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새로 다시 시작하자! (On recommence!)
    스치는 생각 2009. 10. 16. 05:10


    사용자 삽입 이미지sunrise, Death Valley, CA



    오늘 아침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는 중 '파팟' 하더니 갑자기 멈췄다.
    기숙사에부터 써온, 10 년이 넘은 헤어드라이어.
    정이 많이 들어, 소리가 요란하고, 뜨거운 바람 조정도 안 되지만 정도 들고 내 손에 익숙하여
    계속 그것만 사용하고 있다. 

    옛날 신혼 때부터의 물건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 섭섭했는데 얘랑도 작별인가보다.

    그래도 한번...?

    손잡이의 조그만 'reset' 버튼을 눌러보았다.

    우와~~왕~~!!

    헤어드라이어가 다시 힘차게 돌아간다.

    아아, 예쁜 것. 또 살았구나.

    나의 헤어드라이어는 이런 식으로 10 년이 넘게 나와 같이 해왔다.

    reset  버튼의 마력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sunrise, Landers home.




    헤어드라이어의 리쎗 버튼을 누르거나, 컴퓨터가 말을 안들어 restart 를 하면 기적처럼 작동이 될 때가 있다.
    기쁜 일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Horay, on recommence!!' 하면서 좋아한다.

    그리고 부실한 기계가 다시 작동되는 것처럼,
    비실되던 우리의 삶이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는 진리를 상기한다.
    삶의 re-start 버튼이 무수히, 여러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한다.

    On recommence (옹 흐꼬마앙쓰!)  는 불어로 "I/we start all over" "Let's start over" 의 의미이다. 다시 시작한다. 새로 시작하자는 소리다.

    부모로서 내가 많이 사용하는 교육 strategy 중의 하나가 바로 'reset' 버튼이다. 아이가 뭔가 잘못하고, 여러 번 반복적인 실수를 하거나, 아니면 아주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그것이 내가 해결해줄 수 없는 일이고, 해결해주면 안 되는 일일 때, 괜히 흥분하여 야단치기보다는 내 마음으로 reset 버튼을 누른다.

    "Let's start over."

    "다시 시작하자" (Let's start over) 는 말은 새로운 기회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다시 해봐" (Try one more time) 와 비슷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다른 개념이다. 노력을 계속 하면 이루어질 일에는 '다시 해봐'라고 하면 그것은 "하던 일을 계속 열심히 해보라"는 의미이다.  반면  "다시 시작해봐" (Start all over) 라는 것은 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것으로, 노력하라는 것과는 의미가 판이하게 다르다. 판을 새로 깔고 새로 시작하라는 것이니까.  새로운 시발점에서, 새로운 목표를 갖고, 새 마음가짐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sunrise, Death Valley



    나는 'reset' 버튼을 아주 잘 사용한 분을 알고 있다.
    나의 시아버님.

    그는 아이가 (나의 남편) 방황할 때,  적절한 시기에 그 버튼을 눌러줌으로써 아이가 방황을 중지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평생의 직업을 가질 수 있게 해줬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면.

    에릭이 대학을 진학하고 2 년간 아주 방황했다고 했다. 성적은 엉망이고, 자기가 뭘 해야할지 목표를 세우지 못해 그냥 놀고만 살았단다. 나는 처음에 그 말 들었을 때 좀 놀랐다. 왜냐면 내가 본 에릭은 침착하고 차분하게 자기 길을 잘 찾아가는 사람이었기때문이다. 아버님은 며느리보다 아들에 대해 더 많이, 깊게 알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우신 듯,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그건 에릭이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하게 되었을 때부터야. 그 전에는 아주 힘들었어."

    그 이유는 적성에 안 맞는 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이다. 에릭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장래 직업을 고려해서 엔지니어링 학교에 진학했다. 평생 고생하는 부모님으로부터 어서 독립을 하려면 그 당시 가장 전망이 좋던 엔지니어링을 공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에릭에게는 엔지니어링 전공이 맞지 않았다. 그는 보다 추상적인 세계에 더 관심이 많았고, 철학책을 들여다보고 수학 문제를 혼자 고민하는 학생이었다. 경제적 독립이 급선무란 이유로 엔지니어링 공부를 시작했지만 원하지 않는 공부를 해야했던 그에게 대학교란 '노는 것' 말고는 의미가 없었다. 놀고 다니니 성적은 엉망이고, 성적이 엉망이니, 학위를 따도 미래가 밝을 리가 없었다. 자기가 원하던 삶과는 (경제적 독립) 점점 더 멀어지는 상황에 그는 괴로워했다.

