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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례식
    스치는 생각 2009. 10. 9. 00:36
    미국 달력으로 추석,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에밀 친구, 새무엘의 할머니의 장례식.

    사무엘은 에밀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지만,
    그의 엄마와 저도 아주 친한 사이입니다.
    사무엘의 엄마와 제가 친하게 된 것은 바로 2 년 전, 에밀이가 5 학년 때였어요.
    그리고 바로 그 당시에 사무엘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알게 되었어요.

    에밀이가 5 학년 들어갈 무렵, 사무엘의 엄마가 몸이 불편해서
    에밀과 사무엘을 같이 놀리고 공부시키게 되었답니다.
    우리가 그 전에는 잘 모르는 사이였는데 그 일을 계기로 식구끼리도 친하게 되었어요.
    (하나님 탱큐)

    사무엘이 순수하고, 익살맞기도 하고 마음이 고와서 에밀과 급속히 친해졌어요.
    저는 덕분에 아들 하나 공짜로 얻었지요.

    그 때, 사무엘 엄마가 아플 때,
    사무엘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오셔서 아이들을 봐주시고
    운전해주시고, 살림도 도와주시고 했어요.
    며느리를 사랑하시는 어르신들 모습에 제가 무척 감명 받았지요.
    사무엘의 엄마도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고
    친정엄마한테 하는 것처럼 정겹게 대했어요.
    힘들 때 집안 일과 아이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시부모님이라는 것만해도
    그분들의 관계를 잘 나타내주는데,
    저도 어르신들과 잠깐씩 이야기 나누면서
    무척 존경하고 따르게 되었어요.

    아버님 어머님께서 그 당시에 한국에서 내노라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신 분들인데 30 년 전에 이민 오셔서 온갖 고생 다 하셨어요. 그러나 뒤 돌아보지 않고, 불평이나 한탄 없이 성실하게 사셨지요.

    저는 어르신들을 만나뵐 때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예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챙겨주고 배려해주시는 따뜻함, 가끔씩 이야기 나눌 때 반짝이는 지혜로움에 제가 속으로 많이 감복했답니다. 저의 부모님처럼 제가 따르고 좋아했어요. 왜, '나도 저렇게 늙어야지!' 하고 본이 되시는 어르신들 있잖아요? 바로 그런 분들이셨어요.

    마지막 어머니 뵌 것은 어머니가 암 진단 받기 직전, 다리 부상으로 보조기를 잡고 다니실 때였어요. 매번 저에게 맛있는 저녁 차려주시고, 가끔 밑반찬도 주시고 해서 너무 감사해서 제가 접대하려고 벼르고 나갔는데, 결국 아버님께서 사주셨어요. 저와 사무엘 엄마더러 이야기 나누라고 먼저 자리를 떠나실 때 그 웃으시던 얼굴이 눈에 선한데....아... 그 날 어떻게든 우겨서라도 어머니께 한 끼라도 대접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네요.

    장례식장은 엘에이 근처의 로즈힐 묘원.
    에밀과 저는 3 년 전, 에밀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꼴렛에겐 난생 처음 장례식.
    에릭에겐 미국와서 처음인 장례식.

    다들 생소한 경험인지라 집 떠날 때부터 마음이 좀 이상했어요.
    에밀이가

    '엄마, 울지 마. 엄마, 근데 나도 눈물이 날 거 같아'

    라고 하기에 제가

    "왜 울어? 안 울 거 같아. 장례식은 일종의 졸업식인데, 할머니의 영혼이 천국에 입성하는 거 축하드리는 날인데....엄만 안 울 거야."

    라고 했어요. 그럴 거라고 믿었어요.

    -------------------------------
    교통체증 때문에 장례식에 좀 늦게 도착했어요.
    제가 사진을 찍어드리기로 했는데 차가 막히는 바람에
    마음이 바짝바짝 타고 혈압이 올랐어요.

    목사님 설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세가 많으신 0목사님, 이미 배우자를 사별하신 목사님의 설교는
    허욕과 번뇌로 점철된 삶의 무상함과 공허함을 지적하시는 동시에
    죽음을 넘어 전진할 수 있게 해주는 희망을 심어주는,
    가슴을 울리는 설교였어요.

    그 후 사무엘 아버지가 엄마를 기리는 연설을 하셨는데...
    나이 40 중반에 '어머니'를 '엄마'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아들이
    이제 마음으로뿐이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저에게도 아픔으로 다가왔어요.  그러나 사랑이 같이 하는 한, 어떤 아픔도 아름다운 색깔을 지니는 법,
    사무엘 아버지의 연설을 들으면서 차분한 행복감을 느꼈답니다.

