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이 다 그러하듯이 아버지는 치매를 두려워하셨다. 

인지능력과 인격을 상실하는 것도 두렵고, 자식들을 힘들게 하게될까봐 두려워하셨다.

 

아버지는 18 세기 영국의 문필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이야기를 하곤 하셨다.

스위프트는 유명한 고전 '걸리버의 여행기'의 작가로서 사회 비판과 풍자로 명성을 날린

당대의 최고의 문필가로서 부와 명예를 축적했으나, 말년에 뇌졸증 후 우울증과 언어장애를 앓았고 

3 년간의 투병 후에 사망하였다. 아버지는 그의 시종들이 치매로 인지능력을 상실하고 침을 질질 흘리는

스위프트를 구경거리로 만들어 돈을 받고 그 추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치매라는

무서운 질환이 가져온 한 뛰어난 작가의 드라마틱한 몰락을 한탄하셨다.


아버지는 사고로 침대 신세를 지게 된 이후에 자주 스위프트의 이야기를 떠올리셨다. 당신이 

갑자기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니 지적 능력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치매라는 상태가 

언제고 닥칠지 모르는 가능성으로 느껴지신 것같았다. 


아버지의 염려를 더 심화한 것은 옆집 할머니와 할아버지였다. 지금은 다 돌아가셨지만 3 년 전에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신 무렵, 우리 옆집에는 치매의 할머니와 뇌졸증 후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다. 두 분 다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으나 두분이 늦은 나이에 재혼을 한 사이로 

(내 또래의) 서로의 자녀들은 간병인을 두는 것에 대해 의견이 달랐다. 할아버지와 불편한 관계인 

그의 자녀들은 할아버지를 위해 재정적 보조를 하지 않았고, 할머니쪽 자녀들은 할머니를 위해 

간병인을 두지만 간병인이 할아버지에게 힘을 쏟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안스러운 상황이었다. 할아버지는 불편한 몸으로 하루하루를 살면서 몸이 더 쇠약해졌고

할머니는 상주하는 간병인들이 목욕, 산책, 식사를 돌보아 건강했다.


어느날 갑자기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자녀들은 장례식에 오지 않았고, 당연히 유품 정리도 

애초에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던 할머니의 자녀들이 담당하니 아주 잔인하리만치 간단했다. 

이삿짐 센터 트럭이 와서 할아버지 모든 물건을 거칠게 옮겨 실어 가져갔다. 


나는 그때 놀랍고 슬픈 장면을 목격했다. 짐꾼들이 트럭에 짐들을 던져싣고 있는 와중, 자기 남편이 

사망한 것을 알지 못하는 치매의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밝은 미소를 띠고 "Good morning everyone!" 

하고 외치며 산책을 나가고 있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나도 잠시 후 아버지를 모시고 산책을 나갔는데 

돌아와보니 트럭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사진들이 몇 장 흩어져 있었다. 할아버지의 유품 정리 중에 

떨어진 사진들임이 분명했다. 한 장 집어들어 보았더니 젖살이 통통한 볼, 큰 눈망울의 귀여운 

아가의 흑백 사진 뒷면에 할아버지의 이름과 사진이 찍혀진 날짜가 적혀 있었다. 사진을 줒어 쓰레기통에 

버리며 내 마음이 착잡했다. 길에 버려진 사진이 가족으로부터 버려졌던 할아버지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같았다. 또한 그의 자녀들은 얼마나 깊은 상처가 있기에 끝까지 할아버지를 

거부했을까 싶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의 상태가 서서히 악회되었다. 그녀의 자녀들은 각기 다른 날짜에 

일주일에 두어 번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그중 가장 자주 할머니를 찾아온 것은 막내딸 카렌이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임무가 엄마를 24 시간 돌볼 수 있는 요양 보호사들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고용하는 것은 가격이 좀 싸지만 간병인의 자격과 신뢰성에 의심이 있기에 자기는 요양 보호사 에이전시를

사용하는데 요양 보호사가 하루에 8 시간 이상 근무를 하지 못하게 법으로 금지 되어 있어서

할머니는 하루 세 명의 다른 간병인이 돌봐주고 있다고 했다. 시간 당 22 불이라 한달 지출이

어마어마하지만 다행히 할머니가 재산이 있어서 그 돈으로 지불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훈련과 실습을 통해 자격증을 소유한 간병인들이니 할머니를 돌보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으리라 

추측하지만 나는 그들이 할머니의 쓰레기를 처분하는 모습이 무척 안타깝다못해 유감스러웠다.

