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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러셀 일지 6 : 아버님의 죽음
    카테고리 없음 2023. 3. 28. 19:08




    어머님은 깨어 계셨다.
    오늘따라 아버님이 아주 평안하게 주무시고 계신다고 알려드렸더니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다행이구나.’

    언젠가부터 어머님의 감정 표현에는 아무런 색깔이 없다.
    어머님이 ‘뭐 좀 먹을래?’ 하고 물으셨다.
    평생 자식들을 먹이는 기쁨으로 사신 어머님은  병상에 누워 아무것도 못하게 된 뒤에도 ‘먹을래? 먹어라!’가 주요 어록.
    어머님이 드실 수 없는 병원식—스푸, 하얀 빵, 바나나, 요그크르, 애플소스, 주스—-를 계속 방문객에게 권하신다.
    어머니가 시키시는 대로 요구르트에 잼을 듬뿍 넣어 먹었다. 만족해하셨다.

    그랑쁠라스까지 걸어서 다녀왔으며 어머님께 집에 가서 인사를 하고 왔다고 말쓰드렸다.
    어머님은 내가 나만의 시간을 가진 게 참 잘한 일이라고 하셨다.
    어머님은 기분이 좋아지셔서 오늘은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하셨다.
    내가 “아버님의 어떤 모습을 사랑하셨어요?”라고 여쭈니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빠삐는 재밌는 사람이었어. 옆에 있으면 항상 즐거웠어.”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연애했고, 첫째와 둘째를 낳았을 때 얼마나 힘들었으며……술술 이야기가 풀려 나왔다.
    어머님이 해주시는 이야기들이 대부분 내가 아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앞으로 어머니를 통해서 들을 다시 들을 기회가 몇 번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평소보다 집중해서 들었다.

    4시 반 경, 브러셀 근교에 사는 시누이가 왔다.
    우리는 함께 아버님 방으로 갔다.

    좀 전에는 오른쪽을 향해서 옆으로 누워 계시던 아버님이 왼쪽을 향해서 누워 계셨다.
    아버님의 몸을 돌려 뉘어드린 요양보호사들의 배려가 감사했다.

    딸보다는 며느리가 우선이니 시누이에게 아버님 옆자리를 양보했다.
    나는 아버님 발치에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시누이가 아버님께 말했다.

    “빠빠, 나예요. 오늘 빠빠 얼굴이 건강해 보여요. “

    시누이는 아버님 손을 부드럽게 쓸면서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나에게

    ”팜펨, 이거 봐. 빠빠가 손을 움직여. 말을 못 하셔도 빠빠는 이렇게 힘을 주어 잡음으로써 우리에게 표현을 하셔.”

    나는 열렬히 동감했다.
    시누이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구나!
    이제까지 아버님과 손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믿었던 나의 생각이 사실이라고 확인받은 것 같아서 반가웠다.

    시누이가 아버님의 손을 잡고 내려다보는 보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러나 시누이가 폐질환으로 산소 튜브를 부착하고 있어서, 아버지와 딸이 둘 다 산소 튜브를 끼고 있는 사진을 찍는 게 꺼려졌다.
    어느 순간, 그녀가 숨이 편해져서 산소 튜브를 뗀 뒤 다시 아버님의 손을 잡자마자 나는 그녀의 허락을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사랑이 가득한 딸의 시선, 딸을 향해 누워 있는 평안한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게 아버님의 살아생전 마지막 사진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군인’ 요양보호사가 들어왔다.
    같은 요양보호사가 이틀 연속 들어온 게 처음이었다.

    그녀는 능숙하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아버님에게 음식을 드리기 시작했고 아버님은 눈을 감으신 채 기계적으로 받아 잡수었다.
    시누이와 나는 아버님의 침대 끝에 앉아서 아버님을 응원했다.
    아버님의 그릇이 깨끗이 비워지고, 우리는 짝짝짝 박수를 치고, 요양 보호사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갔다.
    평소 나도 시누이도 아버님이 식사 후 곤히 주무시면 방을 떠났는데, 오늘은 둘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누이와 나는 아버님 발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누이가 아버님 이야기를 많이 하고 나는 들었다.