    저는 다른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끔 조심스레 사진 찍으면서 감사드렸습니다.

    어느 분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이 날,
    평생이란 세월을 뒤로하고 이제 RESET 버튼을 누르고 다른 삶을 시작하는
    삶의 졸업식날, 저도 같이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던지요.

    장레식 예배는 다른 예배와 다르게 정말 엄청 엄숙하고 경건한데
    그것도 좋았어요. 요즘 교회 다니면서 그저 매일 파티 모드로, 'praise the lord!!' 로 '딩가댕가~'분위기에 약간 외로움같은 게 느껴졌었거든요. (그래서 혼자 메디테이션 좀 하고 있음)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모든 참석자들이 할머니 시신에 인사를 하는 차례가 되었어요.
    식장의 맨 뒤에서부터 한 줄로 서서 열려있는 관에 누워계시는 할머니 시신에 잠시 멈추어 마지막 인사를 하는 거였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 때 그렇게 했다고 들었는데, 저는 그런 open casket 장례식은 처음이었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 마음이 평화로워서 할머니 시신을 보아도 눈물이 날 거 같진 않았어요.
    행복하시게 가셨는데..좋은데 가셨는데....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저도 이제 인사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카메라 가방을 챙기면서 틈틈히 셔터를 누르던 도중,
    관 옆에 서 계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제 렌즈가 막강한 망원렌즈라서 아버님 표정이 다 보였는데
    그 모습이 환히 웃는, 밝은 모습이었어요.
    너무도 아름다운, 그 빛나는 얼굴.

    그 순간에 눈물이 터졌어요.
    너무 슬프데요.
    아버님의 모습이 아름다운데
    50 년 해후한 아내를 떠나보내는 배우자의 모습 중 아마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텐데...
    왜 그렇게 슬펐을까..

    지금에 와서야 '왜'를 생각하는 거지
    그 순간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눈물이 펑펑 쏟아졌어요.

    제가 우니까 우리 식구들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눈물 닦을 수지를 찾더군요.
    저같은 사람들을 위해 긴 의자 줄줄이 클리넥스 통이 준비 되어 있어서
    에밀도 꼴렛도 저에게 한 웅큼 티슈를 뽑아다 줬습니다.
    어엉...어엉...어엉...
    곡이 나오는데..
    너무 면구스러웠어요.

    장례식이 운명하신 뒤 일주일 뒤에 열린 거라서
    할머니와 가까운 식구들과 친지들은 이미 많이 우시고 이제 마음을 정리하시는 중이기에 눈물이 말라있는데
    뒤늦게 제가, 그것도 장례식 마지막 부분에, 혼자 곡을 하고 있으니.

    아...내가 왜 울지?
    내가 왜 울지?
    어머니가 더 좋은 세상에 가셨는데..
    나 그거 믿는데
    왜 울지?

    그러면서 줄줄 눈물 흘리다가 어머니 시신을 뵙고 마지막 인사 드릴 때는 나름 침착했는데,
    아버님과 손을 잡는 순간 눈물이 또 터졌어요.
    아버님 꽉 껴안고 막 울었어요.
    (아버님께 매달려 울면서  내 덕지덕지한 화장이 아버님의 깨끗한  옷을 더럽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도 스쳤어요. 근데 어쩔 수 없어서 막 울었어요.-.-)

    아버님이 저에게 "아이고...마음이 여리셔서...." 하시면서
    너무도 많은 감정이 담긴, 그러나 절제된 미소를 띠고 저를 꼭 꺼얀아주셨어요.

    사무엘 엄마랑도 꼭 껴안고 울었어요.

    "진아, 어머니 없이 우리가 잘 해 가야지" 라는 소리가 나오던데...

    이게 무슨 소린가 모르겠다 싶었어요.
    그러나 스치는 생각이었고 그 당시는 더 생각할 겨를 없이 그저 울었지요.

    사무엘보고 껴안으면서도 울고...
    사무엘은 지금 사춘기 들어가는 때라서 누구랑 그렇게 껴안는 거 별로 좋지 않았을텐데....
    사무엘도 눈물이 뚝뚝.

    나중에 나와서,
    기둥 옆에 서서 또 통곡.

    다른 분들은 다들 쿨~~한데,
    저분들은 다 잘 믿는 분들갖고
    저만 하나님 안 믿는 사람 같더라니.

    올려다보니 에밀이 울었더군요.
    자꾸 먼 산 보면서 눈물을 훔치면서
    오늘은 제가 운다고 타박하지 않데요.


