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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러셀 일지 2: 요양원 방문
    카테고리 없음 2023. 3. 18. 22:37


    오후에 부모님께 갔다.
    걸어서 10 분 거리, 현재 호텔이 지난번에 묵었던 호텔과 비슷한 위치라서 가는 길이 익숙했다.
    구름 속으로 비치는 밝은 햇살, 쌀쌀한 공기가 나를 행복하게 해 줘 오랜만에 팔을 휘휘 저으면서 씩씩하게 걸었다.


    요양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나올 때는 또 다른 숫자의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요양원 환자들의 ‘탈출’을 방지하기 위함이란다.

    지난번에 왔을 때, 나는 요양원 원생의 탈출 기도를 목격했었다.
    내가 요양원 현관을 들어가자마자 누군가가 뛰어나왔다.
    그러나 자동문이 닫혔고, 그녀는 나갈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날 보고 “봉쥬르~” 하며 씩 웃었다.
    나도 인사를 했고, 그녀의 옷이 추운 겨울 날씨에 나가 다니기에는 약간 허술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비밀번호를 입력하였다. 문은 안 열렸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도와드려야 하나? 그러나 혹시 이분이 여기 거주하시는 분이라면?
    여러 생각이 스치면서 어쩔 줄 모르는데 ‘멈춰요~’ 하며 덩치가 듬직한 아랍계 여인이 뛰어오며 소리쳤다.

    “마담, 여기서 뭐해요? 당신은 나갈 수 없어요!” (아… 간호사이구나. 이 ‘마담’은 탈출 기도를 하려는 것이구나.)

    ‘마담’은 천연덕스럽게 “아니, 그냥 이 문이 고장 났나 확인해보려고 한 거예요”라고 했고, 간호사의 팔에 끌려가면서 뭐라 계속 구시렁거렸다.

    그렇게 탈출을 하려고 하는 원생들이 모여있는 층은 3 층.

    작년 12 월, 우리가 5 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3 층에서 선 엘리베이터에 한 원생이 (천연덕스럽게!) ’ 안녕하세요?‘ 하며 들어서는 순간 그를 뒤쫓아온 간호사가 드라마틱하게 팔을 잡아 빼낸 적이 있다. 그는 ’그냥 아래층 식당에 좀 가보려 한 거예요 ‘라고 둘러댔다.  그게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해 놀란 표정의 남편과 나에게 옆에 있던 간호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도망가려고 하는 거예요. 항상 그럴듯한 이유를 대요. 나가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려고 하지요. “

    우리는 3 층은 치매, 알츠하이머 등 정신/지력이 불안정한 분들을 모아둔 곳이라는 사실을, 3 층 환자들의 처절한 탈출 기도를 막기 위해 3 층의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는 비밀 부호를 입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다.

    최근 아버님이 그 3 층으로 옮기셨다.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님이 어머님과 방을 따로 쓰시기로 결정되었을 때 아버님의 지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왜 그곳에 옮기셨지?
    아버님이 청력의 상실로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지 않아서인가 추측했다.
    이유야 어쨌든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평생 의지해왔던 사랑하는 부인, 청력이 손상되었어도 어느 정도의 대화가 가능했던 부인과 급작스레 떨어져 독실에서 지내면서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고
    티브이를 볼 수도 없고, 글을 읽을 수 없이, 한 공간에 갇혀 하루를 보내는 아버님은 어떤 마음일까.
    작년 12 월까지만 해도 나와 남편은 아버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귀에 가까이 말을 하여 노력하면 아버님은 대화가 가능하고 농담도 할 정도이신데 치매 병동에 들어가셨다니…

    (미국에 우리에게 소식을 전해주던 자클린 이모는 ”빠삐는 3 층에서 아주 잘 돌봐주니까 걱정하지 말아. 기저귀를 자주 갈아줘서 옷이 젖지 않아 내 빨래가 줄었어 “라고 했었다.
    아버님의 정신적/감정적 돌봄은 아예 포기되었나 싶어 안타까웠다.)

