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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 노년의 Plan B 는 무엇인가요?
    부모님 이야기 2019. 4. 25. 09:39

    노년의 Plan B 는? 

     

    Plan B 는 현실적인 대안을 일컫는 말이다. 모든 요건을 다 만족시켜주는 그런 답은 아닐지라도 실제적으로 적용을 할 수 있는 그런 플랜, 그것을 플랜 B 라고 부른다. 에릭이랑 나는 지난 10 년간, 멀리 계시는 벨기에 부모님, 한국 부모님의 노년을 걱정하여 '자주 '플랜 B 가 뭘까' 라고 둘이 궁리하곤 했다.

     

    우리 둘이 생각하기에 한국 부모님은 미국에 오시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싶어서 진지하게 초청했으나 툇자 맞았고, 벨기에 부모님의 현재 사시는 집은 노인들이 살기에는 불편한 집이라 여겨 집을 팔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작은 집으로 옮기시라고 권유했으나 그것도 툇자. 우리가 생각하는 플랜 B 와 양가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플랜 B 는 달랐다.

     

    그런데 운명이 개입하여 친정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시고 억지로 미국 이민을 하게 되셨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바람직한 플랜이었는데 그게 어떻게든 이뤄지게 된 것이다.  엉겁결에 모든 일을 해결해야했고, 결국 다 잘 되어 부모님은 미국에 잘 정착하셨다. 원래 우리가 플랜 B 를 계획해서 실행했더라도 이렇게 잘 해결되었을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준비는 항상 하고 있지만 일이 닥칠 때 허겁지겁 해나가야하는 것--플랜 C 라는 게 존재한다 싶었다. 그래서 시부모님은 아직도 완강히 집을 팔 수 없다고 버티실 때 우리 입장을 강하게 피력할 필요가 없다고도 싶은 게, 마음의 준비를 해두고, 여러 가능성의 준비를 해뒀다가 일이 터지면 그때 신속하게 결정하는 게 더 낫다 싶어서이다.

     

    우리가 내내 노인들의 플랜 B 를 고민하는 경향이 있어서인가, 2016 년 여름 에릭과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에릭이 오프라와 아로디와 이틀 지내고 난 뒤에 나에게 물었다.

     

    "오프라와 아로디의 플랜 B 는 뭐야?"

     

    에릭도 나처럼 오프라나 아로디 두분 중의 한 분이 사고를 당하거나 쓰러질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혼자 생각했었구나! 

    나도 그게 내내 고민이었다.

     

    오프라와 아로디는 정원이 큰, 아름다운 집에서 단둘이 살았다. 정원 한쪽에 그들이 운영하는 조그만 출판사 건물이 있다. 손자 손녀가 어렸을 때는 자주 찾아와 집안이 북적북적했으나 아이들이 다 성장한 뒤로부터는 찾아오는 일이 적고, 큰 가족 모임도 식당을 빌려 하면서 집안은 대부분 조용하다. 팔순의 노부부가 단둘이 사는 집은 평화로움이 감돌지만 동시에 언제 돌발할지 모르는 폭풍전야의 평화가 주는 위기감이 맴돌기 마련이다. 나는 속으로

     

    한분이 사고를 당하시면 간병인을 둬서 집에서 모실 수 있을까? 집의 구조가 그러기에 적합한가?

    누군가 먼저 떠나시면 남은 분이 이집에서 혼자 사실 수 있을까? 집이 너무 크고 정원이 커서 더 외롭진 않을까?

    혼자 산다면 넘어지거나 쓰러질 때 신속히 대처할 사람이 없을텐데?  

    자신 중의 하나가 부양을 하려고 할까? 그렇다면 누굴까?

     

    많은 생각을 했었다.

     

    오프라 댁에서 머문 사흘째, 오프라가 당신들이 다음날 병원에 간다면서 우리는 알아서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그런데 에릭이 선뜻 제안했다.


    "제가 병원에 모셔다드릴께요. 제가 운전할께요."

     

    오프라는 펄쩍 뛰었다. 하루 일정을 포기하고 왜 병원에 가냐고. 