    --------------------------------
    조문객들은 다 각자 차를 타고 묘지로 향했습니다.
    매장식 (internment) 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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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의 관이 도착하고
    미리 준비되어 있던 자리에 관이 배치되고
    목사님과 간단히 예배를 드린 뒤에
    조문객들이 한 명씩 관에 꽃을 놓고 마지막 인사를 드린 뒤에 하나 둘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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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묘지 안에 관을 내려놓았어요. 조심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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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흙을 덮는 일만 남았는데...

    그 쯤에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고
    식구들만 남았는데 저희 식구도 같이 남아 있었어요.
    저는 사진을 끝까지 찍어드리고 싶었기도 하고
    흔들리는 제 마음을 진정하려면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온전히 아프고, 온전히 서러워하는 게 바람직한 거 같아서
    그냥 옆에 서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가족들이 삽으로 흙을 퍼 넣음으로써 작별을 고하던데
    미국에서도 한국 장례식장에서는 그렇게 할지 모르겠는데
    로즈힐에서는 미국식이라 그런 절차가 없었어요.

    그래서 사무엘 아버지가 '꽃'을 던져 넣자고 하셔서
    몇 분 가족들께서 꽃을 던져 넣고 묵념을 하셨어요.

    할아버지께서도 꽃을 들고 오셨어요.
    가만히 관을 내려다보시더니 천천히 꽃을 던져 넣으셨어요.
    그리고 또 가만히 내려다 보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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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할아버지의 허허한 마음이 느껴져서 괴로웠어요.
    당장 오늘밤 아버님은 어떻게 보내실가.
    평생 어떤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두 분이 저녁에 이야기를 나누셨을텐데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어. 그런데 그 사람이 왔었고....아주 즐거웠는데....'
    '그랬어요? 나도 거기 갔더라면 좋았겠네....'
    식으로 나누셨을 이야기들...
    오늘 장레식같이 큰 일이 있으면 분명 두 분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셨을텐데
    그런데 그 말벗이 세상을 떠났으니...


    할머니가 가장 사랑한 손자, '로버트'도 마지막 인사를 꽃으로 했어요.
    이 사건의 엄청난 무게를 느끼기엔 아직 너무도 어린 로버트.
    그러나 이 날이 잊지 못할 기억으로 이미 뇌리에 각인 되었을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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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나는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을까.

    묘지를 못 떠나겠는 거에요. 진자 발길이 안 떨어졌어요.  조문객들은 이미 모두 자리를 떴고 마지막 남은 사람은 사무엘 엄마와 저. 그리고 멀찌감치서 저희를 기다리는 사무엘과 에밀 꼴렛, 에릭.

    아무 일정이 없다면 하루 종일 묘지 옆에 앉아서 하늘 쳐다보고, 넓은 묘지를 둘러보고, 바람 소리 벗삼아 하루 종일 있고 싶었어요.

    "언니, 이제 식당에 가세요. 피곤하겠어요."

    사무엘 엄마가 저를 챙겼습니다.

    "진아, 나도 꽃 넣고 싶어."

    "물론이지. 언니. 여기 와요."

    사무엘 엄마가 화환에서 가장 큼직한 꽃을 뽑아 주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안녕히 가세요.
    저희도 곧 갈께요.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뵈요."

    눈물 뚝뚝 흘리면서, 떠듬떠듬...

    사무엘 엄마와 둘이 쭈그리고 앉아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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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에게 작별인사 고하고 차를 탔습니다.

    탈진하여 의자를 뒤로 하고 누워버렸습니다.

    에릭이 말을 걸더군요.

    "이제 다 끝난 거네. 장례식 준비하느라 자식들이 힘들었겠어."

    "....."

    우리는 각자 어떤 장례식을 원하는가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본마망 장례식. 유럽의 장례식. 한국 장례식 비교.

    (국제결혼 가정은 무슨 일이든 문화비교를 하게 됨)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묘원의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



    "에릭,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난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어."

    "꼭 슬퍼서 우는 것만은 아니지. 당신은 좋을 때 울잖아. 그냥...많이 생각하게 되더군."

    "할머.니는 천국에서 행복하실텐데...그저 우리가 가엾은 거지."

    "......"

    "혼자 남은 할아버지 보는 순간 눈물이 터졌거든...할아버지 보면서 한국 부모님 생각나서 서러웠고, 당신과 나의 미래가 보여서 슬펐고....천국이 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거 슬퍼. 보내는 거 슬퍼..엉...엉...."

