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스라엘 가기 위해 히브리어를 복습하고 있다. 

며칠이라도 히브리어로 대화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서.

내가 열심히 단어들을 복습하는 모습을 보고 내 친구가 말했다.


"넌, 어쩜 그렇게 언어에 재주가 있니! 4개국어가 유창하다니!"


민망하다. 어느 언어도 제대로 하는 게 없고, 갑갑한 순간이 많으며, 이제 하다하다....한국어까지 가물가물하게 되어 버렸는데 유창하다고 하는 소린 말도 안된다. 유창함의 차원을 즐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외국에 오래 살면 몇가지 언어를 하고 사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먹고 살자면 어쩔 수 없이 말을 해야한다.  언어를 못해 겪는 힘들고 창피한 상황을 피해가면---그리고 피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언어를 배우는 게 어려워지는 거고.


여러 언어의 고유한 의미와 뉘앙스를 파악하여 대화를 잘하는 것이 참 어렵다고 느껴진다. 영어와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교포들의 경우도 발음이 또렷하고 의사 표현을 편하게 하지만 한국어의 뉘앙스나 문화의 코드를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를 하는데 어려운 단어는 빼고, 어려운 문장도 빼고 복잡한 숙어는 건너뛰고, 비유적 표현은 아예 포기하고도 말은 통하니 이중언어자라고 하지만, 실제로 말은 통하는데 감정이 통하지 않고, 이해는 되는데 속이 시원하지는 않은 상황이 종종 생기곤한다. 


나의 한국계 미국인 의사 선생님이 바로 그 예이다.

선생님과 나눈 대화의 예.

2012 11-27 에 써놓았던 글을 올린다.


----



갱년기 증상이라고 알고 있었던 극심한 피로가 다른데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두어 달 전에 알게 되었다.

대단한 병이라고 의사가 겁을 줘서 좀 놀랐다가 치료를 받고 많이 좋아졌다.


의사 선생님이 겁을 주려고 준 게 아니라 그냥 한국말을 하셨는데 내가 겁을 먹은 거다. 


나보다 한 10 년은 어린 그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항상 무스로 머릿날을 깨끗하게 세워주고, 고급스러운 안경테에 흰 피부가 빛나는, 누가 봐도 과거에 미적분 잘하고 생물 시험에서 백점을 받는 모범생이었음이 분명한 선생님.


내가 한국 아줌마니까 무조건 한국어를 쓰시는데 안타깝게도 아/어 가 다르고, 억양과 존칭어가 중요한 한국어의 묘미를 터득하시진 못하셨다. 영어식으로 한국어를 하시는 선생님과 대화는 물흐르듯이 흘러가는데 뭐라고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이 이상하다. 마치 양복입은 사람이 탈춤을 추는 거같이 어색하고 스파케티 국수로 버무린 잡채를 삼키는 것처럼 맛이 안난다. 


산전수전 겪으며 여러 언어를 배우느라 고생해본 이 '사모님'이 선생님의 하자있는 한국어를 이해하니 망정이지 아니였다면 감정이 상해서 링겔 꽂은 채 병실문을 박차고 나올 상황도 있다.

 

처음 만난 날, 선생님은 나를 '사모님'이라고 부르셔서 나는 허헛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은 나를 '웃음 해픈 뚱뚱한 사모님' 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는 예의바른 말투를 쓰는데 말의 태도와 내용이 냉정하다싶게 거침없다. 완전 영어스타일이다.


"사모님, 언제 위 내시경 하셨나. 하실 때 되었네요. 내가 해줄께요."

 

('제가 해드리겠습니다'는 없다)


사모님이란 호칭만해도 그렇다.

우리 선생님께 '사모님'이라는 호칭은 "30 살 넘은 유부녀를 호칭하는 단어"일 따름이다.

'청진기' '체온계''혈압약'과 같은 수준의 단어,  '사.모.님.'

잠깐 박자를 늦춰주고, 잠깐 공손한 시선을 겸비한다면 참 좋은 호칭이 되는데

선생님은 불도저처럼 거침없이 밀어붙이기때문에 사모님은 '청진기' '체온계' '혈압약'과 같은 딱딱한 단어처럼 돌변한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어의 미묘함에 문외한인 선생님이 직설적 어법의 한국어로 진단을 내리는 바람에 나는 내가 삼개월 안에 죽는 줄 알았다.


"사모님, 테스트 결과가 참 안 좋아요~"

 

잠시 귀를 의심했다. 

이 억양이 뭐지?

마치 10년간 아이를 기다려온 여성에게 임신 소식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경쾌하고 즐거운 목소리, 그런데 결과가 안좋다고?


설마...결과가 좋다시는 거겠지?  결과가 안 좋다면 반짝이는 눈에 팡팡 튀는 말투를 쓰실까...


내 표정이 어리둥절했지만, 우리 선생님은 토종 한국사람들처럼 세밀한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섬세함이 없으셨다. 방금 스타벅스에서 프라프치노 한잔을 들이켜 기분이 업된듯, 상쾌한 표정으로 선생님은 아이패드를 들고 내 검진기록을 검토하신다. 


나는 그래서 생각했다.

그래, 분명 내가 잘못들었던게야. 저렇게 상쾌한 표정이신데 나에게 나쁜 소식일 리가 없어.


그 때 들리는 영어,

 

"Hmmmmm... I don't like what I see."

 

뭐라고? 

이젠 내 영어가 의심스러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분명 '지금 읽고 있는 게 별로 좋지 않다'는 의미인데, 진짜? 

그런데 왜 선생님은 저렇게 즐거워보이시지?


이번에 다시 한국말을 하신다.


"아, 두번째 테스트,  참 갑자기 왜 이러죠?"