 

미국은 개인 주택의 경우, 시에서 쓰레기통을 두 개 (재활용, 일반쓰레기) 지급해주고 일주일에 한번씩 

트럭이 와서 쓰레기를 수거해간다. 차고에 보관하는 쓰레기통은 뚜껑을 잘 안 닫으면 주위에 냄새가 

진동하고 파리도 끓으므로 신경을 써야한다. 그런데 할머니의 간병인들은 기저귀 쓰레기를 꼭꼭 묶지도 

않은채 버리고 쓰레기 통을 잘 닫지 않았으며 그 쓰레기 일주일 내내 차고 밖에 방치했다. 어떨 때는 

기저귀 꾸러미 봉지로 쓰레기통이 넘쳐났는데, 뚜껑을 잘 닫지 않으니 까마귀들이 봉지를 쪼아 뜯고

일부는 기저귀와 음식 찌꺼기를 입에 물어 길가에 질질 끌고가 버렸다. 특히 일주일의 마지막 무렵 

쓰레기 통이 꽉 차 넘쳐자는 때에는 온 종일 할머니의 쓰레기 조각들이 동네 여기저기에 흩어졌다.

나야 이사온지 얼마 안되어 할머니를 잘 몰랐지만 할머니를 오래 알아온, 그래서 할머니가 얼마나 

유쾌하고 활발하고 유머센스가 있는 멋진 여성이었는지를 기억하는 이웃들은 '레슬리가 자기 

기저귀 쓰레기가 온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놀랄까' 라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자신의 쓰레기가 이웃의 동정을 사는 것을 모르고 있는 치매 할머니에

연민을 느낌과 동시에 치매가 얼마나 끔찍한 병인가를 다시금 절감하였다.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면서 닫지 않은 쓰레기 통에 덕지덕지 싸여있는 기저귀 꾸러미를 볼 때마다

탄식했다.

 

"아...아...치매는 정말 무서워...할머니가 깨끗하고 예쁘게 화장하고 산책을 가면서 버려진 자기 

기저귀 쓰레기 옆을 지나가는 것을 모르다니...너무 가엾는 노인이다."


그런데 할머니를 자주 맞닥드리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할머니와의 대화를 즐긴다는 것!


할머니와 마주칠 때마다 할머니는 말을 거는데, 할머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므로 우리의 대화는

일방적이었으나 나는 대화 중 드러나는 할머니는 다정하고 유쾌한 성격이 맘에 들었다.

인지 능력이 망가진 그가 하는 엉뚱한 말도 재밌었고 그녀의 단호함과 자신있는 태도가 매력적이었다.

그녀가 치매가 걸린 뒤에 만난 나로서는 치매 전의 그녀에 대한 기억이 없으므로 치매 증상을 뛰어넘어

드러나는 그녀의 성격을 하나의 성격으로--유쾌하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여하간 

나는 할머니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회의하지 않고, 할머니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망설임 

없이 맘대로 하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할머니를 돌보는 도우미들의 얼굴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었고 할머니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었지만 할머니는 내내 밝고 즐거웠다. 누가 해주는 건지 자신이 하는 건지 모르지만 빨간 

립스틱을 바르기도 했고, 파란 자켓을 입고 파란 모자를 맞춰 쓴 날은 10 년도 넘게 젊어보였다.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보였고 할머니의 밝은 표정에 나는 점점 익숙해졌다.

또한 치매 환자를 걱정하는 것은 치매가 안 걸린 사람들의 몫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치매 당사자는 내가 왈가왈부할 수 없는 그런 편안함을 느끼고 산다는 사실에 이상한 안심이 느껴졌다.


나의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도 내가 이렇게 긍정적인 소리를 할 수 있을까?

더우기 할머니 치매 증상은 아주 밝고 긍정적이므로 일반적인 치매 증상이 아닌데?

주위에서 치매 노인들/부모들를 둔 사람들로부터 우울증을 동반한 치매환자도 있고,

아주 독선적으로 되고 성격이 거칠어져 주위 사람들을 고생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런 질문이 떠올랐다. 


다정한 나의 아버지가 갑자기 성격이 변해서 나에게 화를 내고 거친 말을 한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았다. 몹시 힘들것이다. 

그러나 (장담을 할 수는 없지만) 그것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싶었다.

만약에 내가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로만 보지 않고 '환자' 또는 '남' 또는---이게 가장 중요한데--

하나의 인간으로서 볼 수 있다면 말이다.

아버지의 수발을 들면서 나는 아버지를 '내 아버지'만이 아닌 '강대건이라는 한 인간'으로 보았었다.

그러니 강대건 씨가 치매에 걸렸을 때 어쩌면 '내 아버지를 잃었다'고 좌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과거에 치매였던 아버지를 잃은 한 지인이 한 말이 있다.


"아버지가 치매일 때 나는 너무 슬펐어. 나를 못 알아보고,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이전까지 우리가 같이 했던 삶이 다 송두리채 사라져버린 것같았어.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더 슬퍼지더라.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오래 알아온 사람이 돌아간' 거니까.

