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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퀘벡시를 떠나….
    카테고리 없음 2023. 7. 13. 06:51

    (어무이, 이건 그저께 쓴 건데 지금 이동 중 어무이 눈요기 하시라고 그냥 올려요. 몸은 어제보다는 좋아요.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쉬려고요. 그럼 또❤️)

    ——

    퀘벡시의 맞은편 Levis 란 지역에 있었던 우리 숙소는 베란다에서 퀘벡시가 한눈에 보였다.

    쌩로랑스 강과 우뚝 솟은 성의 경치를 멀찌감치서 바라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나를 집에 남겨두고 남편과 딸만 사이클링을 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선물—행복한 고독의 시간—을 준 남편과 딸, 땡큐!

    요즘 나는 옛날보다 사진을 많이 안 찍기에 사진이 몇 장 없는데 그중 아침, 석양, 저녁의 사진을 뽑아보았음.



    집의 벽에는 사진과 그림들이 많이 걸려 있었다. 집주인의 작품일지도 모른다 추정되는 아마추어 냄새가 폴폴 나는 그림들이 많아서 정겨웠다. 높은 집, 계단이 많아서, 집안에만 머무르며 오르락내리락한 게 2 천보가 넘더라는…

    (딸이 도착한 날, 아빠랑 허그. 계단과 벽을 보면 이 집의 분위기가 어떠한지 감이 잡히실 듯..)


    이른 아침 나 혼자 아침 먹고 멍 때리던 sunroom (햇빛이 많이 들어오도록 디자인이 된 창문이 많은 방).




    베란다는 햇빛과 비를 피해 가면서 그림 그리고 글 쓰던 곳이다.

    아래 사진은, 아침 일찍 일어나, 처음 만져보는 수채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보았는데, 뭐가 뭔지 모르고 시작한지라 내 눈앞에서 물감이 번지면서 그림이 망해가는 것을 목격하고 망연자실해서 ‘어서 유튜브로 수채화 선생님들을 찾아봐야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던 중, 딸아이가 나타나더니만 오 마이갓, 오 마이갓, 엄마 그림 그리고 있어? 그레잇잡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내가 자기 어렸을 때 무조건 칭찬해 주었듯이) 나를 격려해 주면서 사진을 찍었다.  

    초등학생과 같은 그림을 그리고, 딸로부터 초등학생이 엄마로 받는 사랑을 받았다.

    ——



    토요일,  딸의 일행과 작별하고 나와 남편은 자동차 여행 시작!
    북동부로 쭉 올라가는 여정이다.  운전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퀘벡시로 가는 페리를 탔다.
    (페리는 자전거와 자동차도 함께 타는 큰 페리로 30 분-1 시간 간격으로 운행) 자동차를 페리의 맨 아래층에 세운 뒤 위층 갑판으로 올라가 가까워지는 퀘벡 시 모습을 즐겼다.
    페리에서는 우람한 성의 전체 모습과 아기자기한 디테일들이 선명히 보인다.


    하선, 사이클리스트들이 먼저 내리고 자동차는 다음으로 내린다.



    퀘벡시를 벗어나 고속도로 진입.
    차가 별로 없는 한산한 고속도로를 달려 북동부로 향했다.

    고속도로 양쪽으로 울창한 산림의 모습이 끝없이 이어졌다.

    퀘벡주의 대화재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백 개가 넘는 산불이 동시에 타고 있었는데, 비가 오고 많이 진화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예 진화 작업을 포기한 산불도 있다고 들었다.
    이렇게 울창한 산림이 타는 것이라니 불길의 등등한 기세가 상상이 되었다.



    한산한 고속도로인지라 먹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맥도널드에서 점심을 먹었다.
    내가 가장 최근에 맥도널드 버거를 먹은 적이 언제였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 어렸을 때 먹었을까? 족히 15 년은 넘은 것 같다.
    고기 패트 없는 치즈버거를 시켜 꿀꺽 삼켰다.
    안 해본 걸 하는 게 여행의 묘미, 캐나다 맥도널드 경험을 기억하려고 사진을 찍음.




    길이 한산하니까 심심해서 차들이 지나가면 차 색깔, 모양을 주의 깊게 보게 되더라는.
    눈길을 끈 옛날 차.
    흔치 않은 색깔과 디자인이 예뻐서 찰칵.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가 원하던 것들을 충족시켜 주는 숙소라 생각해 예약을 한 것이었지만 숙소 주위의 자연경관이 상상을 초월하게 아름다웠다.

