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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스 할아버지가 준 노년의 교훈부모님 이야기 2019. 3. 25. 03:58
내가 무슈 페레스를 만난 것은 1990 년, 빠리에 도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는 70 대 중반의 이스라엘 남성으로 나의 은사의 오프라의 친구였다. 오프라는 내가 파리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오프라는 나더러 무슈 페레스를 만나보라고 연락해왔다. 좋은 친구가 될 거라면서.. 오프라는 페레스에 대해 사전 정보를 주었다. 그는 결혼한 지 근 50년이 되었는데 부인은 프랑스 남부의 항구 도시에 살고 있고, 그는 파리에 조그만 스튜디오를 하나 소유하고 있어 일 년의 반을 파리에서 보낸다고 했다. 그는 과거에 예술 평론가였으며 파리의 박물관과 화랑들이 너무 좋아 파리의 스튜디오를 포기하지 못한다고 했다. 재미있는 사람이리라는 기대를 갖고 그를 찾아갔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이라 꼽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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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통으로 당신을 사랑하리부모님 이야기 2019. 3. 20. 01:29
3 월, 벨기에에 정확히 5 일간 다녀왔다. 여행시간 빼면 벨기에에 머문 것은 사흘.아버지를 두고 그렇게 오래 시간을 비운 것은 에릭 큰형의 혼수상태이라는 비상사태 때문이었다. 건강하던 형이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에 에릭이 충격받아 흐느끼는 모습을 보다가 에릭더러 이렇게 울고 있느니 가서 형을 보고 오라고 권고했다. 에릭은 막내 동생이 내일 전화를 해주기로 했다면서 그와 통화 후에 가야할 것같다고 했다. "에릭, 지금 뭘 기다려? 무슨 소식을? 티에리 형이 회복이 기미가 있다는 소식, 아님 금방 돌아가실 것같다는 소식, 아니면 지금같은 상태로 계속 계실 것같다는 소식...그 세 가지 소식 뿐이 없는데, 뭘 기다려? 당신이 갔는데 깨어나셨다면 좋은 거고, 갔는데 돌아가실 지경이라면,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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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사랑, 치사랑 다시 읽기부모님 이야기 2019. 3. 15. 05:58
우리 속담에 ‘사랑은 내리사랑’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네이버 사전은 이 속담을“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기는 하여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기는 좀처럼 어렵다는 말”이라 풀이하고 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손윗 사람이 손아래 사람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나, 손아래 사람이 손윗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물이 아래에서 위로 치솟아 역류하듯이 쉽지가 않다는 소리다. 나는 아버지 수발 들기 전에는 이 속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흔히 듣는 소리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아버지 병수발을 들기시작한 뒤에‘사랑은 내리사랑인데 수발을 들려니 얼마나 힘들겠냐’는 식의 소리를 두어 번 들으면서 새롭게 들렸다. 특히‘치사랑이 없다’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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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선화, 아버지.부모님 이야기 2019. 3. 11. 12:22
나는 오랫동안 꽃을, 특히 화분이나 화병에 꽂힌 꽃들이 예쁘다고 느끼지 못했다. 화분의 꽃은 내가 관리할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고, 화병의 꽃이 곧 말라서 버려질 것이라는 생각이 우선이니 꽃을 즐길 수 없었다. 결혼 초기에 남편에게도 나에게 꽃 선물은 하지 말아달라고 했었다. 경상도 사나이같이 무뚝뚝한 나와 달리 시를 사랑하는 소년의 감수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연세가 든 아버지는 꽃을 무척 사랑했다. 아니, 아버지의 꽃 사랑은 그의 자연 사랑의 한 부분이었다. 아버지는 자연을, 웅장한 위용의 대자연만이 아니라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존재--나무, 조약돌, 나뭇잎, 곤충, 들꽃----에 관심을 갖고 그 신비로움에 경탄하고 사랑했다. ‘city girl 인 나는 어려서는 그런 아버지가 이해가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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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없는 노부부의 사랑과 이별부모님 이야기 2019. 3. 4. 09:33