나를 55 년간 알아온 아버지가 없어졌다니 정말 허무했어."


아버지의 치매와 죽음을 맞이한 그녀는 당연히 허무했고, 당연히 슬펐으리라.

그러나 그녀의 허무함, 슬픔의 근원은 아버지의 죽음이 '자기의 죽음'이 되어버려서이다.

아버지의 치매는 '나를 기억하고, 나와의 일들을 기억하는 아버지'가 사라진 것이며

아버지의 죽음은 '나를 기억해주고 나를 알아온 아버지가 가셨다' 이니,

그녀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일관성있게 '나' 라는 자신에 관련해서만 정의되고 있었다.


잘 생각해보면 치매 아버지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가 기억을 잃는다고 해서 

모든 '기억' 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기억은 존재한다. 

딸인 내가 기억하는 한. 

그러니 내가 기억하면 되는 거다.


아버지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오래 알아온 사람이 죽었다' 라는 소리는 결국은 

'나'에 의해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것이다.

즉, 아버지란 존재는 '나를 비추기 위한 거울'이 되어버릴 따름.

부모가 기꺼이 자식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려할 수도 있고 그것은 부모의 선택이겠으나.

딸의 입장에서 부모를 '나의 거울'로만 본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모도 독립적 인간이니까.

그리고 부모를 한 인간으로서, 나의 연장이 아닌, 나의 거울이 아닌 한 독립적 개체로서 인정한다면 

치매환자인 부모를 받아들이고 좀 더 침착하게, 그리고 덜 감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아버지가 어느 날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나는 큰 소리로 담박 아버지의 생각을 잘라버렸다. 


"아버지, 치매 걸려도 되!"

(막내딸 특권-- 애교삼아, 친선만세를 위해 가끔 반말을 쓴다.)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나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버지, 저 진짜 아버지한테 한번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아버지, 정말 아버지 치매 걸려도 돼요. 안걸리면 더 좋지만 걸리더라도 그게 큰 일 아니에요.

아버지는 다른 의식의 세계에 있는 거고, 분명 그 상태가 완벽하게 편안치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아주 끔찍한 상태도 아닐 수도 있어요. 단지 언니랑 나를 생각해서 치매를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그러지 마시라고요. 옆집 할머니 봤잖아요. 모쪼록 할머니처럼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셨을 때 아버지가 편한 상태였으면 좋겠어요. 그럼 된거에요."


아버지가 나의 말을 막았다.


"아이고, 그러면 어떻게 하니! 내가 편하다고 뭐가 좋은 거야? 늬들한테 미안하지.아!"


나는 또 내 생각을 피력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편하면 되는 거에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좋은 게 나한테 좋은 거지 뭐!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서 힘드시다면 

그건 가슴아프겠지만 적어도 '아버지가 치매 걸려서 나를 잊었네' 하고 슬퍼하고 낙담하지 않을 게요.

진짜로!! 

제발 절 믿어주세요. 

아버지가 치매에 걸릴 경우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까 미리 말씀드리는 거에요.

아버지께 약속할 수 있어요.

저는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도 쿨~ 하게 받아드릴 거라고요. 

그럴 수 있을 거같아요.

그리고, 아버지와의 기억? 그것은 사라지지 않아요.

왜냐, 제가 간직할 거니까.

저는 계속 아버지와의 옛일, 생생하게 기억하고 그리워할 거에요. 그러면 된 거에요.

아버지가 그걸 알아주세요. 꼭 한번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아버지는

"아유...넌 그렇게 생각하니...?" 하셨다.


그러나 내 말이 아버지께 설득력이 있는 것같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참...내 마음을 모르시고....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때 아버지께 했던 말이 다시금 내 마음에서 메아리친다.


아버지가 편하시면 된 거에요....

난 아버지가 좋은 게 좋다고 믿기때문에 아버지를 위해서 기뻐해줄 수 있어요.

아버지와의 추억은 내가 기억하면 되는 거에요.


그러고보니 치매도 '관계의 단절' 이란 면에서는 죽음과 다를 바 없는 것인 것같다.

그렇다면 치매에 걸린 부모를 모시면서 사는 사람들은 펄펄 살아있는 죽음과 매일 씨름하며 사는 것이리라.

그 고통은 엄청나게 크겠구나 싶었다. 나의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셔서 오랜 시간을 나와 보냈다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쿨~ 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는 겸허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죽음도, 치매도, 한 인간이 겪어내는 삶의 여정일뿐,

그 여정의 한 부분을 같이 한 사람들이 나눈 사랑과 사랑의 기억은

죽음도, 치매도 파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사실로 사랑하는 이를 치매 앞에서, 죽음 앞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어려서 아버지의 서재에 빽빽이 꽂혀진 책들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저런 책들을 읽으리라 마음 먹었었어.