    거실 앞에 펼쳐진 피요르드.


    3 시간 걸린 자동차 여행의 피로가 한순간에 다 사라지는 듯했다.



    숙소에 카누 몇 개가 비치되어 있다고 남편이 반색했는데, 주인이 미안해하면서 2 인용 카누는 수리 중이라고 헸다.

    나와 한 카누를 타고 싶어 했던 남편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 나는 암말 안 했지만 속으로 ‘다행이다!’ 외침.

    (물을 사랑하지만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그 사랑이 깊지 않다. 물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마음이 편안해짐ㅠ)

    딱 이 정도 거리가 사랑하기 좋은 거리…


    여기 오면서 물장구치고, 수영하고, 카누를 타고, 하이킹을 하고 자전거를 타리라 야무진 계획을 세웠던 남편, 그러나 오자마자 몸살이 났다.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보오… 에릭 옹.


    더 늦기 전 약을 사러 가자고 나섰는데, 오후 6 시인데 약국들이 다 닫혔다.
    어쩔 수 없이 슈퍼에 가서 약을 찾아보았으나 해열제가 없다.
    ‘어린이용 타이레놀’ 한 병이 외로이 맨 구석에 비스듬하게 처박혀 있는 걸 발견하고 그거라도… 하고 들고 왔다.
    현재 그 약을 열심히 복용 중이다.

    몸살이 나고, 으스스할 때는 가장 간절한 게 따뜻한 물의 욕조에 몸을 담그고 하는 목욕, 그래서
    우리는 슈퍼에서 돌아오면서 ‘목욕을 하면 피로가 풀릴 거야, 어서 목욕부터 하자’
    ‘당신이 1 층에서 샤워해라, 내가 욕조에서 목욕하겠다’ 계획했다.

    그러나 욕조에 물을 틀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뜨거운 물이 안 나온다.
    왜지?
    남편이 덜덜 떨며 올라왔다. 샤워도 차가운 물만 나온단다.
    ’ 차가운 물‘이라는 게 거의 얼음물 수준, 손가락만 닿아도 찌릿할 정도이다.

    주인에게 연락을 하니 깜짝 놀라면서 미안해했다.
    토요일 밤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 다음 날도 마찬가지.
    그는 이 지역에서 유명한 스파를 소개하면서 거기서 목욕하고 마자시 받으라고, 자기가 비용을 대겠다고 했다.
    마음은 고마운데, 에릭 옹의 몸이 어디 나가서 목욕을 할 상태가 아닌 거라… 다행히 베란다에 대형 자쿠지가 있는데 그건 작동이 되었다.
    약물냄새 지독한 뜨거운 물에 들어가 온몸을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물안마를 받은 다음, 몸이 얼떨떨한 틈을 타, 잽싸게 찬물로 헹구는 방법으로 몸을 씻는 방법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고요한 야외 자쿠지, 절경을 보면서 몸의 안마를 즐기고 얼음물 샤워가 나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에릭은 자쿠지 뒤에 완전히 몸져눕게 되어버렸다. 처음에 자쿠지에 들어가서는 당장 부활을 하기라도 하는 양, ”아~~~~ 아~~~~~~~!! 좋다~~~~~~ 좋다~~~!” 하더니만, 찬물로 헹굴 때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
    얼마 후에 열이 펄펄 끓어올랐다.

    에릭이 펄펄 끓는 열과 싸우면서 첫날을 보냈고,  다음날은 비가 내렸고 애릭은 여전히 아팠다.

    비가 오니까 밖에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없고, 에릭이 아프니까 더더욱 나갈 일이 없어서 나는 거실에서 바깥 경치를 보면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오후에는 그림을 그렸다.
    도착한 날, 2 층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보기로…



    원대한 꿈을 갖고 펜으로 그리기 시작했는데 선 몇 개를 긋자마자 탄식이 나왔다.
    살아 숨 쉬는 자연이 내가 그림으로 옮기는 순간 숨이 죽어버리는 것 같았다.
    멋도 없고 맛도 없는 그림.



    내가 펜으로 ‘죽여버린’ 경치에 색을 입히면 혹시 살아날까? 싶어서 수채화 물감을 꺼냈다.
    수채화는 두번째로 그려보는 날.
    붓을 물에 적신 뒤 색을 혼합해 보았다.
    내가 원하는 색이 안 나왔다.  


