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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 open to learn!
    스치는 생각 2009. 2. 11. 11:04
    "Omma, failure tastes sweet"

    지난 주, 애들이 큰 돈 내고 영화구경 다녀왔습니다.
    여기서 '큰 돈'이라함은 정규 영화관 가격을 말하는데요 (성인 9불 50 전, 어린이 7 불 50 전)
    정규 영화관은 비싸기 때문에 온 가족이 별러서 가는 가족 행사. 일년에 정규 극장에 가는 거 두 세 번 될까. 
    운 좋게도 저의 동네에 2 불짜리 극장이 있어서 새 영화가 나온 뒤 한 석 달 기다리면 뒤늦게나마 다 볼 수 있으니 아쉬울 것도 없어요.

    그런데 왜 이번엔 비싼 극장가서 영화 봤는가고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한 것을 칭찬하고 축하하는 기념 이벤트' 였어요.
    거창하지요? 하하하.

    얼마 전, 룰루가 학교에서 오케스트러 들어가기 위해 클라리넷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어요.
    자기가 혼자 해 연습한 거라서 붙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자기 스스로 클라리넷 레슨을 한 달만이라도 시켜달라고 부탁하지 않나, 매일 시간 정해놓고 혼자 열심히 연습하며 사뭇 진지하게 시험에 대비하더라고요.
    그러나 피~~히~~ 바람 새는 소리라는 고질적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더니 떨어졌어요.
    동시에 랄라도 바이올린 시험에서 떨어졌어요.

    (오뉘는 패배자였따~~^^)

    두 녀석, 시험 결과가 언제 오나 우체통을 몇 번씩 확인하면서 기다리더니
    떨어졌다는 통고 받고 엄청 실망하더군요. 그러더니 둘 다 내년에는 진짜 열심히 해서 다시 도전하겠다 했습니다.

    남편과 저는 아이들이 다시 시도해보겠다고 하는 게 기뻤습니다. 그래서 둘이 상의해서 돈이 좀 아깝지만 룰루 랄라 도전정신을 칭찬해주기로 했어요.

    '어려운 거 해보겠다고 한 거 참 잘했다'
    '다음 번에도 해보겠다고 하는 것도 참 훌륭하다' 라고 하면서 룰루가 가장 하고 싶어하는 거---새 영화 새 극장에서 보는 거--시켜준 거에요.

    랄라는 가장 좋아하는 게 저와 함께 촛불 켜고 목욕하면서 다 둘이 몰래 엠엔엠 쵸코렛을 먹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거 해줬습니다. 때 밀면서 칭찬해줬지요. 떨어졌다고 너무 낙담하지 않고, 앞으로 더 잘해보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너의 성숙함의 증표'라고.

    랄라가 킥킥거리면

    "엄마, 실패의 맛이 달아, 하하하 (omma, failure tastes sweet!)"

    라고 했습니다.



    내면의 성장을 기념하는 의식

    항상 하는 목욕, 가까이 있는 영화관을 가면서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게 좀 웃기지요?
    제가 형식 타파주의자라서 격식 차리는 거 싫어하고, 좀 멋대로 사는 편인데 굳이 아이들에 관해서는 유난스레 의미 부여하며 하는 일들이 많은 거 같네요.

    그 이유는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는 아이들의 성장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기 쉽지 않아서에요. 오랫만에 아이들을 만난 지인들이 "와, 많이 컸구나" 하고 말해줄 때, 지난 해 잘 입던 옷이 올해 안 맞을 때, 생일 케이크에 초를 하나 더 얹을 때, 학년이 바뀌어서 숫자 하나가 더해진 학급으로 들어가는 새학기 첫 날---이럴 때 우리는 '오...얘가 컸구나!' 하고 실감하지요.

