졌다. 그들이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나타나 빈집을 북적북적하게 함은 물론이다. 내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오프라를 돌보았다. 고맙다는 말을 할 필요 없게끔 은근한 도움은 오프라가 자신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게끔 도와주면서, 동시에 오프라가 삶의 방향성을 잃지 않거나 실족하지 않게 해주었다.

     

    밤 10 시, 11 시 이후에 오프라는 큰 집에 혼자 남겨지지만, 그녀에게는 유난을 떨지 않고 은근슬쩍 돕는 사람들이 열어주는 밝은 아침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주던 매일매일의 사랑은 사라졌지만 다른 사랑이 그녀의 삶을 채워주기 시작했다. 오프라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온 '마을'이 힘을 합하는 모습에,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때 아이들에게 '고맙다' '미안하다' 라는 말을 기대하지 않듯이 그런 자유를 주는 사랑의 아름다움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나의 아버지도 '노인 한 분을 모시기 위해서 한 마을이 필요하다' 라는 말의 아주 좋은 예이다. 아버지의 돌봄의 주 책임자인 내가 이렇궁 저렇궁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엄마의 도움은 절대적이었고, 매일매일 나와 함께한 도우미들과 일주일에 세 번 아버지에게 물리 치료를 해준 레니의 수고와 사랑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엄선생님은 본인의 사업을 중지하고 한국에서부터 날라와 아버지의 전신 마사지를 해주고 갔고,  박홍관 목사님과 사모님은 샌디에고에서부터 오셔서 예배를 인도하고 기도를 해주셨다. 이모와 이모부, 준규 목사 가족도 돈들여 여행을 와 부모님께 기도를 해주고 갔다.  성경 공부 모임의 친구들의 음식과 기도와 그들이 가져다주는 꽃과 화초들은 우리 온 식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고, 선아, 미숙이, 리사는 뛰어난 요리 실력으로   지친 나와 엄마가 맛갈나는 한국 음식을 먹게해주었다.  아버지를 '하라부지'라고 부르며 방학때마다 찾아와 기도해준 션과 노라, 할아버지를 위해 컴퓨터로 성경구절로 예수님 그림을 그려 방에 걸어주고 간 죠셉....

     

    그리고 너무도 고마운 분은 나의 언니. 

     

    타주에 사는 언니는 예술가이자 대학 교수, 교회의 여러 일을 담당하는 일꾼으로 매일매일이 무척 바쁘다. 가르치랴, 작품활동하랴, 살림하랴, 언니는 일분 일초를 아껴가면서 치열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언니는 일년에 7-8 번이나 부모님을 도우러 우리집에 왔다. 아버지 생신, 추수감사절은 물론이고 자신이 짜낼 수 있는 시간은 다 짜내어 부모님을 뵈러 오고 내가 이틀, 사흘이라도 온전히 쉴 수 있게 해주었다. 게다가 여름에 3 주동안 와 있으면서 에릭과 내가 여름 휴가를 가질 수 있게끔 도와줬다. 요리를 못하는 형부에게는 부인이 집을 떠나면 본인이 아주 불편함에도 언니를 적극 지원해주고, 여름에 같이 와서 아버지 산책, 안마, 그리고 형부 특유의 공손한 유머로 엄마 아버지를 즐겁게 해주었다. 

     

    물론 실제적인 일은 내가 한다지만, 언니의 존재는 육체적 안전만이 아니라 정신적/감정적인 안정을 위해서 아주 중요했다. 

     

    언젠가 언니의 작품을 만드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언니는 아버지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책상에 놓여있는 작품 속의 아버지의 얼굴은 내가 매일매일 바라보고 사는, 누워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 옆에서 사진을 올려다보는 언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바로 그게 나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니는 '예술'로서 아버지의 몸을 만지고 있는 것이고, 나는 '현실'에서 아버지의 몸을 만지고 있는 것이 다를 따름,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방식으로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노년의 플랜 B 가 된 오프라도, 노년과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한 아버지의 태도도 참 훌륭했다. 그러나 그들이, '노인 자신'이 그렇게 의연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바로 '마을' 이었다. 한 노인을 돌보기 위해서는 '마을'이 필요한데  그  '마을'은  직계 자식이기도 하고, 이웃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자식의 친구이기도 하다는 게 나에게는 체험을 통해 얻은 진리이다.