    어느 날, 아버님이 에릭을 불러서 물었단다.

    "네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뭔가 말해봐라."

    에릭은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자기는 수학이 재밌으나 그걸 전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아예 자기가 꿈을 접으면서 설명을 했다.

    사실 에릭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순수 수학을 공부하고 나면 사회에 나와서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박사학위를 딴다해도 교수가 되는 것은 자기 지도교수가 사망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자리 얻기가 힘든 게 유럽의 대학이니 말이다.

    가장 영특하다고 믿던 아들이 2 년간 방황하는 것을 보면서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해온 아버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Eric, on recommence!"

    에릭, 새로 시작하자.

    그게 아버님이 내리신 결론이었다. 새로 판을 깔고 새로 시작해라. 아버님은 에릭에게 수학으로 전공을 바꿔 대학에 새로 진학하라고 권했다. 당시 에릭이 27 세였기에 어린 아이가 아닌데 전공을 바꿔 대학에 진학하라고 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공부를 원없이 하라고, 돈을 버는 것보다 집에서 부모와 같이 살아 생활비를 절약할 것이며, 부모의 가게를 가끔 도와줌으로써 부모에게 빚졌다는 마음을 갖지 말라고 제의하셨다. 에릭은 망설이다가 감사해하면서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울 아버님, 뻥이 좀 쎄시므로)

    "오/늘/날/의 훌/륭/한 에/릭/이 있/게 된 것/이/다!!!"



    Eric, Death Valley, California




    나는 아버님이 해주신 이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사실, 한국에서는 아버님의 결정이 별스러운 결정이 아닐 수도 있다. 대학에 붙기만 하면 이미 '효도'를 하는 것이고, 부모가 해주는 밥 먹고, 부모의 집에 사는 게 그리 대단한 폐가 아니니까. 그러나 서양에서는 다르다. 자녀의 독립을 지나칠정도로 강조하는 서양에서 자식이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부모에게 무리될까봐 포기한 것도, 부모가 자식에게 숙식제공을 제의하고 공부를 지지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나는 부모님과 에릭이 서로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동시에 서로를 도와가면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 훌륭하게 보였다. 아버님은 평소 자신은 아무 것도 내놓을 것이 없는 미미한 존재라고 하시는데, 아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여 그 아들이 행복한 인생을 설계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은 그 아들이나, 그 아들을 남편으로 둔 나나, 평생 감사할 일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아버님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마음 속으로 "옹 르꼬망스!" 를 힘차게 외치는 버릇이 들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로 시작하자!
    나는 나의 삶에도 그 개념을 적용한다.
    아이들에게도...남편에게도....나에게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sunrise, Landers home.




    아이들에게 '옹 르꼬망스'를 적용한 적은 하나 둘이 아닌데 가장 생각나는 일은 에밀이가 3 학년 올라갈 때의 일이다

    에밀은 3학년 유급했다. (바로 같은 시기에 꼴렛은 월반을 했다.)
    두 아이가 개성이 다르고, 관심이 다르고, 발전하는 시기가 다르므로 어쩔 수 없이 택한 일이었다.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on recommence!) 한 유급은 아주 잘 한 결정이었다. 공부를 싫어하고 왜 해야하는지 모르는 아이에게 너무 큰 짐을 주느니 유급을 시켜서 편하게 해주자였는데, 그 결과로 몇 년후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보다 훨씬 마음밭이 풍성하니, 행복하게 되었다.

    유급의 결정이 어려운 결정이었다면 바로 그 다음 해, 4 학년 올라갈 때 아이가 '우'반을 가냐마냐의 결정도 어려웠다. 우리 동네의 학군에서는 각기 다른 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하고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애들을 뽑아서 우 반을 만드는데, 에밀은 성적으로는 우 반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동네에서는 대체적으로 '우'반에 넣어야 공부를 제대로 한다는 사고가 있어서, 아이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우반에 밀어넣는 경우도 많다.

