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나...오래 살다보니....

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말이다.

내 57 세 인생에 울 엄마의 애교를 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엄마 스스로도 83 세 삶에 자신이 애교를 피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아버지, 90세가 되어 지금 주야로, 수시로 함경도 또순이표 애교를 받고 계시니....


엄마는 다정하고 사랑이 많으나,

그 많은 정과 사랑의 유일한 분출구는 

모/성!


엄마는 자식들에게 온 사랑을 쏟았고 남편을 위한 애정이란 남아있질 않았다.

건강식 챙겨드리고, 등산을 꼭 같이 다니면서 벗해주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선비 아버지를 위해 뚝닥 만들고 수리하고..., 아버지가 의지하는 든든한 부인이었지, 절대 상냥하고 다정한 부인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마음이 많이 열려있는 분이고 여성을 동등하게 대접하는 페미니스트로서

평생 '지혜롭고 아름다운' 엄마에게 감사하였지만

아버지 스스로가 세상일에 너무 서툴다보니 엄마가 소소한 일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든든한 남편은 아니었다.

아니, 젊어서는 이북에서 홀로 내려와 겪는 외로움, 잔인한 군대문화와 경쟁이 치열한 학계에서 받는 온갖 스트레스를 엄마께 풀었다.


세월이 가면서 다툴 일은 줄어들었고, 두분이 나름 즐거운 노년을 보내셨다.

그러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때는 아이들, 손자들 이야기를 나눌 때? 

대부분은 덤덤하게 꼭 해결해야할 이야기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가끔 나눌 뿐, 

두분이 서로에게 갖는 아주 긍정적인 감정들은 표현되어지지 못했다. 

이미 고정되어버린 두 분의 무뚝뚝한 대화 방법은 바뀌지 않았고,

한 해 두 해 지나는 돌이 차곡차곡 쌓여 돌담을 만들듯이 두 분 사이를 가로막는 담을 만들어버렸다.


그 돌담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해주고 평화를 유지시켜주었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일년 전부터 엄마가 변했다.

어느 날 아침, 아버지를 깨우시면서

"자기~~ 일어나~!" 하고 농담을 하셨다.



나는 너무 놀라서 뒤로 자빠질 뻔했다.

왜?

기적이니까!

도대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니까.

아버지께 항상 진지하고 무뚝뚝한 엄마한테서 그런 톤, 그런 내용의 말이 나온다는 것은 거의 모세의 기적에 버금가는 기적이었다.

60 년의 결혼 생활이 만들어준 대화의 '돌담'을 엄마는 '자기~~' 란 한 마디로서 박살을 냈다.


그 이후로 엄마의 '애교질'은 계속 되었다.

물론 농담을 섞은 톤이고 몇 마디 후 금방 본래의 엄마 목소리로 돌아갔지만

엄마가 한마디 두마디 할 때마다

아버지는 천장을 보고 누우신 채, 온 얼굴이 찌그러지면서 미소를 지으셨다.


"자기~~~, 당신이 이렇게 잘생긴 줄 몰랐었어~"

"우리 자긴 왜 이렇게 멋있지?"

"자기~~ 무슨 말 좀 해봐~"


엄마의 애교에 온 집안에 웃음이 돈다.

참 기쁘다.

바로 1 년 전까지만해도 엄마는 아버지를 이제와 마찬가지로 굳건히 지켜주려는 마음은 있었지만

즉, 본인이 아버지 수발을 드는 것은 받아들이셨지만

내가 아버지 수발을 드는 것에 대해 미안함과 불편함이 많았었다.


"네가 이제 좀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는데 우리가 와서..."

"우리야 오래 살아서 언제든 가면 되는데 너에게 고생 시키는 게 미안하다."

"넌 능력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우리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게 되었구나..."


이런 식의 말씀을 많이 하셨었다.

(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다른 의미를 붙여서 해석하는 이런 말에 신경쓸 가치도 없다 생각하여 완전 무시 ^^)


가끔씩, 엄마의 혼잣소리에 아버지를 평생 뒷바라지하면서 혼자 삭여왔던 그런 아픔, 섭섭함이 묻어나오기도 했다.

