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와 랄라는 나이가 두 살 넘게 차이가 나지만

룰루가 3 학년 때 유급하고

랄라가 같은 학년에 월반을 하여

 내내 한 해 터울로 다녔다.


여러 사람이 말렸고

나도 우려의 마음이 없지 않았다.

(유급 함부로 하지 말라,

월반 함부로 하지 말라---

그런데 그걸 동시에 했으니...)

그럼에도 

아이들 각자의 지능과 발달 상태, 그리고 내가 자주 쓰는 말---아이들의 DNA 가장 맞는 환경을 택하다보니-- 

유급과 월반을 동시에 하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그럭저럭 다니다가

고등학교에 가서 두 아이의 삶이 확연하게 달라지면서 

사람들이 간혹 질문을 했다.


"동생이 그렇게 잘나가니 오빠가 힘들어하지 않느냐"


그럴 질문이 나올 법한게

룰루는 4 년 내내 스포츠, 음악, 클럽---하/나/도 참여하지 않고, 친구들도 별로 없이,

존재감 '제로'의 학교 생활을 했다.

(나는 혼자 그를 '방콕 왕자님'이라 생각했다)

오빠가 방에 틀어박혀 있는 왕자님이었다면 

랄라는 4 년 내내 인기투표에서 여왕으로 뽑히고 총학생회장에 홈커밍퀸까지 바쁘고 화려한 학교 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게 두 아이 사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동생이 잘난척하며 오빠를 무시 하지도,

오빠가 자격지심으로 동생을 질투하거나 미워하지도 않았다.


자라면서 둘이 무척 많이 다퉜지만 

한번도 서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싸움을 한 적이 없다.

 얘들이 불필요한 경쟁이나 질투에 사로잡히지 않고 존중하는 게 나 스스로도 신기했다.


분명 어려서는 '오누이의 경쟁' 이란 게 우리집에도 존재 했었기때문이다.

오빠가 쥬스를 조금 더 마시면 피해의식을 느끼는 동생

동생이 피자 조금 더 먹으면 분노하는 오빠...


정확한 분배를 요구합니다~

쟤한테 더 주면 안되요!

나도 똑같은 그릇에 줘요!


그래서 나는 마치 실험하는 과학자처럼 양을 정확히 하거나

아니면 정확히 하는 척이라도 해야했다.

예로 똑같은 크기의 잔에, 똑같은 양의 음료수에 똑같은 크기의 피자 조각을 잘라주는 식--.




아이들에게 원초적인 공정함의 잣대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 너희들이 맞아. 

공정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좋은 거야' 

하면서 마치 눈금을 재고, 자로 재는 듯이 '쇼를 하면서'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줬다.

'네가 오빠니까 양보해야지' 라던가

'네가 동생이니까 오빠에게 더 줘야지' 는 

아이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강요하지 않고

그냥 정확히...정확히...


 피짜 조각, 쥬스 한방울은 

애들에게는 부모의 사랑의 크기로 느껴질 수 있다.

엄마의 인정과 사랑을 두고 경쟁하는 애들에게

정확히 재서 주는 척이라도 하니

애들이

불필요한 피해의식이나 애정 결핍은 느끼지 않았던 것같다.


또 하나,

고등학교 시절에 그리도 중요하다고 하는

아이들의 공부와 사회적인 인정에 

남편과 내가 좀 무심했던 것도 

두 아이의 관계에는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싶다.


랄라가 매년 회장 선거 나갈 때마다,

인기 투표 할 때마다

여러 대회 나갈 때마다

그리고 매번 운이 따르는지 좋은 소식을 들고 올 때마다

남편과 내가 아이 입장에서는 거의 무관심하다 느낄 정도로 덤덤한 반응이었다.


"오, 그랬니?!"

"잘되었구나!"

(나의 반응)


남편은 완전 독종 무관심.


"랄라가 퀸이 되었다고 문자 왔어" 라고 소식 전해주면

예이~~! 하고 좋아하기는  커녕

"미국 애들은 나이가 다 먹어서도 왜 킹이니 퀸이니 하고 놀지?" 하고

문화적 고찰/비판에 빠져든다. 


랄라 부모가 이런 꼬라지라는 걸 알고

랄라의 절친이,

"너, 부모가 그래도 괜찮니?" 하고 동정과 우려를 표현했다고 하더라.


돌이켜보면 4 년 내내,

랄라가 더 많이 이룬다고 우리의 관심을 더 받지도 않고,

룰루가 폐인처럼 방구석에서 처박혀 외로운 틴에이저 시간을 보낸다고 잔소리 듣지 않았다.

그냥 생긴대로 받아주고 존중하고 사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사람들의 경험에 의거해서 해주는 조언이나

심리학자나 교육학자들이 

'이러면 안된다' '저러면 된다' 라고 하는 이야기를 경청하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DNA 를 잘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싶다.

우리의 경우는 아이들의 타고난 개성을 철저히 존중해준 것이

아이들 각자의 성장에,

그리고 불필요하게 꾸겨지지 않는 둘의 관계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아이들이 각자 여자친구,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오누이의 관계에 새 활기가 불어넣어질 것이고 변화가 생길 것같다.


계속 지금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다면 좋겠다만..

두고봐야할 일. 













글쓰기란 무엇일까?

나에겐  '미침 방지용 행위'다.


미치지 않기 위해서 글쓰는 것이다.

둥글둥글하니 마음 좋아보이는 예수쟁이 팜펨 아줌마가 미친다고?

그렇다.

옛날 학생 시절부터 글을 못쓰거나 안쓰면  미칠 것같아 괴로웠다.