그런데 결국 내가 책을 읽고 가르치는 선생이란 직업을 갖게 되었으니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야."



"전쟁이 끝나고 학교에 돌아갔을 때 '철학' 과목을 듣게 되었어. 

그 전에 내가 봤던 세상은 생존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하는 그런 잔인한 곳이었는데

그런 끔찍한 세계랑은 판이한

인간이 왜 사는지,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는

인식과 지성의 세계가 존재하는 걸 발견했지.

아...너무 행복하더라고....

다시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위대한 사상가들의 글을 음미하면서 참 행복했어. 

그 당시에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건 큰 특권이었어."



"엄마가 나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지. 

엄마 덕에 나는 많은 훌륭한 책들을 읽을 수 있었고

책을 통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웠어. 

아침에 도시락 두 개를 싸서

연구실로 향하며 나는 너무 행복했어.

밤 늦게까지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그 넓은 지식의 바다를 내 마음대로

휘젖고 다닐 수 있었으니까.

서울대학교에 있을 때 밤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낙성대 방향으로 걸어 내려오면서 

그날 새로 배운 것들, 꼭 기억해야할 것들, 다음날 읽고 싶은 책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참 행복했어. 

피곤한 줄 몰랐지.

밤이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발걸음이 힘찼어. 

지금 그때를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아던 것같다. 

참 감사한 일이지."



"에밀이랑 꼴렛이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지식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럼 평생 행복할 거야."







(아버지랑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가끔 아버지 말을 기억하고 싶어서 핸드폰이나 컴퓨터에 받아 적었다.

그 때 그때 받아적었던 기록을 들여다보니 아버지가 '행복'에 관해 여러번 말씀하셨다는 게 보였다. 

또한 아버지에게는 '행복'이 '책'과 '배움'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고 그래서 행복하신 분이라는 것은 내내 알고 있었으나. 

아버지가 자신이 언제 왜 행복한지를 얼마만큼 첨예하게 인식하며 살았는가는

 나에게 새로운 발견이다.

그때그때 아버지 말씀을 적어두길 잘했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집에 돌아온 날 밤, 

지난 닷새간 매일 밤 아버지 곁을 지킨 뒤에 나는 피로가 축적되어 있었고, 집에 왔으니 잠시라도 자고 싶었다. 그러나 병원에서 아버지가 밤에 자주 깨셨기때문에 집에서도 자주 깨실 가능성이 컸고, 그것은 내가 밤잠을 또 설칠 것임을 의미했다. 그래서 엄마와 언니에게는 어서 빨리 자서 새벽 4 경에 나와 교대 해달라고 하고 아버지 옆을 지킬 준비를 했다.


11   경에 잠자리에 드시기 전, 병원에서 준 약도 드렸고기저귀도 봐드렸다

이제 아버지가   시간만이라도  주무시면 나도    있었다


누적된 피로로 나는 눕자마자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않아 아버지 신음소리에 잠이 깼다. 


아! 아! 아! 아!


이상하다.... 


오늘밤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병원에서 듣던 신음소리와 달랐다.


병원에서 아버지의 신음소리는 마치 누군가를 잠깐 큰소리로 부르는 듯한,


아아아!——“ 식의 단발성 외침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아버지의 신음은 달랐다해변의 바위를 치는 파도처럼 부정기적이면서 정기적인, 

마치 어떤 리듬을 타는 듯한 그런 잔잔하고 지속적인 신음이었다


나는 당장 아버지 옆으로 갔다.


"아버지! 여기 있어요! 괜찮으세요?"


"응...."


혹시라도 다시 주무실 있는 아버지를 밝은 불이 깨울까 두려워 불은 켜지 않은채.  어두컴컴한 , 창틈으로 들어오는 불빛으로 시간을 보았다. 자정이었다.


잠시 안도한 듯 신음소리가 사라졌다. 그러나 일분도 안되어 아버지가 다시 신음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어디가 편찮으세요? 어떻게 해드릴까요?”


“Neck! Neck!”


아버지가 영어로 말씀하셨다. 주무시기 전부터 뒷목이 아프다고 하셨었는데...나는 손바닥을 펴서 아버지 밑으로 집어넣어 안마를 하였다. 왼쪽 목의 근육이 딱딱히 잡혔다. 부드럽게 마사지를 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 시원하다. ...어깨가 아파.”


나는 목에서부터 어깨로 손을 옮겨 어깨 마사지를 했다. 


이제 괜찮으세요?”


….”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신음하신다.


“Neck! Neck 아파.”


