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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하지 못한 딸' 의 편지들
    카테고리 없음 2023. 8. 8. 00:05

     
     
    몇 주 전, 이스라엘 어머니가 줌 채팅 중에 말했다.

    "너에게 조만간 소포가 하나 갈 거야. 네가 나에게 쓴 편지들이야. 내가 파일을 따로 만들어 계속 네 편지를 모아 왔는데, 이젠 너에게 돌려줘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어머니가 그 내 편지 파일의 존재에 대해 말할 때마다 해온 농담을 하셨다.
    "내가 왜 네 편지들을 곱게 보관했는지 알고 있지? 나는 네가 유명해진 다음에 사람들의 너의 전기를 쓸 때 네 편지를 비싸게 팔려고 했었어."
    나는 그 농담을 아주 많이 들었다. 옛날에는 미래 시제였고 ("이 담에 사람들이 네 위인전 쓸 때 네 편지를 비싸게 팔거다"), 내가 그런 성공을 하지 못할 게 확실해진 뒤로부터는 과거 시제로 ("나는 네 편지를 비싸게 팔려고 했던 거였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그 '농담'에 진심이 ---너는 내 기대와 달리 성공하지 못했고 유명해지지 못했다--가  배어 있다.

    어머니가 내가 박사학위 후에 전업주부가 된 것에 충격받았고, 그게 지금까지도 불만이시다. 나는 신중하게 선택을 한 것이었고  그 선택 때문에 내가 누리는 어려움과 행복을 나는 다 포용했으나 어머니는 현대 여성이 왜 직장을 포기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셨다. 내가 한국어로 책을 냈지만 영어로 글을 쓰지 않는 것도 아주 큰 불만이셨다. 세상에 자기 이름을 알리고 일하고 인정받고 보수를 받는 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라고 굳게 믿는 어머니는 나의 가치관 (예로 섬김과 나눔에 대한 사고)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한국 사회의 현모양처상에 종속되었다고 믿고, 내가 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신다. 내가 영어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하지 않는 것도 불만이신 어머니는 내가 grief 치유를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뒤, 그림 사진 찍어서 보내드렸을 때 ‘그림을 그리니? 그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구나’ 가 아니라 ‘왜 글쓰기를 안 하고 도피하는 거야?’ 였다. 

    심리학자인 어머니는 '사랑과 성공은 기다리지 않는다'라는 식의 '진취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나는 그런 방식의 타당함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궁극적으로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것, 자기에게 맞는 것을 신중하게, 용기있게 택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하려고 한 것이었고, 내 선택에 사회적 명성이라던가 성공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성공에 열망이 없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는커녕 나에게 심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분석을 하신다.

    어머니와 나는 다른 사람이고,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택한 거고, 거기에 대해 나는 후회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커리어를 쌓으면서 맺은 화려한 인맥과 업적과는 다르지만, 나 역시 내 길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이룰 수 없었던 인연과 성취가 있습니다, 그게 나에겐 소중하고 만족스럽습니다......라고 열심히 이야기를 해도 어머니가 믿는 결론은 항상 같다.  내가 문제가 있다는 결론...

    그래서 처음에는 상처를 받았었다. 그러나 이제 내가 60 이 넘으니 어머니는 나의 '성공'을 포기하신 듯하고, 나는 나잇값을 하는지 매사에 좀 느긋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겠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게 수월하다. 가끔은 어머니가 나의 사고를 무시하고 심리학적 사고를 적용해서 나를  자기 방어, 자기 부인, 합리화의 프레임을 씌울 때는 너무 답답해서 토론을 할 때도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나는 어머님의 '당혹함'을 이해해드리려고 하는 편이다.

    자신에게 가장 맛있는 고기반찬을 채식주의자 손녀의 숟가락에 얹어주면서 '먹으라, 먹으라' 하고 하는 사랑 많은 할머니와 비슷하다. 따라서 여러 해석과 반응이 가능한 행동이다.  '할머니는 왜 내 의사는 안 묻고 내가 못 먹는 고기를 먹으라고 하시는 거야?' 하고 불쾌할 수도 있고, 끝내 고기를 먹지는 않지만 할머니의 사랑에 감사할 수도 있다.
    나는 어머니가 '내 삶의 식성'을 무시하고 내 접시에 당신이 좋아하는 고기를 쌓아주면서 '먹어라, 왜 안 먹니?' 라고 하신다고 생각하고, 나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을 '사랑'으로, 그 사랑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부족한 딸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고, 딸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은 나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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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에서 소포가 도착했다.
     
     

     
    봉투를 여는 순간 옛날의 기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행 포스트 카드들도 있었고, 이스라엘을 떠난 뒤 파리, 미국에서의 중요했던 사건들의 이야기라던가, 여행지에서 쓴 편지들이었다. 볼살이 통통했던 30 대 초반의 사진도 있었고, 당시에는 꽤 유창했던 히브리어로 빽빽이 쓴 편지들도 있었다. (지금은 히브리어를 다 잊어서  암호 해독하듯 떠듬떠듬 읽어보려고 하다가 포기했다.)

    어머니의 농담 ("네가 성공하면 이 편지 비싸게 팔려고 했었는데...'') 이 생각났고 각양각색의 편지들이 마치 '내 성공하지 못한 삶의 누덕누덕 증거물'인 것같이 느껴졌다.그렇다고 내 마음이 우울해지지는 않았다.

    편지를 썼을 때의 나는 '사랑과 성공은 기다리지 않는다' 식의 사고방식으로 치열하게 살던 아이였다. 지금의 '나'와는 너무도 다른 그 아이. 그러나 그 아이 덕에 현재의 '나'로 진화할 수 있었다. 그게 어머니에게는 '성공하지 못한 삶'으로의 진화고 나에게는 '아주 만족스러운 삶'으로의 진화인 것일 따름이다.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지만 나를 이해하지 못하신다.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앞으로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그저 나는 어머니의 사랑만 선택적으로 감사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일 따름.
    온전한 이해와 격려를 받지 못하는데서 오는 아쉬움은 나의 몫. 어리석고 고집이 센 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어머니의 몫. 그렇게 우리는 각자 다른 짐을 지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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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돌아온 나의 편지들은 이스라엘 어머니의 '유품'인데, 어떤 의미에서 편지들은  내가 죽기 전에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주냐 마냐를 고민해야 하는 미래의 나의 '유품'이기도 하다.    
    한 장 한 장 읽어보면서 그 운명을 정해야 하겠지만 아마도 대부분 쓰레기 통으로 향할 것이다. 나도 읽기 어려운 히브리어로 쓴 편지를 아이들에게 물려줄 이유가 없고,  다른 편지들도 얼듯 보니 뭐 그리 영양가 있는 글들은 없다.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당분간은 박스에 보관하다가 날 잡아 다 읽어보려고 한다.
    박스에 편지꾸러미를 넣기 전에 잠깐 고민했다.
    나중에 박스를 열 때 봉투를 보면 금방 뭔지 알 수 있게끔 제목을 써야 하는데... 뭐라고 쓸까?
    잠깐 생각하다가 다음과 같이 썼다.
    아주 정확한 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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