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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 슬픈 성과 성주의 이야기
    카테고리 없음 2023. 8. 4. 12:12



    친구가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다. 에펠탑, 베르사유 궁전만큼 특별한 경험이라면서 자기가 묵었던 성 (castle)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리셉션의 핑크 벨벳 소파와 보라색 카펫,  은촛대, 샹들리에, 섬세한 장식의 찻잔.... 에서 시작해 밖으로 나와 성 전체의 건물을 찍은 동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남편과 내가 1997 년에 묵었던 프랑스 남부의 13 세기에 지어진 성의 기억이..

    첫째 아이가 6 개월 무렵, 남편과 시댁을 방문했을 때였다.  남편이 나의 생일이라고 서프라이즈로 프랑스 남부의 성을 예약을 했다. 언뜻 들으면 무척 잘 사는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같이 들리겠는데, 당시 우리 경제 상황은 그런 럭셔리 라이프랑은 전혀 거리가 멀었다. 사실은 어떤 벨기에 인이 그 성을 구입해 숙박업소로 리모델링을 했고, 남편의 지인이 그 성의 매니저로 일을 하고 있어서 그 성에 대해 알게 되었고, 친구를 통해 싸게 예약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시골 구석에 묻혀 있는 그 성을 아무도 찾지 않아서 가격이 너무도 쌌다는 사실. 일단 가보기로 한 뒤에 이왕이면 어떤 좋은 구실을 붙이자 해서 내 생일 축하 여행이 된 케이스..

    나에게는 속 쓰린 경험이었다. 6 개월 동안  미국에서 나와 단둘이 붙어 있던 첫아이를 장거리 여행을 해서 시댁에 데려온 것도 모자라 며칠 후에 아이를 두고 남프랑스로 떠나야 했으니 말이다. 처음에 나는 절대로 내 아가를 남에게 맡기고 며칠간 다른 나라에 갈 수 없다는 입장이었을 고수했으나  시어머니가 아기를 보게 해달라고 간청하셨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가와 작별...

    시누이의 차를 빌려 이른 새벽 프랑스로 떠났다. 브뤼셀에서 프랑스 남부 성까지 장장 9 시간 반, 남편은 교통 체증으로 차가 오래 서게 될 때마다 '이렇게 긴 자동차 여행, 룰루를 데려오지 않기 잘했지?'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나는 속으로 '13 시간 장거리 비행도 끄떡없는데, 쉬엄쉬엄 가는 자동차 여행이 뭐가 어렵다고...'라고 불만스러운 생각을 했었다.

    드디어 성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석양빛을 받은 성이 참 아름다웠다. 작은 성이라지만  방이 수십 개가 되었고, 농장과 포도원이 딸려있었으며 수영장도 있었다.



    그 성을 지키는 매니저가 남편의 친구, 라파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짐을 번쩍 들고 앞서서 우리를 방으로 안내해 주는 걸 보니 성의 총 책임자인 라파엘은 리셉션과 포터 역할도 담당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의 방은 3 층,  마을과 과수원이 내려다보이는 트인 전망의 널찍한 방이었다. 라파엘은 힘 있는 매니저답게 우리더러 
    "이 방 사용하고, 또 뭐, 다른 방에 관심이 있으면 가서 써도 된다" 라고 했다.

    그러나 넓은침실에 온 가족이 들어가도 될만한 큰 욕조와 부엌이 딸려있고, 응접실도 붙어 있는 suite였으니 다른 방에 갈 이유는 없었다. 더군다다 일층의 로비와 이층의 서재도 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는 '이 성 전체를 우리 것같이 느껴진다' 라면서 웃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며칠 동안 그 성의 유일한 투숙객으로서 그 성은 우리 차지가 되었다.

    짐을 풀고 나니 출출했다. 남편은 이 성에 식당도 있다고 들었다며  오늘은 피곤하니 성에서 식사를 하자고 했다.

    '투숙객이  없어서 방을 싸게 내놓았다며? 그런데도 식당이 있다고? 그렇다면 주방장에 server 가 있는 건데....
    사람 고용은 다 돈인데, 운영이 될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1 층의 식당으로 내려갔다.

    빳빳하고 하얀 식탁보에 와인잔과 식기 세팅이 되어 있는 테이블들 여러 개가 한눈에 들어왔다.
    (식당이 꽤 크구나!  여행객만이 아니라 지역민들도 와서 식사를 하는 식당인가?)

    우리가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리셉션에 있던 라파엘이 재빨리 우리에게 다가왔다.

    남편이 "오늘 여기서 저녁 먹을 수 있을까?" 물어보니 라파엘은 "물론이지! 문제 없어!" 라고 외치고, 다시금 전망이 좋은 테이블로 우리를 안내해 주더니 재빨리 사라졌다.

