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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벨기에에 와 있음.


벨기에 오는 길에  암스테르담에 들러 며칠 있던 중.

월드컵--브라질/벨기에의 경기가 있었다.


네 명의 식구 중 세 명이 벨기에 국적인 팜펨의 가족,

평소에 축구에 관심이 없었고,

애국심의 표현이란 찾아보기 힘들었었는데,


아니, 월드컵이 뭐라고

마른 들판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듯 애국심이 생겨나,

아이들이 이야기 중 벨기에 팀을 갖고 "우/리/팀' 이라고 하질않나.

남편도 마찬가지, 

호텔 방 티비가 아닌, 여러 사람들이 모인 광장에서 벨기에 응원을 하리라 결심하더라는.


안타깝게도,

네덜란드 입장에서 자기들이 참가하지 못하는 월드컵의 

남의 나라 경기에 스테디움을 채워 응원할 일이 없는 바,

결국 우리는 '코코' 라는 큰 식당 주위의 여러 식당에 여러나라 축구팬들이 모인다는 정보를 얻어

대차게 벨기에 응원 해주리라 맘먹고 응원지로 향함.


코코 식당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무리지어 걸어가는 축구팬들만 쫓아가면 되었으므로.

그러나, 옴메...어쩌...

가는 길좌우로 같이 걷는 무리들이 다 브라질 응원팀.

초록색, 노란색 티셔츠, 북, 가발.


하아....오늘 경기 응원이 장난 아니겠구마...


식당가에 도착하니 큰 식당들은 만석이다못해 인파가 길거리로 흘러나올 지경.



소란한 응원 열정.

다...브라질 팀 응원.ㅠ

열정적인 브라질 응원팀 덕에 온 공기가 뜨끈뜨끈,


벨기에 팀 응원단은 어디에?

도대체 찾아볼 길이 없었음.

간첩처럼 남 모르게 군데군데 숨어있는 건지...





앉을 곳을 찾아 방황하다가 우리는 간신히 나름 한적한 이태리 식당에 들어갔다..

한적하다 해도 만석.


좌우로 다 브라질 팀 응원단이 앉아 있는데

승리를 예견한 듯, 유쾌하고 자신있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음.


우리는 조심스레 자리를 잡았음.

결국 우리도 간첩이 된 것임.

조심스레, 주위에 표가 나지 않게끔,

벨기에 색깔이란 하나도 없이.

프랑스어 대신에 영어를 쓰는

벨기에 간첩.


경기가 시작될 무렵 식사가 나왔는데.

와아~~아악~~야이~~!! 소리지르는 브라질 응원단 소리에 밥이 잘 안 넘어감.


경기 시작하고 얼마 안되어 떠오른 생각,


'내가 보면서 응원하는 경기는 다 진다!' 


진짜임..

남들은 말도 안된다 하지만

팜펨 평생 무수한 경험을 통해

내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보면 진다는 슬픈 진리를 터득하게 되었음.


'벨기엘 도와야지,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팜펨은 밥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황급히 밖으로 향하는 나에게 랄라가 물었음.


"엄마, 무슨 일이야?"


"내가 나가야 벨기에가 이겨!"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하는 표정의 딸을 두고 황급히 뛰어나왔음.



벨기에의 승리를 위해서 내 한 끼 희생 못 하리오...


밖으로 나오자마자 운하 쪽으로 걸어가면서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지금 경기 보다가 나왔어요. 뭐하고 계셔요?"

"난 경기를 볼 자신이 없어서 설거질 하고 있어."

"저도 그래서 나와 있어요.."


어머니랑 통화를 시작한지 1 분도 안되어 폭발적으로 울려퍼지는 함성!.

쯔나미처럼 한순간에 일어나는 인간의 함성의 물결에 북소리와 호르라기 등 강하고 날카로운 소리들이 울려퍼짐.


"어머니, 골 먹었나봐요. 벌써...."

"그래? 여기까지 소리가 들리네."

"아, 이렇게 일찍 골 먹으면 앞으로 회복하기 힘들텐데..."

"아니, 팜펨, 그래도 괜찮아. 이제까지만해도 얼마나 잘 한 거야. 져도 괜찮아..."

"맞아요. 어머니..."


우리가 서로 위로를 하고 있는데 함성 소리를 계속 되었다.

브라질 팀 응원은 역시 대단해...

불쌍한 벨기에...


어머니가 갑자기 말씀하셨다.


"브라질이 골 넣은 건데 왜 우리 동네가 이렇게 시끄럽지? 창문으로 소리가 들리는데 너무 커"


그 소리에 난  '브뤼셀에도 브라질 팀 응원단이 있구나...대단혀...'라 생각했다는..