    "당신...옛날에...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장례식에서 '우는 여인'을 고용했었는데...la femme pleureuse...la pleureuse...a crying woman. 당신이 꼭 그런 사람같았어."

    "우리도 그랬는데...곡하는 사람..."

    "당신 앞에 선 사람들은 안 울었는데, 당신이 울고난 뒤에 뒤를 따라 걷는 사람들은 많이 울었어. 뒤에서 보면 좀 우스웠어. 한 줄로 가는데 앞에는 안 울고 뒤는 울고 가니까..."

    "그랬어? 근데..우니까 좋아."

    "그래, 알아. You feel better, I know."

    "응. It's cathartic. 훌륭한 문학 작품이나 영화 뒤에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와 같아. 진짜 '영혼의 사우나'를 한 거 같은...
    사우나 하면 땀이 쭉 빠지고 몸이 가뿐하잖아? 그것처럼 울고 나면 마음이 가볍고, 맑아져서 참 좋아.
    문제는 내가 통제할 수가 없다는 거. It's something beyond my control."

    "C'est bien." (좋구만..) 
    (에릭의 대답은 왜 이리 허탈하게 간단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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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 엄마와는 어제 잠시 만나 이야기 나눴어요.

    장례식 사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던 중, 사무엘 엄마는 이미 많이 울어서 눈물이 말라 있었다가 에밀이가 우는 거 보고 눈물이 났다고 해요.  저도 사무엘 부등켜 안으면서 눈물이 더 터졌는데...

    그러다가 사무엘 엄마가  웃으면서 말하더군요.

    '언니,  그 날 좀 우스웠어."

    "뭐가?"

    "언니가 울면서 비틀거리고, 내가 언니를 부축하고 다니고, 언니가 꽃을 넣겠다고 해서 내가 언니 꽃 골라주고 언니 부축해서 관 앞에까지 모시고 가고....그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상주랑 조문객이 바뀌었더라고. 하하, 지금 생각하니 웃겨."

    "진아, 아빠는 어떠셔? 장례식 치루고 나서...."

    "응. 우리 남편, 그날 다녀와서 '엄마가 장례식 보셨을까?' '엄마가 기쁘셨을까?' 하더라."

    "아...그 마음 너무 이해가 가. 아버님이 밤에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는 게 안타깝듯이, 자식들이 큰 일 겪은 뒤에 같이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게, 그 빈 자리가 얼마나 클까가..."

    "언니, 그러니까 결국 그게 우리 이야기지. 남편이 먼저 가든, 우리가 먼저 가든, 남아 있는 사람의 슬픔과 외로움이 문제인 거 같아."

    "그래...그래...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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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식을 다녀온 뒤, '영혼의 사우나'를 한 덕인지, 제 마음이 아주 맑아졌어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밝고 가벼워져서 좋아요.
    당근...엄마 아버지 생각 많이 했고,
    그리고 부모님 중의 한 분을 먼저 보낸 친구들을 생각했어요.
    사실 한국에서부터 친구들 생각이 맴돌았어요.
    제가 병원에서 집으로, 거리로, 수퍼로 정신없이 돌아다닐 때
    고등학교, 대학교, 신혼살림, 최근---각자 부모님을 떠내 보내는 일을 겪은 친구들은
    이걸 어떻게 겪어냈나 싶었어요.
    임신이나 출산이 그냥 남들이 다 하는 거라고 겪기에는, 개인적으로는 너무도 큰 경험이듯이
    사별의 경험도, 많이들 있는 일이지만, 스스로 겪을 때는 엄청난 일인 거 같아요.
    블로그에 "엄마따라 미리 본 노년"을 올리면서 좀 쑥스러웠던 것은
    친구들 보기엔 내가 방방 거리고 울고 불고 하는 게 좀 웃길 수도 있겠다 싶었고..
    친구들이 나보다 먼저 이 경험을 다 했고, 수많은 감정을, 생각을 거치면서 훨씬 성숙했을 거라는 생각도 했어요.
    (당신들, 나보다 훨씬 어른이었던 것이었어!!! 나를 귀엽게 봐주소~)

    아이고..
    말이 길다.
    애는 아파 누워있는데.
    (약 먹고 잠만 자니까 블로그를 할 수 있는 거.)

    어젠 제가 병이 날 거 같아서 8 시부터 에밀 옆에서 같이 잤어요.
    새벽에 일어나 챙겨주려면 제가 튼튼해야하니까 잘 자야지요.

    그래서 지금, 저는 우람하고 튼튼해요!!

    (엄마, 있다가 전화 드리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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