딸로서 너무도 이해되는 그런 섭섭함과 아픔.

그러나 엄마는 그런 마음을 금방 접고 아버지 수발을 묵묵히 드시는 엄마.


그렇게 수발을 든지 2 년이 되면서 엄마와 나의 일은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일은 더 많아지고 몸이 더 피곤해지지만 반대로 엄마의 마음이 더 편해지시는 것같았다.

마치 엄마께 이제까지 남아 있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듯했다.


엄마가 아버지를 '자기~~!' 하고 부르던 순간

나는 엄마가 아버지와의 과거와 화해를 했음을 느꼈다.

결혼 생활 60 년 만에 아버지는 엄마에게 '아이들의 아버지,' '나의 남편'을 뛰어 넘는 그런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남자가 된 것이다.


엄마가 장난삼아 애교를 피우면 웃기만 하시던 아버지가 어느날 맞장구를 치셨다.

엄마께,


"자기, 자기가 해줘~~"


하신다. 


푸하하하하!!!




아무리 힘든 침대살이를 하고 있더라도 

내가 이제까지 살기를 잘했다 싶게끔 만들어주는 부인의 애교,

아무리 수발이 힘들더라 하더라도

내가 이제까지 살기를 잘했다 싶게끔 만들어주는 사랑스러운 남편,


두 분 사이를 가로막던 돌담은 허물어졌고,

이제 '자식을 키우는 운명 공동체의 동지'라는 무덤덤한 그들의 관계는 밝고,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무지개 빛으로 화했다.


우리의 삶을 감싸는 그 무지개 빛이 아버지 병간호를 하면서 얻은 귀한 수확 중의 하나이다.










밤에 아버지 간식 드리고, 이를 닦은 뒤에 '혀 운동'을 위해 엄마가 아버지 앞에 서셨다.

(목에 음식물과 약이 걸려서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사례가 몇 번 있은 뒤에

혀 운동을 시작하셨다)


내가 할 때보다 엄마가 하실 때 아버지의 운동 효과가 더 있어서

엄마가 주로 운동을 담당해주시는데.


엄마는 각 잡힌 조교 포스가 줄줄.

그런 엄마를 미소를 띄고 가만히 바라보시던 아버지...


"여보, 내가 H 대 인문대 학장으로 있었을 때말야..."


엇, 아버지,

왜 갑자기 옛날 이야기를?

그것도 막 운동을 하려고 하는 참에?





엄마는 의아한 기색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셨고 나는 옆에서 방 정리를 하면서 귀를 세워 아버지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때 내가 늦게까지 연구실에서 공부했었잖아.

당시에 어떤 여학생이 나를 무척 따라다녔어.

당신도 알지 몰라. 얼굴이 갸름한,  조교하던 아이인데...

걔가 내가 연구실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있을 때 자주 찾아오는 거야.."


(엄마) "난 누군지 모르겠는데...그래서요?"


"시에 대해서 물어보겠다고 와서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랬는데요?"


"너무 자주 찾아오고, 맥주 사달라고도 하고 그래서 내가 부담스러웠어."


"그랬어요?"


"그래서 어느 날 맥주를 사주면서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만 개인적으로 만나려고 하면 안된다고,

단 둘이 술 마시자고 하면 안된다고 좋게 이야기해줬어."


"아, 그랬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담엔 걔가 안왔지.

나중에 그 아이가 다른 학교 선생과 열애를 했다고 해.

난 안 그래서 다행이지."

"그랬어요?"


"그리고 S 여대 강의 나갔을 때도 대학원 학생 중에 나를 쫓아다닌 여성이 있었는데 

난 절대 응하지 않았어."


"맞아...그랬지요."


"또 S 대학교에서 학생들 인솔해서 제주도에 여행 갔을 때 남학생들이 나랑 같이 간 H 교수에게 

호스티스를 붙여줘서 자꾸 같이 뭘 하게 하려고 해서, 이러고 있다간 이 여자랑 자야하는구나 싶어서 도망쳐나왔고.."


