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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제 품에 안기세요카테고리 없음 2021. 12. 12. 17:12
나는 어려서 병치레가 잦아서 어렸을 때 병에 관한 기억이 꽤 많다. 끙끙 앓는 나를 밤새 지키던 엄마 아버지. 잠자다가 눈을 뜨면 어김없이 나를 내려다보던 그들의 불안한 시선. 나는 눈 맞춤 후 안심을 하고 잠에 빠져들곤 했었다. 결핵성 늑막염 진단을 받던 날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당시 6 세. 엄마와 나는 버스를 타고 종로 3 가에 있는 '이북에서 온 용한 의사 선생님'께 갔다. 의사는 검진을 하더니 다짜고짜 엄마더러 나를 마주앉아 꼭 껴안으라고 했다. 엄마는 의자에 앉았고 나는 엄마 목에 팔을 두르고, 양발을 엄마 허리로 두른 채 엄마를 안았다. 의사가 무시무시하게 큰 주사기를 들고 다가오는 순간 나는 겁에 질려서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엄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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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 '우리가 죽을 때'에 관해서...엄마 2021. 12. 2. 01:35
2013 년 오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2018 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깊이 묵상을 한 기도문이 있다. 그것은 가톨릭교의 '성모송'이다. 나는 개신교도이고, 성모송을 기도로서 기도한 적은 없다. 하나님께 직접 기도를 하는 것에 익숙한 나는 '성모님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달라고 간청' 하는 형식의 성모송에 이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기도문 중의 한 구절은 내가 오빠와 아버지의 삶과 죽음, 더 나아가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해 깊은 사고를 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는 가톨릭교, 개신교의 교리를 떠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성모송에 대한 나의 해석은 가톨릭 교리와는 관계 없는 나의 개인적, 주관적 해석이다. 문학 작품이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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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메 여사가 들려주는 625 전쟁 전에 불렀던 북한 노래부모님 이야기 2021. 11. 6. 08:13
요즘 엄마에게서 어렸을 적의 이야기를 듣는다. 옛날부터 노트를 해두었지만 정리할 시간이 없었는데 이제는 좀 더 책임감을 갖고 기록을 하려고 한다. 엄마는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계신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몇 번 타보지도 못한 기차들의 기차역 순서를 외우고 계시고 어렸을 때 부르던 노래들 가사도 꽤 정확히 기억하고 계신다. 엄마가 부르는 노래를 듣다가 나는 너무도 솔직담백한--요즘의 북한 뉴스에서도 잘 나타나는--감정적인 언어에 웃음을 터뜨리고만다. 엄마가 815 후 가장 먼저 배운 노래: 동터오르는 백두산성 승세스러워 오늘부터 조선땅에 조선의 아이들 기운차게 일어나라 새아침이다 태극기를 들고 나가 만세부르자 태극기를 들고 나가 만세부르자 해방 축하 노래 어화 좋다 춤추어라 노래불러라 사십년간 고대하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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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행복한 때가 언제였냐면….엄마 2021. 11. 1. 08:23
며칠 전 엄마가, “나는 내 인생에서 언제가 제일 행복했던 때였나 생각해보았어.” 라고 말을 꺼내셨다. 언제일까? 궁금함과 동시에 나는 답을 알 것 같았다. 엄마는 종종 태능 시절이 참 좋았다고 떠올리시곤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강의하시던 서울 여대 옆의 하얀 울타리의 작은 집, 정원에 장미꽃과 뒤뜰에 호박넝쿨이 무성했던 그 집은 나, 오빠, 언니에게도 행복한 유년의 추억의 장소로 남아 있다. 그러나 엄마는 나의 예상을 뒤엎는 말씀을 하셨다. "어렸을 적, 북한에서 살 때였어. 난 참 행복했었어." 오? 처음 듣는 소리여서였다. 생각해보니 나는 엄마의 유년기의 이야기를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의 옛날이야기는 북한에서 기독교인으로서 받은 탄압과 작은 어선을 타고 내려온 피난의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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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peical Sister"--뇌성마비 여동생을 기리는 오빠의 부고스치는 생각 2021. 9. 24. 08:11
지난 일요일 아침, 평상시처럼 커피를 마시면서 엘에이 타임스 신문의 부고란을 읽고 있었다. 짧은 한 부고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A Special Sister" 라는 타이틀 바로 밑에는 "욕심과 걱정이 전혀 없었던 나의 여동생을 기리며"라는 부제가 따랐다. 장애인 여동생의 이야기구나 싶었다. ('special' 은 '특별한'이란 의미 말고도 '특수 장애를 가진'이란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A Special Sister"라는 타이틀은 특수 장애를 가진 누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가가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 짧은 한 문단에 이미 감동이 왔다. 나는 지난 10 여년간 열심히 부고란을 읽었지만, 가족이 아닌 한 사람이, 그것도 망자의 자녀가 아닌 오빠가 동생을 위해 올린 부고는 처음이어서 흥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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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때가 있다부모님 이야기 2021. 9. 20. 09:49
며칠 전, 시아버님이 잠시 요양원에 들어가셨었다. 혼자 수발드시던 어머님이 너무 지치셨고, 아버님은 제대로 된 케어를 받으실 수 없어서 급히 요양원에 들어가시게 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계시다.) 우리는 딸아이가 직장 발령지로 떠나기 전에 분주하고 어수선한 가운데 그 소식을 들어 충격이 컸다. 원래 계획대로 저녁 식사를 했고, 식사 후에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만들어두었던 동영상들을 열 편 정도를 같이 보았다. 아이들은 자기들의 어렸을 때 모습, 부모의 좀 젊었던 모습을 보면서 재밌어서 박수치며 웃었다. 우리가 저랬냐, 저 때 생각난다! 하고 즐거워했다. 동영상 중에는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의 동영상도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났고, 현재 어려운 시간을 겪고 있는 시부모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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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부모님 이야기 2021. 8. 9. 15:59
남편이 브러셀에서 돌아왔다. 원래 간단히 여행하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큰 가방 하나를 더 들고 왔다. 쟈닌이 남겨준 그림 두 점을 잘 포장해서 넣다보니 가방 하나가 필요했단다. 남편이 거실 테이블에서 큼직한 포장 하나를 뜯었다. 이름있는 화가의 작품이란다. 성모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있는 그림이었다. 둘 다 별 특별한 감흥 없이, ‘피에타이구나’ 하고 두번째 박스를 꺼냈다 작은 그림이었다. 그림을 본 순간, 나는 ‘앗, 에릭!’ 하고 외쳤다. “쟈닌 생각이 나!” 남편이 의아해햐며 그림을 바라보았다. “하얀 지팡이야. 쟈닌의 지팡이처럼!” 남편이 “오, 맞다! 정말 하얀 지팡이네!’ 하더니만 “진짜 쟈닌같다…쟈닌이네, 쟈닌…”이라 혼잣소리를 했다. 자기가 지난 밤에 포장을 하면서 꽤 찬찬히 살펴봤던 그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