나는 다시 목을 마사지했다.


마치 접시 돌리기를 하는 사람처럼 나는 한군데 마사지 해서 통증을 완화하고 다시금 급히 다른 곳으로 옮겨가 마사지를 하고, 다시 다른 곳으로.....이렇게 마사지를 했다. 아버지의 통증이  가신 듯했다.


아버지, 그럼 잠시 누울께요.”


.”


나는 눕자마자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신음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또 아프신가? 하고 잠결에 생각했다. 피곤한 나에게 일정한 박자로 울려퍼지는 아버지의 신음소리는 마치 최면 효과가 있는 단순한 멜로디의 자장가마냥 나를 잠에 취하게 했다. 그러나 나의 깊은 잠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아아! 아아! 아아! 아아!


왜 이 신음소리가 나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걸까?

몸살 앓을 때처럼 계속 끙끙거리는 소리가 크레센도로 점점 커지는데 난 이 소리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


아버지 옆으로 가서 다시 목, 어깨를 주무르면서 아버지의 신음소리를 더 가까이 들으면서 나는 깨달았다. 


'아....나도 그렇게 신음소리를 낸 적이 있었지.'


그렇다. 아버지의 신음소리는 내가 아기를 출산할 때 겪은 진통 때의 나의 신음소리와 같았다. 그 정기적인 박자, 진통제과 아이의 탄생 그 자체 말고는 그 무엇도 완화시켜줄 수 없는 극심한 고통, 신음소리...

그래, 진통은 잠깐 잠깐의 사이를 두고 정기적으로 찾아왔고 점차적으로 그 정도가 강해졌었다. 고통으로 난 계속 신음했고 내가 이상 견딜 없다 싶은 최악의 끔찍한 고통으로 정점을 찍은 뒤 잠시 고통이 사라졌다가 다시 시작되던 산통. 몸에 도돌이표가 부착되기라도 한 듯, 미약한 고통이 시작되어 서서히 커져서 끔찍한 고통으로 이어지며 게속되던 고통.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 그 고통에 나를 맡기는 수밖에....아기가 태어나는 순간까지...


나의 진통을 생각해보니 정확히 원인을 모르는 아버지의 주기적인 고통이 금방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 많이 아프시지요? 어떻게 하나....제가 계속 주물러 드릴께요.”


..”


아버지의 몸을 주물러드리면 신음소리가 잠시 작아지는 듯했고, 그러면 나는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통증은 다시 시작되었고, 나는 아버지 옆에서 서서 내가 같이 나눠드릴 수 없고 도와줄 수 없이 아버지 혼자 겪어내야하는 그 고통을 안타까워하며 아버지를 안마했다.


아버지의 신음소리, 그 리듬, 크레센도 소리...나의 진통. 산고..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하나 당혹스러웠다. 아버지가 진통제를 드셨기때문에 나는 아버지가 주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평소에 내가 안마를 해드리면 5 분 내에 깊은 잠에 빠져드시던 아버지, 그러나 이번에는 1 시간 넘어 안마를 해도 아버지는 고통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왜 진통제가 듣지 않는 거지? 얼마나 괴로우실까...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의 양이 너무 적었나? 

좀 더 드려야하는 건가? 주무셔야 기운을 회복하시는데 어떻게 하지?


나의 당혹함에 아랑곳없이 아버지의 신음은 지속되었다.

............


12 시부터 2 사이에 나는 여러번 일어났다가 누웠다. 아버지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고통이 심화되는 것이 느껴져서 불안했고 마음이 아팠다. 내가 어떻게 고통을 덜어드릴 길이 없나?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고통없는 죽음을 주기 위해 진통제를 주기를 원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2 경에 나는 불안함에 그제까지 끄고 있었던 불을 켰다. 아버지의 정기적인 신음소리가 신음 이상의 외침같이 되었기때문이다.  아까부터 유지되어 오는 '박자' 는 여전했지만 신음 소리가 마치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기라도 하는 듯하게 처절했다. 불을 켜고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해야했다.



불을 켜고 내가 예의 하듯이 내 몸을 굽혀 아버지 얼굴 위에 내 얼굴을 가까이 대고 


아버지하고 부르려는 순간,


나는 너무 놀라서 입이 얼어붙었다.


아버지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눈동자가 아주 까맿다. 공주 인형의 눈처럼...

내가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그런 생소한 얼굴이었다. 나의 아버지의 얼굴이...


마치 대폭 성형수술을 하시기라도 것처럼, 나는 달라진 얼굴에, 내가 아주 잘하는 긍정적이고 유쾌한 너스레 (“아버지, 걱정마세요. 제가 있어요~~!')   없었다. 아버지가 그리도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에 아버지 얼굴을 뚤어지게 바라보는 게 너무 죄송스러워 나는 몰래 아버지의 얼굴을 훔쳐봤다.  


