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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러셀 일지 7: 애도 문화의 차이
    카테고리 없음 2023. 4. 3. 15:51

     

    시누와 아버님 시신에 인사를 드리고 어머님 방으로 향했다.

    방 문을 여니 초췌한 안색의 어머니가 우리를 쳐다보았다. 우리의 표정을 훑는 어머님의 눈길에서 이미 어머니가 심각한 소식을 감지하셨음이 느껴졌다.

    시누이가 어머니께,

    “엄마, 슬픈 소식이 있어요“ 라고 말을 하니 어머니의 표정이 굳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셨어요” 라고 하는 시누이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얼굴이 붉어졌다.

    어머니는 숨을 잠깐 들이키셨다.  동요하는 시선을 허공에 고정하시면서 하신 말씀은 단 한 마디, 

    ”아, 그래?“

    어머님의 입이 실룩거리는 게 보였다. 나오는 말씀을 참고 안 하려고 하시는 건지, 울음이 터지는데 참으시는 건지, 무슨 말씀을 하려는데 말이 안 나오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시누이가 “엄마, 우리가 빠빠랑 함께 있었어요. 아주 편안하게 눈 감으셨어요” 라면서 눈물을 터뜨렸고 나도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어머니는 묵묵히 계셨다. 

    어머니가 나와 시누처럼 슬픔을 표현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은 예상했으나 철저한 ‘무반응‘은 예상치 못했었기에 좀 당황스러웠다.

    잠시 정적 후에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안심이다. “

    ’안심이다 ‘라는 말씀에 나는 조금 전 아버님 임종 시 때처럼 다시금 언어적/문화적 혼돈에 던져졌다

    안심? 슬픔이 아니라 ‘안도’가 먼저일 수 있나?
    70 년 해로한 베스트프렌드 남편이 세상을 떠났는데 눈물이 한 방울도 없을 수 있다니?
    벨기에 문화인가?  어머니 개인적 성향? 
    시누이가 많이 운 걸 보면 벨기에 문화라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은데, 
    그러나 사랑하는 남편/아빠가 돌아가셨는데, 엄마와 딸이 껴안고 울지 않는 것은 왜일까?  슬픔을 자유스럽게 표현하는 남유럽과 북유럽 애도 문화는 이렇게 다르구나.

    한국에서라면 그냥 ’ 개인의 성격차‘로 여겨질 수 있는 일들이 '문화적 차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고려되곤 하는 국제결혼자의 가정...
    어머니가 왜 안심하시는가는 설명이 필요 없었다. 이미 여러 차례 걱정해 오신 문제가 해결된 것이므로. 아버님이 고독함과 고통에서 벗어나셨으니, 그리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셨으니 어머님이 안심하시는 것이다.
    슬픔을 표현하지 않으시는 게 당장 이해가 안되지만 내가 임종을 앞둔 어머님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리랴. 내가 어머니의 애도 방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위로해 드리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마디의 말로써 나의 그런 생각을 한 번에 끊어버리셨다. 
    구석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다정하나 단호한 어조로

    “팜펨, 왜 우니? 울지 마라.”

    라고 하셨다.

    ‘울지 마’가 위로의 말로 들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런 위로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조언하셨다.

    “울지 마, 울어서 뭐라도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울어? 
    빠삐는 살아있었으면 힘들기만 했을 거야. 
    빠삐를 위해서는 잘 된 일이야. 
    그러니까 울지 말아라.”