    시어머님은 원래 아버님과 함께 쓰시던 5 층에 계속 계신다.
    나는 어느 층에 먼저 갈까 망설이다가 일단 어머니를 먼저 찾아뵙기로 하고 5 층을 눌렀다.

    주무시고 계시던 어머님은 내 기척에 눈을 뜨시고 ”팜펨. 왔구나!” 하고 반가워하셨다.

    오늘 왔니, 피곤하지 않니, 미국의 어머님은 안녕하시다니, 냉장고에 주스 있는데 마실래? …..
    어머님은 여전히 나를 챙기셨다.
    내가 문병 온 건데…

    어머님이 오늘은 좀 컨디션이 좋으시단다.

    ’ 지난 이틀간 구토가 심해서 밤 내내 구토를 해서 너무 피곤했는데 약을 처방받은 뒤 좀 살 것 같다.
    내가 먹는 건 단백질음료 한 통과 요구르트 하나인데, 딱 한 번 야채 수프를 몇 모금 입에 넣었더니 구토가 시작되었고 먹은 게 없으니 토할 게 없는데도 계속 위액을 토했다.
    어제는 앙뚜완과 마리옹이 왔다 갔고, 오늘은 셀린과 카트린이 왔다 갔고…..‘

    어머님은 쉰 목소리로 차근차근 경과보고를 해주셨다.
    머리가 완전히 다 빠져 두상이 그대로 보이는 어머님의 수척한 얼굴, 그래서인지 눈이 더 크고 맑게 보였다.

    어머님과 한 시간 있다가 아버님을 뵈러 3 층에 올라갔다.
    어느 병실인지 몰라 헤매다가 작은 응접실과 부엌이 붙어 있는 공간이 눈에 띄었다.
    몇몇 할머니 할아버지가 티브이를 보고 있었고, 간병인 세 명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봉쥬르~~ 저는 지금 무슈 쥴리앙 C의 방을 찾고 있는데요….”라고 하니 그중의 한 사람이,

    “오, 당신이 며느리지요? 캘리포니아에서 왔지요? 5 층의 마담 C 에게서 들었어요! “라고 반색을 한다.
    옆의 간병인들도 ’아, 이 분이 그 며느리야?‘ 라면서 아는 척한다.

    그는 친절하게 나를 아버님의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아버님의 방문은 열려 있었다.
    들어서는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너무 놀라서.

    아버님의 코에는 플라스틱 산소 튜브가 꽂혀 있었고 그 위로 산소호흡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거칠게 숨을 쉬는 아버님, 꿈을 꾸시는지 환각 상태에서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애초에 말을 정확히 하실 수 없는 데다가 산소호흡기 때문에 아버님의 목소리는 동물의 표효같이 들렸다.
    아버님이 플라스틱 산소 튜브를 쓰시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산소호흡기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었고
    일단 지난 12 월, 작별할 때의 아버님과 너무도 다른 모습에 나는 너무도 놀라 잠시 멈춰서 내 놀란 가슴을 다스려야 했다. ——————

    아버님 옆에 앉았다.
    아버님은 계속 뭐라고 뭐라고 외치셨다.
    가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산소호흡기를 벗기려고 하셨다.
    아버지의 떨리는 손, 힘없는 손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
    고통스러워하는 아버님을 나 또한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아버님의 지속적인 절박한 움직임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간병인들에게 가 물었다.

    “저의 아버님이 산소호흡기를 불편해하시는데 지금 꼭 필요한 건가요? 항상 하고 계셔야 하나요?”

    아까 나를 아는 척했던 남성 간병인이 선뜻 자기가 체크해 보겠노라 하고 성큼성큼 걸어 아버님 방으로 갔다.
    그는 ”산소 튜브랑 호흡기를 왜 같이 했지? 누가 이랬나? 산소 호흡기는 지금 필요 없어요 “라고 하고 제거해 주었다.

