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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풍 힐러리-그림치료- 남편이 만든 빵
    카테고리 없음 2023. 8. 22. 07:54

    주말에 (토요일 저녁- 일요일) 멕시코와 남가주에 태풍 '힐러리'가 올 거라는 뉴스에 모두 긴장했던 며칠이었습니다. 남가주 지사가 남가주 비상사태를 미리 선포했을 정도로 큰 피해가 예상되었고, 비상사태에 대비해 준비를 하라는 권고 문자들과 이멜들이 왔습니다.

    저희도 응급 상황에 대비해서 바테리들을 준비하고, 손으로 충전하는 라디오를 구입하고, 시에서 주는 모래주머니도 얻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모래주머니는 단 몇 시간 만에 동이 나서 못 받아옴)

    토요일 아침, 평상시처럼 엄마와 호수 산책을 나갔습니다. 바람 한 점없이 고요했습니다. 곧 태풍이 온다는 게 믿기 어려우리만치, 평상시보다 더 고요했어요. 

    토요일 오후에 가벼운 바람이 약간 분 것말고는 태풍의 조짐이 없었습니다.

    본격적 태풍이 예고되었던 일요일, 아침에 비가 내려서 산책을 안 나갔습니다.  태풍이 멕시코의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에 상륙했다는 뉴스에, 이제 올 것이 왔구나, 언제 우리 동네를 칠 것인가...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태풍의 강도가 4에서 3으로, 3에서, 2로 점차적으로 약화되었습니다. 

    지역마다 태풍의 영향이 다른 듯, 저희 동네의 경우 일요일 오후 4 시 경에 바람이 불고 비가 많이 내렸고, 월요일 아침, 비는 깨끗이 개였고, 해가 났습니다. 오늘 (월)까지 저의 도시에는 큰 피해는 없는 것 같습니다.

    타 지역에서는 호우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나 봅니다. 뉴스를 보고 이스라엘 어머니, 브뤼셀 식구들, 그 외 친구들이 연락을 해왔습니다. 저도 그제야  뉴스를 보고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기상전문가들이 예상했던 대로 폭우와 돌발홍수로 큰 피해를 받은 지역은 사막 지대.  팜스프링을 비롯 사막 지역의 도시들은 폭우에 익숙하지도, 대비가 되어 있지도 않아서 문제. (특히 팜스프링 지역의 피해가 아주 큰데, 해외 뉴스에는 팜스프링 영상이 많이 뜨나 봐요.)  그 외에도 엘에이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돌발 홍수로 도로들이 침수되고, 퇴적물과 진흙고속도로가 폐쇄되고, 차량이 침수되고, 정전이 되고,  샌디에고의 경우 강변에 위치한 노숙자 야영지에서 무릎 깊이의 물에 빠진 13 명의 노숙자들이 구조되는 일이 있었다고 해요.  앞으로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현재까지는 염려했던 것보다는 피해가 적은 것 같습니다. 
     
     
    그림 그리기 치유
     
    저는 금요일에 충격적인 소식을 하나 들었고,  너무 슬프고 황당했습니다.

    토요일, 일요일, 하루는 기운을 모아 그림 한 장을 그리면서 마음을 다독였고, 또 하루는 완전히 쉬었습니다.

     

    제 마음의 폭풍우의 시간적 배경이 허리케인 힐러리이네요. 영원히 잊지 못할 시간...

     

    아무것도 못하겠더군요.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 그리기 전,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팜펨아, 너의  '삐라 스타일'에서 벗어나보자!

    덧칠하지 말자!! 덧칠하려고 하면 붓을 꺾어라!"

     

    삐라 스타일에서 탈피하겠다는  원대하고 단순한 목표를 세우는 순간, 이미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그림 그리는 동안 저를 힘들게 하던 생각을 잊었고, 여행 사진을 보면서 옛날의 기억에 온전히 젖어들었습니다. 


     
    예전에 딸과 했던 하노이 여행.  호텔에서 내려다본 복닥복닥 소란스러운 하노이의 경치입니다.

    저희는 하노이에 체류하는 동안  작고 아담한 호텔, 대형 호텔 두 개, 하노이에서 떨어진 시골 마을의 작은 호텔 등 4 개의 호텔에서 묵었어요. 대형 호텔은 편하고 쾌적했고, 한 호텔의 경우는 업그레이드를 해줘서 그 호텔에서 최고의 방인 엄청 넓고 호화로운 프레지덴셜 suite를 사용했었어요. 들어서자마자 압도적인 경치에 '와와~~~' 하고 사진을 몇 장 찍었지만, 그 후에는 그 방에서 사진을 별로 안 찍었더군요.  방에서 보이는 경치든, 호화로운 방의 사진이든, 호텔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있는 사진들, 깨끗하고 예쁜 방들이란 면에서 같은 급의 다른 호텔들의 방들과 그리 다를 바 없으니까 저에게 개인적인 의미가 그다지 없었어요.


    그러나 도심에 있는 작은 호텔에서는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던  지역민 사는 냄새가 폴폴 나는 나는 경치, 다양한 색깔, 끊이지 않는 소음, 다 좋았어요.   

    호텔 투숙해서 짐을 풀자마자 서둘러 내려가 그 경치의 일부가 되어 온종일 보냈는데도 그 다음날 보면 그 경치에 새로운 설렘이느껴졌어요.  신기하게도 호텔에 머무는 며칠 간, 창밖을 내려다볼 때마다, 설레임이 내내 같은 진동으로 느껴졌다는…

    몇 년이 지나서 사진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그때의 설렘을 현재 진행형으로 몇 시간 동안 느꼈습니다.

    행. 복.
     

     
    덧칠의 습관은 여전했지만, 차마 붓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ㅠ

    다음 번에 더 노력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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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어제 만든 빵입니다.


     
    낮에 폭우를 뚫고 마켓에 가서 재료를 사 와 만들었어요. 
    코코넛 설탕, 계핏가루를 입힌 사과에 페이스트리 반죽을 곱게 싸서 베이킹을 한 거예요.
    자기 고향의 고유한 페이스트리라고 하네요. 
     
     우리가 결혼한 지 30 년이 되어가는데 한 번도 먹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남편 고향의 '빵.'
    남편도 이걸 마지막으로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네요.  40 년 전임은 분명하다고 해요. 이름도 가물가물했다고 해요.
     
    근데 갑자기 왜 이 빵이 생각났고, 왜 만들고 싶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시댁 식구들의 단톡방에서 이 페이스트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나 봐요. 남편은 갑자기 어렸을 때 생각이 났고, 갑자기 그 빵이 먹고 싶었는지 폭우를 뚫고 마켓에 간 거였어요.
     
    사과에 배어든 향기로운 계피향, 달콤한 시럽으로 촉촉해진 크로와상, 
    엄청 맛있었어요.

    "엄마도 이 빵을 잘 만드셨지. 엄마도 이 빵을 좋아하셨어."

    라고 남편이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모든 가족 모임 디저트로 이 빵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빵을 먹을 때마다 우리는 아이들과 남편의 고향 이야기를 하고, 돌아가신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추억하겠지요. 그렇게 정기적으로, 그러나 자연스럽게, 그리고 맛있게 시부모님을 추억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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