    “아빠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재미있는 아빠였어. 바닥에서 구르면서, 뛰어다니면서 우리들과 놀아주었단다.”
    “아빠는 외할머니를 어느 아들보다도 더 정성껏 돌봐드렸어. 어떨 때는 엄마보다 아빠가 외할머니를 더 살갑게 대하는 것 같다 느낄 정도였어.“
    ”내가 석사 학위를 받았을 때 아빠가 자랑스러워하던 모습을 잊지 못하겠어. “
    ”아빠가 이렇게 빨리 악화될 걸 아무도 예상 못했어. 엄마가 온몸이 전이되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누가 먼저 가실지 모르게 되어버렸어. “

    내가 처음 듣는 소리도 해주었다.

    ”열흘 전에 내가 아빠한테 ’팜펨이 올 거예요 ‘라고 했어. 그랬더니 아빠가 그날따라 아주 또렷하게 ’팜펨은 우리를 걱정해/사랑해/아껴 ‘라고 하셨어.
    많이 놀랐지. 그런데 그 이후로 아버지랑은 아무 말도 못 할 정도로 아빠 상태가 악화되었어. 생각해 보니 그게 마지막 말이었네. “

    ’아버님이 내 마음을 아시는구나‘ 진한 감동을 느꼈다.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도 우리의 시선은 아버님께 고정되어 있었다.
    평안히 주무시던 아버님이 갑자기 몸에 진동이 있더니만 ’우욱!  토하셨다.
    턱 밑의 일회용 bib에 토사물이 쏟아졌다.
    나와 시누이는 놀라서 아버님 곁으로 달려갔다.
    아버님은 창백했고, 입을 벌리신 모습이 의식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간호사나 요양 보호사를 부르려고 다급히 복도로 뛰어나갔다.
    주로 이 시간 (저녁 식사 시간)은 요양보호사들이 다 환자들의 방에 들어가 있는데 운 좋게 좀 전에 아버님 식사를 담당했던 요양보호사가 복도에 보였다.

    그녀는 내 얼굴만 보고도 응급상황인 줄 알았는지 급히 달려왔다. 토사물이 묻은 앞가리게를 떼면서 아버님의 안색을 보자마자 그녀는 나직이 ‘상태가 나빠요. 위험해요 ‘ 했다.
    호주머니에서 무전기같이 생긴 기기를 꺼내서 간호사를 호출하고는 아버님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빠삐, 일어나요! 빠삐, 일어나요!” 외쳤다.
    그녀는 얼굴의 얼굴은 상기되었고 땀도 흘리고 있었다.
    위풍당당하던 그녀답지 않게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에 시누이와 나는 두려움에 휩싸여 아버님과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 ‘안느’가 달려왔다.

    이미 아버님의 안색은 아주 밝은 베이지 색,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안느는 침대 조정기 버튼을 급박하게 눌러서 아버님의 머리 부위를 서서히 낮추고, 다리를 서서히 올렸다.
    그녀는 끊임없이, 침착한 목소리로 아버님을 부르며 (무슈 쥴리앙, 무슈 쥴리앙, 들리세요?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잠을 깨우려는 양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렇게 2 분 정도 지났나, 아버님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안느는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우리 쪽으로 뒤돌아보면서 “괜찮으신 것 같아요”라고 했다.
    저혈압 쇼크인 것 같다고 했다.
    시누이와 나는 ‘오오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동시에 외쳤다.

    그러나 아버님의 산소와 혈압을 측정하는데  수치가 다 낮았다.
    간호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아버님이 안정을 하신 뒤 잠시 후 다시 와서 재보겠다고 했다.
    시누이와 나는 아버님 침대 양쪽에 서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안느가 나가고 얼마 안 되어서 아버님이 다시 경련을 하시더니 토하셨다.
    아까처럼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한 번에 크게 토를 하시고는 숨이 막히신 듯 혈색이 하얗게 변했다.