    산소 호흡기를 제거하는 순간, 아버님의 숨이 편해졌다. 간병인이 ’ 이거 필요 없는데 누가 설치했지?‘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열심히 일하는 간병인들, 잘하려고 한 일이라 믿고 싶고 믿어야 하지만
    그들에게도 실수가 있는 법,
    혹은 ‘의도적 실수’도 있을 수 있는 법….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버님 같은 상태의 노인들은 자기를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권리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
    어머님과 함께 계실 때는 어머님이 간병인들에게 성심성의껏 부탁을 해서 아버님의 권리를 보호해 주시거나, 아버님께 설명을 해드렸는데
    이제 독방에 남겨진 아버님은 자기의 몸에 무슨 이유로, 무슨 목적으로 어떤 장치를 하는지 알 길이 없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구나.
    분명 abuse 가 아닌 의료적 도움임에도 환자 입장에서는 abuse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을 아버님은 감내하고 계시구나….

    ——-

    아버님은 찡그린 눈을 감은 채 계셨다. 주무시는 건지, 의식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아버님 옆에 있을 때마다 하는 일—-마사지—을 했다.
    아버님의 팔을 잡고 쓰다듬었다. 뺨에 뽀뽀를 해드리고 아버님의 머리도 가볍게 안마했다. 목 뒤로 손을 넣어 부드럽게 안마하고, 턱과 목의 임파선도 가볍게 톡톡 치면서 안마했다.
    속옷 속으로 손을 넣어 어깨와 등도 만져드렸다. 아버님이 눈을 뜨셨다.

    그 순간 아버님의 눈앞에 내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소리쳤다.

    “아버님, 아버님, 저예요! 팜펨이에요! 저 왔어요!” 아버님의 눈이 커졌다.

    “파아아아… 프….”

    아버님의 발음은 정확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아버님이 내 이름을 부르신다는 것을 느꼈다. 나를 알아본 아버님의 ‘시선’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미약한 힘이나마 나를 잡은 손에 힘을 주시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버님과의 ‘소통’이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아버님, 저 여기 있어요. 걱정 마세요. 아버님, 아버님은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 모두 아버님 너무너무 사랑해요!”
    라고 외쳤다. 아버님이 눈을 감은채 뭐라 뭐라 하셨다.

    나는 못 알아들었지만, “네~~ 네~~ 아버님, 맞아요~ 맞아요”라고 맞장구쳤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인간으로서 또 하나의 인간에게 말하실 수 있게 하는 게 급선무이므로… 아버님이 이번에는 조금 더 또렷하게 내 이름을 발음하셨다.

    “팜… 프…. 팜… 엠..” 나는 아버님의 손을 내 뺨에 대고 “아버님, 저 여기 있어요. 네, 여기 있어요. 아버님, 사랑해요!”라고 외쳤다.

    아버님은 얼굴을 찡그리시면서 이번에는 ”디둠, 디둠…” (어머님 이름) 하고 부르셨다.
    나는 아버님이 못하시고 있는 말을 내가 대신 상상해서 말했다.

    “네, 어머님이요? 어머님, 너무 보고 싶으시죠? 어머님, 안녕하세요. 아버님, 조금 나으시면 모셔다 드릴게요! “

    나는 내 얼굴을 아버님 얼굴 앞에 가까이하고 이야기했다.
    입을 크게 열 수 있는 한 가장 크게 열고 미소를 띤 채..
    언제 눈을 여실지 모르는 아버님, 눈을 뜨시는 순간, 미소를 보게 하고 싶었고
    눈이 어두운 아버님께 흐릿한 이미지로 보일 나의 얼굴, 크게 웃어서 아버님께 미소가 보이게, 느껴지게 하고 싶었다.

    아버님은 눈을 감은 채, 다시 잠이 들었다가 깼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아버님이 고통스러워하실 때마다 아버님 귀에 대고 응원을 해드렸고
    잠잠해지시면 머리, 얼굴, 귀, 목, 어깨, 팔, 손… 두루두루 안마를 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 시간을 함께 했다.