    그 말이 상처가 되었다.
    어머님가 감정 표현을 안 하시는 것을 받아들이 듯이, 어머니도 내가 눈물을 흘리든 말든, 아니 통곡을 하더라도, 나의 애도의 방법을 존중해 주실 수는 없는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어머니이지만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인가, 우리의 감정 코드가 얼마나 다른가를 실감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어머니께 내 의견을 이야기하며 토론을 할 수도 없는 일.. 나는 아무 말없이 앉아 있었다.
    ---
    시동생이 도착했다.
    시누이, 시동생은 가볍게 포옹하고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시동생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시동생과 허그로 인사를 나눈 뒤, 나는 다시 나의 자리—-구석자리—로 돌아가 앉아서 시어머니와 시동생, 시누이의 대화를 경청했다.
    시누가 시동생에게 아버님의 죽음을 요약해 주었다.
    시동생은 집중해서 들었고, 잠시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몇 마디 했다.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어머님 맞은 편의 의자에 앉더니 랩탑을 열고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는 간호사로부터 죽음 이후의 여러 절차에 대해 이미 브리핑을 받았기에 해야 할 일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장례회사, 화장과 장례식 큼직큼직한 일들의 순서를 설명해 주더니 어머님께 집 근처의 장례회사 이름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어머니가 ‘아….뭐더라. 그 가족의 성을 따서 만든 회사인데…’ 하시고 시누와 시동생은 그 이름을 기억해 내느라 골몰했으며 누군가가 그 회사 이름을 기억해 냈을 때 다 감탄하며 좋아했다.  그리고는 앞으로의 일정의 계획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장례 날짜는 식구들과 조율할 것이고, 게스트 리스트를 만들어야 하며, 조사를 읽을 사람들을 선택해야 하며, 장례식 후 식사 메뉴를 짜야하고…

    슬픔의 표현 없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똑 부러지게 계획하는 시댁 식구들을 보면서 나의 친정과는 판이하게 다른 문화차이를 실감했다.  나의 친정은 오빠, 아버지의 죽음을 침착하지만 깊은 슬픔으로 겪어냈다. 그래서 나는 애도가 사랑의 한 표현 방식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죽음 직후의 격렬한 슬픔이 완화된 뒤에도 애도는 잔잔한 그리움이란 형태로 지속되었고, 그런 지속적인 애도가 현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대신 풍성하게 만들어준다는 것도 경험했다. 적절한 애도를 못했던 나는 요즘 셀프 그림 치료를 하고 있는 것이고..  
    시댁 식구들에게는 그런 애도의 관념도,  과정도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돌아가신 아버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들이 얼마나 아버님을 아끼고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다 
    시댁 식구들은 그저 고유한 철학을 갖고 있을 따름이다.  그 철학은 이모님, 어머님이 평소에 잘 사용하는 문장 안에 담겨있댜.
    À quoi ça sert? (What's the point?)  '무슨 소용이야?' ' '~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시댁 식구들은 아무 도움이 안되는 사고에 연연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믿는다. 해봤자 좋은 결과가 없는 일은 애초에 할 필요도 없다는 실용주의. 그 시각으로 보자면  애도의 '감정'도, 슬퍼하는 '행위'도 무의미한 일이다. 죽은 사람은 아무리 슬퍼해도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좀 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신 직후에도 나에게 하신 말씀--- " 슬퍼해서  소용이냐, 울지 말고, 슬퍼하지 말고, 대신 좋은 생각만 기억하자'--은  그런 실용주의적 사고의  반영이었다.
    그러나 다른 애도 문화에 익숙했던 나는 그런 실용주의적 사고를 받아들이기는 커녕, 적응이 안되었다. 어떻게 시댁 식구들은 아버님의 운명 뒤 한 시간이 안되었는데 이미 ‘슬픔’은 건너뛰고, ‘그리움’은 아예 삭제해 버리고, 그저 돌아가셔서 ‘안심이다 ‘라고 할 수 있담? 어머님은 어떻게 본인의 사고방식을 나에게 강요하시지?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우는 게 정상이지, 울지 않는 게 정상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 깜짝 놀랐다. 아버님이 떠나셨는데 눈물을 닦으면서 문화 분석을 하고 있다니....
    나는 시댁의 문화가 선뜻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지금은 내가 그것을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애써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 내 감정, 내 애도 방식이 무시된다고 해도 어머님에 대한 비판의식은 갖지 말자.  입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그래야 사랑하는 아버님의 장례를 평화롭고 은혜스럽게 잘 치룰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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