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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이야기 (4) -우리의 엄마들부모님 이야기 2019. 2. 21. 04:12
나는 한 간호사가 빅토리아와 나의 관계를 물었을 때 '우리 여성들은 서로에게 엄마 역할을 한다' 고 했었다. 내가 빅토리아를 도울 때 나를 도와준 친구들이 있었다. 몇몇 엄마들은내가 일이 늦게 끝나서 방과 후 시간 맞춰서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없을 때 기꺼이 아이들을 픽업해줬고 격려해줬다. 그 외에 빅토리아에게 직접 응원의 말을 전해주고 빅토리아의 힘을 덜어주려고 학교 일을 자원해 도와준 엄마들도 있었다. 우리 아이들 또래의 자매를 둔 비키는 우리 애들과 놀리면 자기가 덜 힘들다면서 아이들을 많이 봐줬다. 봄방학 동안에는 아이들이 집에 있는데 부모님께 종일 아이들을 맡기고 나가는 게 죄송해서 고민하니까 자기가 하루 아이들 4 명을 데리고 디즈니랜드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집은 몇 번 가본 적이 있고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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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이야기 (3)- 이상한 자매를 도와준 은인들부모님 이야기 2019. 2. 20. 01:42
이상한 자매애 리셉셔니스트, 간호사, 의사들은 우리를 보면 의아해했다. 우리는 어떤 공통점도 없는 관계였다. 빅토리아는 셔츠에 청바지, 아주 캐쥬얼한 차림이고 화장끼는 전혀 없었다. 그 옆에서 조잘거리는 호피무늬 코트에 와글와글한 긴 파마머리, 화장이 진한 동양여성, 우리는 ‘친구’가 가질 수 있는 공통 분모가 하나도 없는 것같았다. 나이, 인종, 언어, 스타일 모두 다르지만 항상 붙어다니는 우리는 마치 완전히 다른 성격과 스타일의 두 형사가 활약하는 영화—버디필름 (Buddy Film) 의 주인공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호피무늬 아줌마가 매니저처럼 가방에 빅토리아의 모든 병원 기록과 서류들을 다 관장하고,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 운전면허증 번호까지 척척 나오니 의아해했다. 우리나라 주민증 번호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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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이야기 (2)- 암이 맺어준 우정부모님 이야기 2019. 2. 20. 01:42
‘암’이 맺어준 우정 나는 2004 년,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유치원 유치원에서 청소부/요리사로 고용된 빅토리아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나보다 10년 연상이지만 항상 밝고 유머센스 있고 다정해서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고 나와도 예의를 갖추는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2005 년 1 월, 유치원이 개학한 뒤 며칠 후 어느날 아침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가는 길에 부엌을 지나치는데 조리대 앞에 서 있던 빅토리아가 넋나간 표정이었다. 심상치 않아 보여 그녀에게 아무 일 없냐고 물었다.그녀는 여전히 넋나간 표정으로 짧게 대답했다. "저한테 암이 있답니다" 그녀는 ‘주말에 하혈이 너무도 심해서 달려간 응급실에서 생각지도 못한 암 진단을 받았다. 전문의를 만나서 정밀 진단을 받아야하고, 보험이 없어서 극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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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이야기 (1)--아버지의 간병 도우미부모님 이야기 2019. 2. 20. 01:42
아버지가 병상에 누운지 며칠 안되어 나는 도우미 없이는 아버지를 돌볼 수 없음을 깨달았다. 목욕할 때 아버지의 안전을 위해서는 힘이 좋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도우미는 어떻게 구하는 거지? 찾아보면 정보를 얻을 수 있겠으나 나는 당장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빅토리아가 떠올랐다. 그녀는 멕시코 출신의 미국 시민자로서 10 여년 전 아이들이 다니던 유치원의 청소부/요리사였다. 연락없이 지내다가 전화하는 것도, 요양 도우미 경험이 없는 그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걸었다. "세뇨라, 혹 요즘 바빠요? 요즘 우리 집에 일이 있어서 도움이 필요한데, 물론 돈을 지불할 것이고요….”빅토리아가 나의 말을 막았다."뭐든지 하겠습니다. 제가 언제 갈까요?" 너무도 고마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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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을 훔친다모성- doodle 2019. 2. 15. 07:08