 

두번째 테스트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100 점 맞은 시험지를 들고 있는 듯, 시름은 커녕 즐거워보이는 그의 표정에 나는 믿고 싶어졌다.

 

필시...두번째 테스트 결과가 엄청 좋은기라....


그런데 아니었다.


"아주 안좋네요. 수치가 높습니다.

이러다간 캔써가 됩니다."


(뭐시라고? 캔써? 암이라고요?)


이제까지 선생님의 표정과 목소리 톤에 의거해 나의 귀를 의심하면서 선생님이 내 테스트 결과가 좋다고 하시는구나, 만족해하시는구나, 두번째 테스트 결과가 좋구나~~~ 하고 생각했던 나는 벼락을 맞은 듯이 놀랐다.


그것도 모르냐는양 선생님이 설명해주신다.


"네, 이 병은 20 퍼어쓴 (percent)은 큐어 되지만 나머지 80 퍼어쓴은 캔서 (cancer)로 가게 됩니다. 사모님은  현재는 에이리 퍼어쓴에 속한 거고요."


나는 질리도록 놀라 있지만 선생님은 사모님 반응같은 거 별로 관심 없으시다.

이 정도로 뭘 놀라냐는 듯이 확실한 말펀치를 날려주신다.

 

"네. 대부분 언젠가는 캔써로 됩니다. 장기가 바싹 마른 치즈에 구멍이 뚫린 것같이 딱딱하게 됩니다. 그럼 고칠 수 없어요."

 

직구던 변화구이던 어떤 말이든 대부분 받아들이거나 받아치는데 익숙한 사모님이지만

선생님의 직구는 감당이 안되었다. 


내 침묵에 아랑곳없이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가족 중에 분명히 이 병으로 페써웨이 (pass away: 사망하다) 한 사람들 있죠? 그분들이 바로 80 퍼센트이지요."


이젠 선생님같지 않고, 못된 친구가, "내 말이 맞았지롱, 쎔통, 네롱~~" 하는 것같이 들린다.


선생님은 분명 환자가 알량한 희망을 갖고 사느니 현실을 직시하고, 죽을병에 걸렸구나 좌절하는 걸 원하시는가봐. 흑... 죽을병 걸렸다는 진단을 받은 뒤 정신이 하나도 없어졌다. 선생님이 적시적소에 영어를 섞어서 하는 말이 다 반말로 들렸다. 

 

"사모님, 내가 약 프리스크라입 (처방) 해줄께, 먹어봐.

석 달 후에 다시 와.  잘 알겠니?

글고, 사모님, 넌 잘 쉬어야해. 자꾸 쉬어야 해.

안 그러면 에이리 퍼어쓴 (80 percent) 금방 된다. 

먹는 것도 오어게닉 (organic) 으로만 먹고.

두 달 후에 블랏테스트 (피검사) 다시 해서 보내.

글고 석 달 후에  어포인먼 (appointment) 하도록 해. 그럼 그 때 만나자.

참, 싸모님, 질문 있니? 없니? 그래, 그럼 나중에 봐~~"

 

선생님은 벌처럼 쏘고 나비처럼 사뿐히 문열고 나가셨다.

에이리 퍼어쓴에 속한 나는 어질어질해 의자를 붙들고 앉아 있었다가

간신히 기어나와 남편을 만났다.

 

결과가 어떻더냐고 묻는 남편에게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떨구었다.

눈물이 핑 돌던데...


선생님 만나고 내 귀에 남은 것은

 

'싸모님은 팔십프로~재수없는 팔십프로~ 조상들처럼 금방 페써웨이 할 지모른다. 시간문제다. 못고친다.' 

 

메아리뿐...


집에 돌아오는 길, 차안에서 에릭에게 선생님의 말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선생님의 말을 영어로 번역해서 전해주는데 아까 한국어로 들을 때와는 다른 감정이 일어났다. 차근차근하게 사실을 전하니까 놀랍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선생님이 한국어로 말할 때는 완전 재수없게 들렸는데...-.- 그의 재수없는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니 그냥 평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더라는 것이다.


아, 이중언어 선생님이 나에게 한국어로 이야기할 때 그의 마음 속은 영어를 하고 있었었나보다 

생각이 들었다.


에릭에게 담담하게 '에이리 퍼어쓴' (80 퍼센트는 죽는다!) 이야기를 했다. 웃음이 나왔다.

사망율이 백퍼센트의 인류, 누구나 '삶'이라는 죽을 병에 걸려있는 거니

팔십 퍼센트이니 이십퍼센트이니... 어디에 속했는다고 조급해하지도 말고 무서워하지도 말아야겠다고까지 하고 있더라. 기특하게시리...


물론 의사 선생님의 쇼크 요법의 후유증이 며칠 가긴 했다. 슬픈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두어달 지나니까 마음이 아주 편하다.

의사가 겁 준 덕에 별별 생각 다 해보고 생각을 정리한 것이 감사하기까지하다.


다행히 보험회사가 바뀌면서 선생님도 바뀌었다.

이번 선생님은 영어만 쓰시는데 덕분에 나는 내 병이 별것 아니고, 관리만 잘하면 되고, 관리만 잘하면 아주 오래 오래 건강히 삶을 즐기면서 살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중언어 한국계 미국인 선생님의 직설적이고 사무적인 스타일은 언어적 한계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성격일 수도 있다. 어쨌던간에 확실한 건 하나, 나는 앞으로 의사 선생님을 고를 때

한국어와 영어를 아주 잘하는 진정한 이중언어자 의사 선생님을 찾을 수 있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한국어로만 말하기를 선호하는 의사 선생님이던가, 

영어만 사용하는 선생님을 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