    ———-

    저녁 식사 시간.
    간병인이 식판을 수레에 밀고 들어왔다.
    죽, 수프, 처방약이 담긴 그릇이 전부였다.

    간병인이 ”오, 당신이 그 며느리예요? 5 층의 마담 C (시어머니) 에게서 들었어요. 당신이 온다고 무척 기뻐했어요. “라고 반가워했다.

    그녀는 아버님이 지난 이틀 동안 식사를 전혀 못하셨다고 했다. 식사를 못하시면 (죽에 넣어 드리는) 약을 못 드시기 때문에 큰 문제라고 했다.
    약을 갈아 아버님의 수프에 넣어 휘저으면서 그녀는 아버님의 얼굴을 근심 어린 표정으로 흘낏흘낏 쳐다보더니만 ‘무슈의 얼굴이 오늘 너무 창백하네요. 저렇게 창백한 적은 없었어요’라고 했다.
    그녀는 며칠 전에는 아버님이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고 진정되지 않아서 의사를 불렀었다면서, 드신 게 없어서 몸이 추워서 일어난 일이었는데 자기들은 그걸 몰랐었노라고 했다.

    아버님이 5 층에 계실 때도 자기가 가끔 돌봐드렸는데, 나중에 3 층에 오신 아버님의 행색을 보고 너무 놀랐다면서, 어떻게 그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무너지실 수 있는가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나도 마찬가지라고, 12 월에 뵈었을 때랑 지금이랑 너무 달라서 충격이라고 했다.

    아버님 목에 수건을 둘러드리며 간병인은 ”아, 무슈, 오늘은 저를 힘들게 하지 말아 주세요. 한 입이라도 드세요. 약을 드셔야 해요.”라고 했다.

    나는 아버님의 귀에 대고 외쳤다. ”아버님, 저녁이에요. 영양분이 잔뜩 들은 맛있는 수프예요. 아버님, 이거 다 드실 수 있어요! 아버님, 이거 드시고 기운 차리셔야지요! “

    간병 도우미가 수프를 담은 숟가락을 아버님 입에 대는 순간, 아버님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입을 크게 여시고는 덥석 받으셨다.
    “Mon Dieu! Mon Dieu!” 그녀가 외쳤다.

    ’왜 my God, my God! 하는 거지?’ 나는 의아했다.
    그러나 일단 나의 역할은 치어리더, 나는 아버님께 ”와! 아버님!! Tres bien!” 하고 외쳤다.

    아버님이 입을 오물거려 수프를 삼키셨다.
    그 순간, 다시 간병 도우미가 소리쳤다. ”Mon Dieu! Mon Dieu! Il mange! (My God, My God! He is eating!)”

    그녀는 감격한 어조로 말했다.

    ”이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가 이렇게 잡수신 적이 없어요. 당신이 옆에 있으니까 잡수시는 건가 봐요!”

    나는 그제야 아버님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던가를 깨달았다. 한 숟갈을 능동적으로 드셨다고 저렇게 흥분할 정도라면 그간 아버님이 얼마나 음식을 거부했고, 그래서 간병인이 얼마나 힘들었는가 짐작이 되었다.

    간호사를 돕기 위해, 아버님을 돕기 위해, 나는 열심히 아버님을 응원했다. ”아버님, 하실 수 있어요! 맛있게 드세요! 잘하시고 계셔요!! “

    아버님은 죽을 입에 넣으신 뒤에 혀로 대강 굴려서 삼키는 대신, ‘씹는 동작’ 마저 하셨다.