     

    나도 의아했다. 나야 당연히 오프라와 아로디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것을 선호했다. 옛날에 가이드까지 했던 나라이니 볼 것 다 봤고, 새로운 거 못본다고 아쉬울 것도 없었다. 더군다나 애초에 여름 휴가를 이스라엘로 간 이유가 병약한 아로디를 뵈려고 한 것이지 않았나. 그러나 

    이스라엘이 초행인 에릭이 하루 일정을 포기하다니, 그것도 남의 병원을 따라가겠다고?

     

    (나중에 에릭에게 정말 괜찮냐고 물으니 에릭은 '내가 원하는 일이다.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한마디로 끝냈다.)

     

    다음날 우리 넷은 차를 타고 하이파 시로 향했다. 평소에는 두분이 택시를 타고 간다고 했다. 우리 넷은 마치 소풍을 가는 것처럼 들떴다. 차안의 분위기가 즐거웠다.

     

    이런 저런 이야기에 참여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면서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까지만해도---부모님이 미국으로 이민오시기 전--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게 특혜같이 부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두분이 마을버스, 전철, 버스를 타고 병원, 치과 다녀오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난 너무도 죄송했다. 병원에서 수속하고 앉아서 기다릴 때---그 외로운 시간에----같이 있어드리고 싶었다.

     

    나에게 트라우마처럼 또렷이 박혀있는 기억도 있다. 엄마가 응급실에 입원했던 어느 날, 우리 맞은편 침대에 누워 있던 아주 아주 늙은 부부.침대에 누워 있는 할머니는 눈을 뜨지 않고 가쁘게 숨쉬며 잠을 자는 듯했고, 그 옆에서 고개를 팔에 묻고 꼬박 잠을 자던 삐쩍 마른 할아버지, 잠깐 깨어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할머니 발에 양말을 신겨드리고는 다시 의자로 돌아가 잠에 빠져들던 그 할아버지의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그 노부부의 모습은 자식들이 한국에 없는 나의 부모님의 미래라 싶어서였다. 

     

    평소에 그런 효도를 받아보지 못했던 부모님은 위급 상황에 내가 한국에서 부모님의 병원 일정을 돌봐드리게 되었을 때, 그리고 미국에 오셔서 내가 병원에 모시고 다닐 때마다, '고맙다, 고맙다, 우리가 이런 호강을 하다니, 정말 고맙다. 너도 바쁜데...' 하셨다. 

     

    하이파시를 향해 가는 차안에서 오프라, 아로디도 우리가 같이 하는 것을 무척 즐기는 게 느껴졌다.

     

    클리닉에 도착했다. 한국은 어쩐지 모르겠는데 이스라엘에서는 중병이나 전염병이 아닌 경우 큰 쇼핑 몰 안에 의료 클리닉들을 둔다고 한다. '환자'와 '일반인'이 굳이 분리될 필요가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쇼핑을 가듯이 병원도 가벼운 마음으로 가라고.... 아로디의 심장 클리닉은 하이파 시의 그랜드 캐년이라는 커다란 쇼핑센터 안에 있었다.

     

    우리 앞으로 걷는 오프라와 아로디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두분은 서로서로를 의지해서 걷고 있었다. 균형감각을 잃어 누군가를 잡아야하는 오프라는 아로디를 지팡이 삼아 잡고 있었고, 아로디는 자신의 심장병을 간호해주는 오프라의 존재 자체를 의지해서 ---활기찬 젊은이, 어린이를 둔 가족들이 큰 쇼핑백을 들고 활보하는 분주한 쇼핑센터를---천천히 걷고 있었다. 바닥은 반들반들하니 미끄러워 균형감각을 위협하고, 비슷한 가게들이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으니 방향감각을 위협하니, 오프라와 아로디는 조심스럽게 두리번 거렸다. 그 위태위태한 모습이 나에게는 쇼킹했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열정적으로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면서 살던 오프라와 아로디의 모습은 없었다. 화려한 삶을 뒤로하고 결국은 맞이한 노년의 병약함과 외로움이 그들의 걸음걸이에서 묻어났다.

     

    그날 밤, 나는 자연스럽게 오프라에게 물었다. 위급 상황이 닥쳤을 때 플랜 B 가 무엇이냐고.

    오프라는 아로디가 죽는다는 것은, 그리고 그 이후의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심리학자로서 자신의 그런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음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내가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미안했다..