"맞아, 그때 술집에서 도망쳐 나왔다가 길을 잃어서 학생들이 우리 교수님 찾아달라고 경찰에 신고했었지요. 하하하!"


"그랬지. 

난 정말 그런 게 싫었어. 

그리고 난 언제나 당신을 생각했어."


(엇, 뜬금없는 사랑고백?!)


엄마가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난 당신이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신을 항상 믿었어요."


"당신이 날 믿는 것을 알았지.

나도 당신을 믿었고...."


나의 존재를 무시하고 두 분이 주고받는 정겨운 대화,

내가 침대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데도 완전 무관심이셨다.

세상에 단 둘이만 존재하는 듯이...


"자, 이제 운동합시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두 분은 간지러운 대화는 가볍게 뒤로하고 힘차게 '혀운동'을 시작하신다.


자, 모음부터에요~

아...에....이...오...우....

가...게...기...고...구....

.....

혀를 쭉 내밀어보세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




60 년 같이 산 부모님, 

젊어서는 서로를 몰라 많이 다투고,

나이 먹어가면서는 삶에 허덕이면서 경황이 없었고,

주고받은 상처가 남아 60, 70 대에도 가끔 아프던 그런 관계였다.

자식을 중심으로한 운명공동체'의 부부,

두 분은 의리로서 서로를 챙겨주는 모범적인 부부일따름,

달작지근한 사랑과는 거리가 있었던 부모님.


그러나 최근에 두 분의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당신이 이렇게 잘 생긴지 몰랐네요!"

"당신은 항상 예뻐~"

"여보, 고마워요!"

"당신이 옆에 있으니 너무 좋아요."


이런 닭살 멘트가 서슴없이 들린다.


흠...이게 바로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고목나무에 핀 꽃인가?


신기하고 아름답다.

같이 있는 게 즐겁다.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펠릭스가 새랑 놀고 있네!"

(Felix is playing with a bird)


나는

"어머머머~ 그래요?"

신나서 사진기를 챙겨서 펠릭스가 놀고 있는 앞마당으로 나갔다.


아악!

난 기겁했다.


펠릭스가 새랑 놀고 있긴 했다.

근데 그 새가 죽은 새였다.

손 한 줌에 폭 안길 크기의 그 예쁜 새를

펠릭스가 죽인 거였다.

어머니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분명 펠릭스는 자기가 죽인 새, 킁킁거리면서 냄새맞고, 혀로 핥고

발로 이리저리 굴리며

'놀고' 있었으니...


난 '논다'는 말에 완전 다른 상상을 했다..

 푸르른 잔디에서

펠릭스는 장난으로 새를 할키는 척하고, 새는 살랑살랑 날면서 펠릭스를 놀리는 척하고

그렇게 즐겁게 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자와 양이 같이 논다'고 묘사된 천국에서처럼....


고양이가 뭔가 잡아오는 게 엄마/아빠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 참,...정말....나더러 어쩌라구!!

누가 그런 선물을 원하냐구!!


 가끔 펠릭스는 선물을 들고 온다.

도마뱀, 새, 심지어 아기 토끼..

동물이 살아 있는 기미가 있으면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펠릭스를 발로 차는 시늉을 해 동물을 살려주려하고

(그래서 날아간 새가 두 마리 있다)

이미 생명을 잃은 듯하면 (나는 비명을 지르고 곡을 하면서) 도망간다.


도망가면서 펠릭스를 쳐다았는데

표정이 아주 묘했다.

"엄마....내가 선물을 들고 왔는데 엄마는 왜그래?"

하는 섭섭한, 상처받은 표정이다.

아무리 잘해도 만족하지 않는 엄마...?

올 에이의 성적을 받아왔는데도 피아노 경시대회에서 2 등을 했다고 야단치는 엄마를 둔 아이의 표정같은...


앗,

혹  펠릭스는 엄마가 자기가 더 큰 새를 잡아오길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럴 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펠릭스는 욕심많은 엄마를 만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더 큰 새, 더 큰 도마뱀을 찾아 동네를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딜레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