    나는 일차적으로 반을 나누는 것에 거부반응이 있었고, 이차적으로 '성적은 되지만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애'를 우 반에 넣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숙제를 해갖고 가다가 '재활용 쓰레기 통'에 던져버리는 아이에게 (그리고 버린 사실을 잊어버리는 아이에게) 우반에 가서 공부를 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되었다. 아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아니나다를까, 펄쩍 뛰며 안 가겠단다. 그래서 아이는 안 갔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일반 학급에서 아이는 오히려 적응을 더 못했다. 3 학년 때 사귄 친구들은 다 우반에 가 있고, 새로운 학급에서는 새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당시에 책의 세계에 빠져 살던 아이는 다른 식으로 노는 것에 재미를 찾던 대부분의 급우들과 친해지지 못했다. 공통점을 찾고 점점 가까와지던 한 친구를 죽음으로 잃기까지 했다.

    반대로 우 반의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지적 모험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에밀은 자기가 놓친 세계가 뭔지를 확실히 보게 되었다.

    "엄마, 나도 우반에 가고 싶어."

    "너무 늦었어. 이젠 가고 싶어도 못 가."

    "학교가 재미 없어. 너무 재미 없어."

    "어떻게 하니? 이미 새 학년이 시작되었고, 그 클래스는 들어가기 힘든 곳이라서 한번 기회 놓치면 갈 수 없는데..."

    "엄마, 난, 너무 지루해. 배우고 싶어. 그런데 우리 반에서 나는 배울 게 별로 없어. 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나는  내가 배울 게 없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재밌게 배우고 싶어. 뛰어난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그룹에서 재밌게 공부하고 싶어."

    아이가 명료하게 자신의 동기와 욕구를 표명하는 순간,  아이가 자기가 뭘 원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다! 싶었다.
    이런 마음가짐이면 우반에 가는 것이 '우반'이라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맞는 학급'이라서 보내는 거라는 확신이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가 처음으로 인생에 대해 뭔가를 배운 기회였던 거 같다.
    기회는 주어지는 순간에 놓치면 다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가 잃은 것을 만회하려면 더 큰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가 원한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다 이뤄지는 것이 아닌 게 현실이다.
    아이가 우반에 다시 도전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게, 그 반은 학생들이 3 년 내내 같이 공부하는,
    들어가고 나가는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특별반이었다. 아이가 들어가려고 해도 빈 자리가 안 생기면 들어갈 수 없었다.

    또 들어간다해도 아이의 기본적인 태도가 바뀌지 않고는 따라가기 힘든 반이었다.
    아이가 자발적으로 알아서 공부하고, 시간 관리의 능력과 책임감이 따라야했다.


    Joshua Tree at sunrise, Landers, CA



    나는 바로 지금이 '옹 흐꼬망스'를 적용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밀아,  on recommence."

    "What does that mean?"

    에밀에게 설명했다.

    너는 우 반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내년에 갈 수 있냐 없냐도 불투명하다.
    엄밀하게 말해 네가  우반을 가냐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가 혼자 알아서 공부를 하겠냐 마냐가 더 중요한 거 아니겠는가.

    너는 새로이 시작해야한다.
    앞으로 책임감 갖고 공부해보겠다는.

    '나는 할래. 새로 시작할 거야.'

    아이와 대화가 잘 되는 김에 아이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만약에 네가 진짜로 새로이 시작할 거라면, 그것을 매일매일 증명할 수 있는, 너의 약속을 상기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게 좋다.

    (나는 10 세 남자 아이에게--특히 우리 에밀과 같은 아이에게-- 1 년 후의 꿈을 위해서 노력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는 보이는 목표, 갈 수 있는 목표를 자주 건네주고, 그것을 이루고 성취해가는 기쁨을 누리면서 성장하는 게 더 건강하기 때문이다. 뿅뿅 터뜨리면서 전진해나가는 마리오 게임처럼 즐겁게 갈 수 있게끔...)

    둘이 좀 생각했다. 뭘 할 수 있을까?

    설거지?
    청소?
    ....

    좀 더 정서에 도움이 되는 것은?