     

    나중에 나의 여동생 비비와 오라버니 드로에게도 플랜 B 가 뭐냐고 물어보았다. 둘 다 자기들이 돌볼 것이라고 했다. 특히 드로는 자기 집의 아랫층의 침실을 가르키면서 '저게 엄마 방이야' 라고까지 했다.  그런데 그건 아주 먼 훗날, 남아있는 한분이 거동이 불편할 때의 이야기였다.  배우자가 돌아가신 뒤 당장의 플랜은 없었다.  나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더 이상 이 문제를 고민할 수도 없었다.

     

     

    배우자의 죽음---삶을 새로 배우기

     

    에릭과 내가 이스라엘을 방문한지 6 개월 후 아로디는 세상을 떠났다. 오프라는 예견했으나 부인해온 '죽음'이라는 사건이 닥치자 거의 얼어붙었다. 슬픔과 애통 속에서 세상과 단절했다. 상처받고 무서워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동물마냥 오프라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오프라와 자주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그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말을 걸고 위로를 하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고, 어떨 때는 위로해주는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까지 된다고 했다. 

     

    "사람들이 나한테 염려에 가득찬 표정으로 인사를 할 때 내가 활기차게 인사를 받으면 '아, 오프라,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다' 라고들 해. 그럼 나는 '책 표지로서 책을 판단하지 말아요' 라고 해.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자기들 맘대로 생각하지는 말라는 거야. 난 너무 아프니까. 날 그냥 그대로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

     

    그러나 이번에 오프라를 방문하면서 나는 커다란 변화를 목격했다.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애도의 고통 중에도 오프라는 자신의 삶을 재정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새롭게 주어진 여러 장애물들을 극복해내고, 그 과정에서  이제까지 남편과 있을 때에는 개발할 기회가 없었던 여러 능력들을 개발해내고 있었다.

     

    한 예로, 정원 가꾸기.

     

    도착한 첫 날, 오프라는 나를 정원으로 안내했다. 올해 비가 많이 와서 정원은 잡초로 무성했다. 오프라는 올해는 전례없는 많은 비가 와서 집에 내내 갇혀 있었는데 내가 오는 날부터 해가 나기 시작했다며 내가 행운이라고 했다. 정원 한 가운데에 네모난 콘크리트 '터전'이 있었다. 정원 의자가 놓여있었다. 우리는 그곳에 앉았다. 무성한 나무들이 자연적인 그늘을 만들어주어 아늑한 가운에 앉아 있자니 꽃들의 향내가 느껴지고 빛을 받은 여러 나뭇잎들의 반짝임, 그리고 가지각색 꽃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네가 내년에 올 때쯤은 이 정원은 완전히 달라져 있을 거야.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콘트리트 터전은 명상의 장소로 아름답게 꾸며질 것이고....집에서부터 여기 명상의 장소까지는 자갈과 자연석을 사용해서 길을 낼 거야.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흙에 잠기지 않게끔. 작은 꽃들도 심고. .....네가 이미 알아봤을지도 모르겠지만 현관 앞의 큰 나무를 제거하고 패티오를 크게 만들었잖아? 그래서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게...."

     

    오프라는 나에게 여러 계획을 이야기하다가 웃었다.

    "아로디가 내가 이렇게 정원을 꾸미고, 개조하고, 새로운 구조물을 건축하는 것을 보면 무척 놀랄 거야. 아마 자랑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좋겠네."

     

    오프라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반추했다.

     

    "아로디와 나는 굉장히 동등한 관계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했지만  가사 노동과 집안 일은 전통적인 남성/여성의 역할분담을 그대로 고수했어. 내가 식사와 빨래 담당, 아로디가 재정, 자동차, 정원, 집수리 등등을 담당했지. 내가 한 일보다 아로디가 담당한 일이 훨씬 더 많았어. 나는 자잘한 일에 신경쓰지 않고 내 커리어에 집중할 수 있게 아로디가 도와줘서 너무도 고마웠어.

     

    문제는 아로디가 떠난 뒤였어, 내가 아는 게 거의 아무 것도 없더라고. 정원은 물론이고, 은행, 재정, 그리고 출판사 업무. 내가 커리어에 집중하는 동안 소홀하게 했던 것들, 남편이 다 해줬던 그 모든 일이 숙제처럼 내 앞에 놓여 있겠지.

     

    아예 포기를 하거나, 아니면 새로 배우거나. 그게 내가 선택해야할 일이었어. 아로디는 아마 내가 출판사를 닫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몰라. 그가 돌아가시기 6 개월 전에 쓴 쪽지에 '직원들에게 퇴직금 주고 출판사 정리하기' 라고 씌여있더라고.