어머니가 확인 좀 해봐야겠다시며 티비를 켰다.


"팜페에에엠!!!"


평소에 침착하신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심.


"벨기에가 골을 넣은 거야!"

"네? 벨기에가요?"


그렇다면 이동네의 이 함성은 뭐지?

벨기에 응원단이 이렇게 많았다구?


아, 벨기에 응원단은 진실로 간첩이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곳곳에 조용히 숨어 있다가 

자기들이 이기니까 뛰어나온 거다.


어머니와 흥분의 통화를 하고 급히 식당으로 돌아갔다.

브라질 팬 바다의 식당의 맨 중앙에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던 팜펨의 가족,


딸아이가 흥분해서 "엄마, 봤어? 봤지? 봤어야해!" 소리지른다.

남편은 조용히 빙긋 웃는다.

(골.수.간.첩)


후반전 경기가 시작되었다.

식당에 앉아서 같이 응원하려고 했는데 볼의 움직임이 심상치않다.

브라질..정말 .잘하는구나.


갑자기 또 섬광처럼 그 불편한 진리가 떠올랐다.


아...내...참...

벨기에의 승리를 위해서 또 한번 희생을 해야하겠다.


내가 자리를 뜨려고 하니

딸 아이가 이미 내 의도를 알아채었다.

엄마의 존재 여부가 벨기에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진리를 믿게 되었는지 거침없이 나를 쫓아낸다.


"엄마, 빨리 나가~~ 빨리 나가~~" 


(섭섭...)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

촌각을 다투는 경기인데

내가 밍기적거리다가 벨기에가 골 먹으면 안되니까..


내 불편한 진리에 의하면

경기를 직접 보면 안되지만 

경기가 일어날 때 옆에 있는 것은 괜찮다.

직접 못보더라도 경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팬들의 환성으로 가늠하는 것도 재미,

응원하는 사람들 구경하면서 왔다리...갔다리...


걸으면서 시어머니께 또 전화를 했다.


"어머니, 저 또 식당에서 나왔어요. 벨기에의 승리를 위해서....


어머니가 하하하 웃으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또 함성이~~

아까보다 더 큰 함성이다.


아, 벨기에가 골 먹었구나.

브라질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내 생각을 읽은 듯이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브라질이 워낙 잘하니까... "


"그래요. 한 골 넣은 것만해도 대단한 거죠."


"그런데 왜 이웃사람들이 소리를 지르지?"

어머니가 궁금한지 또 티비로 달려가시더니  믿기 어려운 소식을 전해주셨다.


"팜페에에에엠~!!!!  브라질이 아니라 벨기에야, 벨기에! 벨기에가 넣은 거야!"

"어머, 정말이요?"


기쁨과 동시에 몰려드는 절망감.


아, 내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안봐야 이긴다는 이넘의 진리는 여전히 진리이구나..



나는 언제까지 길거리를 방황해야하는가...

벨기에 팀을 위해서..

후반까지 경기가 끝나려면 한참 남았는데...


하프타임에 식당에 들어갔다.

남편은 여전히 간첩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침착하게 맥주병에 적힌 농도와 원료를 읽고 있다.

,

아들 아이는 아직가지도 간첩임을 들키지 않으려고하는데 간첩인 티가 줄줄 흐르는 미소를 짓고 있고,


그저 딸아이만 룰루~랄라~~오예~~축제 분위기다.

듣자하니

골 넣었을 때 혼자 펄쩍거리고 뛰고 고함지르고 난리도 아니셨단다.

식당 종업원이 와서 딸에게

"이 식당에서 벨기에 응원하는 사람은 너 혼자인 것같다'라고

용기를 심어주더라는..


딸의 말로는 그 식당 안에 우리 말고도 벨기에 간첩이....아니, 벨기에 응원팀이 4 명 정도 있었단다.

조용히 구석에 숨어 있다가 골 넣으니까 잠깐 박수치더란다.


식사는 포기하고 디저트를 먹었다.

아이스크림 몇 술 뜨기도 전에 

후반전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브라질의 맹공.

아, 맞아, 

두 골을 넣었다고 방심할 수 없겠다.

벨기에의 승리를 위해 내 이 한 몸 다시 희생하리...


밖으로 나왔다.

들낙날락거리는 나를 보면서 종업원이 빙긋 웃는다.


딱히 갈 곳이 없으니 왔다갔다 똑같은 거리를 왕복하는 수밖에.