    내가 제안했다. 혹시 일기를 써보겠냐고.

    에밀은 당장 일기를 쓰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날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1 년 후에 우반에 진급하게 되었다.
    학기 초에 쓴 에세이에
    자기가 왜 일기를 쓰기 시작했으며, 자기가 일기를 쓴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자기가 원하던 자리에 자기가 선택하고 노력해서 들어간 아이에겐  공부가 아주 쉬운 일이 되었다.

    나에겐 할레루야 할 일이었다. 내가 쉬워졌으니...
    자기의 동기가 엔진이 되어 혼자 작동하는 아이는 공부가 순조로웠다. 우반에서 아주 뛰어나게 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쳐지지도 않았다. 바로 그게 에밀이 원하는 거 아니었던가...그는 자기가 해야할 것을 하고, 자기 삶을 manage 하는 법을 터득해갔다. 

    소득이라면 그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 아이가 자기의 선택을 믿게 되었다는 것. 자기가 노력하면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옹 흐꼬망스" 덕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sunrise, Landers, CA


    -------

    on recommence.

    그건 나에게도 내가 던져주는 선물과도 같은 말이다.

    한국 여행 뒤,
    한국에서 여러가지 사건을 겪고 온 뒤
    나는 '옹 흐꼬망스' 기분으로 살고 있다.

    하루하루가 나에게 너무도 새롭다.

    나이 50이 눈앞에 와 있고, 내 삶의 골격이 급작히 변하지 않겠지만
    한국을 다녀온 뒤
    우주와 관계를 보는 내 시선이 더 날카롭게 되었고,
    우주와 인간을 보는 내 마음은 더 따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새롭다.
    사막의 아침해.
    매일 매일 바라봐도 그 때마다 새로운 감격으로 나를 휘어감는
    사막의 아침해가 매일 나의 마음에 힘차게 떠오른다.

    이스라엘의 사막에 사랑에 빠진 뒤
    지금까지 나는 사막에 거의 obsessed 되어 있는데.
    사막에 내가 매료된 것은
    사막이 주는 고요와 평화와 안식때문만은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Giant Rock, Landers, CA.



    사막은 역설적인 공간이다.
    서로 반대되는 에너지가 충돌하고 겹치는 공간이다.
    피부를 태우려드는 험상궂은 해도 있지만
    은은한 빛으로 온세상을 비춰주는 은빛 달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무뿌리까지 다 뽑아버리겠다는 듯 미친듯이 흔들어대는 날카로운 겨울 바람이 있으면
    낮의 화를 풀고 넉넉한 미소로 온 세상을 껴안는 노을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sunset, Utah.




    땅바닥에 수천개의 못을 박으려는 기세로 표효하는 폭우도 있고,
    하늘이라는 까만 융단에 흐드러진 수 억의 별들 속으로 유연히 낙하하는 별똥들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Joshua Tree National Park



    낮에는 죽은 듯이 숨어 있던 존재들이
    이른 새벽이나 밤에는 자기 세상이라고 돌아다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our garden


    사용자 삽입 이미지dawn walk. Landers home.



    사막은 척박하고 사막은 풍성하다.
    그 풍성함과 척박함에서 나는 나의 모습을 본다.

    주부로서의 나의 모습.
    사회적으로 어떤 productivity 가 없는 척박한 나의 삶,
    그러나 그 내면에 물질과 명예로 환산할 수 없는 풍성한 기쁨이 있는
    주부로서의  나의 삶은 사막과도 같다.

    사막의 아침해는,
    바로 그래서 나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Landers home.



    어김없이 일어나는 책임감 있는 태양,
    그러나 한번도 똑같은 모습이 아닌 그 태양은
    일상의 단조로움의 표면 밑에 웅크리고 있는
    하루하루의 독자성을 보게 해준다.
    평범의 가면 밑에 숨어 있는
    개개인의 유일무일한 개성을 잊지 않게 해준다.

    일찍 일어나 고양이 밥을 주고, 커피를 내리고, 토스트하고, 점심을 싸는
    단조로운 일상을 시작하는 나의 아침.
    어김없이 사막의 아침해가 뜬다.

    on recommence.

    하루하루가 새로운 시작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