    그런 게 육체적, 사회적 성장이라고 한다면, 또 하나, 좀 더 내면적이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성장이 있는 거 같아요.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정서적인 성장. 
    성숙한 감정 처리와 사고 능력은 눈에 잘 띄지 않고, 사실 그게 인간의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그걸 알아보고, 기념하고 축하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저는 아이들에게 어떤 성장의 기미가 보이면 그것을 공적으로 어떤 의식으로 만들어 축하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요. 뭐, 아이들이 꼭 대단한 득도를 할 리야 없지만, 그저 조그만 배움이라도 그게 가치있는 것이라면 정성을 기울여 그 순간을 좀 정지시켜 음미하며, 배움이 더 오래오래 기억될 수 있었으면 해서에요.

    일상의 사진을 마구마구 찍어대다가, 몇 컷 마음에 드는 것을 출력해서 예쁜 액자에 넣어 두고두고 보는 것과 비슷한 거겠지요.

    전 딱딱한 허례허식은 우리를 구속하는 단단한 로프같아서 부담스럽고 싫어해요. 반면, 우리가 주체적으로 만들어 행하는 ceremony 는 무미하고 평범한 삶에서 의미를 찾아주고, 삶의 방향을 잡아주고, 가치관을 더 건강하게 해주는 활력소라고 믿어요.

    성교육을 위해 별르고 별러 캠핑 여행을 떠난 것도 일종의 성장 의식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보려고 한 거였고요
    이렇게 (http://famfem.tistory.com/owner/entry/edit/116) 장난스러운 예식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하는 거지요.
    아이들 친구 E가 중학교 들어가면서 두려움을 느낄 때 우리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식사와 기도의 시간을 가진 것도 바로 그래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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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전 정신을 가로막는 부정적 사고방식을 어떻게 하나

    이번에 영화관/쵸코렛 목욕은 아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변화를 축하하기 위함이었어요.
    도전 정신.
    특별히 룰루가 도전정신을 갖게 된 것이 아주 기뻤고, 아이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다 싶었어요.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낯선 것을 시도하는 도전 정신은 한 인간이 성장하고, 그 성장 과정을 즐기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믿어요. 룰루와 랄라에게 어떤 식으로든 가르쳐주고 싶은 사고방식인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우리집 경우에는 룰루와 랄라가 성격과 재능이 아주 다르고, 그러다보니 도전정신이나 삶을 즐기는 방법도 다 달라요.  랄라 (둘째, 여자아이)는  도전거리가 있으면 쫓아가고, 그것을 위해 준비하는 내내 즐기고, 결과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더 잘하겠다는 굳은 결심만 하니 자기도 편하고 남도 편해요.

    반면 룰루 (첫째, 남자아이)는 정반대에요. 룰루는 새로운 거 시도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요,
    뭔가를 하게 되면 되기 전에 "안 될 거야. 될 리가 없어!" 하고 자가 최면을 걸어요.
    물론 기대하지 않았다가 일이 잘 되면 좋아하지요. 

    엄마 입장에서 아주 갑갑하데요. 못하는 건 괜찮은데 (어차피 그런 심뽀로 할 때 잘하면 불공평한 일이겠지요)
    시작도 하기 전에 자기는 못 할거라고 굳게 결단을 내리고, 그러다보니 하는 내내 즐기지 못하고 시쿤둥한 태도이니.
    저도 억지로 아이를 시키는 사람이 아니고, 아이는 싫다고 도망가는 스타일이니,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놓칠 때도 있어서 안타까웠고요.

    처음에---제가 제 아이를 많이 몰랐을 때--쟨 도대체 왜 저럴까? 많이 생각했어요.
    그러나 타고난 성격을, 이미 형성되어 버린 아이의 독특한 사고방식을 제가 함부로 손대지 못하겠더라고요.
    조물주께서 기뻐하며 빚으신 아이인데, 제가 멋대로 바꾸려고 하다가 아이를 아예 망치면 어떻게 하겠어요.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는 구석도 좀 있었고요. 저에게 말도 안되는 소리 같은 소리가 아이에게는 나름대로 말되는 생각일 수도 있더군요. 즉, 아이가 매사에 '안 된다' 고 생각하는데, 그게 사실은 면밀히 계산된, '실패와 실망의 충격에 대비하는안전 장치'일 수도 있다는 것.