    간호사는 “Mon Dieu, mon Dieu!! 믿을 수 없어요. 이건 없던 일이에요. 전 지금 너무 놀랐어요! 당신 덕이예요!”라고 외쳤다.
    매 숟가락마다 간호사는 어떨 때는 큰 소리로, 어떨 때는 작은 소리로, 그러나 계속해서 감탄했다.
    내가 그녀와 번갈아가면서, 어떨 때는 동시에 외치면서 아버님의 식사는 진행되었다.
    (아마도 그 요양원에서 가장 소란한 식사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버님의 작은 그릇의 죽을 비우는 시간은 짧지는 않았다. 뭐든 천천히 하시므로.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로 또 다른 죽에 약을 넣어 드린 뒤 간병인은  “무슈가 이렇게 드실 수만 있다면 건강이 좋아지실 거예요 “라고 하더니만 나에게 언제까지 머무느냐고 물었다.
    일주일 더 있을 것이며 매일 올 거라고 했더니 좋아했다. 저녁 시간은 정확히 5시 20 분에서 6 시 사이이니까 내가 와주면 큰 도움이 되겠다고 했다.

    아버님의 얼굴을 깨끗이 닦아드리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버님을 찬찬히 내려다보면서 그녀가 말했다.

    “보세요. 아까보다 화색이 돌지요? 아깐 너무 창백했어요.” 그렇게 말을 하다 말고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갑자기 달라지시다니…. 혹시 며칠 후에 돌아가실 거라서 그런 건 아닌가 두렵네요. 노인들이 가끔은 그러거든요. 오늘 놀라울 정도로 달라지셔서 걱정이 되네요.”라고 했다.

    나는 많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버님이 밥을 드신 사실만 축하하기로 마음먹었다.


    —-


    식사를 마치신 뒤 아버님은 기력이 회복되셨다.
    두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셨다.

    “아버님, 오늘 식사 다 하셔서 기운 나실 거예요.
    아버님, 에릭이 아버님께 사랑을 보내요.
    에릭은 아버님을 무척 사랑해요.”

    나의 남편이 감히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내가 대신 전했다.
    아버님이 입을 열고 뭐라 뭐라 말씀하셨다.
    말은 여전히 어눌하셔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아듣는 척했다.

    그러나 한 문장, 확실히 들린 게 있었다.

    “Pas facile.” (Not easy.)

    어려우시겠지. 내가 보기만 해도 힘든 데 그것을 몸으로 살아내는 아버님은 얼마나 힘드시겠나…

    “아버님, 그렇지요?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잘 알아요. 아버님, 그런데 아버님이 참 잘 버텨내고 계셔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근데 아버님이 힘드신 거 보면 저는 마음이 아파요.”

    ‘저는 마음이 아파요’라고 하면서 마음이 울컥했다. 그러나 금방 마음을 고쳐먹고 미소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울하신 아버님께는 웃는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었다.
    언제 눈을 감으실지 모르는 분, 마지막 기억이 미소가 되어야지…

    아버님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키스를 했다.
    사랑의 스킨십이 아버님의 쇠하고 시들은 영혼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한 순간에 아버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그 눈물을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그냥 생리적 현상이라 믿기로 했다.
    안 그러면 내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아버님이 잠이 드셨다. 고른 숨을 확인한 뒤 방을 나섰다. 어머님 방으로 돌아왔더니 어머니가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나는 조용히 재킷과 가방을 들고 나와 호텔로 향했다.


    ——————

    호텔로 돌아오는 길,
    아까 내가 팔을 자유자재로 휘저으면서 걷던 길인데 그때와는 사뭇 다르게 보였다.


    저녁 시간이라 차들로 붐볐고, 추운 날씨임에도 카페테라스는 두꺼운 쟈켓을 입은 채 맥주, 감자튀김 등등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번잡하고 밝은 불빛들이 나를 덜 외롭게 만들어주었다.

    나와 남편과 딸이 맥주를 마셨던 카페를 지나치면서 내 가족이 몹시 그리워졌다.