(2018 01--아버지 돌아가시기 1 년 전의 글) 아버지 병수발은 아버지의 생명의 시간을 연장해보려는 시간과의 싸움이지만 그것은 또한 내가 나만의 시간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돌봄이가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게 어렵다는 것, 그게 병수발과 육아의 공통점이다. 그래서 나는 수년 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육아를 통해 터득한 교훈, 즉 ‘시간은 나지 않는다. 고로 내가 시간을 내야한다’를 현재의 삶에 적용하려고 애쓴다. 시간을 ‘내다’와 ‘나다’는 획 하나 ‘ㅣ’ 의 차이일 따름이나, 그 획 하나는 한 인간이 시간의 주체이냐마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삶의 주체이냐마냐를 가늠짓는다. 시간이 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피동적 태도라면 시간을 내는 것은 능동적인 태도이다. 두 표현이 시사하는 시간관의 본질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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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키스와 허그.부모님 이야기 2019. 2. 13. 06:38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쓴 글) 나는 아버지에게 스킨쉽을 자연스럽게 자주한다. 아침에 아버지가 눈을 뜨자마자, 면도가 끝난 뒤, 휠체어에 앉아서 간식을 잡술 때, 침대에 앉아서 티비를 보실 때, 뜬금없이 아버지의 몸을 만진다.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드리고, 머리 마사지를 하고, 손가락 마사지를 하고, 발 마사지를 한다. 자주 아버지의 어깨를 꼭 껴안기도 한다. 뺨, 이마에 가볍게 뽀뽀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마치 아가들에게 하듯이 쬬—옥 소리를 내며 입술로 뺨에 도장을 찍듯이 꾸욱 누른다. 아버지와의 망설임없는, 잦은 스킨쉽을 보고 간병도우미가 물었다. “아버지를 참 편하게 대하네요. 어려서부터 아버지랑 친했나봐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57세인 내가 구순의 아버지한테 자유스레 뽀뽀를 하니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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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 할머니 (3)--영주권과 갓블레스유부모님 이야기 2019. 2. 8. 02:08
나는 할머니가 요리를 할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예술가같은 살림꾼 할머니의 작품이니까. 맛과 색깔의 향연을 그냥 꿀꺽 먹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웠다. (사진들은 1 년 후, 영주권 심사에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어느 날 나디아 할머니가 우리집에서 모든 일을 마친 뒤, 할머니의 다음 일터-- 근처의 한 중국인 가정의 베이비시팅--에 차로 모셔드리던 길이었다. 할머니는 편지 봉투 몇 개를 꺼내면서 미안하지만 대강 어떤 편지들인지 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가끔 우편으로 서류들을 받으면 나에게 갖고 와 읽어달라곤 했다. 평소에는 주말에 남편이 집에 오면 모아 뒀던 편지를 읽어달라고 하는데, 당시 남편은 여행 중이었다.무심코 받아 읽어보니 별로 중요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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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 할머니 (2)--문맹 할머니와 버지니아 울프부모님 이야기 2019. 2. 7. 00:45
나디아 할머니는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에게 감사, 하나님께 감사. 요리할 때 후추, 치즈, 소금, 파프리카 등 각종 양념을 후르륵 치듯이 이야기 할 때마다 중간 중간에 갓블레스유 갓블레스유를 외친다. 무슬림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평생 고생을 해서 매사에 감사함을 뼈저리게 느껴서 그런 것같다. 우리집에 들어오는 순간, '이렇게 여기 올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당신같이 좋은 분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식으로 매사에 감사 감사 감사. 입을 열면 긍정의 말만 튀어나오는 할머니. 나도 평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를 본 뒤에 깨달았다. 나의 감사하는 마음이 잔잔한 호수같이 평안함과 같았다면 그녀의 경우는 잔잔한 호수에서 감사함의 숭어가 퐁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