     

    그러나 나는 다 배우기로 결정했어. 지금도 계속 새로 배우고 있어. 내 나이에, 더군다나 남편이 떠난 뒤의 슬픔에 빠진 상태에서 새로운 삶의 기술을 배우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출판사 일도, 은행일도, 정원일도, 집수리도, 나는 어떻게든 해나가고 있어. 사람들을 고용하고 관리해서 하는 것이지만 결국 내가 배워가면서 하는 일이기도 해. 지금 날 보고 아로디가 많이 놀랄 거야."

     

    오프라의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 남편을 애도하고 있던 오프라는 이제 몸의 균형감각을 되살리기 위해서 운동도 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트레이너를 고용해서 운동을 하고, 한번은 친구와 함께 문화센터에 가서 운동을 한단다. 특히 지난 해부터는 '억지로 나 스스로를 끌어내다시피 해서' 여행을 시작했으며, 비록 예전처럼 걷지 못해 휠체어를 사용해야하지만, 그렇다고 못갈 곳도 없고 못할 일도 없다는 기세로 그녀는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일본, 에스토니아, 프랑스로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심리학 웍샵을 했다.

     

    그런 근황을 나누면서 오프라는 여전히 남편 이야기를 한다.  혼자 다니면서 너무 허전하고 슬프고, 옛날 남편과 같이 다니던 기억이 새롭고, 매일매일 그가너무도 그립단다.

     

    "난 정말 행운이었어. 아로디를 내 남편으로 두었었다니....

    난 그를 사랑해. 나는 뭘 하든지 아로디와 함게 한다고 생각해. 안 그럴 수 없는 게 그 생각이 떠나지를 않으니까..."

     

    대화의 반 이상은 돌아가신 남편의 이야기이지만,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 그리고 죽은 남편에 대한 변치않는 사랑이 그녀의 현재를 마비하거나 동결시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했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개척해나가는 오프라가 참 자랑스러웠다. 

     

     

     

    "내 손을 잡아줘요"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때는?

     

    다음날 우리는 가까운 친구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친구가 차로 집에다 바래다 주어 내리는 순간, 나는 오프라가 균형을 일을까 두려워 재빨리 오프라 쪽으로 달려갔다.

     

    "괜찮아. 여기는 내가 걸을 수 있는 곳이야. 이것 봐. 파란색 레일이 보이니? 이게 내 지팡이야."

     

    그제서야 내 눈에 파란색 레일이 들어왔다. 집 입구에서부터 정원까지의 긴 길에 쭉 울타리같은 레일이 이어져있었다. 오프라는 두 손으로 레일을 잡고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대문에 도착하자마자 레일에서 손을 떼어 더듬더듬 대문을 잡고 균형을 유지하면서 정원 안으로 들어가더니만, 들어가자마자 담벽을 타고 있는 레일로 재빨리 손을 옮겨 다시 두 손으로 레일을 잡고 걸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온 정원과 집이--대문에서 집까지, 집에서 정원까지, 정원에 있는 작은 출판사 건물까지--다 손잡이/레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큰 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 오른쪽의 울타리의 중간의 줄이 손잡이 레일.

     

     

     

    "오프라, 이렇게 레일이 많은지 몰랐어요? 왜 이렇게 설치했어요?"

     

    "나를 잡아줄 손이 없으니까...."

     

    오프라는 말을 이었다.

     

    "아로디랑 내가 외출했다 들어올 때, 나는 차에서 내리는 순간, 항상 아로디에게 말했어..

    '뗀 리 야드' (당신의 손을 나에게 주세요/제 손 잡아주세요)'  

    아로디는 나의 손을 잡아주었고, 나는 그를 의지해서 걸어 집으로 들어오곤 했어.

    그런데 아로디가 떠나버린 거야.  내가  '손을 줘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어."

     

    나는 울컥 슬픔을 느꼈다.  '손을 잡아줄 사람이 없다'라는 사실이 아로디의 죽음, 그의 영원한 사라짐의 구체적인 증명같이 느껴졌다.  매일 지팡이처럼 남편을 붙들었던 오프라는 이제 손을 잡아줄 사람이 없으니,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의 부재를 육체적 장애를 통해 느끼고 있겠구나. 