    다 안된다고 생각했다가 진짜 안 되면, 그건 예상한 일이니까 실망할 일이 없고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되면 그건 좋아할 일이니, 아이의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사실은 밑지는 게 없었어요.
    반대로 긍정적으로 '된다, 된다!' 하고 믿었다가 안 되면 실망이 크고, 잘 되면 어차피 당연히 될 거 였는데 되는 거겠고요.

    아이의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될거야!' 안 될거야!' 하고 부르짖는 것은 그걸 진짜로 믿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실패와 실망의 충격'에 대비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던 거 같아요.

    '그래.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구나. 엄마의 생각과는 다르지만, 이해가 간다.'

    아이의 사고방식을 괜히 비틀어틀고, 바꾸려들지 않으니까 저도 편하고 아이도 편해졌어요.
    부정적 사고방식, 일단 이해하고 볼 일입니다.


    "Be Open to Learn"

    그러나, 단 한가지, 제가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이 있었어요.

    아이가 '안 될 거야' 라고 하는 생각의 밑바닥에 억세게 버티고 있는 '결과 중심적'인 사고방식은 그냥 자라게 둘 수만은 없었어요. 
    그런 사고는 실망과 충격에 대비 장치인 것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실망스러운 결과에 대한 '두려움'에 기초하고 있고, 그런 두려움이 소극성으로 이어지지요.

    제 생각에 결과에 치중하는 사고방식은 아이의 성장에 폐혜를 초래하는 거 같아요.
    두려워서 시도하는 거 자체를 겁낼 수 있고, 가장 안타까운 것,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를 포기하게 되니까요.
    결과 중심적 사고는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결과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 과정을 즐기지 못하게 방해할 수도 있고요.

    열린 마음으로, 두려움 없이, 평가와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배우고 싶어서 배우는 것이 참 신나는 일인데,
     '하다보면 잘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으나, 한번 해보자~!!' 하는 도전 정신으로 하는 일하면 참 즐거운 건데,
    아이가 그걸 알았으면 참 좋겠어요.

    우리 어른들은 알잖아요? 얼뜻보면 두려움을 피해 도망가는 게 더 쉬워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두려움을 회피하는 게 두려움을 대면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는 거, 기쁨으로 하는 일은 아무리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누가 뺏어갈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는 거...그런 것들을 아이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제가 이제 그걸 알지만, 어려서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라지 못했던 거 같아요.
    제가 받은 교육은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살자. 그럼 80 년대에는 다 자가용을 굴릴 수 있다' 와 같은 미래에 꿈을 두는, 고통 뒤에 낙이 온다 식의 교육이었어요.

    즐거움은 포기하고 계속 노력해라.
    결과가 좋으면 모든 고통이 다 씻은 듯이 사라질 거야.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네, 그게 제가 받은 교육이었어요.
    아픈만큼 성숙해지는 경우가 많긴 해요.
    그런데 그게 곧 '아/파/야/만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지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희 세대는 모든 교훈이 아파야만, 시행착오를 통해서, 아니면 아프게 맞으면서 (-.-) 배워야했던 거 같네요.)

    제가 삶의 즐거움에 관해서 좀 나중에 깨닫게 되어서 그런 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어느 순간에서부터 (하나님 믿은 뒤) 삶이 간단하게 보이고, 내 인생의 목적이 깨끗하게 보이기 시작한 뒤에, 내가 선택한 일은 뭐든지 정성을 다 해서 하고, 그 과정을 기쁨으로 하게 되었거든요.

    그러면서 고통스러운 경험 뒤에 얻는 소득이나 그 과정에서 깨닫는 교훈에만 치중하는 사고방식을 question 하게 된 거지요.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는 '즐거운 도전 정신'이란 상큼하고, 순수하고 달콤한 맛은 어쩌라고?  도전해보려하는 정신, 그리고 그 도전의 과정을 즐기는 그 기쁨은 어쩌라고?  꼭 아픈 만큼 비례해서 성숙해지는 건 아니잖아. 자기가 선택해서 하는 것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이 성숙의 결과이잖아.