경찰들이랑 이야기도 좀 나누고.



담배 연기를 피해서 사람들이 좀 적은 곳에 서서 시간을 때우는데


내 옆에서 어떤 남자가 나를 힐끗힐끗...

왜 그러지?

그렇기도 하겠다.

벨기에랑 브라질이랑 상관없는 사람이 목적없이 배회하는 것이..


그러나 심상치않다.

내 옆을 서는 남자들마나 나를 힐끗힐끗...

예쁜 여자 쳐다보는 힐끗힐끗이 아닌

뭔가 불편해하는 듯한 힐끗거림.


내가 뭐 남에게 피해주는 일이라도 한 것인양.

난 벨기에를 위해 경기 시청을 포기하고 방황하는 것일 따름인데!!!


나도 불편한 시선을 쏘았다.


오, 마이!

시선을 쏘아대다가 난 발견했다.  

내가 무심하게 서 있던 곳이,

나는 사람들이 물 마시는 곳이라 생각했던 그곳이

바로 남자들 공중 변소라는 사실을!


미국에서는 찾아볼 길 없는 그런 암스테르담의 남성 공공 소변기.

마치 공중 전화기처럼 4 면으로 변기가 달려있고

소변기 주위만 약간 보호되어 있지 모든 것이 다 열려있는 남성 소변소!


내 옆에서 소변을 보면서

'저 꺼먼 옷 입고 머리 풀어해친 늙은 동양 아줌마는 남성 소변보는 거 즐기는 변태인가봐...'.

라 했을 남성동지들에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자리를 급히 피해 옆의 식당의 팬들 옆에 붙어 섰다.

내가 경기를 보면 안된다는 진리를 잠시 잊은 채.

그러나 너무 면구스러워서 어딘가에 붙어 서야했었다.


바로 그 순간,

내가 소변기때문에 당황에서 잠시 정신 놓고 티비 화면에 눈을 둔 순간,

아악~

브라질이 벨기에 골에 공을 꽂았다.


이럴 수가..

잠시 돌아본 순간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롯의 부인마냥,

나는 잠시 얼어붙었다.


물밀듯이 밀려드는 후회.

내가 소변기 옆에 서 있지 않았더라면...

내가 식당 옆에 빌붙어 티비를 안 보았더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텐데...


나는 열심히 뛰고 있는 벨기에 선수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니,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여기 있다가 화면 잠시 보는 순간 또 골 먹을 수 있다!


나는 황망히 자리를 떠나 운하 쪽으로 향했다.



막바지에 이른 격렬한 경기에 팬들의 환성은 내가 서 있는 다리까지 들렸다.

멀리까지 들리는 함성이 도대체 벨기에를 위한 건지 브라질을 위한 건지를 모르고

듣기만 해야하는 나에겐 고문...

그나마 짧은 고문이라 다행이었다.


경기는 끝났다.

호루라기, 드럼소리가 들린다.

식당가로 돌아가니

여기저기 식당에서 꾸역꾸역 나오는 브라질팬들, 간첩들, 민간인들...



식당에 들어가 남편과 아이들을 만났다.

드라마틱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엷은 미소뿐이다.

진짜...골수까지 간첩...ㅠ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아이들은 나를 보자마자 속사포~


"엄마, 못봤지? 정말 멋진 경기였어.

우리팀이 너무 잘했어.

골키퍼는 신이야, 신!"

"후반전에는 정말 우리가 비길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벨기에, 우리, 우리.....

아이들이 자기 나라를 '우리 나라'라고하니 에릭이 얼마나 기쁠까...


우리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면서 

천천히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


자기들이 '우리 나라'라고 하는 벨기에의 승리를 위해

이 어미가 

90 분 넘는 시간을 

주린 배로, 

혼자 헤매고 다녔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듯..



** 팜페미가 믿는 '진리'는 사실은 경기 보면서 혈압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한 자구책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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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간의 짧은 시간, 암스테르담은 참 예뻤습니다.

아이들과 5 년만에 하는 여행, 참 행복합니다. 



















오빠야,

안녕~!

천국에 가신지 오늘로 5 년이 되었네!

오빠가 떠나시던 순간이 나에겐 너무도 생생한데, 그게 벌써 5 년 전이라니....


오빠는 축복의 기도 속에 돌아가셨어요.

난 오빠의 낯빛이 코에서부터 베이지 색이 퍼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오빠의 숨이 끊어졌음을 알았어요.



슬픔 속에서도 나는 이상한 평화를 느꼈어요.

하나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그런 평강을...