'도대체 어떻게 아버지 얼굴이 이렇게 달라졌지?' 하는 생각을 억누르며 적응이 안되는 현실에 적응하려 

애썼다.


아버지 얼굴의 변화는 눈에서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주위로 삼각형 모양으로 핏기가 가셔져 있었다.

또한 나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지금 아버지가 겪고 있는 고통이 그냥 사라질 고통이 아님은 물론, 그보다 고통의 암시하는 위험한 상황이라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아버지 침대의 조작기를 눌러 침대의 윗 부분을 위로 올려 앉은 자세로 만들어 드렸다. 황망히 부엌으로 달려가 아까 준비해놓은 흑마늘/ 음료를 가져왔다.


나는 애써 당황함을 억누르며, 이 상황에 내가 하는 이 행동이 가장 필요하고 바람직하다라고 믿으려고 애쓰면서 꿀물 한 숟가락을 아버지 입술에 갖다 대었다. 아버지가 입을 벌려 받아 드셨다. 나는 용기를 내어 모금 모금 드렸다. 아버지가 아주 천천히지만 한모금씩 잡수셨다. 나는 아버지가 음료수를 드시는 동안 아까처럼 몰래 아버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버지의 눈동자는 아까와 똑같았다. 예전에 읽었던 , 죽음 전의 변화에 눈동자가 커진다는 하나라고 했던 떠올랐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계신 건가. 


나는 일단은 떨리는 나의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서 기도를 시작했다. 내가 평소에 해왔던 그런 내용의 기도였다. 아버지의 평생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주관해주시고, 이제 본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켜주심을 감사드리고 찬양하는...그리고 아버지를 모실 있는 이런 영광을 주심을 감사하고,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삼아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는...그런 내용이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하고 기도가 끝났다.

그런데 아무 소리가 안났다.

좀 전까지 내가 몸이 어떠시냐고 물어보면 나에게 대답하고 나에게 의사 표현을 했던 아버지가

내 기도에 '아멘 못하셨다뇌출혈 상태에서도 기도에는 반응하셨던 아버지였는데..


나는 놀라서 눈을 떴다.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눈을 뜨신 밝고 까만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도대체 너무도 신기한 있기라도 듯이, 약간 양미간이 집중된 온전히 앞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 옆에 있었으나 나의 존재는 이미 아버지와 분리 되어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직감했다

아버지는 죽음과 삶의 정가운데에 놓여 있음이 보였다.

아버지의 발은 현재의 삶에 있으나 몸통과 머리가 내가 모르는 곳, 내가 갈 수 없는 그곳을 향해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절대로 아버지 앞에서 당황함을 보이지 않았던 나도 상황에서는 몹시 당황했다.


엄마를 깨워야하는 건가? 이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떻게하지? 아니, 내가 식구들을 부르러 가는 순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면 어떻게하지? 누군가 옆에 있어야하는 거 아닌가? 엄마 언니를 불러야하는데 어떻게하지..?


여러 생각들이 내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 쳤다.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안타까움에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의 얼굴에서 5 세상을 떠난 오빠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아, 시간이 없구나!


나는 미친듯이 이층의 에릭의 방으로 뛰어갔다. 



에릭, 에릭, 아버지 와서 봐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놀라 일어나는 에릭을 뒤로하고 다시 아래층으로 구르다시피 뛰어 내려왔다.


문이 열려 있는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기 전, 문턱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심장이 멎는 것같았다.

아버지는 살아있었으나 이미 죽음 속에 속해 있었다.


안되겠다. 나는 급히 엄마를 깨우러 갔다.  


"엄마, 아버지가 이상해. 지금 돌아가시는 중인 것같아" (이게 엄마가 기억하는 나의 말)


이층으로 뛰어 올라가 언니를 깨운뒤 뛰어 내려와 아버지 옆으로 갔다.


엄마와 언니가 왔고


우리가 도착한 뒤에 아버지는 얼마 안되어 마지막 숨을 내쉬셨다. 


——-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마음 속에서는 아버지의 마지막 음성---신음--소리가 끊임없이 재생되었다

아무리 정지하려고 해도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마치 나의 심장박동인양 끊어지지 않고 들렸다.


진통시 내는 신음소리와도 같았던 신음소리와 더불어 내가 강박관념처럼 떠올린 것은 아버지의 

시선이었다불을 켜자마자 보았던, 누운 천장을 향해 있던 커다란 눈망울의 아버지의 시선

그리고 돌아가시기 직전, 정면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던 아버지의 시선

그는 무엇을 그리도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을까?