    저는 '즐거움'을 아는 삶, 그 현명함은 다른 가치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가치관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제 아이들만이 아니라, 제 손길이 닫는 어린 친구들과 이야기 나눌 때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뭘 하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는 것도 참 중요하다라는 류의 이야기를. 신중한 것은 좋지만 소극적으로 될 필요는 없다는 거.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사람이야말로 성숙한 사람이라는 거. "Be open to learn"의 주제로 많이 이야기해요.


    백 번 설교보다는 한 번의 칭찬을.

    부모들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인데, 참 쉽지 않더라고요.
    설교 하지 않고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란.

    제가 매일 상기하는 사실,
    제가 예수쟁이고, 똑바로 사는 거 원하고, 거기에 덧붙여  말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아이를 오히려 그르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너 나처럼 해 봐~~'
    가장 재수없는 조언-.-
    부모로서 아이한테 쉽게 던져버릴 수 있는 말이지요.
    조언이랍시고, 잘 가르친답시고.

    저만해도 그래요. 첫째 아이가 소심하고 걱정이 좀 많은 반면, 저는 삶에 두려움이 별로 없어요. (앞 차, 뒷 차, 옆 차 ---차 무서운 거 빼놓고-.-) 하나님 믿은 뒤에 많이 변해서에요. 신앙심이 생겼다는 것을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없어진 것에서 확인하면서 알았다고 할 정도로 저는  하나님 믿은 뒤에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졌어요. 그래서 "God did not give us a spirit of timidity, but a spirit of power..." (2 Timothy 1:7)와 같은 성경 말씀을 무척 좋아하지요. 그리고 애들이 두려움, 소극성, 부정적 사고 등 문제를 하나님 안에서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하고 기도해요.

    그러나 동시에 제가 아는 것, 제가 믿는 것을 아이들한테 '말로만' 가르치려들 때가 있어요. 그게 안 좋다는 거 알면서도 말이 많아요. 꼭 기독교인 부모들만이 아니라 소위 좋은 부모들이 하는 많은 말들은 지겨운 '설교'로 흐르기 쉬운 거 같아요. (제 스스로 노상 설교만 하고 있는 입을 지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  부모가 아이에게 "도전을 두려워하지 마,"  "도망갈 필요 없어," "be a risk-taker!" 라고 말로 하는 건 쉽지만 정작 태생적으로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 애들에게는 실천이 쉽지 않지요. 

    소극적인 애들에게 '도전을 두려워하지말라'고 백 번 설교하는 것보다는, 제가 잘 알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 부모들이라면 너무도 다 잘 알고 있는 상식 중의 상식---'백 번 설교보다는 한 번 칭찬해줘라'--을 실천하는 게 더 급선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애들과 영화니 촛불 목욕이니 유난을 떤 건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설교 덜하려고. 아이들이 도전의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라고.

    액자에 넣은 평범한 일상의 사진을 오래 오래 기억하듯이
    도전정신의 아름다움을 오래 오래 기억하라고.

    안 될 거라고 생각해서, 안 될 '결과'에 치중해서 우물쭈물하거나 지레 겁먹고 포기할 필요 없다는 거.
    comfort zone 을 벗어나 뭔가 해보는 것은 아주 아주 cool~~ 한 거라는 거.

    조그만 실패에 연연할 거 없고
    실패에 의해 자기를 규정할 필요 없다는 거.

    실패가 꼭 고통스러운 것만이 아니라 즐거운 영화같을 수도 있고
    실패가 꼭 쓴 맛만이 아니라 목욕탕의 따뜻한 물에 담겨 먹는 쵸코렛처럼 달콤할 수도 있다는 것을.....

    삶은 어떻게 보면 아주 간단한 거라는 거.
    celebrate 하면서 살자는 거.

    아이들이 그걸 오래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네요.
    아울러 저도 상기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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