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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친구는 나의 동무 (1)
    카테고리 없음 2023. 6. 20. 02:54

     
     
    나에게는 정기적/간헐적으로 통화를 하는 홀로 하는 '연상의 여인'들이 몇 분 있다. 정기적인 대화는 금요일 zoom으로 이스라엘 어머니와, 1 주일에 두 번, what'sapp으로 쟈클린 이모님. 그 외에 문자로 안부를 주고받다가 가끔 통화를 하는 어르신들이 몇 분 있다.

    그중의 한 분은 엄마의 친구, 옥자 아줌마. (가명)

    옥자 아줌마는 엄마와 함경도의 초등학교 때부터의 친구로 현재 미국에 사신다. 나는 어렸을 때 두어 번, 그리고 미국에 와서 한 번, 아줌마를 뵈었다.

    아줌마와 엄마는 옛날 친구라는 공통점을 빼놓고 아주 다른 사람들이다. 아줌마는  사람 일에 관심이 많고,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남과 나누는 스타일이다. 아줌마는 국제전화 비용이 비쌌던 때, 미국에 살면서도 한국 친구의 소식을 미국에 알리고, 미국 지인 소식을 한국에 알리는 것은 물론, 한국 친구의 소식을 또 다른 한국 친구들에게 전해줄 정도였다.  엄마는  본인의 이야기든 남의 이야기든 함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아줌마와 이야기를 할 때 주로 듣기만 하고 말을 그리 많이 하지 않으신다. 그러다 보니 거의 70 년을 알아왔음에도 약간의 거리가 있다.  두 분의 우정은  '서로 좋아서 친구로 선택한 관계'가 아니라 동향 출신이라 선택권 없이 주어진 운명적 친구관계이다.

    몇 년 전까지 엄마와 아줌마는 연락을 주고받았으나 2 년 전 엄마가 암투병을 시작한 뒤에는 대화가 부쩍 즐어들었다.  엄마가 내내 아줌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식이였는데, 엄마 본인의 건강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아줌마와의 대화가 힘들었다. 그래서 통화 대신에 가끔 문자로 소식을 주고받으셨다.

    그러던 중, 작년 말엽, 아줌마로부터 문자가 왔다. 낙상을 한 뒤 거동이 불편하게 되셨다는 내용이었다.  사고 자체가 주는 충격도 충격이거니와 그 후 급격한, 완전한 삶의 변화는 아줌마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그도 그럴만한 게, 아줌마는 평소. 자신의 건강이 큰 자랑거리였고, “난 건강해서 이런 식으로라면 100 세까지 살 것 같다'라고 하시곤 했는데, 졸지에 100 세는 고사하고 당장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어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니 말이다. 

    정원에도 못 나가고 하루 종일 방 안에 갇혀 있으면서 적적한 아줌마가 안스럽고,  엄마 소식도 전해드릴 요량으로 전화를 드렸다.

    아줌마는 내 전화에 약간 의아해하셨지만 나의 친정 아버지가 낙상을 했을 때 이야기를 해드리니 아줌마는 마음 문이 금방 열리셨다. 솔직히 본인의 이야기를 나눠주셨다.

    '내 이렇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사고 난 뒤에 꼼짝 못 하고 누워 있으면서 살이 많이 빠졌다. 내 평생 130 파운드였는데 이제 100 파운드밖에 안 되고, 어지럽고, 입맛이 없다. 그러니 삶의 의욕이 없다. 꼼짝 못 하고 사는 게 너무 슬프다. 하나님이 밉다. 희망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외롭고…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다….'

    너무 이해된다고, 바로 몇 달전까지 본인이 운전해서 모든 일을 다 혼자 해결하시던 아줌마가 갑자기 당한 사고와 변화에 적응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 리라고 하니, 아줌마가 이해를 받은 것만 해도 기운이 나시는 것 같았다.

    아줌마는 외로움을 털어놓으셨다.

    "우리 친구들, 이제 거의 다 죽었다. 살아 있어도 연락이 안 되면 죽은 거 아니겠나.. 연락이 되는 친구가 없다. 나랑 '너그 엄마'만 남았나 보다. 이젠 전화를 걸 사람도 없다…"

    친구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고향 이야기로 흘렀다.

    아줌마는 피난을 오면서 두고 온 남동생을 보러 고향인 함경도 신포에 두 번 다녀오셨다고 하면서, 북한 사람들이 너무 못살고, 신포도 옛날과 너무 달라졌다고 하셨다.

    ”아줌마, 신포 이야기 좀 해주세요. 궁금해요.  육대리랑 신포, 아줌마가 기억하시는 고향 이야기 더 들려주세요. “

    아줌마가 깜짝 놀랐다.

    “니가 육대를 아나? 어떻게 아나?”

    “엄마한테 들었어요. 제가 엄마 어렸을 때 이야기가 궁금해서 많이 여쭤봤어요. 육대리랑 신포를 지도도 찾아보았어요. “

    ”정말이가? 니는 그런 게 궁금하나? 신기하다.”

    “옛날이야기는 너무 재밌어요. 그리고 아줌마가 신포가 옛날과 완전히 달라졌다고 하시니까, 옛날 신포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아줌마랑 엄마 아니면 옛날 이야기 해주실 분들이 없어지잖아요.”

    ”니 진짜 알고 싶나? 니 참 이상하다“ 라고 하시면서도 아줌마는 내가 진심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아차리신 듯,  기억나는 옛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셨다.

    우리는 한 시간 반 동안 통화를 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통화를 하였고 그러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웃고, 감탄하고, 묻고 대답하며 신나게 통화를 하다가 아쉬움으로 다음 전화를 약속하며 끊는 친구가 되었다. 내가 많이 바빠서 정기적으로는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따름.  엄마는 "너의 소망 요양원의 멤버가 하나 더 늘었네" 하신다. 처음에는 챙겨 드리는 마음으로 연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목적이 아니라, 즉 내가 챙겨드리려고 하는 목적으로가 아니라 그냥 함께 즐겁게 수다를 떠는 친구이다. 그 수다가 아줌마께 도움이 된다면 좋은 거고...

    아줌마를 엄마의 동향 친구로서 알게 되었으나, 이제 우리는  ‘엄마의 친구인 아줌마,’ ‘친구의 딸’이라는 정의를 뛰어넘어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엄마의 옛 친구는 나의 현재의 동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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