    모든 순간이 다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시부모님을 만난 지 28 년. 언제 그 시간이 지나가버려서 이제 나는 죽음 앞에 서 있는 두 연약한 노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자연스럽게 나는 나와 남편의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에게 30 년이란 세월이 주어진다면 그건 너무도 큰 복일테고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노년의 몇 십 년은 찰나.
    우리는 언젠가—-이미 지금도 느끼고 있는 생각이지만—’언제 이렇게 시간이 다 흘러버렸지?‘ 하며 경악할 것이다.

    돌아오는 내내 남편 생각이 났다.
    아버님의 얼굴과 남편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그들은 용모도 비슷하거니와 남편도 아버님과 마찬가지로 정이 많고, 의롭지만, 절대로 자기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수시로 눈물울 폭파하는 감정 덩어리 부인을 만나 살면서 조금 표현을 하게 되었다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아주 많이 자기감정을 스스로 컨트롤하고 있다.
    아이들과도 마찬가지,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나에게 표현해 왔고, 그걸 내가 남편과 나눠왔기에
    남편과 아이들 사이의 ’감정의 채널‘의 존재는 미미하다.
    그래서 엄마/부인/나는 우리 집 여러 감정의 철로가 집합하는 ’서울역‘이다.
    현재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우리 집안의 감정 노선은 내가 세상에 없다면 큰 혼란을 일으킬 수가 있다.
    시댁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문제들, 특히 아버님 간병에서의 문제들이 시어머님 중심으로 돌아가던 집안이 시어머님이 병환으로 무너지는 순간 일어나게 되었듯이…

    아버님과 남편이 겹쳐 보이는 이유는 그들의 성격 말고 또 하나가 있다.
    아버님은 장모를 돌아가시는 날까지 모셨다. 성심성의껏.
    어떨 때는 딸보다 더 다정하다 싶을 정도로.
    그래서 장모님은 100 세까지 장수를 누리시고 집에서 돌아가셨다.
    그렇게 장모를 모신 빠삐는 이제 감옥의 독방과 그리 다를 것 없는 요양원의 독실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나의 부모님을 친부모인양 성심성의껏 모시고, 현재 나의 친정어머니의 든든한 아들/사위 역할을 하고 있는 남편은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맞이할까?

    나의 남편은 자기를 어떻게 표현하고 살까?  
    요구하지 않는, 요구하지 못하는 아빠의 마음을 아이들은 얼마나 이해할까?

    10 분의 거리인데 하도 천천히 걸어서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20 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만큼 생각이 많았었다.
    그러나 마음은 무겁지 않았다.

    언젠가 한 번은 생각해봐야 할 일이지.
    남편에게 ‘감정 표현’에 대해, 아이들과의 소통에 관해서 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싶었다.
    아이들에게도 시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노년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야 아이들도 나중에 편할 것임을 알기에…
    조부모, 친척, 가족이 좋은 게 뭐겠나.
    아이들이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까이서 제공하는 것 아니겠나.

    ——-

    호텔에 돌아와서 낮에 사둔 오이에 엄마가 싸주신 건강 쌈장을 듬뿍듬뿍 찍어먹었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nut energy bars와 민트 차를 마셨다.
    피로가 풀렸다.

    오늘 하루, 공항에서부터 저녁 마무리까지 너무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버님을 보고 많이 충격받고 마음이 아팠지만, 놀랍게도 나의 마음은 아주 평안했다.
    멀리서 걱정하는 대신, 와서 직접 손을 잡고 위로해 드릴 수 있는 것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되는 것인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어떤 사랑의 표현도 안 한 것보다는 나으니까…
    옛날에 썼던 글, ‘텔아비브의 이발사‘ 에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허그와 키스’라고 썼던 기억도 났다.
    나는 계속 키스를 하고, 안마를 하여, 죽어가는 아버님 영혼과 몸을 위로하리라 굳게 다짐했다.

    남편과 통화를 했다. 통화 후 문자가 왔다.

    “오늘 아버님과 함께 한 시간, 아버님의 반응만으로도 이번 당신 여행은 가치 있는 일이 되었어.”

    샤워하고 기도하고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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