글이라고 대단한 게 아니라 그냥 잡다한 생각들을 끄적이는 건데 그거 제때 제때 못하면 미치는 거다.


미침의 초기 증상은? 

울음이다.

엄청 운다.

증상이 가벼우면 그냥 30 분 정도 울고 좀 심할 때는 한 시간 넘어 운다.

침대를 구르면서 이불 쥐어 짜면서 곡을 하면서 운다.

그렇게 울음 발작이 지나고 나서

헤~~ 시원하다~~ 하고 나와서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블로그를 업데이트를 자주 안 해도 나는 내내 혼자만의 글을 써왔었다.

그런데 몇 달 전 부터 글을 쓰기에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서 글을 안썼다.

억지로라도 좀 글을 썼어야하는데...

너무 피곤해서 운동을 못하겠다 게으름 피우고 싶을 때  억지로라도 운동을 하면 몸도 마음도 상쾌해지듯이

글을 써서 생각을 좀 뱉어냈으면 마음이 편한데, 그걸 안해서 

나는 마음 밭이 쑥과 잡초가 무성한 쑥대밭이 되어 버려 울음 발작이 잦아졌다.


울음 발작이 잦아지니까

에릭은 내가 아버지 수발드는 삶이 너무 고달파서 우는 줄 알고 걱정을 했다.

아! 그게 아닌데..

20 년 넘게 살아도 자기 부인을 몰라요....ㅠ


에릭에게 내 증상을 설명을 하다가 깨달았다.


내가 글을 쓰기 어려운 원인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게 책상이 없다는 사실.

책상 대신 '움직이는 컴퓨터'--랩탑을 들고 이리저리 전전하며 글을 썼다.

문제는 바쁜 일상 중 간신히 30 분 나의 시간이 주어질 때 식탁, 거실, 침대를 전전하면서 글을 쓰다가 

랩탑을 닫으면 마치 생각의 고리를 끊어버린 듯이 다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는 내가 책상을 너무도 사랑하고, 내가 현재 책상이 없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방 두 개의 기숙사에 살 때 아이들방, 안방, 작은 거실, 어디에도 책상을 둘 곳이 없었을 때 나는 평방 1 미터의 작은 창고에다가 

내 책상을 만들어 넣고, 신발 더미와 청소도구 옆에서 글을 썼다. (책 한 권을 냈다)

그 후 방 세 개의 집으로 이사가서 조그만 안방 침실에 퀸 사이즈 침대 옆에 큰 책상을 두고 글을 썼다.

내가 읽는 책들 여러 권이 펼쳐지고, 노트를 끄적이고, 그림도 그리고....나에게 큰 행복을 주었던 책상..

아이들이 어리고 요구되는 일들이 많아서 어떨 때는 미니밴 속으로 도피해 차 창문을 이불로 가리고 글을 쓰기도 했었지만

대부분 나는 나의 책상에서 글을 썼다. (책 한 권 냈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면서 방이 네 개이니 이제 책상 옆에 내가 좋아하는 책들의 책꽂이를 둘 수 있는 호사를 누릴 거라 들떠했다.

그런데 우리 가족에게 여러 일들이 생겼고 

나는 자연스레 시간과 나만의 공간을 포기하게 되었다


최근에 울음 발작이 심해지면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글쓰기라는 심리치료를 너무 등한히 했구나.

나에겐 나만의 시간 만큼이나 나만의 공간이 중요하구나.

미치지 않기 위해 글 쓸 공간을 나 스스로에게 마련해줘야하겠구나.

열어놓은 책을 덮지 않아도 되는, 열어 놓은 스크린을 닫지 않아도 되는, 언제든지 돌아와 글을 끄적일 수 있는 책상을 마련해야하겠구나.


그래서 오늘 랄라가 쓰던 빈 방, 랄라의 책상에 컴퓨터를 들였다.

램프를 새로 샀다.

나에게 맞는 의자를 갖다 놓았다.

근 4 년 만에 내 책상, 처음이다.


야호~

야~~

호레이~

좋아 미치겠다.

좋아 미치겠다.

아니, 좋아서 미쳐가고 있다!


이래도 저래도 미친다니, 

팜펨, 어쩌우~!  





어렸을 때 엄마의 몸은 나의 놀이터였다.

나는 엄마의 젖을 밀가루 반죽인양 주물럭거리면서 빵을 만들고, 수제비를 만들었고,

엄마의 머리를 빗고 따고 묶으면서 미용실 놀이를 했으며

종이를 접어 자동차라하며 엄마의 팔과 발에서 윙윙 자동차놀이를 했다.


이후에 내가 엄마가 되어 나의 아이들이 내 몸을 올라타고 머리를 잡아당기며 장난을 할 때

나는 깨달았다.


그 옛날 나의 놀이터였던 엄마가 사실은 너무 피곤해서 누워있었던 것이고

철없는 내가 올라타고 주무르고 한 것이었다는 것을.


세월은 훌쩍 지나 나는 환갑이 가까워졌고,

엄마는 팔십대 중반.

엄마의 몸은 다시금 나의 놀이터가 되었다.


목욕 한 뒤에는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려드리고

목, 등, 허리, 다리를 골고루 안마하며

이것 꼭 깔고 앉으세요, 이 벼게를 무릎 밑에 두고 누우세요--

돌아누워보세요~


더 이상 몽실몽실, 탄탄하지 않은 엄마의 몸,

나의 놀이터는 이제 많이 늙었지만

신기하게도 엄마의 몸을 터치하면서 느껴지는 행복함은 여전하다.

추억을 돌이키면서 느껴지는 행복감도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