내가 그렇게 아버지의 시선을 떨치지 못하는가를 나는 많은 생각 후에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의학적으로 심장 박동이 멈춘 시간이겠지만, 나에겐 이미 전이었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그 짧은 시간, 내가 마지막 기도를 했을 아버지가 반응이 없었다.

그때 나는 이미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것이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의 나와 소통할 없었다. 의지가 없는 것인지 힘이 없는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과 아무 상관없이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 세상, 육체의 세상에 속한 나는 아버지께 있는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는 육체적으로 죽어야했고, 나는 그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렇게도 가깝고 다정한 나의 아버지가 나의 존재와 아무 상관없이 자신의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그 장엄하고 서러운 서사시를 압도되어 말없이 바라보아야만 했다.


진통을 겪는 산모의 신음과도 같다고 느꼈던 아버지의 신음, 그것은 어쩌면 실제로 영혼의‘진통이었을지도 모른다. 열달 동안 자궁안에서 살아온 생명체가 몸을 찢고 나오는 고통이나, 90 동안 강대건의 몸에서 살아온 영혼이 이제까지 그렇게도 편안히 거주하던 몸을 벗어나려니 찢고 찢기고 갈라지는 고통이 필요한 아니겠는가.


산모의 몸을 뚫고 아기가 탄생하는 순간까지 진통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의 경우는 옆에서 남편이 분만 준비 교실에서 배운 라마즈 호흡으로 나를 도와주려고 그게 도움이 되기는 커녕 귀찮았었다. 그냥 내가 혼자 아기를 낳게끔, 나의 몸에, 나의 진통에, 홀로 산도를 뚫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아기의 리듬에 집중하고 싶었다. 


나는 그와 비슷한 욕구를 아버지에게서 보았다.

나는 무어라도 해보려고 했으나 아버지에게는 나의 존재가, 나의 도움이, 이미 필요 없었다

아버지는 혼자 죽음의 과정, 고통에 올인해 있었다

아버지는 순간에는 '나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냥 자기에게 주어진 죽음의 과정에 온전히 자기를 내맡긴 한 인간이었다.

산모와 아기가 생명을 위해 '살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면, 마지막 순간의 아버지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기 위해, 즉 '죽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 것 같다는 게 다를 따름. 



아버지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순간, 평화가 왔다. 

그의 고통이 끝나고 신음은 멈춰졌다. 

마치 15 시간 동안의 진통 , 아기가 태어나고, 태반이 미끄러지듯이 빠져나오자마자

이제까지 무슨 고통이 있었냐는듯 내 몸이 순식간에 평안해졌듯이 

아버지에겐 평화가 왔다.


평화는 나에게도 주어졌다.

아기가 산고를 거쳐 엄마의 육체를 벗어나 생명을 시작하듯이

아버지의 영혼이 낡은 육체를 찢으면서 다시 태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사실이

나에게 형언하기 힘든---그리고 방금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딸이 겪으리라 상상하기 힘든--그러한 평화를 가져왔다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들은 이들은 아버지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으셨다는 사실에 의미를 둔다. 이해가 되는 반응이다. 이전에는 나도 그랬었다. 잠자다 눈을 감는 가장 축복, 사랑하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죽는 것이 축복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오빠의 임종을 지킨 뒤에, '오빠가 떠나는 순간에 외롭지 않게 같이 있어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떠나시는 순간, '의학적인 죽음' '육체의 죽음' '심장박동이 멈춤' 이전에 이미 죽음이 아버지와 나를 가볍게 분리시키는 것을 경험한 뒤 나는 소위축복받은 죽음 대해 그리 확신을 갖지 못하겠다.


물론 죽는 사람이 죽는 순간까지고통없이 사랑하는 이들을 보면서 죽는 가장 축복임을 인지하고 죽는 순간을 감사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어떤 의미로 죽는 사람이 죽음을즐긴다'고 하는 소리같고, 과연 죽는 순간에 인간이 그럴 있을런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어떤 이는 고통 속에 죽고, 어떤 이는 고통 없이 죽고, 어떤 이는 길을 가다가 소위객사 하고,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죽고.....어떤 죽음이 가엾고, 어떤 죽음이 호상이고...그건 살아있는사람들의 견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를 떠나시는 모습을 본 뒤 나는 죽는 사람들은 그냥 자기 죽음에 집중할 따름이고, 그게 어떤 모습이든 살아있는 자들은 그저 겸허히 존중하면 된다고 믿게 되었기때문이다. 


나는 분명히 보았다. 정확히 5 일에 걸쳐 일어난 아버지의 죽음의 여정에서 (뇌출혈, 병원 입원, 퇴원, 사망) '죽음을 대면한 한 (사회적) 인간 모습과죽음에 집중하고 있는 인간 모습이 무척 다르다는 것을.