     

    오프라는 말을 이었다.

     

    "나에게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아로디가 없는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지? 나는 어떻게 혼자 설 수 있을까...

    밖에 나갔다 집에 들어오는 간단한 일이 나에겐 위험한 일이거든. 내가 언제 어디서고 넘어질 수 있으니까...정원의 한쪽에 있는, 집에서 20 미터 거리에 있는 출판사 건물까지 가는 일도 위험한 일이고. 그래서 온 집안에 레일을 설치한 것이야.

    지금 나는 어떻게 해서든 나의 자율성, 자유, 육체적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가에 집중해서 살고 있어. 안전과 독립성, 그게 너무도 중요해."

     

    나는 '아!' 탄성 질렀다.

     

    "오프라, 당신은 정말 창의적인 사람이에요! 독립적이고, 자율적이고, 정말 멋져요!"

     

    진짜 그랬다. 아직까지는  '그냥 조심조심 다니지 뭐...' 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의 집은 그렇게 끔찍하게 위험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그런데도, 오프라가 자신의 독립과 안전을 위해서 온 집안에 '손잡이 레일'을  장치를 한 것이, 그 기발한 발상과 추진력이 대단하게 보였다. 80 세의 그녀는 '더 늙은 때'를 대비하는 '노후준비'를 하는 현명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날 밤, 오프라가 잠자리에 들기 전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로디의 부재를 또한번 실감했다. 밤에 집의 문단속은 아로디의 몫이었다. 이제는 오프라가 그 일을 한다. 오프라는 구석구석 돌면서 창문 하나 하나 꼼꼼히 다 잠구고  원격조정기를 사용해서 문/창문 밖의 철재 차양을 내렸다. 온 집안이 마치 갑옷을 입은 것같았다. '뗀 리 야드' 라고 할 때 손을 내밀어 줄 아로디가 없다는 말이 또 떠올랐다. 

     

    '지금은 내가 와 있다지만, 다른 때는 오프라가 매일밤 혼자 이 큰 집의 문들을 하나 하나 닫는 것이겠지....그걸 오프라는 해내고 있구나.'

     

    오프라가 먼저 자러 가고, 나는 늦은 밤에 목욕을 하려고 발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걸어 목욕탕으로 가던 중, 바로 목욕탕 옆의 오프라의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게 보였다. 오프라의 잠을 깨울까 싶어 불을 안켜고 있어서였나, 시각을 못쓰는 대신에 모든 감각이 다 살아나서인가, 조용한 가운데 오프라의 숨소리가 들렸다.  작지만 새근새근 고르게 나는 숨소리. 

     

    복도에 서서 그 숨소리를 한참 들었다. 평소에는 이 큰 집에서 오프라의 숨소리를 듣는 사람도 아무도 없겠구나...

     

    오프라는 여전히 침대의 반쪽을 아로디의 자리로 남겨두고, 아로디의 벼개닛도 정기적으로 갈아준다고 했었다. 그렇게 아로디의 존재는 죽음 이후에도 오프라를 붙들어주고 있었다. 큰 집, 큰 정원에서 외로움과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돌아가신 아로디를 의지해서 열심히 살고 있는 오프라에게 존경심이 느껴졌다.

     

     

     

    플랜 B----혼자 서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

     

    이스라엘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내 마음이 약간 가벼워졌다.  2 년 반 전에 에릭이 물었던 "What is the plan B?"  (아로디가 세상을 떠나면 오프라가 어떻게 살아가나?) 의 답이 나온 것 같아서였다. 

     

    오프라가 혼자 이 집에서 살아내는 것이 플랜 B 였다. 오프라가 선택해서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앞서 말했듯이 오프라는 원래 'no plan' 이었다.  '난  아로디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난 아무런 계획도 할 수 없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게 주위 사람들에게는 좀 답답해보일지 몰라도 그게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반응인지도 모른다. 나의 오빠, 아버지와의 경험으로도 볼 죽음 이전에 했던 여러 계획들은 그대로 실행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아닌 것도 많았다. 죽음 이후 몇 주, 몇 달,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가는가는 그 죽음이 어떤 식으로, 어떤 시기에 일어났는가에 따라---전혀 예측할 수 없는 변수에 따라--달라지기 마련이다. 집은 이사를 해야하나? 유품정리는 어떻게? 남은 배우자가 혼자 살 수 있을까?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어떻게? 이런 아주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사실은 아주 중요하고, 처리하기 힘든 문제로 떠오르는데 그것을 미리 계획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러니 'no plan' 이 되는 것이다.