    완성하고 보니 색감이 옛날 북한 간첩들이 뿌리던 ‘삐라‘의 색깔 같았다. ㅠ


    어떻게 하면 원하는 색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자리에서 다시 새로 그리기 시작했다.
    색깔을 찾는다고 그림 위에다가 덧칠을 했더니 그림이 완전 ‘더럽게’ 되어버렸다.
    결국 삐라가 낫나? 더러운 그림이 낫나? 비교하고 앉아 있는 스스로의 처량한 모습을 발견 ㅠ


    어떻게 하면 깨끗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옆에 선생님이 계셨으면 단 몇 마디 말로 조언을 해주셨을 텐데, 아니, 유튜브로 ‘수채화의 기본’ 영상들을 좀 찾아봤더라면 좀 덜 더러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하다 다시 또 그렸다.
    한자리에서 세 번째로 그리려니 약간 지쳐서 이번에는 펜을 사용하지 않고 붓으로만 그렸다. (맨 나중에 펜으로 선을 몇 군데 그었다). 엄청 밍밍하다.


    삐라, ‘더러운 그림, ‘밍밍항 그림‘ 을 비교해 보다가 며칠 후에 이 풍경을 다시 그려보기로 마음먹고 그림작업 마감.

    똑같은 풍경을 세 번 그리면서 낙담하고, 다시 그리리라 다짐한 하루…
    그 외에 야채 위주의 건강식을 해 먹고, 책을 읽었다. 그렇게 행복한 하루였다




    —-

    월요일, 비!!!
    비!!
    비!!!

    에릭은 아파서 못 일어나서 온수 펌프를 고치러 집주인과 기술자가 왔을 때 내가 문을 열어주었다.

    집주인은 신선한 크루아상, 파이, 메이플시럽 버터 한 병을 선물로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크로와상이 반가웠다.
    커피를 내려 크로와상과 먹으니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될 것 같은 포만감과 행복감이 느껴졌다.
    미슐렝 5 star 식당의 고급 요리도 잘 만든 신선한 크로와상과 금방 내린, 진한 향의 커피에는 못 당한다….라는 개인적 의견.

    (뭐… 내 입맛이 양념 안 하고 안 익힌 푸성귀 좋아하는 입맛인지라 미슐렝 요리와는 애초에 궁합이 안 맞음)

    여하간, 비에, 크로와상에 커피로 나는 아침부터 무지무지 행복해졌다.
    실제로 배가 안 고파서 저녁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었다.
    온수 히터도 고쳐지고.
    뜨거운 물에 1 시간 목욕을 했다.

    저녁에는 비를 뚫고 쇼핑.


    작은 도시의 아주 작은 슈퍼.
    먹을 것들이 그리 다채롭지 않았다.
    그런데  앗! 고운 빨간색의 저 물체가 무엇이냐!!

    신라면! 한국 사람이라곤 없는 동네에서 갑자기 한국어 소리가 들렸을 때 깜짝 놀라며 반가운 것처럼, 반가웠다.


    나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불닥라면도 있네!?



    김치 라면도?!! 하고 반가워하다 보니 중국어가 쓰여있다.
    역시나… 중국제였다.




    집에 오는데 에릭이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쿨럭쿨럭… 기침하는 에릭 옹.
    사흘째 저런 상태이니 좀 가엾다.
    그렇게 기다렸던 road trip인데,
    호수에 뛰어들고, 카누를 타고, 깊은 산을 누빌 생각을 하면서 여길 왔는데
    쿨럭쿨럭… 하고 있으니..

    차를 타고 오는 중, 남편이 물었다.

    “당신에게는 이 여행이 최고의 여행이지?
    비가 오고..
    내가 아파서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고…”

    오, 우리가 오래 살긴 했나 보다. 내 마음을 다 아네…

    ”근데 당신이 아픈 건 안 좋아 “라고 착하게 말해주었다.
    그게 진심이니까..



    저녁을 했다.

    일명 ‘맛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 몸에 좋을 것이라 추정되는 음식’!



    오늘은 별다른 일 없이 목욕하고, 샤핑하고, 요리하고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니 경치를 바라보면서 지냈다.

    ‘크루아상 먹은 것’이 중요한 사건이 될 정도로 별 일이 없었던 날.

    그런데 참 행복했다.
    내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날이라서 행복했다.

    자기 전에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기념해서 초콜릿 크루아상 그림을 그렸다.


    내일도 단순하게 나를 내버려 두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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