(어느날 밤, 자려 누웠는데 오빠 임종 때 내가 느껐던 것--즉, 오빠가 따뜻한 기운에 폭 싸여서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 과 같았던 것-- 기분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 침대 옆에 그림 도구가 없어서 화장품으로 그렸지요. 이것 이후 심리치료 차원에서 그림을 그렸음)



오빠야,


오빠 생각 많이한다.

어렸을 때부터 나랑 많은 시간 같이 해준 든든한 오빠...고마워.

내가 어려운 결정을 해야할 때 나에게 격려해준 오빠...고마워.


오빠는 나에겐 항상 아름다운 기타 선율과 같은 사람이었어.

기타에 맞춰 감미로운 노래를 참 잘 불렀지. 오빠는...

(그래서인가, 기타를 보면 오빠 생각나고,

기타 케이스는 오빠의 몸을 담았던 '관'이 떠오르는 거야.)



지금도 난 오빠 생각하면서 어려운 시간 이겨낼 때가 있어.

천국에 있는 오빠가 기뻐할 거야..라는 생각하면 기운이 난답니다.


오빠, 내가 혼수상태의 오빠한테 했던  약속, 기억나?


 '오빠, 엄마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그땐 몰랐었는데,

오빠, 사실 그건 나 혼자 지켜낼 수 없는 약속이었어.


내가 아무리 잘하면 뭐해? 

엄마 아버지가 협력 안해주시면 안되는 일이지.


오빠가 잘 알고 있고 존경하는 엄마 아버지의 특징있지?

매사에 감사하면서 불평하지 않고, 순간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시는 거 말야.


지금도 그러셔.

대상포진, 심장병으로 몸의 병을 얻으신 걸로 보아 분명 마음이 많이 힘드셨을텐데

그래도 열심히 성실히 감사하며 사셔.

신기할 정도임.




이건 아버지가 쓰러지기 전, 아버지가 걸으시는 모습 보면서 그린 거야.

시지프스 신화가 생각나는 그런 고통스러운 걸음걸이...

십자가를 지고 지금은 비아돌로로사라고 불리우는 고통의 길을 걸었던 예수님 생각도....



함경도 또순이인 엄마는 요즘도 눈물을 많이 흘려요..

그런데 항상 씩씩하게 일어나셔.


"내가 힘들어하면 우리 신열이가 얼마나 힘들겠어...!"


하시면서


엄마란 존재는 뭔지...세상 떠난 아들의 마음까지 챙기다니...


여하간 묵묵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사는 엄마와 아버지 덕에 나는 지금 엄마 아버지랑 즐겁게 살 수 있는 것같아.

즉, 엄마 아버지 덕에 내가 오빠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거지.

이래저래 감사할 일이 참 많아요~~^^


오빠, 우리 동네는 지금 꽃이 만개했어요. 

워낙 날씨가 좋은 곳이니까...


그런데 마음이 아프게 그리운 꽃들이 있답니다..

한국의 진달래..목련...벚꽃...

부모님 집 뒷산의 진달래.

아파트 화단의 목련과 벚꽃.


언젠가 아버지가 말씀하셨어.


 '벚꽃을 보면 신열이 생각이 난다.

아름답게 피고 한순간에 사라진 신열이가...' 


그래서 오빠를 생각하면 항상 벚꽃을 떠올리게 되었어.



오빠가 천국에 계시니  못보고,

미국에 사니 한국의 벚꽃도 못보는 내가 그리움을 담아 그린 그림,

기타 케이스를 떠나 훨훨 빛의 세계로 날아가는 기타...

오빠가 천국에 가신 날, 

한번 다시 봅니다.


오빠 사랑해요.








'아니타'는 멕시코 여성으로 요양원에서 일하면서 주말에 나와 함께 아버지 목욕을 하고, 주중에 저녁에 와서 나를 도와준다.

나는 아니타와 같이 일을 하는 틈틈이 평소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한다.

1 년이 넘는 세월을 아니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요양원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직원들의 근무 시간이 어떠한지, 아니타는 몇 시에 출근하고, 아침을 뭘 먹고, 점심 시간은 언제이며, 친한 직장 동료들의 이름은 무엇이며   직장에서 7 시 반부터 3 시 반 퇴근까지 어떤 일을 하는지,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어떤 환자, 동료인지.... 

그래서 나는 아니타의 요양원을 아주 친근하게 여기게 되었다.


가끔은 옷가지들을 챙겨서 아니타의 요양원에 보내기도 하는데 얼마 전에는 친구로부터 셔츠 한박스를 받아 요양원에 보내게 되었다.