    우리가 창밖을 내다보면서 경치에 감탄하고 있는데 라파엘이 다시 나타났다.

    앗!

    하얗고 빳빳한 식당 종업원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팔에도 하얀 냅킨을 두른 채 씩 웃는다.
    라파엘이 서빙을 하는 거구나!
    우리에게 메뉴를 건네지고 사라지더니 곧 쟁반에 물을 들고와 우리 잔에 따라주면서 '오늘의 메뉴'에 대해서 설명했다.

    "메뉴에 여러 음식이 있지만, 실은 오늘의 메뉴의 풀코스만 가능합니다."

    아니, 손님 없는 식당을 폐쇄하지 않고 우리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우리는 흔쾌히 오늘의 식사를 택했고, 라파엘은 예의바르게 인사를 한 뒤 즉시 사라졌다.

    남편과 나는 라파엘의 끊임없는 변신에 감탄하면서 웃었다. 종업원 비용이 절감되어서 다행이다..라는 소리도 주고받았다. 우리가 멀리 여행 와서 우리가 머무는 숙소의 수지타산을 걱정하고 있는 게 우스웠다. 

    우리가 와인, 올리브, 크래커를 즐기고 이야기를 나눈 게 꽤 오래 되었나보다. 배가 무척 고파졌다.

    라파엘이 든든한 팔뚝으로 음식쟁반을 머리 높이로 번쩍 든 채 나타났다.

    라파엘의 변신은 영원한 현재진행형!

    머리에 요리사 모자를 쓰고 있었다.

    진지한 그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는 게 예의가 아닌 것같아서 입을 꼭 틀어막고 심호흡을 해야 했다. 말을 하면 웃음이 터질 것 같아서 입 꼭 다문 채 인자한 영부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식탁에 음식을 내려놓으면서 "요리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어.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성의 경제 사정을 마치 내 일인 양 걱정하던 나는 또 안심했다. 라파엘이 요리까지 하니 인건비가 절약되고 있구나. 다행이다.

    알고 보니 라파엘은 지배인, 리셉셔니스트, 식당 서빙, 요리만 하는 게 아니었다. 다음날 보니까 말과 당나귀 모이도 주고, 수영장 청소도 하고 있더라. 성 주인이 누군지 모르지만 일당백 직원을 참 잘 뽑은 듯... 

    남편과 나는 동네 구경을 나갔다. 조용하고 아담한 마을. 별로 할 일도 없고 볼 것도 없었지만 참 아늑하고 평화로웠다.


    놀라웠던 것은, 그렇게 조용한 곳인데도 근사한 식당이 있더라는..

    우리는 라파엘을 초대해서 그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꽃과 음식에서 추출한 선명한 색상--노랑/빨강/파랑--의 소스를 과감하게 사용하는 아주 예술적인 상이 차려져 나왔다. 그런데 그 식당에도 우리 테이블뿐이었다. 걱정이 팔자인 나는 '이 식당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궁금해졌고, 염려되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와서 먹기에 셰프가 이렇게 멋진 요리를 해내는 것이겠지?....

    알고 보니 인구가 500 명 미만의 그 작은 도시를 찾아오는 이들은 네덜란드 관광객들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성에 와서 식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간 내가 생각한 것과 달리 작은 도시를 찾는 관광객들이 없진 않다는 사실에 안심..

    다음 날, 우리는 할 일이 없어서 다시 마을로 나와 어슬렁 거리다가 공중전화가 눈에 띄어 브러셀 시댁에 전화를 걸었다. 우리 아가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어머님이 전화를 받았는데, '팜펨!' 하고 인사를 하는 듯한데 큰 소리에 묻혀서 소리가 안 들렸다. 나의 아가가 고래고래 악을 쓰면서 우는 소리...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어머니, 룰루, 괜찮아요?'라고 여쭈었다. 아이가 저렇게 큰 소리로 우는 건 병원에서 주사를 맞았을 때였다. 10 분 정도 어머니와 통화를 하려고 하다가, 제대로 이야기 나누지 못하고, 귀가 먹을 듯이 큰 아기가 곡하는 소리만 듣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나는 우울해졌다. 
    그다음 날도 우리의 중요한 일정은 마을로 가서 전화 걸기였다. 여전히 악을 쓰는 아이의 울음. 
    나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내가 우연히 아기가 우는 시간에 전화를 거는 것인가? 아니면 아이가 24 시간 내내 저렇게 울고 있는 것일까?
    (걱정이 팔자인 나는 당연히 아이가 24 시간 내내 울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고...ㅠ)

    전화를 마치고 돌아오면 나는 기운이 쭉 빠져서 구석에 앉아 책을 읽었다. 의욕상실.

    남편은 걱정했다.