아래는 내가 병수발이 뭐라는 것을 전혀 몰랐던 1997 년 브뤼셀의 남편의 이모님 (쟈닌). 과 그녀가 돌보는 전신마비 상태의 이모부님 (죠) 을 만나뵌 경험을 기록한 글이다. ---------- 쟈닌 이모님은 칠십대 초반으로 브러셀의 중심가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계시다. 소위 '부자'이다. 그녀보다 20 세 연상인 남편의 성공적인 커리어 덕에 부자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그분들에게 자녀가 없기 때문이다. 50년이 넘도록 금슬좋은 부부인 그들은 애초에 자녀를 원치 않았다. "아이 하나가 집 한 채" 라는 말이 맞는 게, 남편의 부모님들은 자식이 네 명이니 살림이 소박했지만 이모의 삶은 풍족하고 화려했다. 이모님 부부는 음악, 문학, 미술에 조예가 깊었고 그림을 수집하는 게 취미였고 그들의 아파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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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병수발과 사마리아인의 이웃사랑부모님 이야기 2019. 2. 25. 08:28
(2017. 04.) 아버지 돌아가시기 1 년 반 전. 주위에 집에서 병수발 드는 사람이 없는지라 우리집 일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다. 수발에 대한 일반적 반응은 ‘너무 힘드시겠어요’ 이다. 내가 엄청난 희생을 한다고 칭찬도 자주 듣는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애들도 나중에 자매님처럼 날 부양해줄까?’ 하고 농담삼아 진담을 한 분도 있고, 자신이 이기적이라 부모님을 품지 못했다고 반성하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 동갑내기인 필리핀 친구 다이앤은 나의 희생을 우려했다. “정말 괜찮다고? 일에 너무 빠져있는 거 아니야? 너 스스로를 챙겨야지. 신주, 너의 부모님이야 좋으시겠지만, 네 희생이 너무 커.” 나름 나를 챙기면서 일하고 있는데 같은 지붕 아래 살지 않으니 증명할 길이 없다. 부모님 모시는 일을 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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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이야기 (6) --섬김의 인연부모님 이야기 2019. 2. 22. 17:09
내가 빅토리아와 같이 다닌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가 차가 없어서였다. 캘리포니아의 대중 교통 시스템은 한국에는 비교가 안되게 낙후되어 버스가 드문드문 다니며, 버스 노선도 많지 않아서 불편하기 짝이없다.두 군데 직장을 다니는 빅토리아는 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하루에 5 시간을 길에서 보낸다. 그러니 암환자인 그녀가 몸이 많이 지치는 것은 물론이고 효율적으로 병원의 일처리를 할 수 없었다. 내가 빅토리아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빅토리아는 내가 매일 같이 다닐 수 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혼자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내 도움이 꼭 필요할 때만 나와 같이 다니려고 했고, 방문해야할 병원과 사무실이 정해지면 맨 먼저 주소과 버스 노선을 확인하여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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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이야기 (5)-- 웃음과 유머로 싸우는 암부모님 이야기 2019. 2. 21. 14:30
빅토리아의 매니저로서 서류 처리를 하고 전화 업무를 하는 동안 나는 그녀가 치료를 받을 때까지 긍정적인 태도와 희망을 잃지 않게끔 이왕이면 많이 웃게해주자 마음 먹었다. 평소에 눈물이 많고 웃음도 많은 나는 내가 지치지 않기 위해서도 웃어야했다. 다행히 이미 빅토리아가 밝은 성격이라서 그녀는 나의 유머에 금방 반응해줬고 나에게 농담을 걸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다니는 내내 많이 웃었다. 죽음과 암에 관해서도 농담을 하면 한없이 큰 걱정거리와 두려움도 어느새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을 달콤하게 해줬다. 우리가 웃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리를 더 담대하게 만들어줬다. 악순환이 아니라 선순환이었다. 예로, 고속도로 공포증이 있는 나를 대신해 운전해서 고속도로를 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