    새로운 위급상황에 아까보다 더 놀란 나는 간호사를 부르러 뛰어나갔다.
    복도를 뛰면서 ‘안느! 안느! 응급상황이에요! 누구 없어요?’ 하고 외쳤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도움을 구하던 나는 내가 이렇게 뛰어다닐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돌아가시는 중이라면 아버님 곁을 지켜야 한다!
    나는 전속력으로 아버님 방에 달려갔다.

    시누이가 얼굴이 빨개져서 아버님의 손을 잡고 울고 있었다.
    시누이에게 간호사를 찾을 수 없으니 호출 버튼을 누르라고 하고 아버님을 내려다보니
    아버님은 아직 숨을 쉬고 계셨으나, 운명 직전임이 확실했다.
    아버님의 피부 색깔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몇 번 본 적이 있는 ’시신의 색깔‘과 아주 유사했다.

    나는 아까 간호사가 했던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버님, 들리세요? 일어나세요! 아버님, 들리세요? 일어나세요! “

    그런데 반대쪽에 서 있는 시누이가 울면서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아빠, 우리 옆에 있어줘요! 제발, 아빠! “

    갑자기 말이 탁 막혔다.

    그녀의 표현, ’reste avec nous, papa’ (우리 옆에 있어줘요, 아빠)가 아주 생소한 표현으로 들려서였다.

    외국어를 문법으로 배운 사람의 비애.
    나는 영어, 불어를 문법으로 배웠고, 꽤 편하게 구사하지만 어느 언어도 완벽한 ‘감정의 언어’는 아니다.
    지금까지 언어 습득 과정을 보면  발음, 문법을 배운 뒤 여행, 식당, 연애, 음식, 학교, 감정, 등등 여러 상황에 맞는 단어들과 표현들을 공부하고, 책, 뉴스, 영화 등을 통해 그 표현들이 상황에 맞게 사용되는 것을 보고, 내가 사람들과의 만남과 여러 상황에 부딪히면서 순발력 있게 내가 배운 것을 자유롭게 구하사게 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한 번도 ‘임종의 순간’을 불어로 공부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가 사망하는 순간을 영화로 본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내게 적용가능한 언어가 아니라 생각했었기에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이제까지 임종을 두 번 지켰지만 그건 오빠와 아버지, 한국어로였다.

    그런데 시누이의 불어 (’우리와 함께 있어줘‘) 를 듣는 순간—-당장 아버님이 운명하시는 순간인데도—-‘이 상황에 불어로 이렇게도 이야기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결혼해서 근 28 년 동안 시댁과의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었는데, 아버님의 죽음의 순간에 언어적 장벽/괴리의 존재를 느끼고 말았다.
    긴급한 상황에도 새로운 불어 표현을 ’배우고‘ 있는 스스로의 처지가 충격이었다.
    내 첫 reaction 이 간호사가 좀 전에 했던 말 (”들리세요? 일어나세요!“) 도 당황스러움 속에서 내가 들은 말을 copy 하고 있었던 것이니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상항에  ”우리와 함께 있어줘요 “라는 문장이 생소했던 것은 임종을 불어로 겪어서만은 아니었다.
    즉, 한국어 vs 불어의 차이가 아니라, 그냥 ’우리가 함게 있어줘요‘ 라는 사고방식이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빠가 돌아가시던 순간,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순간, 나는 한 번도 ‘가지 마 ‘ ’ 우리 옆에 있어줘요!‘ ‘가지 마요’ ‘떠나지 마세요’라고 하지 않았으니까…

    지금 이렇게 길게 설명을 하고 있지만, 시누이의 ’우리 옆에 있어줘요‘ 라는 표현에 내 사고가 정지된 시간은 아주 짧았다.
    ’죽음 상황에 저런 식으로 이야기하네?‘ 하고 멈칫했다가  ’저 표현이 생경하다‘ ’난 뭐라고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갔고,
    내가 입을 열었을 때는 나는 내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오빠가 돌아가셨을 때 했던 말의 불어의 번역이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그리울 거예요’ ‘고맙습니다’ ‘걱정 마세요’ ‘편히 쉬세요‘

    한국어로 외칠 수 있다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 말들….