     

    오프라는 'no plan' 이라고는 했고 아로디 죽음 후 1 년 반 정도는 슬픔으로 점철된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오프라는 '삶을 선택했다.'   오프라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아로디 떠나고 첫 해, 사람들은 내가 자살할까봐 두려워했어.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게다가 한동안 내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온 집안의 문을 꼭꼭 잠구고 살았으니 자살할까봐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지. 매일 아침 내가 살아있나 체크하러 들리는 친구가 있을 정도였으니...그러나 자살은 나에게 선택권이 될 수 없었어. 슬프다고 자살할 수는 없었어. 물론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에 대한 매력은 있었지만 그걸 선택할만큼  나는 그렇게 무책임하지는 않으니까..."

     

    자살, 자기 파괴 행위 등의 옵션을 제외한 뒤에는 여러 가능성이 존재했다.  오프라의 경우에서처럼 사별 후의 삶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더라도 자신의 삶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바로 그 포기하지 않는 위치 매김 자체가 삶의 방향을 긍정적으로 돌려놓았다. 압도적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일도 못했고, 건강도 상했지만, 삶의 나침판은 내내 '살기 (living)'로 향해 있었기에 그녀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새로운 책임을 담당했고,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갔다. 얼마나 멋진 자리 매김인가! 얼마나 멋진 균형감각인가! 얼마나 멋진 삶인가!

     

    노년에 몸의 균형감각은 훼손되어도 삶의 균형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오프라는 증명했다.  그녀는 노년에 혼자 사는 삶의 여러 위험을 첨예하게 인식하지만 그것으로 자신에게 한계를 두지 않았다. 되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자율, 자유, 독립의 삶을 위해서는 그런 위험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현명하게 받아들였다. 실로, 그녀가 혼자 살면서 맞닥뜨리는 위험은 도처에 있다.  거동이 불편한데 큰 집에 혼자 살자니 외로움으로 인한 우울증은 물론이고, 목욕탕, 거실, 부엌, 정원 등 친숙한 공간들이 사고와 죽음으로 인도하는 함정이 될 수도 있으며 사고가 났을 때 운이 안 따르면 오랜 시간 동안 아무와 연락이 안되어 응급 치료의 골든 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기가 아직도 가르치고, 소통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삶을 추구하려면 이제까지 자기가 살아온 집이 자기에게 최적의 공간임을 알고 포기하지 않는다. 그 주거 공간이 다리가 불편하고, 균형이 불안정하고, '손을 잡아줄 남편이 없는' 그녀에게 위험한 공간이 될 수 있지만 그녀는 자신의 독립과 자율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해내서 새로운 '솔로형 보금자리'로 재창조해버렸다.

     

    플랜 B, 그것은 오프라 자신이었다.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고, 독립과 안전을 꾀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계속 추구해가려는 마음가짐, 그게 바로 플랜 B 였다. 성공적 플랜이다. 거기에 덧붙여, 삶의 도처에서 언제고 공격하려고 웅크리고 있는 험상궂은 위험이란 맹수를 허를 찌르는 그런 꼼꼼한 자기 보호, 안전 장치를 만들어가는 노력의 과정은 자칫 무력하고 암울하게만 볼 수 있는 노년을 해리포터나 헝거게임같이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만들어버린다.

     

    내가 오프라를 보고 마음을 놓았다는 것은 비단 오프라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나는 나를 위해서도 걱정을 덜하게 된다. 이상한 자신감이 생겨서이다. 나는 많은 자잘한 결심을 하고 있다. 나도 한계를 두고 살지 않으리라. 마지막 순간까지 내 욕구를 포기하지 않으리라. 현명하게 내 안전을 꾀하고 자유를 추구하리라. 계속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어떤 도전에든 압도되지 말고 든든한 뱃짱으로 살아가리라.

     

    예측 불가, 불확실성으로 뿌연 노년이란 미래에 대비해서가장 현실적인, 적용 가능한 플랜 B 는 유연하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다싶다. 어차피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거, 이왕이면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삶을 사랑하겠다'는 긍정적인 호기를 갖고 살면 좋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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