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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러셀 일지 9: ‘안개'
    카테고리 없음 2023. 4. 6. 09:59

     

    아버님이 떠나신 뒤 이틀 동안 나의 마음을 추스른 뒤 어머님께 갔다.  어머니의 애도 방식을 존중하지만, 그로 인해 내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약간의 거리가 필요했다. 

    가는 길에 꽃가게에 들렀다. 인상이 좋은 꽃집 주인은 며칠 전에 꽃을 샀던 나를 기억하고 반가워하며 "시어머니를 위한 것이지요?" 하더니 강렬한 장미 부케를 만들어주었다.  

     

    어머님이 꽃을 보더니 예쁘다고 해맑게 웃으셨다. 어머니가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꽃을 볼 수 있게끔 가까운 선반 위에 화병을 놓았다.

    어머님은 이틀 동안 몸이 아주 많이 편찮으셨다고 했다.  여전히 구토가 문제였다. 단백질 음료와 물 몇 모금 마시신 뒤 잠을 청하셨다.  어머님의 틀니를 깨끗이 양치한 뒤 말려서 어머님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놓아드렸다.

    주무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사시려니 얼마나 힘드실까...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또한 이미 많이 쇠약하신 어머님이 아버님의 뒤를 따라 돌아가시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서류를 제출해 놓은 안락사를 택하시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오후에 시동생이 들렀다 갔다. 어머님 방 밖으로 나와 시동생을 배웅하면서 내 염려를 나누었다.  시동생은 어머님이 당장은 안락사를 생각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버님의 장례가 남아 있고, 집 매매 문제도 있으니... 그러면서 '엄마가 오래 사시게 장례식 일정을 늦게 하고, 집을 아주 천천히 팔까 봐' 하고 농담했다.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가 브러셀에 도착한 다음날로 장례식이 잡혔다고. 브러셀의 화장/장례 시설이 있는 묘지에서 장례식을 할 것이고 60 명 정도의 게스트를 초대할 것이라고 했다.  정작 내가 브러셀에 있는데, 나는 브러셀에서 열릴 장례식의 정보를 캘리포니아에 있는 남편으로부터 듣고 있었다. (며느리 ㅠ)

    장례식 날짜가 정해진 뒤 나의 두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너희들이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다면 우리가 티켓을 보내주마. 너무 짧은 일정으로 오는 것은 무리일 테니 알아서 결정해라'라고.

    아들아이는 오려고 했으나 새로 시작한 직장에서 30 명의 client 들과 예약을 취소하는 게 가능하지 않아 벨기에행을 포기했다. 딸아이는 우리 문자를 받자마자 감격해서 답장해 왔다. 할아버지 소식 들은 뒤 많이 울고 있노라고. 이런 상황에서 가족에게서 멀리 떨어져사는 자기 처지가 한스러웠다며, 이렇게 할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자기가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쉬는 날들을 모아 두었기 때문에 충분히 올 수 있다고 했다. 

    몇 시간 후 딸이 티켓 정보를 보내왔다. 남편이 딸의 비행 일정을 보면서

    "흠, 랄라도 경유지가 나처럼 시카고네? 랄라 비행기 시간이 나랑 비슷한데?" 하더니만 자기 티켓을 확인하곤 기뻐했다.

    "랄라랑 나랑 한 비행기를 탄다!"

    너무도 신기하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우연'이었다.

    며칠 후 각기 다른 도시에서 출발한 남편과 딸은 시카고 공항에서 만나 회포를 풀고, 한 비행기를 타고 브러셀에 도착했다.

    그들이 동시에 택시에서 내려 빗속으로 나를 향해 다가오는 순간, 나는 기쁨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랄라와 차를 마시면서 오늘 비행이 너무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새벽 4 시에 출발해서 시카고에서 layover 가 장장 8 시간, 그리고 다시 8 시간 비행의 빡빡한 일정이었다.)  랄라는 시카고에서 밥을 든든히 먹었고 브러셀행 비행기 안에서 푹 쉬었다고 했다. 잠을 자야 시차에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잠을 많이 자고 영화는 딱 한 편만 봤다고 했다. 

    "엄마, 한국 영화였는데, 진짜 excellent 했어.  그 영화, 엄마도 봤어? Decision to Leave?"