처음 뇌출혈이 있었을 , 아버지는 의식이 흐릿한 상태였고 시간 정도 옆에서 안달하는 우리들에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내가 기도를 순간에 나에게신주야, 고맙다라고 감사를 표현했고, 자신이 마음으로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줬다. 이후 나흘 동안 아버지는 죽음에 가까운 사람으로서 의연하고, 가족들의 사랑을 감사하는 그런 '죽음을 대면한 사회적인 인간'이었다. "I'm so happy" 라는 말을 돌아가시기 13 시간 전에 하셨던 아버지는 죽음을 대면한 사회적인 인간으로서 소위 아름다운 죽음을 맞을 채비가 되어 있었다. 만약 그때 아버지랑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면 아버지는 '나는 너희들이 옆에 있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 기쁘다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길게는 2 시간, 짧게는 30 분, 아니 마지막 5 , "죽음에 집중하고 있는 한 인간" 으로서의 아버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의식이 있었지만 의식은 자신의 죽음에만 집중하고 있었고, 내가 곁에서 안달하면서 어떻게든가 해주려고 하는 도움, 죽어가는 아버지를 도우려는 일종의 '라마즈 호흡,'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죽음에 집중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는 그 짧은 순간, 나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진통에 괴로워하는 나에게 내 옆에서 나의 손을 잡는 남편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듯이 나는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그 사실이 나에게 상처를 주기 보다는 내가 그의 삶의 엄청난 사건--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는 것에 가슴이 떨렸다.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여러 생각들이 나의 마음을 복잡하게도 했지만 이제 나는 안정을 되찾고 있다.  특히 죽는 모습이 어떠하든, 어떤 고통이 수반되든, 어떤 슬픈 사연이 있든 없든, 죽는 사람은 그냥 혼자 열심히 죽는 것이라는 깨달음 나에게 슬픔보다는 위로를 준다. 인간이 유일하게 평등한 순간이다. 거기에 미사여구를 붙이고, 호상이니 뭐니, 상을 크게 치루니, 어떤 묘지에 묻는가....식의 살아있는 사람의 염원이나 고정관념은 덕지덕지 붙이지 않는 게 기본적 예의인 것같다. 


만약 내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면

아버지는 그래서 쓸쓸하지 않으셨을 거고, 아버지는 그래서 슬프지 않으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아버지가 고통 속에서 욕을 하고 고함을 지르다가 사망하셨다면? 돌아가시면서 변을 보셨다?

뭐래도 상관없다. 애를 낳을 때 변을 보는 산모도 있고, 24 시간 진통을 겪다가 제왕절개를 하는 산모도 

있다. 그들은 다 그 끔찍한 고통을 다시는 겪고 싶어하지 않지만 그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고 두고 두고 이야기하지 않던가. 그거나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욕을 하던, 멱살을 잡던, 변을 보던, 토를 하던, 그건 새 생명을 향한 뜨거운 몸짓의 하나일 따름이다. 죽음에 열중하는 그 용맹스러운 '사투'를 나는 존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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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의 영혼이 낡은 육체를 찢으면서 새로 태어나시고,

자유롭게 것을 축하드려요.


더 이상 죽음이 없는 빛의 세계에서 아버지의 영혼이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면 기뻐요. 

엄마랑 그런 이야기 많이 해요. 

이미 우리 몰래 옆에서 듣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제기 지금 너무 힘든 것은 지금 제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제가 글을 끄적거려서 좀 정리를 해보려고 하는

죽음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아버지랑 같이 두런두런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에요. 

수발 들때는 매일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었던 그 대화가...사라져버렸네요.


전 아버지한테 막 이야기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아버지, 아버지 돌아가실 때 말이에요. 그 때 내가 옆에서 아버지 응원하는 거 안 보였죠?

아버지는 그냥 죽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셨지요?"


"아버지, 도대체 나를 무시하고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본 게 뭐였어요? 나 좀 섭섭하던데...?"


"아버지, 돌아가실 때 눈이 얼마나 예뻤는지! 완전 예쁜 여자 연예인 눈 수준이었다우~"


이렇게 예전처럼 아버지한테 장난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그럴 수 없음을 깨달을 때,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절절해지고

아버지가 진짜 돌아가셨거나 절감합니다.


사별이 아무리 힘들어도 잠시 기다리면 된다는 그런 희망때문에 견딜만한 힘듦이다' 라고 

번듯한 생각에 나의 마음을 맡기려 하지만,

모든 게 생각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이렇게 기분이 꿀꿀하고 힘들 때도 있는 거겠지요.


지금 당장 저의 친구, 저의 멘토이신 아버지가 

너무도 그립습니다.


(아버지랑 이야기를 못하니 매일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거라...)


아버지, 또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