    "팜펨, 힘들어? 당신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ghost 같아. 어두운 구석에 꼼짝 않고 앉아 있다가 스르르 일어나서 다른 구석에 가서 또 꼼짝 않고 앉아 있고... 어두컴컴한 방에서 보면 좀..."

    남편이 나를 달래서 성 밖으로 나를 끌고 나갔다. 바깥공기도 좀 쐬라고. (여행지 갈 때마다 남편이 호텔방 안에 처박혀 있는 나를 끌어내는 일이 이미 27 년 전에 시작된 거였구나!! 지금 깨달았음 ㅠ)

    성 앞의 등의자에 앉아서 햇살을 받고 있는데 마당에서 일하고 있던 라파엘이 나타나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가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그의 앞을 자유스럽게 당나귀를 보고는 펄쩍 뛰어올랐다.

    당나귀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귀여웠다.

    라파엘은 이 아가 당나귀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큰 당나귀가 엄마라고 했다. 당나귀 모자는 (모녀인지 모자인지 모르지만 당시 나에게는 모자로 보였음) 자기들끼리 부비부비하고, 라파엘에게도 부비부비....

    그걸 보면서, 마음과 생각이 그저 '나의 아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나는 마음이 미어지는 듯했다. 내가 부비부비하고 싶은 내 아들은 차로 10 시간 넘는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현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당나귀도 아들과 껴안고 부비부비하는데, 왜 나는 내 아가랑 떨어져 있어야 하냐고!!

    쿨쩍쿨쩍 눈물을 닦으니, 내 속을 모르는 남정네들은 '당나귀 보면서 우는 사람은 처음 본다'라고 하더라니..... ㅠ
     
    그날, 우리는 마을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블루베리와 라즈베리로 즙이 잉크인양, 접시가 화선지인양, 큼직하고 과감하게 붉은색, 보라색을 '휘갈긴' 멋진 디저트가 하이라이트.
    촛불이 은은한 가운데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팜펨, 내일 생일 미리 축하해. 내일은 당신이 하고 싶은 거 무엇이든 해. 원하는 거 뭐든 말해"라고 했다.
    "정말?"
    "응."
    나는 당장 남편에게 말했다.
    "나, 원하는 거 있어."
    며칠간 눈이 풀린 채 힘이 빠진 채 무기력하게 허우적거리던, 귀신같던 부인이 갑자기 원하는 게 있다니까 남편은 반색했다.

    "일정 하루 당겨서 브러셀 돌아가고 싶어. 이 성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고, 당신의 마음이 고맙고, 이미 난 큰 선물을 받았어. 이제 돌아가서 룰루를 안을 수 있으면, 그거야말로 나에게 최고의 생일 선물일 거야."

    남편은 잠시 당황한 듯했다. 그러나 실망하거나 불편한 기색이 전혀 없이 웃음으로 내 요청을 들어줬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날 새벽부터 짐을 챙겨, 라파엘에게 바이바이하고 브러셀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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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그 성의 기억이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몇 가지 특별한 기억이 서려있는 곳.
    없던 살림에 나에게 뭔가 해주려고 했던 젊었던 남편의 마음이 갸륵하고--- 
    그 이후로는 그렇게 노력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괘씸하고...ㅠ
    그나저나 성의 현재가 궁금했다.

    이미 1997 년에 사람 맞을 준비가 다 되어 있었던 성이었으니 요즘같이 여행이 활성화되고, 인터넷으로 숙소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때에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랬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성의 운영/재정 걱정을 하고 있는 셈..

    재미로 옛 기억을 더듬어서 성이 있는 마을 이름을 쳐보았다.

    호텔이나 트립어드바이저, 부킹닷컴 등의 호텔 예약 사이트에 많은 '좋아요' 리뷰가 달린 숙소일지도 몰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너무 믿기지 않는 기사가 떴다.
    성의 주인이 방화하고 자살을 했다고...?

    나는 믿어지지 않는 기사에 놀라 계속 기사들을 찾아 읽었다. 충격적 내용이었다.

    요약해 보자면,  그 성은 1300 년대에 지어진 고성으로 2 차대전 뒤 약탈당하고 버려지다시피 했는데, 벨기에 커플이 1980 년대에 구입해서  리모델링을 했단다. (그게 우리가 묵었던 민박 시설의 성)

    2000 년대 초반, 네덜란드 출신의 남성이 성을 경매로 구입했다. 은퇴 후 새 삶을 개척하기 원했던 그는 많은 투자를 해서 성을 숙박업소로 개조하였다. 13 개의 캠핑장도 만들고, 성 앞 뜰에 수영장도 만들고, 아이들과 가족들이 놀 수 있는 게임, 성벽 줄타기, 바비큐 장소 등을 설치했고 이 성은 네덜란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성을 호텔로 정식 등록하지 않았고, 화재 안전검사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영업을 크게 확대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네덜란드인 직원들만 고용했던 그는 탈세 의혹도 받았고, 2014 년 어느 날 밤 불시에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체포가 되었고, 결국 14 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그가 온 열정을 다해 일군 호텔은 압수당했다. 

