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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 이야기 2021. 8. 9. 15:59



    남편이 브러셀에서 돌아왔다.
    원래 간단히 여행하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큰 가방 하나를 더 들고 왔다.
    쟈닌이 남겨준 그림 두 점을 잘 포장해서 넣다보니 가방 하나가 필요했단다.

    남편이 거실 테이블에서 큼직한 포장 하나를 뜯었다.
    이름있는 화가의 작품이란다.
    성모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있는 그림이었다.
    둘 다 별 특별한 감흥 없이, ‘피에타이구나’ 하고 두번째 박스를 꺼냈다

    작은 그림이었다.
    그림을 본 순간, 나는 ‘앗, 에릭!’ 하고 외쳤다.
    “쟈닌 생각이 나!”


    남편이 의아해햐며 그림을 바라보았다.

    “하얀 지팡이야. 쟈닌의 지팡이처럼!”

    남편이 “오, 맞다! 정말 하얀 지팡이네!’ 하더니만
    “진짜 쟈닌같다…쟈닌이네, 쟈닌…”이라 혼잣소리를 했다.

    자기가 지난 밤에 포장을 하면서 꽤 찬찬히 살펴봤던 그림인데, 왜 그때는 자기 하얀 지팡이가 눈에 안 들어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여성.
    가지각색 영롱한 주변의 색깔과 대조되는 블랙 엔 화이트, 죽음의 색깔.
    벤치 옆의 빈 자리.

    마치 구글 지도에서 쟈닌 할머니를 발견했을 때처럼 뜨거운 감정이 울컥 솟아올랐다.

    이 그림은 할머니가 원래 큰 아파트의 벽들을 빽빽히 채웠던 그림들을 다 처분하고
    작은 스튜디오로 이사올 때 갖고 온 그림 중의 하나이다.

    쟈닌의 방 어디에 놓여 있었을까?
    쟈닌은 매일 이 그림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번이라도 자기와 동일화 했을까?
    아니면 그냥 색깔이 좋고, 분위기가 좋아서 이 그림을 간직했던 걸까?

    답이 안나오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쟈닌 할머니가 몹시 그리워졌다.

    그림은 나에게 또 하나의 이미지——
    벤치, 지팡이, 노인…의 한 이미지를 떠올렸고, 나는 그 사진을 찾아보았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비겔란 조각 공원.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
    사고 당하시기 한 달 전이었다.
    엄마와 에릭은 각각 공원을 산책 중이었고
    나는 아버지 근처에 앉아서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언듯 벤치에 혼자 앉아 게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아버지가 가지가 곧고 넓게 뻗은, 입이 무성한 큰 나무의 일부인 것처럼 보였고
    갑자기 떠오른 ‘아버지는 수목장을 원하셨지…이런 곳에 묻히고 싶으신 건가?’라는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애써야했던 기억이 난다.


    ——-

    저녁에 잠자러 가기 전, 남편이 물었다.

    “쟈닌의 그림 어디에 걸까?”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우리집은 벽에 공간이 별로 없어서 아마 고민해서 찾아야할 것같다.

    그런데 ‘하얀 지팡이의 여인’의 그림이 벽에 걸려 있으면 그림을 볼 때마다 슬퍼질 것같아 걱정이다.
    하얀색 벤치, 빈자리, 하얀 지팡이…모든 게 쟈닌을 떠올릴 게 분명하기때문..
    그리움과 슬픔이 혼합된 그런 묵직한 감정을 느끼게 되겠지..

    만약 ‘하얀 지팡이의 여인’의 그림의 근처 어딘가에 ‘나무와 하나가 된 노인’ 의 사진을 걸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동갑인 쟈닌 할머니와 나의 아버지, 나란히 같이 앉아 친구 되시라고.
    쟈닌 할머니, 하얀 벤치에 혼자 계시지 말고, 팜펨 할아버지가 계시는 예쁜 와인색 벤치로 옮겨오셔서
    녹음을 즐기시고, 수다도 떠시고, 즐거우시라고…

    다 나 편하려고 하는 생각.
    내가 모르는 세상으로 떠나신 사랑하는 이들이 조금이나마 덜 적적하고, 더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기에 하는 소리다.
    나의 품을 떠나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린 그들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사랑하기에….

    구글 지도로 만나고,
    그림으로 만난 쟈닌,
    이제 또 어떻게 만나게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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