아니타는 큰 셔츠 박스를 열어보더니 다 새 옷이라고 무척 좋아했다. 

큼직한 셔츠를 몸에 대보면서 아니타가,

"이건 큼직하니 내 환자 중 한 사람에게 잘 맞겠다.

그이는 몸이 너무 뚱뚱해서 맞는 옷이 없어."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요양원에서 맞는 옷이 없으면 어떻게 하는데?"

"종일 목욕 가운 입고 있는 거지."

목욕 가운?

깜짝 놀랐다.

요양원의 삶도 사회 활동인데.....하루 종일 목욕가운을 입고 있는다고?

"아니, 정말 그렇게 옷이 없어? 요양원에?"

"가족들이 갖다 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어. 맡겨 놓고는 한번도 찾아오지 않고 나 몰라라 하는 가족들 많아. 우리가 찾아서 입혀주곤 하지만

맞는 사이즈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럼...신발은? 그 뚱뚱한 할아버지는 신발은 뭘 신어?"

"양말."

"휠체어 타고 계신 분이야?"

"아니. 몸은 성하셔. 잘 걷진 못해도 그래도 걸어다닐 수 있어."

"그런데 종일 목욕가운에 양말을 신고 있다고? 요양원도 사회생활인데, 식당에 가고, 카드게임도 하고 그러는 곳인데

하루 종일 목욕가운으로 지낸다니 참 안타깝네."

"그렇지? 그래...."


"할아버지 이름이 뭐야?"

내 질문에 아니타가 잠시 멈칫했다.

"아...몰라...모르겠다. 미안하네. 그 할아버지가 나의 환자이니까  적어도 나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알아야하는데...

근데 말없는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지나치게 된다. 할아버지 이름 모르는 사람 많을 거야."

"할아버지가 치매야?"

"아니...전혀. 그냥 조용한 사람이야. 질문을 하면 대답을 잘하는데 주로 가만히 앉아 있어.

내가 내일 할아버지 이름 물어봐서 너한테 알려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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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타가 다음날 문자를 해왔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빅토르, 88세, 딸이 있는데 자기도 몸이 불편하니 연락하지 말라고 했단다.

빅토르.

내가 바로 사흘 전까지 존재를 몰랐던 이 사람,

이틀 전, '목욕가운에 양말을 신은 할아버지'로 알게 되었고, 이제 나는 그의 이름을 알고 그가 나의 부모님 연세임을 안다.


빅토르...

빅토르..


내가 이제까지 만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는

요양원의 한 할아버지가 내 마음에 살포시 자리했다.


김춘수의 시에서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그가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날 밤, 늦게 엄마를 모시고 마켓에 갔다.

빅토르 할아버지를 위해 큼직한 셔츠를 밝은 색깔로 두 개, 바지도 두 개, 스웨터 하나,

그리고 신고 벗기에 편한 신발도 한켤레 샀다.

'엄마, 할아버지 이름 찾아줍시다~~" 하고 엄마께 할아버지 이름을 옷에 써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셔츠에 이름을 쓰시더니만 바지에는 아예 이름표를 만들어 박아버렸다.

"절대로 이름표가 떨어질 일 없을 거야~" 

하고 만족해하시면서...

신발에도 할아버지 이름이 새겨졌다.


할아버지께 편지를 썼다.

나도 할아버지 연세의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고, 할아버지 마음에 매일매일 기쁨과 소망이 넘치길 기원했다.


이틀 후, 아니타에게서 문자와 사진이 왔다.

은발의 곱상한 할아버지와 아니타가 활짝 웃으며 찍은 셀피.

아니타가 아침 근무 때 얼마나 바쁜지 아는지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이었다. (아침에 7 명 목욕 시켜주고, 옷 입혀주고, 식사까지 도와주느라 정신 하나도 없음)


빅토르 할아버지에게 파란색 셔츠가 잘 어울리셨다.

빅토르 할아버지는 동영상 속에서 활짝 웃으며 '이런 귀한 선물과 따뜻한 마음에 매우 감사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옷가지와 신발이 돈으로 몇푼 안되는데

그것으로 할아버지가 기뻐하시고

할아버지의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의 마음이 따뜻하게 되었다.


김춘수의 시가 다시 떠올랐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서로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 우리들...


평생 본 적 없고, 앞으로 볼 일 없을 그 빅토르 할아버지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옷에 적혀진 이름과 이름표를 보면 생각날지도 모르는,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나'라는 사람의 존재도

그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어버릴지도....


빅토르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이 되었고,

'우리의 만나지 않았던 만남'의 여운과 향기가 오래갈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