    나는 아버님의 이마와 뺨에 쉴 새 없이 뽀뽀를 했다.
    그렇게 몇 분 있었나…몇 초 있었나… 모르겠다. 시간이 멈춰버렸다.

    아버님의 혈색이 완전히 미색으로 변하였다.
    연약한 숨길이 끊어진 듯했다.

    시누이가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아빠가 떠나신 것 같아. 그렇지?” 했다.

    나도 시누이도 아버님 숨이 완전히 끊어진 것인지 확신이 없었다.
    단지 절대로 이 상황에서는 이전처럼 숨을 못 쉬실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시누이는 호흡 곤란이 와서 산소 호흡 튜브를 코에 끼고 의자에 앉아서 아버님의 손을 잡았다.

    “아빠… 아빠… 사랑해요.”

    나는 작은 타월을 손가락에 감아서 아버님 입 속에 넣어 남아 있던 토사물을 빼내고 아버님의 입 주위를 깨끗이 닦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당혹스러웠다.

    아버님의 임종을 지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그런데 한편으로 아버님의 임종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 안느가 들어왔다.
    위급 상황으로 호출되어서 당장 올 수 없었다고 했다.
    아버님을 체크하더니 ’ 운명하셨습니다.‘라고 확인해 주었다.

    그녀는 시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따뜻한 포옹을 해주었다.

    그 후, 어떻게 일이 진행되었는지 시간적 순서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버님 몸을 펴드리고 깨끗이 하는데 우리가 옆에 있던가 아니면 밖에서 기다리든지 선택을 하라고 해서 복도에 나와 있었던 게 어렴풋이 생각난다.
    나는 캘리포니아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시누이는 자기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둘 다 다시 눈물이 터졌고…
    내가 시누와 멀리 떨어져  병원 복도 구석의 벽에 기대어 울고 있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요양보호사가 다가와 ’힘드시죠, 힘드실 거예요. 이해해요.‘라고 해줬고 그녀를 껴안고 엉엉 울었던 생각이 난다.

    아버님의 몸이 정리가 된 뒤 시누이와 다시 아버님 방에 들어갔다.
    아버님은 입이 벌어지지 않게끔 머리부터 턱까지 붕대로 감아져 있었다.
    핏기가 다 빠진 안색이지만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누워 계시는 아버님은 평안해 보였다.

    아버님의 손을 잡았다.
    언어의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 때 우리의 마음을 이어주었던 아버님의 손과도 이제는 작별이구나.

    손등에 뽀뽀를 했다.
    아버님의 이마와 머리에 뽀뽀를 했다.

    시누이와 나는 당장 어떻게 해야 하나 논의했다.
    그녀가 ’엄마께는 내가 말해야지 ‘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우리가 감사할 일이 많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우리가 함께 있어서 의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빠서 평소보다 방에 오래 머물러서 아버님 임종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우리가 방을 떠났더라면 아버님은 구토하신 뒤 혼자 운명하셨을 것이고,
    아버님의 시신은 요양보호사들에 의해서 나중에 발견되었을 것이다.
    아버님이 구토하신 뒤 응급조치를 받으셨기에 두 번째 구토 시 임종의 순간에 우리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그리고 간호사나 요양보호사가 없이 시누와 내가 단 둘이 임종을 지킬 수 있었음은 축복이었다.

    시누와 나는 그렇게 ‘받은 복’을 세어보면서 마음을 진정했다.
    그게 필요했다.
    조금 후에 어머님 방에 가서 아버님의 임종 소식을 전해야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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