    헤어질 결심?  깐느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은 상이라고는 들었지만 아직 못 본 영화.

    딸아이는 '엄마, 진짜 굉장히 잘 만든 영화야. 나중에 꼭 봐' 하더니 영화 요약을 해줬다. 한 남성의 추락사, 그의 중국인 부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취조, 잠복근무, 심문을 통해 이어지는 남녀의 만남, 의심과 관심의 모호한 경계가 일으키는 긴장 속에서 서서히 자라는 사랑—- 딸은 몰입해서 봐서인지 세세한 사건, 이미지까지 다 기억하고 이야기해 줬다.

    처음에는 딸이 말하는 걸 들어주는 차원에서 듣다가 나는 스토리에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영화의 몇몇 요소들이 지난 일주일간 내가 겪은 경험, 사고, 감정들과 미묘하게 겹쳐서였다. ‘아버님의 죽음’을 시발적으로 시작된 문화 차, 차용된 외국어의 한계, 언어로 표현이 가능하지 않은 감정들, 몰이해, 혼돈, 외로움… 등등은 영화의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딸은 내가 나중에 영화를 볼 거니까 너무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내가 '다 이야기해 줘! 생각나는 대로. 엔딩까지 다!'라고 졸랐다 딸은 “아... 이건 spoiler인데..." 하면서 결국 여주인공이 모래로 묻혀버린 해변에서 애타게 그녀를 찾는 남주인공, 석양, 파도.... 의 마지막까지 다 이야기해 주었다.   

    아... 그렇게 끝났구나....

    나는 마치 두 시간 동안 몰입해서 영화를 본 듯이 기운이 쭉 빠져 버렸다. 딸이 유튜브를 검색하면서 말했다.

    ”엄마, 영화 음악 들려줄게. ‘안개’라는 타이틀인데, 옛날 노래인가 봐. 엄마도 알지 모르겠다.”

    ‘안개? 물론 그 노래 알지. 참 아름다운 노래야!‘라고 하면서 나는 눈을 감았다.

    익숙한 선율, 익숙한 목소리를 기대하면서....

    잠시 후 딸의 핸드폰에서 따뜻하고 촉촉한 기타의 선율이 들려왔다.
    짧은 기타 전주 후의 담담하게 되뇌는 듯한 여린 목소리...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첫마디를 듣는 순간, 그 가사가 묘사하는 정경이 내 마음에 번쩍 떠올랐다.

    안개가 자욱한 거리. 홀로 걸어가는 사람.

    울컥 뜨거운 감정이 올라왔다. 가사가 불러일으키는 이미지에 지난 일주일간 정처 없이 브러셀 골목을 헤매고 다니던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홀로 걸을 때의 외로움도 다시 살아났다. 축축하고 차가운 브러셀의 밤공기의 기억도 다시 살아났다.  

    나는 숨을 죽이고 노래를 들었다.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다오

    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갯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노래를 들으면서 이제까지 가까스로 묻어두었던 모든 감정들이 폭발했다. 가사가 나의 이야기 같았다. 떠나버린 아버님, 다정했던 그의 모습, 그의 기억... 그러나 어머님은 '슬퍼하면 무엇하나'라고 하셨다. 슬퍼한다고 아버님이 살아 돌아오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나는 슬펐고, 그리웠다. 그래서 외로이, 하염없이 걸었다. 어떤 날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떤 날은 코트의 모자를 눌러쓰곤, 어떤 날은 우산을 낮게 드리워 눈물을 감춘 채, 하염없이 걸었었다.

    나는 식탁에 얼굴을 묻은 채 흐느꼈다.

    딸이 다가와 내 옆에 선 채, 나를 자기 몸으로 덮어서 꼭 껴안아주었다.  나는 머리를 들어 딸의 가슴에 묻고 오열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나의 분신은 내가 아무 말을 안 해도 나를 이해하고 있었다. 딸은 토닥토닥 나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엄마, 힘들었지? 슬프지? 괜찮아. 울어.. 엄마.... 괜찮아."

     

    공감과 위로, 이게 나에게 절실했던 것이었나 보다. 북받쳤던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았고 흐느낌도 멈추었다.

    나는 딸의 품에 안긴 채 계속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딸은 나의 머리와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딸의 품이 엄마의 품처럼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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