    그는 큰 절망과 분노에 빠졌다. 그는 자신이 온 열정을 쏟아부은 성을 통해 아무도 이익을 취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2016 년 12 월 21 일,  그는 성 안에서 머물며 방화를 했다. 소방대원들이 불을 진압하러 나타났지만 그는 사냥용 총으로 반격하여 두 명의 소방대원을 경미하게 상처 입혔고 진화작업은 지체되었다. 40 명의 경찰이 나타나 소방대원들을 보호하는 가운데 진화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결국, 성 건물은 전소되었다.  경찰은 잔해 속에서 그의 사체와 녹아버린 총기를 발견했다. 성은 벽만 남고 지붕은 다 사라졌으며, 가스통이 폭발해서 벽도 다 훼손되어서 성으로서 재 건립될 수 있을지가 의문인 상태. 의도적 방화인지라 보험도 적용되지 않고, 은행 부채는 그대로 남아 있는 애물단지를  직계 가족들은 인수를 거부했고,  나라에서도 인수, 복구 지원을 하지 않아 성은 폐허로 남아 있었다.  

    뉴스와 위키백과에 오른 사진들을 보니 처참했다.

    2016 년 12 월 21/2,  Le Dauphine 신문의 사진

     

    pic by Daan van Ramshorst 2020

    이것은 불나기 전의 정문의 모습이다. 문을 보니 남편과 내가 머물며 사진을 찍었을 때의 문 그대로였다.   
    아래는 화재 후의 정문의 모습.  

    image by Daan van Ramshorst 2020

    네덜란드 출신의 성의 주인은 사망 당시 62 세였다. 지금의 내 나이.  50 대 말에 새로운 프로젝트에 온 인생을 투자했던 그는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 64 세에 새로이 뭘 시작하기에는 재정적 손실과 정서적 타격이 너무도 컸을 수 있으리라. 더군다나 재산이 몰수가 되었으니... 그의 절망이 이해가 간다. 또한 그의 인터뷰를 보니 그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점도 없지 않은 듯했다. 시정부는 그에게 법적인 대가를 치르게 하지 꼭 성을 몰수를 했어야 하나.... 오죽 억울했으면 죽음을 택했으랴..
    그러나 여러 기사를 읽는 중 발견한 사실이 있다.  그는 전 여자친구의 차에 방화를 해서 옥살이를 한 전적이 있었다. 분노 조절 장애가 있고, 방화벽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 
    어느 죽음이나 허망한 요소가 있지만, 이 성주의 죽음은 여러 의미로 안타까웠다. 성주든, 시정부든 조금만 다른 시각과 조처가 있었더라면 성이 완전히 파괴되고 한 인간이 죽는 비극이 없었을 텐데....
    또한 13 세기의 성이 그렇게 덧없이 파손되었다는 사실도 안타까웠다.
    하루 종일 여러 기사를 찾아 읽으면서 혹시라도 성을 재건하려는 노력이 있는가 찾아보았는데 긍정적인 뉴스를 찾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기사를 찾고 읽다가 지쳐서 저녁을 먹었다.
    엄마가 해주신 된장찌개 맛있게 먹고 기운 나서 다시 검색 시작. (진짜,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번 공공묘지 묘비 탐구할 때처럼 오늘도 종일 이것만 들여보고 있었어요. 할 일이 너무도 많은데...ㅠ)  새로운, 반가운 기사가 떴다.
    2021 년 9 월 기사. 생피에르빌 시의회가 자체 문화유산을 소중히 여기고 보존하기 위한 조치로 문제의 파손된 성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가격은 1 만 유로. (말도 안되게 싼 가격. 7 년 전에는 12 만불이었음.) 그것은 성과 농장, 인접한 땅을 다 포함한 가격인데, 그 조건으로 시의회는 최소 15 년 동안  성을 공공재로 유지하고, 문화유산으로서 거취를 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어 있다.
    이미 2 년 전에 난 결정,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 종일, 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열심히 기사를 찾고 읽은 보람을 느꼈다. 앞으로도 가끔 찾아보면서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아볼 예정이다.
    문득, 언젠가 한 번 자동차 여행을 할 때 가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나도 이제 잠시  떼어 두고 온 아이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나이가 되었다. (아니, 아이들이 우리 걱정을 해야 할 나이다.)  발걸음 가볍게 마을을 걷고, 동네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그렇게 추억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꾼다. 즐거운 일은 꿈이라도 꿔야하는 법이니…
    우리가 다시 가볼 때 그 성이 예전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폐허는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래 사진은 옛날 포스트카드. ebay 에 올라온 사진.  주문하고 싶다. 헝가리에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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