     

    이 글을 쓰면서 꼴렛이가 아버지 장례식 때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게 '노인 자신'과 '마을'의 역할과 시너지를 잘 요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용해보겠다.

     

    "저는 고등학교 때 공부하다가 새벽에 아래층에 내려가 물을 마시곤 했는데 할아버지는 그 이른 시간에 어김없이 책 속에 파묻혀 공부를 하시곤 했어요. 할아버지는 저를 보면 깜짝 놀라시면서 반가워하셨어요. 할아버지는 책을 사랑하셨고, 지식을 끊임없이 추구한 호기심이 많은신 분이셨어요. 할아버지께는 세상에 배울 게 너무도 많았고, 읽을 책도 많아서, 그래서 할아버지는 새벽이든 밤이든 언제든지 공부를 하신 것이지요. 할아버지는 정말 존경할 만한 삶을 사셨어요. 저는 어젯밤 여기의 많은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할아버지는 많은 일들을 하셨고 여행도 많이 하셨고,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할아버지 특유의 고귀함을 유지했던 것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난 3 년간 병상에 계실 때도 할아버지는 존엄성을 잃지 않았고, 돌아가신 후에 조차 할아버지께는 고결함이 있었어요."

     

    여기까지는 '노인 자신'으로서의 아버지를 이야기했다면 그 다음은 바로 '마을'의 몫을 이야기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그 고결함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존해준 것이기도 하다고 느껴요. 지난 3 년간 엄마가 자신의 삶의 여러 부분을 포기하고 할아버지를 돌보았는데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할아버지를 돌보면서도 내내 기쁨을 잃지 않았어요. 지난 10 월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할아버지를 담당한 간호사들마다 병실에 들어오면 "아, 이분은 주름하나 없네!' "미스터 강은 완벽한 피부를 갖고 있다!" "3 년간 욕창이 없었다니!" 하고 감탄했어요. 한사람도 빼지 않고....그걸 보면서 저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피부를 유지한 것은 할아버지가 젊어보이는 핸섬한 얼굴을 타고나서가 아니라 엄마, 할머니, 이모의 정성 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나는 꼴렛의 이야기를 그대로 기록하면서도 깊이 새겨듣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프라의 삶을 엿보면서 노인의 존엄성, 노인의 고결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고결한 철학과 굳은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지켜줘야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꼴렛의 speech 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온 마을의 협력이 필요하다'에서 '마을'이란 '직계 가족을 넘어선 이웃/공동체' 를 의미하기도 하고 (클린턴이 의미한 것처럼) 더 큰 의미의 '사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노인을 돌보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린이 문제처럼 노인 문제는 모든 사회 문제와 마찬가지로 분명 정부 지원정책과 사회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가족만의 문제로 버려지면 안된다. (안타깝게도 미국이나 한국이나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아무리 힘들더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바꿔가야할 일이다. 

     

    그러나 그 구조적, 정치적, 사회적 개선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마을'의 일원이 되고자하는 마음가짐이 아닌가싶다. 노인들을 해결해야할 문제거리, 골칫거리로 보지 않고, 그들을 이웃으로 여기고, 그 이웃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의 약함과 어두움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 하고, 그들에게 사소한 도움이라도 주려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 '마을'은 참 살만한 곳일 것이다. 

     

    얼마 후 나는 '노인'이 될 것이다. 내가 속한 마을의 이웃들이 나에게 적대적이고 나를 골칫거리로 여기지 않는 따뜻한 마을이었으면 좋겠다. 지금 나는, 내가 그나마 조금 젊은 이 때에 나의 마을에 사는 노인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드리려고 노력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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